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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지하궁전 2
웨난
일빛 20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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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6장 천년의 용안이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다
두번째 석문이 꽝 하고 열리다
묘 주인의 관곽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옥기의 으뜸
사루옥의를 발견하다
묘 주인의 사망 연령
묘를 지키는 보물

제7장 남월이 왕을 칭하다
영남의 할거
호각지세
오령을 경계로 분할하여 다스리다
남월로 사신을 보내다
남월국이 신하로서 복속하다

제8장 영남으로부터의 진동
신기한 귀뉴금인
처참한 순장 제도
일곱 여인의 죽음
번우소내와 승여의 수수께끼
남월왕묘의 형태와 구조

제9장 남월국의 흥망
오령에 전쟁의 기운이 일다
피비린내 나는 장안성
한나라와 남월이 군대를 철수하고 다시 화친을 맺다
남쪽 하늘의 기둥이 무너지다
사방으로 위기에 처한 남월국
역사의 종말

제10장 끊이지 않는 여파
난해한 수수께끼
최후의 비경

저자 소개 1

Yuenan,岳南

역사학에 대한 남다른 깊은 조예와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웨난은 오랜 기간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축적한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수많은 학자들과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발견자들을 취재하여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아우른다. 다큐멘타리 작품이 주는 사실적인 생동감은 독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고고학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며 풍부한 인문적 지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의 자취와 진실을 엮어내며, 속도감있는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을 바탕으로 고사나
역사학에 대한 남다른 깊은 조예와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웨난은 오랜 기간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축적한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수많은 학자들과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발견자들을 취재하여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아우른다. 다큐멘타리 작품이 주는 사실적인 생동감은 독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고고학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며 풍부한 인문적 지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의 자취와 진실을 엮어내며, 속도감있는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을 바탕으로 고사나 전설을 연결하여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국 역사를 읽는 색다른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1963년 산동성(山東省)에서 태어났으며, 10년 동안 군 선전부에서 근무했다.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한 후, 북경사범대학 연구소와 노신(魯迅)문학원 작가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열하의 피서산장(熱河的冷風)』『북경의 명십삼릉(風雪定陵)』『법문사의 불지사리(萬歲法門)』『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하북성 준화의 청동릉(日暮東陵)』등이 있으며, 현재 잡지 『쯔광거(紫光閣)』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의 피서산장(熱河的冷風)』『북경의 명십삼릉(風雪定陵)』『법문사의 불지사리(萬歲法門)』『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하북성 준화의 청동릉(日暮東陵)』등이 있으며, 현재 잡지 『쯔광거(紫光閣)』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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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익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강사로 있으며, 번역서로 『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 『중국문학이론사』 『뉴캠퍼스중국어』 『Chinese Reading Master』 『서시(西施)』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59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893848

출판사 리뷰

이 책의 출간 의도
중국 역사상 강북인(江北人)은 부를 얻기 위해 권력을 추구했고, 강남인(江南人)은 권력을 얻기 위해 부를 추구했다고 한다. 대개 중앙의 조정은 대부분 양자강 이북지역에 있고, 집권층 역시 대대로 북부지방 사람들이었다. 강북 사람들은 양자강 이남지역을 야만인들이 사는 미개지로 생각했다. 월(越)은 야만인을 지칭하는 말로서 북방의 중국인들이 양자강 이남지역을 뭉뚱그려 비하해 부르는 표현이기도 했다. 진시황이 월을 정복한 후 이 지역에는 수만 명에 이르는 북방의 죄수와 상인을 강제 이주시켰으며, 이 지역에 살고 있던 한족(漢族)이 아닌 이민족들과 융화되었다. 상대적으로 중원에서 떨어진 탓에 관료들의 통제가 느슨해진 이 지역 주민들은 금지되어 있는 상업활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확보했으며, 강북에서 내려온 유배자와 탈주자, 개척자들은 원주민들과 섞여 살며 오늘날 대륙의 남부 지방과 화교집단에서 볼 수 있는 방언그룹을 형성했으며, 오늘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화교들의 90% 이상이 고대시대에 월이라 불리던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만약 월나라가 독립된 왕조를 지킬 수 있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페니키아와 같이 세계적인 해양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들은 대륙의 내부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외부세계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며, 중원을 중심으로만 사고했던 한인들과 달리 월의 후예들은 모험심이 강한 기질을 후손에 물려주었다. 전국시대에 월은 전란에 휩싸여 많은 피를 흘렸으며, 기원전 219년 진시황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진의 노예를 한사코 거부하다 다시 독립을 되찾았다. 비록 1세기 후인 기원전 112년 한 무제에 의해 중국에 다시 정복되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중국에 복속되는 것을 저항해오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오고 있다. 웨난은 바로 이 1세기 동안 그들만의 왕국을 세웠던 남월국의 역사를 제2대 남월왕묘의 발굴을 통해 새롭게 복원시키고 있다. 야만스러운 미개인이 아니라 비록 중원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중원과는 다른 다양성을 갖고 있으며, 강한 저항 기질과 모험 기질을 전수한 월인들은 이제 현대 중국의 주요한 잠재력의 근원이 되고 있다. 광주(廣州), 하문(廈門), 항주(杭州), 복주(福州)등의 남부 지방의 도시들에는 중원에 끈임없이 도전했으며, 결코 굴복되지 않았던 월인들의 후예들이자 역사상 이미 사라져 버린 고대 거상들과 소매상들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주민들이 살고 있고, 이곳 주민의 대다수는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중국이 21세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 속에는 월인들의 후예가 갖는 저력이 바탕이 된다. 월의 후예들이 정복의 수단으로 택한 것은 군사적인 무력이 아닌 경제적인 전술이었다. 현재 중국 경제를 움직이는 광동인은 순수한 한민족의 자손이 아닌 고대 남월의 후예임을 자칭한다고 한다.

