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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왜 종교를 공부해야 하는가? 2. 원시시대의 종교 3. 고대사회의 종교 수메르의 종교 바빌로니아의 종교 고대 이집트의 종교 고대 가나안의 종교 4. 자라투스트라의 종교 5. 이스라엘의 종교 6. 그리스도교 7. 이슬람 8. 힌두교 9. 불교 10. 중국의 종교 유교 도교 읽어볼 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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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는다. 심지어 모든 인간이 그렇고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인간은 알 수 없다. 모든 이가 경험하는 것이 지만, 다시 돌아와 그 과정과 결과를 전해 줄 수는 없기에 여전히 죽음 은 인간에게 알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거나, 아니 면 적어도 죽음의 전 과정과 그 뒤의 이야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다면, 그때에도 인간에게 종교가 남아 있을까? 결국 종교는 이처럼 인간의 죽음과 떨어질 수 없는 연관을 맺는다.
--- p.14 죽음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하나만 더 짚어 보자. 지금의 임종문화가 가지는 비인간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어 이 말을 꺼낸다. 요즘 죽음에 이른 사람은 열에 아홉이 병원으로 향한다. 집에서 앓고 있다가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서둘러 병원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사망 진단이나 이후 진행되는 장례 절차를 생각한다면 병원에서의 죽음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병원에서의 임종은 좀 낯설다. 이 세상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순간에 자신을 돌보는 이들이 타인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평생 머물던 정든 집이 아니라, 낯선 사람, 어색한 공간, 복잡한 기기에 휩싸여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 또한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현대인 이 삶과 죽음을 얼마나 값싸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버렸는지 실감한다. 오히려 고인돌을 놓고 평소 익숙했던 물건을 함께 매장한 원시인의 장례가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 p.42 유대교라고 하는 말은 특정한 종교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 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했을 때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의 독특한 삶의 자세와 방식을 통칭하여 ‘유대적인 것’이라 부르면서이다. 따라서 ‘유대교’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종교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 p.104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오해 중 가장 흔한 것은 이 말이 초세간적이고 주로 사후 세계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몇몇 열성 그리스도교 전도자의 피켓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의 개념이 아니라 ‘저곳 그때’의 것이라 보는 것이다. 즉, 그‘곳’은 신앙생활을 잘한 이들이 죽어 이르게 되는 낙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예수가 전한 하느님의 나라와는 좀 성격이 다르다. 예수가 전한 하느님 나라, 즉 ‘바실레이아 투 테오’는 공간을 뜻한다기보다는 ‘통치’, ‘다스림’으로 새겨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 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즉, 왕이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 그것이 예수가 말한 하느님 나라의 본뜻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요, 전통적으로 유대세계에 전해져 온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금과 고대의 언어 습관에서 ‘나라’라는 단어의 쓰임은 같지 않다. 현대 언어생활 속에서 나라는 주로 공간과 영역으로 생각되지만, 고대인은 그것을 왕이 행사하는 권위, 혹은 주권으로 새겼던 것이다. --- p.137~138 유교의 현세 지향성은 구원에 대한 담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보통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에서 말하는 구원이나 불교와 힌두교 등에서 말하는 해탈의 증거는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이것은 대부분 신앙인의 주체적이고 고백적 진술에 근거하기 때문에 객관적 잣대를 가지고 구원받은 이와 해탈한 이를 구분해 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교적 구원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은유적 표현으로 ‘생명부’ 이야기를 종종 한다. 구원받은 이들의 목록표 가 하늘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이름이 생명부에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교의 생명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심지어 대부분의 집에 실물로 보관되어 있다. 바로 ‘족보’가 그것이다. ---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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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 그리고 죽음……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은 종교가 곧 없어질 것이라며 엄청나게 떠들어 댔다. 그런데 오늘날의 실정은 어떠한가? 종교가 사라지기는커녕 세계인구의 84%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믿는 종교가 진리라며 ‘신의 이름’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사건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기도 한다.왜 인간은 이처럼 종교로부터 좀체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대기권 밖으로 위성을 쏘아 대고, 달나라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며, 지구촌 구석구석의 사건?사고를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이 개명한 세상에서 도대체 사람들은 또 무엇이 필요하고 아쉬워서 종교를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사물의 구성 원리도 이제 알 만큼 알았고, 생명공학과 의학의 발달은 복제인간의 등장과 불치병의 완치를 코앞에 두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인데, 여전히 사람들은 종교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니! 이는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바로 과학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 ‘죽음’ 때문이다. 인류사를 통틀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사후세계가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의 상상력이 종교로 발전한 것이며, 종교가 다양한 이유는 일련의 인간집단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느 종교가 진짜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종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고, 가치관이며, 또 세계관이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히 ‘문화적’이고 ‘이해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만이 ‘종교문맹’이라 불리는 현대인의 질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다.인간이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인간은 인지적 동물이므로 자신이 ‘이해’한 세상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재구성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고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순수함을 잃어버리듯이, 모든 인간은 세계를 ‘이해’한 순간 ‘세속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이해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거나 경험해 볼 수 없다.종교는 바로 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과 함께라면 인간은 죽지 않는다고, 그리고 신이 내건 조건을 충실히 따르면 죽음 정도는 쉽게 넘어설 수 있다고, 혹은 죽음을 경험하는 주체가 존재 하지 않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아니면 나는 죽어도 나의 후손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 죽음에 치이지 않을 수 있다고, 어떤 이는 아예 죽지 않게끔 몸을 튼튼히 유지할 수 있다고, 이도저도 아니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약을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종교는 여전히 죽음을 이기는 지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을, 심지어 무종교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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