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론 추상미술의 선구자들
칸딘스키와 클레의 공통된 추상개념 색을 소리처럼 사용하다 '즉흥' '구성' '인상' 형상적·상징적·추상적 기호들 풍경화에서 리듬으로 나타난 음악의 장단 색채가 지닌 미지의 힘 감동을 준 모네의 작품 뮌헨으로 간 칸딘스키 가브리엘 뮌터와의 만남 사랑의 유랑 뮌헨 신미술가 협회를 창립하다 낯선 것들에 대한 애착 소묘에 재능을 타고난 클레 '창조'연작 자연현상에 눈을 돌리다 세잔과 들로네의 영향 비재현에서 추상으로 표현주의 양식을 확립한 칸딘스키 '즉흥'연작 '인상'연작 기독교적 주제 <성자들> 기사가 있는 풍경_서정적 풍경과 낭만적 풍경 청기사 그룹을 결성하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완전추상을 향하여 낯선 형태를 찾아서 화가라는 자각이 생기다 튀니지 여행 제1차 세계대전 음악과 문학으 ㅣ회화 튀니지의 추억 유명해진 클레 바우하우스 시대 러시아로 간 칸딘스키 바우하우스의 교사 클레 바우하우스의 알터마이스터 칸딘스키 칸딘스키의 원형 클레의 위트 "구성은 내 사고의 장면이다" 데사우로 이전한 바우하우스 자연을 떠난 회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교수가 된 클레 『점 선 면』 바우하우스의 영향 교수직을 박탈당하다 파리의 추상미술 동향 칸딘스키와의 대화 퇴폐미술전 매체가 곧 메시지다 가장 창의적인 예술가 클레 미술교육자 칸딘스키_예술가의 경험과 통찰로 가르치다 에필로그 추상의 두 거장, 칸딘스키와 클레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미학적 원리에 기초한 칸딘스키의 추상 왜곡과 오르피즘에 기초한 클레의 추상 참고문헌 바실리 칸딘스키 연보 파울 클레 연보 도판목록 색인 |
|
색은 키보드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끈이 달린 피아노이다. ? 칸딘스키
모네의 <건초더미>에서 받은 충격으로 추상회화로 들어서게 된 칸딘스키는 색을 음악에 비유하곤 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그는 영혼을 피아노에 비유하며 “예술가는 연주하는 손으로 하나의 키 또는 다른 키로 두드려서 영혼이 떨리게 만든다. “고 했다. 또다른 책 『점 선 면』에서는 “순수한 예술가는 ‘내적이며 본질적인’ 느낌만을 표현하려고 해야 하며 피상적이고 우연적인 것은 무시해야 한다.” 고도 했다. 이에 반해 클레는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는 왜 흰 꽃이 있는 작은 정원을 만들고 종일 울타리 너 머로 바라보아야 한단 말이오? 우리의 정원은 넓게 열려 있는 세계이며 싸우는 곳이 아닙니다. 아주 많은 종류의 씨를 심을 수 있는 곳입니다.” 라고 썼다. 그렇다면 대체 추상회화란 무엇인가? 그저 대상을 알아볼 수 없도록 색으로 덮어놓은 난해한 그림인가? 이에 대해선 뉴욕의 화상이었던 칼 니렌도르프와 칸딘스키가 나눈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칼 니렌도르프 : 추상미술은 자연과 무관하다고 이따금 주장되는데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칸딘스키 :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추상화는 자연의 겉옷을 버리기는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버리지는않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우주적 법칙입니다. 미술은 우주적 법칙과 직결되어 있으며 그 아래 종속될 때만 위대해질수 있습니다. 칸딘스키나 클레가 추상이라는 회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20세기 초반은 신인상주의, 야수주의, 표 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절대주의, 미래주의, 오르피즘이라는 미술사의 새로운 사조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사라진 미술의 실험기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칸딘스키가 창립한 『청기사 연감』에는 마르크, 쿠빈을 비롯, 반 고흐, 피카소, 세잔, 고갱, 앙리 루소, 들로네, 마티스의 그림들이 실렸다. 책장을 넘기며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기쁨이 적지 않다. 그림을 잘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제 색을 제 자리에 칠하는 것이다. - 클레 칸딘스키와 클레는 위대한 회화의 거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역량있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나치의 점령으로 1933년 페쇄된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함께 재직하며 친구로서, 추상미술을 일군 동 반자로서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바우하우스는 짧은 기간동안 존속했지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로서 디자인과 산업 기술 사이의 관계를 확립한 기관이다. 클레가 칸딘스키의 60회 생일을 기념하는 전시회 카탈로그에 쓴 글을 보면, “칸딘스키 그의 발전속도는 나보다 훨씬 앞선다. 난 그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어떤 면에서 이미 그의 제자였다. 그의 말이 나로 하여금 탐구를 부추기고 내게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단순하지 않고 초기 구성작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했는데, 칸딘스키 또한 그가 그린 <위로 향하다>나 <색 막대기>는 클레의 <세네치아>와 <정원의 문>에서영향받았음을 저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계가 끔찍할수록 예술은 그만큼 더 추상적이 된다. - 클레의 일기 중에서 1차 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클레는 점점 더 추상에 가까워졌다. 기호와 상징은 다의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논리적인 하나의 의미로 확정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부자유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숫자, 알파벳, 느낌표, 정지부호, 화살표, 별, 깃발, 눈, 심장 같은 형상적이며 상징적이고 추상적 기호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런 기호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연과 결부된 한계에서 벗어나 무한한 표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레의 말년은 우울했다. 스위스로 돌아와 스위스 국적을 신청했을 때 스위스 정부는 클레를 퇴폐 예술 가로 규정하여, “언젠가는 미쳐버리게 될 위험이 있을 정도로 무절제하고” 그의 예술은 “대중의 건전한 양식과 정신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작성되어 결렬되고 만다. 비할 데 없는 타고난 상상력과 최고의 솜씨로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금세기의 혁신적인 미술에 어떤 예술 가도 능가하지 못한 영향을 끼친 클레는 자신의 일기에 쓴 것처럼, “나는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독백처럼 진정 추상미술은 이해할 수 없는 회화인가? 칸딘스키와 클레. 추상미술의 위대한 두 선구자를 가깝게 느끼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이 책을 통해 누구나 추상미술을 이해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