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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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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노무현의 꿈과 가치, 사람 사는 세상

01 노무현의 꿈 __이해찬
사람 사는 세상,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 정조대왕 이후 209년은 199년 대 10년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6가지 과제 | 역주행의 시대,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시민들의 액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가치 공동체와 깨어있는 조직의 힘
이해찬에게 묻는다

02 노무현의 진보 __유시민
사생취의, 의를 위해서 목숨도 버린다 | 노래 〈어머니〉와 사람 사는 세상
‘국민’에서 깨어 있는 ‘시민’으로 | 노 대통령인들 비판 받을 게 없겠는가
진보가 가능할까 하는 절망감과 회의 | 유시민에게 묻는다

03 노무현의 분노 __문성근
만약 노무현 대통령을 연기한다면 | 신영복의 ‘억울함’과 노무현의 ‘분노’
한나라당-족벌신문-재벌의 3자 동맹 | 인터넷에 기반한 정당은 불가능한가
우리나라에 각성된 시민은 몇 명일까 | 문성근에게 묻는다

04 노무현의 소통 __정연주
닫힌 광장, 권력 집중, 타율의 시대로 | 사회적 흉기가 된 소통 불능 언론
‘조중동 방송’과 99대 1의 언론 지형 | 「조선일보」 독립 막는 원흉을 물었더니
당신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내놓으라 | 정연주에게 묻는다

05 노무현의 얼굴 __도종환
개혁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 속물 권력은 결국 배반당한다
바보 온달, 바보 추기경, 바보 대통령 | 큰 길 두고 샛길로 빠지는 한국 정치
노무현은 왜 ‘유러피언 드림’에 주목했나 | 밀짚모자 쓰고 오리와 함께 돌아올 때
도종환의 시 「얼굴」

06 노무현의 민주주의 __박원순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
소수자를 존중해야 진짜 민주주의 | 청탁 전화 없어서 불안한 대기업 임원
청년들, 고향으로 내려가 시장이 되자 | 우리에겐 또 다른 길이 있다
박원순에게 묻는다

07 노무현의 경제정책 __이정우
끊임없는 독서, 우리 시대의 호학군주 | 대원군의 쇄국과 박정희·전두환의 개방정책
개혁과 성장, 성장과 분배는 한 몸 | 세금폭탄이라고 주장하는 언론폭탄
우보천리, 소처럼 뚜벅뚜벅 천 리를 간다 | 금융위기는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이정우에게 묻는다

08 노무현의 법치주의 __문재인
국가권력 제한·통제하는 노무현의 법치주의 |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법치주의 개혁
의전 총리에서 책임 총리로 바꾼 까닭 | 유일한 비검찰 출신의 청와대 민정수석
이승만~김대중 33만 건, 노무현 825만 건 | 민주주의 연구를 왜 여생의 과제로 삼았나
문재인에게 묻는다

09 노무현의 인사ㆍ지역정책 __정찬용
철학·검증절차·책임자 없는 MB의 ‘3무 인사’ | 편중인사에서 탕평인사로 흐름을 바꾸다
참여정부의 인사철학은 ‘국리민복’ | ‘적재적소’ 아닌 ‘적소적재’
460명 뽑으려면 4만 6000명 DB 있어야 | 정찬용에게 묻는다

10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__한명숙
불의 보면 저항하고 잘못 가면 돌려놓고 | 지난 10년 민주주의, 1년 만에 허물다
모두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 커다란 저항 | 권력자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할 수 없다
시민의 생각이 역사가 된다는 믿음 | 한명숙에게 묻는다

저자 소개 10

Rhyu Simin,柳時民

작가.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알릴레오북스> 진행자.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방송진행자, 정치인, 고위 관료 등 경험이 있으나 본업은 작가이고, 지금도 본업에 충실하고자 한다. 국회와 정부에서 잠시 일했고 비평가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은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산다. ‘인생은 너무 짧은 여행’이란 말에 끌려 몇 해 전 유럽 도시 탐사 여행을 시작했다.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박물관과 예술품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유럽 도시 기행》을 썼다. 여행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면 이 작업을 앞으로도 오래 할 생각이다. <거꾸로
작가.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알릴레오북스> 진행자.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방송진행자, 정치인, 고위 관료 등 경험이 있으나 본업은 작가이고, 지금도 본업에 충실하고자 한다. 국회와 정부에서 잠시 일했고 비평가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은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산다. ‘인생은 너무 짧은 여행’이란 말에 끌려 몇 해 전 유럽 도시 탐사 여행을 시작했다.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박물관과 예술품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유럽 도시 기행》을 썼다. 여행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면 이 작업을 앞으로도 오래 할 생각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청춘의 독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나의 한국현대사>, <유럽 도시 기행 1, 2> 등 여러 책을 출간하였다.

