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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을 죽일 생각입니다.” 우람한 가슴팍 위에 팔짱을 끼며 코난 도일이 말했다. 알프스 고지의 매서운 바람이 아서의 두툼한 콧수염을 들썩이고 귓속을 파고 들었다. (…) “내가 놈을 죽이지 않으면 놈이 날 죽이고 말 겁니다.” 아서가 말했다. “오랜 친구에게 너무 박정하단 생각 안 듭니까?” 호킹이 물었다. “당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친구 아닙니까. 부와 명성을 모두 안겨줬죠. 두 사람처럼 어울리는 짝도 없어요.”
--- p.8-9 아서는 책상 아래 왼쪽 서랍을 열쇠로 열고, 그 안에 쌓아둔 검은 가죽장정 일기책 가운데 한 권을 꺼냈다. 일기책을 열고 거지반 채워진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펜을 뽑아 빈 부분에 이날의 날짜를 썼다. 그는 매일 저녁 한 시간 정도, 일기책에 그날 있었던 일과 하루 동안 품었던 개인적 생각을 낱낱이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 밤엔 오로지 두 단어만 적었다. “홈스를 죽였다.” 속이 후련했다. 뭉쳤던 어깨 근육이 풀렸다. 두 눈을 감고 어두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정말 행복했다. --- p.21-22 “셜록 홈스라면 어떻게 할까요?” 해럴드가 물었다. 멍했지만 진지했다. 그는 알고 싶었다. 가능한 일인지 알고 싶었다. “홈스라면 책 속으로 도로 기어 들어가겠지. 홈스는 잉크와 소나무 펄프니까.” “홈스가 실존 인물이고 그의 이야기가 실화라면, 그럼 홈스는 어떻게 할까요?” 해럴드는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해럴드, 미친 짓이야. 난 끼고 싶지 않아.” “발자국부터 찾겠죠! 홈스는 늘 그러잖아요. 《주홍색 연구》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홈스가 사건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닥에 난 발자국을 살피는 거였어요.” --- p.61-62 “그래서 홈스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낭만적이어서?” 해럴드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홈스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나의 집착에 마땅한 이유가 있긴 했나? 엄마를 왜 사랑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처럼, 그가 홈스를 사랑하는 이유도 설명하기 막막했다. “문제에 해답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좋아서요. 홈스 이야기를 포함해서 그게 모든 추리소설의 매력이에요. 추리소설 속의 세상은 따져볼 수 있는 세상이에요.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는 세상이죠. 똑똑하면 인과 관계를 밝힐 수 있는 곳이에요.” “그 반대의 세상은……?” “그 반대는 무작위의 세상이죠. 폭력과 죽음이 마구잡이로 일어나고, 그걸 예방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세상.(…)” ---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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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마저 경탄할, 21세기형 홈스 이야기의 탄생
천재적이다. 코난 도일은 물론, 셜록 홈스마저 반길 소설!_사우스플로리다 선 센티넬 당신이 홈스의 팬이든 아니든, 당장 매혹돼버릴 것이다._크리스토퍼 히친스 《주홍색 연구》가 첫선을 보이고 10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셜록 홈스’는 가장 유명한 소설 주인공이자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전세계적 애정과 존경을 받아왔다. 홈스를 향한 오마주나 패러디는 영화, 드라마, 음악, 문학, 회화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바로 오늘까지도 재생산되고 있다. 그만큼 홈스 이야기는 (실제 독서 여부와는 무관하게) 만인에게 익숙하고, 자칫 지루한 되풀이로 치부될 위험성도 높다. 그러나 “셜록 홈스라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을 단칼에 날려버리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 《셜로키언》은 전혀 새로운 매력으로 순식간에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셜로키언》은 1900년대 코난 도일의 이야기와 2010년대 해럴드 화이트의 이야기를 번갈아 그린다. 먼저 100년 전 이야기는 1893년 8월 어느 날, 코난 도일이 라이헨바흐 폭포 앞에서 홈스를 죽이겠노라 결심을 굳히는 데서 시작된다. 홈스는 그에게 명예와 부를 주었지만, 연일 짙게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굴레를 견디지 못했다. 