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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정준형
에코리브르 200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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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01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차이로군요”
02 이보다 기이한 문제는 없다
03 계산과 측정
04 깃털이 같은 새들
05 마음을 보는 눈, 부류를 보는 눈
06 코드를 찾아서
07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만드는가
08 오클라호마의 전통 창조, 혹은 여름방학에 있었던 일
09 그들을 화형시켜라
10 공통의 인간성이 우리를 울린다
11 거기에 인간은 없다
12 이방인이 되지 말라
13 신고식과 전환
14 효수된 머리
15 다윈주의라는 종
결론
감사의 글/주/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기억의 메타포》,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소개하고 쓰는 일에 관심이 많다.

정준형의 다른 상품

저자 : 데이비드 베레비
아버지는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미국인이었던 베레비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영어를 모국어로 자랐다. 아이비리그인 예일 대학교를 나왔지만 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는 대부분의 삶을 뉴욕에서 보냈다. 현재도 뉴욕 부르클린에 살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뉴 리퍼블릭〉 〈슬레이트(Slate)〉 〈링구아프랑카(Lingua Franca)〉 〈더 사이언시스(The Sciences)〉 〈디스커버(Discover)〉 등에 과학과 문화 분야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10쪽 | 730g | 148*210*35mm
ISBN13
9788990048806

출판사 리뷰

늙은이와 젊은이, 기독교도 불교도, 기혼과 미혼, 영남과 호남, 한국인과 미국인, SUV 운전자와 미니밴 운전자……. 사람들을 분류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으며, 이런 분류는 누구나 항상 하는 일이다. 일상적인 결정(저녁식사에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에서부터 일생일대의 선택(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역사적인 대전환점(누구를 상대로 전쟁을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를 좌우하는 것은 누가 어느 편에 속하고 그 속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인식이다. 누구나 동시에 여러 집단에 속할 수 있다. 즉 당신은 여성이자 부모이자 한국인이자 기독교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어떻게 결정할까? 또 그것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종교, 민족, 인종, 계급을 위해 기꺼이 죽고 죽이는 것일까?
데이비드 베레비는 이 혁신적인 책을 통해, 집단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과학적으로 어떻게 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인류학에서 신경과학까지 여러 분야의 새로운 발견들을 제시하면서, ‘부족적(tribal)’ 감각이 우리 삶의 모든 국면에서 표현되는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부족적 감각은 뿌리 깊이 작용하며 우리의 삶과 기회들을 형성한다. 이 책은 부족적 감각이 어떻게 다음과 같은 결과들을 낳는지 설명하고 있다.

* 부족적 감각은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노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면 그들은 더욱 무기력한 행동을 보이며, 아시아계 여성들에게 그들이 아시아인임을 상기시키면 여자임을 상기시킨 그룹보다 수학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본문 195쪽). 작은 방 안에서 혼자만 그룹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낸 사람은 누가 봐도 그룹의 의견이 틀리다는 게 명백한데도 대개는 자기 의견을 바꾼다(본문 159쪽).
* 부족적 감각은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은 스트레스, 우울증, 콜레스테롤 수준과 직결된다(본문 362쪽).
* 부족적 감각은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조작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부족적 수사는 불의와 억압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가 하면, 증오를 접고 화해를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무자퍼 셰리프의 실험(8장 참조)에서는 여름 캠프에 참가한 어린 소년들을 서로 싸우는 ‘부족들’로 만들었다가 다시 뭉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은 부족적 ‘버튼’이 어떻게 눌러지고 왜 눌러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부족적 감각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며, 우리를 자기 자신이라는 좁은 틀에서 꺼내어 타인, 과거, 미래와 이어준다. 이런 본능이 오로지 악의 근원인 양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충성심과 믿음이 결코 악용되지 않는 것인 양 찬미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이 피할 길 없는 부족적 사고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지, 훌륭한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매일 아침 뉴스에서는 인간 부류에 관한 다양한 변주를 볼 수 있다. 왜 저들은 ‘자신들이 먹는 것’이 아닌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기를 택했을까? 왜 저들은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자기네’ 군대가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저지른 일을 부끄러워할까? 왜 저 군중은 지역의 다른 신도들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그 신도들과 상관없는 종교 학교에 불을 질렀을까? 왜 저들은 소중하고 값진 소유물들이 다른 부류의 의식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것들을 불태웠을까? 세상을 이해하는 익숙하고 해묵은 경험법칙에 따르면 이런 해묵은 답이 나온다. 그게 그들의 문화이니까, 그게 그들의 혈통이니까, 그게 그들의 역사이니까, 그저 인간 본성이 그러하니까.