기자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 문학가적 상상력과 탁월한 문장력,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를 아우르는 역사학 및 고고학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대 중국의 기실(紀實)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웨난의 신작은 그 구성과 가독성에 있어 더욱 매끄럽고 뛰어나다. 중국의 정사와 고전을 골고루 섭렵한 광범위한 독서를 바탕으로 보통 1권의 책을 쓰기 위해 1-2년에 걸쳐 발굴지에 거주하며, 철저한 현지 탐방과 인터뷰를 하고, 관련되는 수백 건의 문건과 기록들을 조사한 후 모든 자료를 소화해 오직 몇 개월 혹은 몇 년에 걸쳐 글쓰기에 몰입하는 그의 작업 결과는 항상 독자의 기대를 뛰어넘는다. 이 작품은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웨난의 글쓰기가 더욱 높은 완성도를 이뤘음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있어 높은 완성도는 독자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더욱 쉬워지고 재미있는 책읽기로 다가온다. 남월이라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짧은 역사의 나라를 다루면서도, 남월이 가졌던 역사적인 의의와 현대에서 다시 주목할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현대 중국의 저력이 된 월의 선조들을 새롭게 부각시킨다. 특히 진·한 교체기의 격동하는 변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 이야기들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구성으로 익숙했던 이야기조차 새롭게 다시 읽는 즐거움이 크다. 여전히 방대한 지식과 학술적인 연구를 담아내면서도 더욱 뛰어난 가독성을 유지하는 그의 신작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실제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주요 내용
1983년 광주(廣州)시의 번화가 해방북로(解放北路) 상강(象崗)의 한 건축공사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남월왕의 능묘는 뛰어난 유물적 가치로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번도 도굴된 적이 없이 완벽하게 보존되었다는 점과 발견 당시 묘안이 파괴되지 않아 과학적 연구를 가능케 하는 사실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 그리고 영남에서 발견된 묘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부장된 유물이 가장 풍부하며, 묘 주인의 신분이 가장 높은 서한시기의 묘로서,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모두 그 묘 주인의 전기(傳記)가 있어 묘 주인의 역사적 행적이 분명하고 연대가 정확하다는 점 때문에 상강 남월왕묘의 발굴은 진(秦)나라 때의 조선소 유적지·남월국 관서(官署) 유적지와 더불어 광주(廣州) 진(秦)·한(漢) 시기 고고학의 3대 발견의 하나로 손꼽힌다. 웨난은 이 고고학 발굴 이야기를 격변하는 진(秦)·한(漢) 교체기에 생동감 넘치는 흥망성쇠의 역사와 결합시키고 있다.

‘야만스럽고 황폐한 땅’이라 불렸던 미지의 땅 ― 월(越)

해발 2,000m의 오령(五嶺)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예로부터 영남(嶺南)이라고도 불렸던 곳. 그곳은 중원에서 아득히 멀고 먼 이방인의 땅이자 버려진 땅이었고, 소외된 이들의 피난처였다. 천고일제 진시황이 죽고, 유방과 항우가 중원에서 격돌하는 가운데 기원전 203년 오령을 경계로 영남의 역사에 있어 최초로 국가다운 국가가 태동하고 있었다.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이고 아름다운 문화를 가졌지만 그들은 일찍부터 오랑캐의 나라라 불렸다.

중원의 한인들에게 월(越)은 양자강 이남지역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맹수와 미개인들이 사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일찍이 전국시대에 월은 전란에 휩싸여 많은 피를 흘렸으며, 기원전 219년 진시황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진의 노예를 한사코 거부하다 다시 독립을 되찾았다. 비록 1세기 후인 기원전 112년 한 무제에 의해 중국에 다시 정복되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중국에 복속되는 것을 저항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오고 있었다.

