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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사진집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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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노무현 대통령 사진집, ‘사람 사는 세상’을 펴내며

마지막 남기신 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노공이산 盧公移山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

사람 사는 세상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선거 홍보물 모음
노무현 대통령 연보

저자 소개 2

Roh Moo-hyun,盧武鉉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자인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글짓기대회가 열리자 '백지동맹'을 선동하다가 정학(停學)을 당할 정도로 성격은 당차고 맹랑했다. 가난으로 인해 어렵게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고에 진학하였다. 졸업 이후 농협 입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발등을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하여 그만두었다. 그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법고시 공부에 매달리게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자인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글짓기대회가 열리자 '백지동맹'을 선동하다가 정학(停學)을 당할 정도로 성격은 당차고 맹랑했다. 가난으로 인해 어렵게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고에 진학하였다. 졸업 이후 농협 입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발등을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하여 그만두었다. 그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법고시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군 제대 후 1971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법고시에 매진하였다. '빨치산 부역 혐의로 옥사한 장인'과 '불투명한 고시생' 문제로 얽혀 양가가 티격태격한 결혼은 "판사안하면 어떠냐"라는 노무현의 엄포로 풀렸다. 1973년 결혼하였으며, 네 번째 도전만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1978년 5월,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고 주로 조세 및 회계 사건 등을 통해 1백억원대 소송도 연달아 수임하는 등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1981년 부림사건(대학생 독서서클 검거)의 변호를 맡으면서, 교도소에서 57일간 고문을 당한 한 학생의 시퍼런 몸과 겁에 질린 눈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변론에도 참여하며 투사로 탈바꿈했다. 1985년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고,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다.

항쟁 후 재야 활동을 하던 그는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부탁을 받고 제13대 총선에 출마하여 정치에 입문하였고, 1988년 부산 동구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회에 입성한 노무현은 노동위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이해찬, 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원회의 3총사’로 불렸으며, 그해 11월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와 최초로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5월 광주 자위권 발동' 연설 때 명패를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이른바 '5공 청문회 스타'가 된 것이다.

1990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민주정의당 총재인 대통령 노태우,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이 합당하여 민자당을 창당하기로 하자 노무현은 이를 부도덕한 야합이라는 이유로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았고 자신의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였다. 이후 부산에서 3차례 총선과 시장선거에 나섰으나 그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000년 4월,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결국 낙선하였다. 하지만 이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지모임 '노사모'도 결성되었다.