몇 년 후, 홈스를 벗어던진 코난 도일에게 소포로 위장한 폭탄이 배달되고, 그는 게으른 런던경찰을 믿지 못해 직접 범인을 찾으러 나섰다가 외려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는 2010년 초, 홈스 마니아 해럴드 화이트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셜로키언 모임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에 가입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다음 날 컨벤션에서 한 홈스 학자가 코난 도일의 ‘사라진 일기’를 발견했다며 관련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학자는 호텔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그가 찾았다던 일기는 자취를 감췄다. 해럴드 화이트는 살인과 도난, 두 사건 다 자신이 ‘홈스의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치밀한 사전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확보한 역사적 사실 위에, 정교하고도 화려한 소설적 상상력을 배합한 《셜로키언》은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잘게 쪼개진 챕터 속에서 독특한 리듬을 이루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의 물살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이 시대에 그레이엄 무어라는 또 한 명의 강력한 페이지터너가 탄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게다가 무어는 시나리오 겸업 작가답게, 매 챕터를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묘한 여운을 남기며 끝냄으로써 다음 챕터를 향한 독자의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키는 구성력마저 남김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코난 도일의 소설 등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채워진, 각 챕터의 대문을 장식하는 ‘인용문’은 해당 챕터의 내용과 절묘하게 부합하는 것은 물론, 마치 셜록 홈스의 아포리즘을 보는 듯한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셜록 홈스의 팬들은 아서 코난 도일이 남긴 장편소설 네 편과 단편소설 쉰여섯 편을 ‘정전Canon’이라 부르며 칭송한다. 그렇다면, 1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적 사실과 정전 사이의 틈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소설에 ‘21세기형 정전’이라는 별칭이 붙는 것도 그리 머지않은 일일 터이다. 홈스의 낭만을 사랑한, 사랑하는, 사랑하게 될 사람을 위한 소설 “홈스를 전깃불 아래로는 불러내지 마. 그 친구를 신비스럽고 낭만적인 가스등 불빛 아래에 남겨두게. (…) 그 친구를 원래 있던 자리에, 지나간 세기의 마지막 날들에 그대로 놔두게. (…) 사람들이 나중에도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야. 홈스. 왓슨. 그리고 도리언 그레이.” 셜록 홈스의 ‘창조자’와 ‘계승자’의 구도를 이루는 듯 나란히 늘어선 두 이야기는 100년의 간극을 지닌 주인공들이 각기 홈스의 의미를 되새기며 막을 내린다. 창조자는 한때 홈스를 증오했지만 결국 자신의 일부이기도 한 그를 인정하게 되고, 계승자는 자기 삶에서 홈스가 지닌 가치와 의의에 대해 깨우친다. ‘셜록 홈스의 팬’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소설의 초점은 셜록 홈스라는 인물보다는 ‘홈스의 사람들’ 쪽에 더 또렷하게 맞춰져 있다. 아울러 작가는 소설을 통해 홈스를 비롯한 추리소설 전반의 낭만에 대해서도 부르짖는다. 소설 곳곳에는 가스등이 막 전기등으로 바뀌던, 20세기 초반 풍경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고 작중 코난 도일은 그러한 격변의 물결을 경외한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던 격동의 시기, 역사가 역동하는 시기를 살아가던 빅토리아 시대 인물들은 어딘지 2016년의 우리와 닮았다. 어슴푸레한 가스등이 태양만큼 밝은 전기등으로 모조리 바뀐 세상, 알 수 없는 것보다 알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갈수록 허구의 세계에 더 열광한다. 작중 브램 스토커의 말처럼 때로 사실은 너무나 덧없고, “영원히 남는 것은 낭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셜로키언》은 홈스를 사랑하는 셜로키언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전세계의 예비 셜로키언들에게 미리 발송된 아주 낭만적인 초대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