상식적인 답으로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상식적인 답에는 두 가지 취향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집단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만큼 인간의 영혼이 선하고 고귀하다는 찬탄이며, 다른 하나는 부모가 그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무고한 아기도 죽일 만큼 인간 본성이 악하다는 비관이다. 양쪽 다 진부하고 막연한 답이다.
마음과 뇌의 과학은 그와 다르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부족(tribe)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는지, 어째서 부족적 선과 부족적 악 모두를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마음과 뇌의 과학은 이미 해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든 과학이 그래왔듯이 상식과 경험법칙을 전복시킴으로써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인종, 종족성, 민족성 등의 부족주의(tribalism)에 관해 연구한 결과는 그러한 개념들에 대해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바를 확인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하는 경험에 대한 우리 뇌의 반응 역시 끊임없이 변하므로, 우리가 지닌 범주들이 불변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범주란 마음과 세계가 만나 빚어지는 우리의 생각과 인식일 뿐이다.
진정한 인간 부류의 과학은 일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어느 LA 출신 부류과학자는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대략 프랑스적으로 행동하는 프랑스인들’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는 75퍼센트의 프랑스-미국 간 차이, 12퍼센트의 흑백 간 차이, 13퍼센트의 남녀 간 차이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금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즉 인간 부류를 어떤 사물이나 법칙으로 보지 않고 정신적 경험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은 일부 사회 심리학자들이 오랫동안 고대해온 변화이기도 하다. 예컨대 수십 년 전 헨리 타펠은 ‘집단은 실체가 아닌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민간 심리학적 인간 부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정신적 경험으로서 인간 부류를 말한다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을 부단히 변하는 주관적 경험의 산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려면 번거롭고 더딜 뿐 아니라, 그러기 위해 필요한 많은 말들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유동적ㆍ주관적인 방식으로 인간 부류를 말할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ㆍ경제적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동의한 적도 없고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인간 부류의 틀에 갇혀 산다. 인간 부류를 ‘오로지’ 주관적 정신 상태로만 다루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경시하는 처사이다. 오늘날 뉴욕에 사는 백인과 흑인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인종이란 ‘오직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데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스타벅스에서 나와 택시를 잡는 순간에는 백인 쪽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그 순간 인종은 중력만큼이나 실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세상사를 간과할 수는 없다. 당신이 아무리 인간 부류적 신념의 기원을 잘 설명할 수 있다 해도, 당신 역시 그러한 인간 부류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 부류에 대한 새로운 과학도 정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인간 부류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답은 없다. 즉 인종ㆍ민족성ㆍ성격 특성이 ‘실재한다’거나 ‘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시간, 장소, 상황에서는 인종이 실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인간 부류를 이해하는 더 나은 길은 기존의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 그러한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개인의 의식은 여러 인간 부류들 사이를 오가는데, 그러한 인간 부류들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듯 보인다는 문제다. 우리의 몸과 뇌가 끊임없이 작동하듯이 마음도 그러하다. 나는 하루에만도 수십 가지 인간 부류가 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무리 속에서는 미국인처럼 느끼고 행동하다가, 텍사스 사람과 말할 때는 뉴욕 사람처럼 느끼고 행동하며, 여자와 말할 때는 남자처럼 느끼고 행동한다. 동료와 대화하는 동안에만도 그 세 가지 부류 모두, 아니 그보다 여섯 가지 부류는 더 될 수 있다.