국회의원 낙선 후 그는 2000년 8월부터 2001년 3월까지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김근태, 이인제, 정동영, 한화갑 등이 후보로 출마한 국민경선제 끝에 새천년 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당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던 이인제와 호남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한화갑을 모두 밀어낸 대이변의 승리였다. 하지만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거치며 노무현의 지지율은 바닥까지 곤두박질 친다. 이에 '후보교체론'까지 나오는 등 입지가 위태로워지지만,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로 부활했다. 그리고 결국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당선 이후,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집권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이라크 파병' 결정은 그를 지지했던 진보·개혁세력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이라크 파병 결정이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였음을 밝힌바 있으며, 자신의 소신 보다는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내린 결정임에 대해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지지율 하락 속에서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헌정사상 국회에서 탄핵당하는 첫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과반 획득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사실상 국민들에 의해 '재신임'을 받음으로써 이후 참여정부의 개혁정책들을 점화하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정치 실험'과 '개혁 정책'들은 '남-남 갈등', '진보-보수' 갈등 등으로 불리는 사회적인 논란 속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구시대의 막내'를 자임함으로써 다음 대통령에게 새 시대를 물려주고자 한 그의 신념과 정책은 아쉽게도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임기 말에는 '참여정부 실패론'이 제기되기도 하였고, 진보 세력들로부터는 신자유주의로 서민들의 삶을 더욱 고통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고, 또한 성과도 있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굳은 의지를 가지고 개혁을 해 나가고자 하였다. '평검사와의 대화' 등을 통해 검찰조직 등 권력기관, 사정기관들을 개혁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최고 권력자'인 스스로가 권력기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줄여나갔다. 이는 국가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으로 상징되듯이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줄이고, 균형적인 국토 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였다. 이전과는 다른 큰 변화들이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일어났다. 또한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복지 지출을 크게 늘려 서민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으며, 2007년 10월에는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10·4 남북정상회담을 업적으로 남겨, 동북아 긴장 완화-평화 정착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퇴임 후에는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가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으나, 그 꿈은 정치인생 후원자였던 소위 '박연차게이트'와 함께 허물어졌다.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비판과 의심의 여론이 일었던 검찰의 수사를 통해 오랜 지인들과 가족들이 비리의 혐의를 받았으며, 그 자신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세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9년 5월 23일 새벽, 유서를 남기고 사저 뒤 봉화산을 경호원 1명과 함께 등산하던 중 아래로 투신해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갑작스런 서거 후 시민들의 추모물결은 거대하게 일었다.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은 몇날 며칠 끊어지지 않았으며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마련되어 추모가 이루어졌다. 또한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적극적인 재평가 작업이 제기되면서 '노무현'과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새롭게 부각되었고, 노무현의 신념과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시도한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수면 위로 올라 왔으며, 참여정부가 '민주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에 있어서 어떤 역사적 지위를 가지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를 내리기 위한 논의도 시작되어, 그는 사후에 더욱 의미있는 조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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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 뜻을 나라와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로 세우고자 2009년 9월 23일 설립한 재단법인.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는 세계 유일의 대통령기념사업단체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념관·시민센터 건립을 비롯해 봉하의 노무현대통령의집과 대통령묘역 및 생태문화공원 운영·관리, 각종 추모기념사업, 사료편찬사업, 노무현시민학교를 주축으로 한 교육연구사업, 장학사업 등을 통해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모으고 더 크게 키우는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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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1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260*230*30mm
ISBN13
9788956250977

출판사 리뷰

442장 사진과 어록으로 재현한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
정본 사진집 『사람 사는 세상』 출간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정본 사진집 『사람 사는 세상』이 발간된다. 지난 9월 23일 출범한 노무현재단이 엮고 노 대통령 회고록 『성공과 좌절』을 펴낸 학고재에서 발행했다. 9월 21일 출간된 『성공과 좌절』은 열흘 만에 십만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종합 1위(예스24 등 각 인터넷서점 9월 넷째 주 집계)에 올랐다.
사진집 『사람 사는 세상』은 노무현 대통령의 치열했던 삶과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총 442장의 사진으로 꾸며졌다. 유족이 제공한 유년시절, 청년시절의 사진과 보좌진이 제공한 사진 자료, 대통령 재임 시 및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찍은 방대한 분량의 기록사진 등에서 골랐다. 약 100만 장의 사진 자료 가운데 미공개 사진을 포함한 약 3만 장(2테라바이트 분량)을 일차로 추리고, 이를 편집 및 디자인 과정에서 선별해가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특히 자석 탈착식 특수 양장본으로 오래 소장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제작에 공을 들였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포토제닉’했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굴곡 많고 극적이었던 정치여정만큼이나 수많은 사진자료를 남겼다. 사진 촬영을 어색해했지만 사진기자들의 수고에 늘 호의적이었으며, 열정적이고 솔직한 성품이 드러난 ‘포토제닉’한 사진을 가장 많이 남긴 대통령이었다. 5공 비리 청문회 장면(59쪽), 골리앗 농성장 방문 장면(p.58), 민자당 반대 시위 장면(p.68) 등의 보도사진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사진집에는 ‘노간지’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사진(p.162)을 비롯해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모습도 수록되었다(pp.16~17).
이 사진집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봉하마을 시절 노대통령을 보좌한 비서관들이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사진들로, ‘농부 노무현’의 소박한 모습과 청와대에서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다. 오리농법 교육 등에 참여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p.38, p.160, p.161), 손녀와 과자를 먹고, 자전거를 타고(pp.214~223), 소파에 누운 사진(pp.236~237) 등이 그것이다. ‘봉하찍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방문객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던 보좌관들은 햇볕 아래 포즈를 취하느라 점점 얼굴이 그을려갔던 대통령을 회고한 바 있다.

