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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왜, 다시, 링컨과 만나야 하는가
프롤로그 백악관으로 가는 길 1.청소년기의 스승들 일찍 잃은 어머니 아버지의 모험정신 새어머니의 사랑과 훈육 장작 패는 사람 2. 청소년기의 스승들 일찍 잃은 어머니 아버지의 모험정신 새어머니의 사랑과 훈육 장작 패는 사람 3. 꾸는 지방의원 기회를 잡은 초선 역량을 시험받다 변호사의 쓴맛 단맛 넓은 무대로 오르는 디딤돌 4. 영광과 그늘 링컨 씨, 워싱턴에 가다 ‘뜨거운 감자’ 노예제 짧게 끝난 하원 생활 ‘정직한 늙은이 에이브’ 정계 복귀를 노리며 5. 혹독한 담금질 긴 논쟁의 뿌리 국론은 찢어지고 어이없고 억울한 낙선 절반은 노예이고 절반은 자유 오판과 궁색한 변명 6.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더글러스와의 대논쟁 정의가 힘의 근원 역사의 대세와 대통령 링컨 7. 갈등이 전쟁으로 섬터 요새의 포연 링컨의 용인술 8.국민의 정부는 이긴다 연방군 총사령관, 링컨 겸손한 권력, 강한 정부 9. 탄환으로 정권을 세울 수 없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오 국민통합당의 출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살아 숨쉬는 정치 10. 외교를 보는 눈 위기를 극복한 통찰력 갈등은 훌륭한 결정의 도구 11. 연방통합과 노예해방 도전받는 온건론 벽에 부닥친 보상안 신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노예해방 선언 12. 하나된 미국으로 신뢰의 리더십과 그랜트 장군 재선의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 관용에서 나온 국민통합 의무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에필로그 성공한 대통령의 길 참고문헌 연보 |
Roh Moo-hyun,盧武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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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모든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더러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이 싸움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과 그의 미망인과 고아가 된 그의 아이를 돌보고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 p.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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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위대한 임무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분열과 파멸에서 나라를 구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노예제라는 커다란 죄악에서 나라를 해방하는 것이었습니다. 둘 중 어느 하나나 모두를 성취하기 위해서 충성스런 국민들의 진지한 공감과 강력한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성공에 필요한 이러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 없었다면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아무 성과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연방을 구하는 것보다 노예제 폐지를 우선으로 삼았다면, 불가피하게 미국의 강력한 계층으로부터 분리되었을 것이고, 반란을 진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순수한 노예제 폐지의 입장에서 보면, 링컨은 느리고 차갑고 어리석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그가 무관심할 수 없었던 국민들의 정서에서 본다면 그는 빠르고 열성적이고 급진적이었으며, 단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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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
역사를 보면 힘 자랑을 하고, 그 넘치는 힘으로 남을 정복하거나 전장에서 승리한 사람은 아주 많다. 칭기즈 칸이 있고 나폴레옹이 있다. 그 밖에 문명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대를 건너뛰어 그 사람의 사상과 행동이 과연 본받을 만한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그렇다면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은 누군가. 동서고금을 막론해 인류가 부정할 수 없는 정의의 개념을 내세워 승리하고,바른 역사를 이루어낸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부정하기 힘든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일군 사람. 그래서 인류에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제시한 사람이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두에서 성공한 사람이 링컨이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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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4월 14일 포드 극장에서 미국대통령 중 처음으로 암살된 링컨대통령의 서거 후 대표적인 노예해방론자인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링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 가운에 연마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 그의 증언이 이 책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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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노무현이 본 링컨의 덕목
대부분 그랬듯이, 저자가 링컨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위인전을 통해서였다. 역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사람이 된 '정직한 위인'의 이야기. 저자는 정치에 입문한 뒤 《미국사 개설》과 같은 책을 통해 현실정치인으로서의 링컨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의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밤, 그에게 다가온 링컨은 새로운 키워드였다. 남군에 대한 연방군의 승리가 계속될 즈음에 재선된 링컨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은 저자의 가슴을 흔들었다. '증오와 내침'이 아닌 '사랑과 관용'을 이야기한 링컨에게서 저자는 국민통합의 지도력을 발견한 것이다.
견고한 이상을 현실에 조화시킨 통합의 지도력을 갖춘 사람 링컨은 자신의 권력에 의지하여 통치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재임중에 여러 집단의 공격을 받았다. 언론은 종종 링컨을 '독재자, 폭군’등으로 불렀다. 고향인 일리노이 주의 신문조차도 “미국의 공직을 불명예스럽게 만든, 가장 간계하고 가장 정직하지 못한 정치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는 혼란스런 정치 상황에서도 나라의 분열과 다툼을 염려했고, 연방과 연방의 헌법을 지키는 데 자신의 소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굳게 발을 딛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았지만 성급히 내닫지 않으며'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지켰다. 정당성을 내세워 힘으로 장악하려 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자신의 나아갈 바를 찾아냈다. 그는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라는 성경 구절(마가복음 3:24-25 [개역한글판])을 즐겨 인용했다. '막강한 권력'에 의지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확고한 정치적 소신, 대중을 끌어안는 논리적인 연설가 링컨에게 정치적 입지를 다져준 계기가 된 것은 1858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과정에서 있었던 거물 정치가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논쟁이다. 노예제와 미국의 미래를 논한 이 논쟁은 당시 미국이 안고 있던 사회 정치적 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었다. 민주당 후보였던 더글러스는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루이지애나 매입지 전체에 노예제를 허용하고, '주민주권' 원칙에 따라 준주(準州)인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의 노예제 도입 여부를 그 지역 주민에게 맡기자는 법안)을 제안했다. 한편 연방 대법원은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Dred Scott Decision)을 내려 준주에서의 노예제를 합법화하여 남부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이로써 지역간의 분쟁은 더욱 가속화하게 된다. 어쨌든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이 제정됨으로써 노예제의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화당을 창설하게 된다. 링컨은 더글러스에 반대하여, 논리적이고 확신에 찬 어조로 심금을 울리는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위선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제도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사랑한다고 자찬함으로써 말입니다.” 더글러스와의 논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링컨은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 추대되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더글러스와의 대논쟁을 통해 노예제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명확히 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이후 대통령의 길에 이르는 발판을 마련한다. 탁월한 인화력과 지도력으로 내각을 이끈 대통령 링컨은 자신을 배격하는 인물일지라도 그 사람의 능력을 존중했던 사람이다. 당내에 확고한 세력기반이 없는 소수파 대통령인 링컨에게는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당내 실력자들의 상호 경쟁과 견제를 유도하는, 세력균형 전략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장관들을 휘어잡았다. 국무장관인 수어드(William H. Seward)는 링컨과 함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는 공화당의 최대 실력자라 할 만한 사람이었지만 초기에는 링컨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내각의 각료를 선임할 때, 남부에 대한 견해가 자신과 달랐던 체이스(Salmon P. Chase)를 재무장관으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고, 남북전쟁 직전에 대통령이 전권을 자신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촌뜨기 애송이’로 보았던 그도 곧 링컨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기에 이른다. 노련한 정치인 수어드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링컨의 리더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