단순히 우리 마음속에 인간 부류들이 만화경처럼 지나간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서 인간 부류들은 변하기까지 한다. 개념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인간 부류는 기억과 같다. 무언가를 기억할 때는 마치 변치 않는 과거의 기록을 선반에서 꺼내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뇌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지금 여기에 맞는 개정판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뉴욕 사람이라는 인간 부류를 사용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재창조하므로, 오늘 아침 내가 생각한 ‘뉴욕 사람’이라는 범주는 2주 전에 생각했던 ‘뉴욕 사람’과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무슬림은 평화를 사랑한다’, ‘중국인 농부는 근면하다’, ‘캘리포니아 사람은 자유분방하다’와 같은 모든 인간 부류의 묘사는 설득의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인간 부류를 묘사하고 그것을 믿으면 당신도 내 말을 듣고 그렇게 믿으며, 우리가 말하는 인간 부류는 점점 더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되어간다. 어쨌든 우리 마음속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 부류들도 변하는 듯 보이는 이유, 즉 흄의 시대에 에스파냐 사람은 엄격하고 터키 사람은 품위 있고 그리스 사람은 경박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많은 유럽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이로써 설명된다. 그렇다면 인간 부류의 ‘지속’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의 경험이 조직되는 방식에서 무언가가 우리로 하여금 변화무쌍한 우리 마음의 산물이 영구불변하기를 바라게 만든다. 인간 부류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들이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이유는, 주관적 경험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인간 부류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연구하는 사람들 간에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다.
인간 부류가 그처럼 영구불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코드의 이중적 속성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글자들이 종이 위에 인쇄된 화학물질인 동시에 말들의 나열인 것처럼, 코드를 전달하는 그 어떤 것도 그 자체인 동시에 그것이 표현하는 무엇이다. 인간 부류의 경우에는 사람들 그 자신이 코드의 전달체일 때가 많다. 즉 당신이 만나는 어떤 미국인도 ‘조 스미스’라는 그 사람 자체인 동시에 ‘미국인’이라는 일반 개념을 가리키는 존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인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코드를 표현한다는 점을 잊어버릴 수 있고, 잊는 법을 학습할 수 있다. 조 스미스라는 개인을 보지 않고 오직 상징만 보는 것이다. ‘미국인’을 불변하는 실체로 생각하기 쉬운 것도 이 때문이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일 때문에 한 미국인 개인을 쉽게 죽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와 살을 가진 특정한 개인을 쉽게 죽이거나 해치지 못한다. 즉 상징을 쉽게 무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 부류에 관해 해결되지 않은 두 번째 문제는 이러한 정신적 코드가 정확히 어떻게 사람들을 한 범주의 상징으로만 보게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즉 코드의 이중성을 잊게 만드는 인간 부류 기능은 어떤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음과 뇌의 부류적 시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세 번째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부류적 시각을 하나의 기능으로 보는 것이 좋은가, 여러 기능으로 보는 것이 좋은가? 나는 부류적 시각이 여러 가지 독립적인 과정들로 쪼개진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에게는 타인들과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있다(‘한 배를 타는’ 능력). 만나본 적도 없는 타인들이 ‘우리’의 일부라고 믿는 능력이 있다(본질주의). 뚜렷이 구분되는 믿을 만한 표지를 중심으로 스스로를 조직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사람들의 행동이, 저 사람들은 저러하다는 우리의 인식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속성의 오류). 우리에게는 타인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보는 능력이 있다. 이 모든 코드가 우리의 일상 대화 속에서는 동일한 듯 들리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네 번째 문제로 이어진다. 그것은 원인으로서 인간 부류와 설명으로서 인간 부류를 구분하는 문제다. “유고슬라비아가 분리된 이유 중 하나는 종족 간의 증오였다”고 말할 때처럼, 설명은 어떤 일이 일어난 뒤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다. 설명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반면 원인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다. 유고슬라비아가 분리된 원인이 ‘종족 간의 증오’라는 말은 종족 간의 증오가 실제로 무슨 일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인간 부류에 대한 서로 다른 사고방식임이 명백한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두 가지를 혼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후 설명이 곧 사전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종 실재론을 지지하는 학자, 인종을 근거로 진료하는 의사, 종족이나 인종에 관해 금기로 여겨지는 진실을 제기하는 저술가들은 특별한 주장을 한다. 