대통령의 소탈한 웃음과 가슴 아픈 눈물

노무현 대통령 정본 사진집『사람 사는 세상』은 4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장 격인 ‘노공이산’에서는 유년시절의 흑백사진 속 고향으로 돌아온 대통령의 모습을 담았다. 농민들과 함께 마을을 가꾸고 방문객들을 맞이하던 대통령의 평화롭던 일상과 봉하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어 2장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6?10항쟁을 이끈 민주화운동가에서 청문회 스타로, 파업노동자들이 점거한 골리앗 크레인에 오르길 주저하지 않았던 ‘노동자의 친구’로, ‘원칙과 통합’을 외치며 지역주의와 기회주의와의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던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사진으로 재구성했다(pp.54~71). 또 탄핵, 남북정상회담, 자이툰 방문 등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의 역사적 순간과 청와대에서의 일상도 담았다.
3장 ‘사람 사는 세상’은 하염없이 낮은 자세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대통령의 소탈한 웃음과 가슴 아픈 눈물을 보여준다. 풀 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pp.152~153), 아이들과 어울리고 서민들을 따뜻이 포옹하던 인간 노무현의 소박한 모습(pp.164~185)을 볼 수 있다. 또 ‘씩씩하고 인사 잘하는’ 손녀와 놀아주는 다정한 할아버지,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산책을 즐기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도 가족 앨범처럼 펼쳐진다(pp.206~213). 4장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는 대통령 서거 후 전국 분향소를 찾은 500만 조문인파의 슬픔이 묻어나는 사진들과 시청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 장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럭바위 비석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는 한 시민의 모습이 마지막 메인 컷으로 처리되어 긴 여운을 남긴다(p.305).

미공개 구술 등에서 뽑은 어록의 힘

『사람 사는 세상』은 어록과 사진이 한데 어울리는 ‘어록 사진집’의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각 장의 메인 컷과 본문 군데군데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실어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연출하고자 했다. 대통령의 말은 그동안 출간된 저서와 봉하마을 방문객 인사말, 연설문, 수행한 보좌관들이 꼼꼼히 기록했던 지인과의 대화 가운데 골랐다. 다음은 미공개 구술을 포함한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청문회 스타가 되었을 때 정치를 왜 시작했냐는 물음에 ‘분노 때문에 시작했고 지금도 식지 않아서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는 한국 사회에 있는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다.”(2005년 5월 지인과의 대화, p.56)

“정말 무슨 운명이 이렇게 험하죠? 몇 걸음 가다가는 엎어지고……. 또 일어서서 몇 걸음 가는가 싶으면 다시 엎어지고…….”(2004년 3월 12일 탄핵소추안 가결 후 수석보좌관 회의, p.94)

“제가 아직 어디 가서 어른 노릇을 못합니다. 밥그릇이 제게 먼저 오면 어색해하죠. 대통령 5년 하는 동안 그래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2008년 5월 지인과의 대화, p.150)

“이 아이가 씩씩해요. 개도 잘 만지고 애벌레도 잡아오고 말하자면 겁이 없어요. 아무에게나 말을 잘 걸고, 인사를 잘 합니다. 인사는 3대입니다. 저도 마을에서 인사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제 이름을 모르는 분은 ‘왜 그 과수원 집에 인사 잘 하는 아이 있잖아’ 했습니다.(2008년 8월 14일 방문객 인사, p.214)

정치 지도자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많은 국민들에게 선택의 길을 제시할 수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인이란 단정해 나가는 직업이다.(2001년 미공개 구술, p.254)

왜 정치를 하는가? 되짚어가다 보면 문득 ‘나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골똘하게 생각을 한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꼭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정치인들이 욕을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뭐가 다른가?’ 하는 것이다.(2001년 미공개 구술,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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