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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의 시간은 잘도 흐르네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 나는 564 아줌마 / 60대, 그 고단한 초상 / ( )에 갇힌 삶 / 해 놓은 것도 없이 2. 세상이 달리 보인다 지하철 풍경 / 사소한 것에 대한 분노 / 텅 빈 집 3. 돌아오는 남편들 남편들, 집으로 향하다 / 겨울 바닷가에서 / 별 걸 다 행복해하는 여자 / 참 미련들 하네 4. 아직도 어머니를 모른다 "내가 와 이리 오래 사노?" / 아직도 어머니를 모른다 / 고향 만들기 / 어떤 이산 5. 여자들은 아픈 데가 많다 몸의 반란 / 세상이 달리 보이네 / 여자들은 아픈 데가 많다 6. 자식을 손님처럼 시어머니 프리미엄 / 떠나보내기 / 며느리가 어떠세요 / 시집과 친정 / 자식은 손님 7. 노전생활? 노후생활? 돈이 효자? / 친구 이야기 / 누구하고 살까 / 휴대폰과 인터넷 / 도심을 못 떠나는 이유 / 버리자, 또 버리자 8. 길 위에서 다시 연변에 가다 / 도요나가에서의 닷새 / 아카디아로 가는 길 |
박혜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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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싫어도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이듦은 늙어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늙어 가면서 왜 그렇게도 늙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할까. 가까워져 오는 죽음이 두려워서일까.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젊음을 찬미하는 데 너무 바빠서 늙음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우도 못할 만큼 인색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의학의 기술을 빌리건 심리적 최면을 걸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젊음을 자꾸 늘여 가다 보면 어느 날 늙음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꿈꾸는지도 모른다. 늙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환상적인 꿈.
--- p.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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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정의 대상이 될 때도 생기나 보다. 전 같으면 남에게 동정의 대상으로 비친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해서 펄쩍 뛰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니?하고 빙그레 웃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러고 보면 기가 꺾였다는 지적은 정확한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크게 서글프지는 않다. 몸이 안 좋아지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단순히 몸 때문인지 아니면 그 사이에 또 몇 년 나이가 들어서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난 치열하게 살지 않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다고 크게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조그맣더라도 세상에 왔다간 자취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그런 종류의 치열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용히 뒤돌아 보니 나는 치열함과 분망함을 혼돈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 인생은 그저 분망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격 자체에 한 가지를 붙들고 매진하는 어떤 열정 같은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해야 할까. 제발 참으라고 몸이 막고 나선다. 나를 위해서 좀 느슨하게 살아 달라고. 꼭 무언가를 남겨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 <중략> … 내가 몸이 안 좋다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다짜고짜 '아, 이젠 좀 인간적이 되었겠네.'라며 신난다는 듯이 크게 웃던 친구가 있었다. 전에는 너무 힘이 넘쳐서 비인간적으로 보였다나 뭐라나. 나를 만나면 괜히 기가 죽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은 되게 기분이 나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긍이 간다. 나 역시 여전히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나하고 다른 인종처럼 보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진다는 게 반드시 나쁘기만 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한 복판으로 뚫고 들어가 치열하게 사는 대신 멀찌감치 물러나서 조용히 구경만 해도 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다. 또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성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좋다. --- pp. 136~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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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한참 젊은 여성들로부터 날씬하다든가 젊다든가 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그게 아무리 입에 발린 치레라고 해도 기분이 꽤 괜찮은 노릇이다. "아유, 그 거짓말 참 듣기 좋네."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입이 헤벌쭉해지고 축 늘어졌던 사지에 파르르 생기가 오른다. (이 쯤 되면 나도 갈 데 없는 공주병 환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얼마 전 일반버스에서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팍 전 파김치 상태로 의자에 늘어져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몸을 내 쪽으로 숙여 오며 속삭였다. "이 적씨 어머니시죠?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이 적(나의 둘째 아들로 본명은 이 동준. 대학 4학년 때 가수로 데뷔했다)의 열렬한 팬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 그 여성은 스물 여덟 살이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그 또래답게 환한 표정에 당당한 태도가 돋보이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5분 남짓 동안 내 귓속에서는 계속 '곱게 늙었다.'는 말이 맴돌았다. 아니, 그냥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라고 끝내면 어때서 굳이 '늙었다.'는 말을 보태는 거지? 괘씸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중략>… 아무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고 심지어는 죄라고 배워왔다. 더구나 여성의 경우는 훨씬 더 심했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책들은 한결같이 젊고 예쁘고 착한 소녀를 괴롭히는 늙고 못생기고 못된 여자들을 그려왔으니까. 백설공주도 늙으면 마녀가 된다! 여자들이여, 늙지 말지어다. 때론 자신은 나이에 초연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늙어감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는 젊다.' 도대체 늙음이 뭐길래. 결국 늙음을 맹렬히 부정하느라고 정작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못하면서 우린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통고받는 순간의 그 느낌이라니. 그 충격적이고도 착잡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p. 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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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늙었어.'를 되뇌는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아직 안 늙었어.' 또는 '다 늑어도 나만은 안 늙어'라는 묘한 자만심이 깔려 있는거다. 때문에 입으로는 솔직하게 자신의 늙음을 고백하는 듯하지만 나의 귀는 상대방이 누구건 간에 그로부터 '무슨 말씀을? 당신은 젊어'라는 소리를 듣고싶어한다. 게다가 그것이 절대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거라고 애써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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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깍이 여성학자로, 베스트셀러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로, 인기 가수 패닉의 멤버 이적의 엄마로 유명세를 치르며 숨돌릴 틈 없는 바쁜 삶을 살아왔던 저자 박혜란이 5년만에 '여자의 나이와 몸'이라는 화두를 들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나이듦에 대하여'란 다소 생소하고 낯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여자가 나이 들어가며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몸의 변화, 생각의 변화, 관계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에세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저자 또한 자신의 '나이듦'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싫어했고 나이와 관련되어 생겨나는 문제들도 자신과는 동떨어진 거라고 외면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속 한`번 썩이지 않던(오히려 너무 튼튼해 불만이었던)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응급실에 실려가 무려 일주일 동안 수혈을 받은 후에야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의 반란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나이듦'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을 둘러싼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나이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몸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들, 새로운 느낌과 사고방식,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이 그를 채웠다.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는 이야기 그렇다고 그가 이 책에서 풀고 있는 내용이 거창한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수다에 가깝게 자신의 이야기를 특유의 생기 넘치는 문장으로 맛깔지게 풀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행간에 깔아놓았듯 이번 에세이에서도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아마 밝히고 싶지 않을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또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나이듦의 일상사와 그 성찰에 관해 말한다. 자신을 속박하는 늙음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을 깨야 누구보다도 고정관념을 깨며 살아가는 데 앞장서 온 그가 이 글에서 강조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유난히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그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바로 나이 들어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이 정한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만의 나잇값을 살아가는 용기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성 역할을 통해서 성 차별이 줄어드는 것처럼 다양한 연령 역할을 통해서 연령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놓치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나이 든다는 것이며 지금도 쉼 없이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것은 외면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추하고 안 좋은 것이며 약한 것이라는 늙음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뒤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외로워하는 우리들의 나이 들어가는 삶… 이제껏 누구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너무도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 책에서 약한 것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을 느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