유시민의 다른 상품

문성근은 대표적인 지성파 배우다. 국내 배우 중에서 가장 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연기파 배우이기도 하다. 표독한 범죄자에서 건달, 막노동꾼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이든 리얼하게 소화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의 노동운동가, <초록물고기>에서의 냉철한 보스, <오! 수정>에서의 어설픈 PD에 이르기까지, 매번 다양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냄으로써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공인된 연기파 배우이다. 그래도 그를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어 준 것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1992년에서 1994년까지, 1997년에서 2002년까지 모
문성근은 대표적인 지성파 배우다. 국내 배우 중에서 가장 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연기파 배우이기도 하다. 표독한 범죄자에서 건달, 막노동꾼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이든 리얼하게 소화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의 노동운동가, <초록물고기>에서의 냉철한 보스, <오! 수정>에서의 어설픈 PD에 이르기까지, 매번 다양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냄으로써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공인된 연기파 배우이다. 그래도 그를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어 준 것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1992년에서 1994년까지, 1997년에서 2002년까지 모두 7년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명사가 됐다. 그는 2002년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의 주역이자 친DJ이기도 하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판 때 공판정에 녹음기나 필기도구를 못 가져가게 하자 김 전 대통령의 진술을 외워 나와선 밤새 기록해 유인물을 뿌린 적이 있다. 그는 “당시엔 내가 한 줄만 더 기억해 내면 그분을 살릴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가, 통일운동가인 문익환 목사가 그의 아버지, 현재 미국에 있는 문동환 목사가 작은아버지다.




[필모그래피]

꼴찌부터 1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주연배우
그들도 우리처럼(1990)|주연배우
경마장 가는 길(1991)|주연배우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주연배우
101번째 프로포즈 (1993)(1993)|주연배우
세상 밖으로(1994)|주연배우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주연배우
비상구가 없다(1995)|주연배우
네온속으로 노을지다(1995)|주연배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주연배우
꽃잎(1996)|주연배우
죽이는 이야기(1997)|주연배우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주연배우
오! 수정(2000)|주연배우
질투는 나의 힘(2002)|한윤식
오로라공주(2005)|오성호
한반도(2005)|국무총리 권용환
한반도(디지털상영)(2005)|주연배우
오로라공주+10분단편(2005)|주연배우
수(2006)|구양원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2006)|환
실종(2008)|판곤
시선1318(2008)|주연배우
작은 연못(2009)|주연배우

문성근의 다른 상품

도종환,都鍾煥

청주에서 태어났다.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산문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이 가득하다.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박용철문학상, 신석정문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고요로 가야겠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
청주에서 태어났다.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산문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이 가득하다.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박용철문학상, 신석정문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고요로 가야겠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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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元淳

1956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서울대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으로 구속, 제명된 후에 다시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구 지검 검사를 거쳐서 변호사가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수많은 양심수 사건을 변론하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왔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조제도개혁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그 시대 박 변호사의 발자취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영국 런던대학 정경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미국 하버드법대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무처장
1956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서울대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으로 구속, 제명된 후에 다시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구 지검 검사를 거쳐서 변호사가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수많은 양심수 사건을 변론하며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왔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조제도개혁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그 시대 박 변호사의 발자취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영국 런던대학 정경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미국 하버드법대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역임 하면서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영역을 나눔과 기부로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8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에서 주는 여성운동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선을 시작으로 제35~37대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2020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는 『경청』, 『정치의 즐거움』, 『희망을 걷다』,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프리 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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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明淑

194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결혼했으나 남편 박성준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5년 형을 받고 수감되자 이후 13년 반 동안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다. 1974년부터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여성사회 간사로 일하면서 70년대 한국사회에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1979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어 2년 반을 복역한 후 1981년 광복절에 석방되었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석방된 남편과 13년 반 만에 재회했다. 1990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1993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활
194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결혼했으나 남편 박성준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5년 형을 받고 수감되자 이후 13년 반 동안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다. 1974년부터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여성사회 간사로 일하면서 70년대 한국사회에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1979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어 2년 반을 복역한 후 1981년 광복절에 석방되었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석방된 남편과 13년 반 만에 재회했다. 1990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1993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 여성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1999년 정계에 입문하여 16대 국회의원, 초대 여성부장관, 환경부장관,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 국정자문위원장, 중앙위원회 의장과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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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海瓚

1952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이후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이 목숨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 나가겠다.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일갈한 일화가 유명하다. 1988년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참여한 이후 13대부터 17대, 19대, 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1998년 교육부장관, 2004년 국무총리로 일했다. 대선과 총선 때마다
1952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이후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이 목숨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 나가겠다.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일갈한 일화가 유명하다.

