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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면의 문제
2. 내적 여행의 장애들 3. 바늘귀 4. 식탁의 그리스도 5. 기도, 그 식탁의 교제 6. 순종의 기술 7. 그리스도와의 폭넓은 고제 8. 영원 주 |
Calvin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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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다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결혼처럼 생각합니다. 부부가 하루를 끝낼 무렵에야 함께 모이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만납니다. 결혼한 부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합니다" 또는 "나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기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납니다" 또는 "3시부터 4시까지는 내 기도시간이야!" 사실 하나님이 유리 바다 앞 큰 보좌에서 통치하신다는 표현이 있으며,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특별한 시간을 두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 존재 자체만큼이나 자신을 멀리 펼칩니다. 우리는 그분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 묶고, 마치 거기서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놀라운 그리스도는 학문과 사상의 온 세계에 충만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동시에 여러 분야에서 발전한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심리학이나 문학 혹은 수학이나 철학을 많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더욱 더 넓어집니다. 필립스(J.B. Phllips)는 그의 유명한 책에서 하나님이 너무 작은 것을 슬퍼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에게 우리 삶의 종교적 영역만 할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세계를 더 많이 떠안도록 우리가 자리를 내어드릴때, 크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 이해도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1950년 오클라호마의 근본주의자가 되는 것이 살기에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절한 대답과 엄격한 판별은 이제 내 마음의 갈증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처음 알았을 대는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더 분명했습니다.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읽은 것도 거의 없었으며 배우지 않은 세계의 명료한 지식에 맞설 책도 경험도 없었습니다. 세계에 대한 지식을 넓히면서 나는 답은 언제나 더디게 오며, 사람들과 그들의 믿음과 관계에 대한 내 판단을 명확히 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장을 통하여 나는 언제나 어떤 것의 전부를 알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분명한 답이 없어도 질문들에 좀더 귀기울이게 되었습니다. --- pp 188~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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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폭식가입니다. 그것은 세월을 정신없이 삼킵니다. 온 우주는 빨리 죽도록 강요당합니다. 우리는 저항합니다. 딜런 토마스(Dylan Thomas)가 역설했듯이, 우리는 "분노, 빛이 사라지는 데 대해 분노!"합니다. 그러나 조만간 우리는 갑니다. 우리의 삶은 "베틀의 북보다 빨리 지나갑니다"(욕 7:6).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삶은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다가 퇴장하는 시시한 배우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모든 창조물은 시간이라는 폭군에게 지배당합니다. 버지니아 오웬즈(Virginia S. Owens)가 그 횡포의 규모를 설명합니다. 두더지의 심장은 숨낳은 작은 모피 동물들처럼 일분에 800번까지 고동칩니다. 이러한 피조물은 우리가 하루에 경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한 시간에경험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쏜살같은 세월이란 표현을 비웃을 겁니다. 그들에게 현재는 훨씬 짦은 순간입니다. 하루는 일년과 같습니다. 그들의 일생은 수개월 만에 끝납니다. 만약 시간이 우리보다 작은 포유 동물에게 그렇게 빨리 지나간다면, 며칠 만에세대가 바뀌는 과일파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는 이온가속장치에서 천분의 일 초 만에 존재가 측정되는 특이한 원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구세주는 더 영원한 세계의 실체로 우리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나를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약속으로 우리를 시간에서 자유롭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존 울맨(John Woolman)은 이 세상의 것들이 다른 세계로 향하는 우리의 환상을 흐리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은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셨으며,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눅 9:23)고 전했습니다. 광야의 식탁은 자신을 부인하는 두 사람의 모임입니다. 구세주는 자신을 부인하시고 이천 년 전에 순례를 마쳤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죽이는 사람들만 다음 세계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참 실체라고 말했습니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영광스러운 실체를 알고 있습니다. --- pp 104~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