즉 심리적ㆍ정치적 분석 수준에서 나온 경험법칙상의 인간 부류들이 분자생물학, 유전학, 신경과학적 범주들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그들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첫째, 인종과 종족집단이 정치적ㆍ문화적 수준에서 실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둘째, 분자ㆍ유전자ㆍ세포ㆍ기관의 수준에서도 실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치적ㆍ심리적 수준에서 인간 부류가 일단 신뢰받게 되는 것은 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 된다. 인종이나 종족집단이 진짜가 되는 방식은 돈이 진짜가 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즉 사람들이 그들의 신념대로 존재하고 행동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번째 요지다. 한 분석 수준의 범주가 다른 분석 수준의 범주와 일치한다고 믿을 까닭이 없다. 내 주머니에 든 지폐의 가치는 정치 제도와 사람들의 신념의 결과이지 다른 분석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지폐를 불태우면 탄소 원자가 날아가겠지만 그것은 유로화나 엔화 지폐의 탄소 원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원자의 물리학은 원자가 통용되는지 여부와 무관하다. 두 설명 수준이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분명히 실재했던 한 인간 부류를 보자(원본 57쪽). 한 세기 전에 비정상적으로 큰 가슴샘을 지닌 사람들로 규정되었던 부류는 결국 정상적인 가슴샘을 지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의사들은 낙인찍힌 계급의 시체만을 다뤄보았기에 오판을 했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그 낙인 때문에 더 작은 면역계 분비선과 더 큰 스트레스 관련 분비선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낡은 신념에 근거한 쓸데없는 방사선 치료 때문에 없어도 될 수천 명의 갑상선암 환자가 생겨났다.
바로 이 이야기 속에 인간 부류의 모든 본질이 담겨 있다. 우리가 아무리 영원하다고 느껴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것. 훗날 그것이 현실과 맞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해도 실질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위축된 분비선처럼 육체적인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 그 때문에 우리는 본말을 전도해, 육체적 변화가 범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부당하고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그릇된 인간 부류적 판단이 교재와 강의에 포함되고 똑똑하고 자신만만한 교양인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이 이야기의 교훈은 단순하다. 코드는 바로 당신의 머릿속에 있으며 당신에 의해 매일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특별한 기회와 약점들을 지닌 그러한 힘을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힘을 휘두르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의 인간 부류 코드는 당신이 행동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민족적 긴장, 종교적 분쟁, 정치적 갈등, 파벌 간의 경쟁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추천평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이 ‘편가리기’로 거부되는 시대에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지를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 ‘우리’는 단지 마음이 만드는 산물이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당신의 우리는 달라진다. 당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당신이 속한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 심리학 자료를 통해 인간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결과물임을 알려준다. 사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이 세상마저도 마음이 만들어낸 주관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상황에 의거해 설명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인간 마음의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당혹스러운 주장일 것이다. 우리 모두 국민성, 지역성, 남성-여성, 강남-강북 등의 미신적인 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 책의 주장은 복음이다. 우리 스스로 인간에 대해 만들어가는 미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념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세상에 대한 신념이 왜 미신에 불과한지를 알려주는 과학적 심리학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 패가 되고 나서 서로 비슷해진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며, 또 우리의 상식과는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사람, 아니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황상민 (연세대학교 심리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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