영남에서 전해지는 옛 문화의 강렬한 진동 ― 상강 제2대 남월왕묘의 발견

신화사 1993년 11월 10일발 전신. 광주시 월수공원 서쪽의 상강에서 750여 개의 붉은 색 사암석재(沙岩石材)로 건조된 서한시대 남월왕의 묘가 발견되었다. 500여 점의 청동기, 200여 점의 옥기 등 1000여 점에 이르는 예기·병기·생산공구·장식품·약석 등이 발굴되었다. 묘 주인이 입고 있는 남월에서 자체 제작한 사루옥의(絲縷玉衣)를 비롯, 몸 주위에 놓인 정교하고 아름다운 옥 장식들, 청동으로 만든 각종 주기와 편종·생활 용기·수레· 말의 갑옷과 투구, 금과 옥으로 만든 노리개, 비단과 마로 만든 직물 및 약재 등 수많은 유물들의 발굴로 전세계는 중국 영남 지역에서 전해지는 옛 문화의 진동을 강렬하게 느꼈다.

묘 주인에게 부장된 ‘문제행새’라고 각인된 금인은 『한서(漢書)·남월전(南濊傳)』에서 말하고 있는 (남월의 세 번째 임금) “영제(叛齊)를 후사로 삼고 그 선조 무제와 문제의 옥새를 묻었다”라는 기록에 의해 묘 주인이 남월국의 제2대 왕으로 건원(建元) 4년(기원전 137년) 왕위를 계승해서 원수(元狩) 원년(기원전 122년)에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묘는남월왕 묘 진·한 교체기 영남의 개발과 내지문화(內地文化) 특히 월문화에 대한 초문화(楚文化)의 영향을 이해하는데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들은 야만인이 아니다 ― 새롭게 쓰는 남월국의 역사

남월이 국가로서 존립했던 한 세기 동안 일어난 은원(恩怨)과 시비(是非)의 유쾌하고 슬펐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지만, 남월왕 묘지에 매장된 무수히 많은 진귀한 보물들은 전설 속에서 잊혀져 갔다. 1983년 남월왕묘는 한번도 도굴된 적 없는 완벽한 보존 상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세계 고고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부장된 풍부한 유물들은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것들이었으며, 이미 2000년 전에 사라져버린 남월국의 흥망에 대한 회고와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시공을 초월하여 드러난 신비의 남월은 아름다운 문물의 나라였다.

또한 고고학적 지식과 역사적 기본 사실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발굴보고서, 혹은 전문연구서가 벗어나기 어려운 장황함과 난삽한 맛에서 벗어나면서도 상당한 학술적 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남월왕묘 발굴 후 묘 주인의 신분과 세계(世系) 등에 대한 문제와 이로 인해 유발된 학술논쟁 및 각 학자의 다른 견해를 일일이 열거하고, 이 문제에 대한 작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한 권의 탁월한 학술서로서도 부족함이 없을 뿐더러, 독자로 하여금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독자의 사고를 넓힐 수 있도록 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전문적인 고고학 관련 지식들이 일부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독자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인문적인 지식의 지평을 넓힌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이 책의 특징
1. 『마왕퇴의 귀부인』 『구룡배의 전설』 『부활하는 군단』 『황릉의 비밀』 『법문사의 비밀』의 저자 웨난이 쓴 고고학 발굴 다큐멘터리이다.

2. 상강 제2대 남월왕 묘의 발굴을 통해 중국 남부의 역사와 유물들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인문적 지식을 제공한다.

3. 광주(廣州) 진(秦)·한(漢) 시기 고고학의 3대 발견의 하나로 손꼽히는 남월왕묘 발굴을 통해 진·한 교체기 영남의 개발과 내지문화(內地文化) 특히 월문화에 대한 초문화(楚文化)의 영향을 이해하는데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4. 500여 점의 청동기, 200여 점의 옥기 등 1000여 점에 이르는 예기·병기·생산공구·장식품·약석 등을 비롯 묘 주인이 입고 있는 사루옥의(絲縷玉衣)들에 대한 인문·학술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5. 각 권 16쪽에 달하는 컬러 화보 사진과 본문의 이해를 돕는 수 십 컷의 자료 사진을 통해 남월왕묘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2권의 화보는 중국 역사상 옥기의 쓰임과 발달을 다룬 특집으로 꾸며졌다.

6. 방대한 지식의 양에도 불구하고 현학적이기보다는 취재를 통한 기실 문학의 사실성과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웨난 특유의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까지 겸비한 작품이다.

7. 딱딱한 고고학 발굴서가 아니라 고고학이나 중국 고대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도판, 사진이 첨부된 인문 대중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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