1988년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참여한 이후 13대부터 17대, 19대, 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1998년 교육부장관, 2004년 국무총리로 일했다.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과 정책을 맡았고 야당과 집권당 시절 세 차례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 진영의 대표적인 전략 기획가로 통한다. 참여정부 국무총리에 취임하여 책임총리제를 정착시켰고, 퇴임 이후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0·4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지원했다.
2008년 민주개혁 싱크탱크 재단법인 ‘광장’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8년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선출되어 2020년의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당대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고, 현재 동북아평화경제협의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민주와 통일의 길목에서』, 『광주민중항쟁』(공저),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 이해찬』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사회학적 상상력』(공역), 『세계환경정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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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동반성장론을 상징하는 인물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한 경제학자. 2003년 10?29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만들면서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을 주도했고, 인위적 경기부양 반대, 성장 분배 동반 추구를 주장하며 참여정부 초기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2006년 말 정책 특보직에서 물러나면서 참여정부를 떠남. 이 과정에서 한 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으나,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이다. 1977년부터
참여정부의 동반성장론을 상징하는 인물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한 경제학자. 2003년 10?29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만들면서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을 주도했고, 인위적 경기부양 반대, 성장 분배 동반 추구를 주장하며 참여정부 초기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2006년 말 정책 특보직에서 물러나면서 참여정부를 떠남. 이 과정에서 한 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으나,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이다. 1977년부터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아마 한국에만 있는 단어인 ‘지방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대해 긍지를 갖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좋은 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골고루 분산될 날을 꿈꾼다. 지방대학 학생들이 우수한 자질과 순박한 심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출신을 따지지 않고 순전히 능력과 인간 됨됨이로 평가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평생 강단을 지켰으나 노무현 정부 시절 2년 반 동안 청와대에 가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책의 내용인 분배, 형평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정책 면에서 조금 기여하기도 했기 때문에 보수파로부터 ‘분배주의자’(이 역시 다른 나라에는 없는 단어이지 싶다), 혹은 ‘좌파’란 공격을 받았고 그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 추진했던 몇몇 정책조차 실은 복지 후진국인 한국이 장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첫 걸음을 뗀 정도에 불과하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은 유교적 잔재, 식민지, 전쟁, 우익 독재 등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보수가 과잉이고, 진보가 전멸된 특수한 나라라고 본다. 그는 이 특이한 나라에 진보의 싹을 키워 세계 보편의 나라로 만드는 일을 평생 사명으로 생각한다. 그는 대학 시절 많은 친구, 선후배들이 제적, 고문, 투옥을 불사하며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데 대해 늘 마음 한 구석에 빚이 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것을 빚을 갚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는데,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공은 경제학인데 역사책 읽기를 더 좋아해서 서재에는 경제학 책보다 역사책이 더 많다. 평소에 학생들에게 “수학을 모르고 이과 공부를 할 수 없듯이, 역사를 모르고 문과 공부 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역사 공부를 중시한다. 특히 우리나라 학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개탄하며, 수업 시간에 수시로 역사 보충수업을 한다. 취미는 다양해서 헌책방 순례, 음악 듣기, 테니스, 바둑을 좋아한다. 특히 수년 전 하찬석 국수, 조훈현 국수에게 석 점을 놓고 이긴 바둑을 늘 뿌듯하게 생각한다. 공동저서로는 『어떤 복지국가 인가?』가 있다.

이정우의 다른 상품

언론인이며, 전 KBS 사장이다. 194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동아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한겨레」 워싱턴특파원과 논설주간으로 일했으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KBS 사장으로 일했다.「동아일보」 기자 시절, 언론자유를 외치다 1975년 3월 동료 140여 명과 함께 해직되었으며, 1978년 10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9년부터 「한겨레」 워싱턴특파원, 논설주간으로 일하면서 한국 언론, 미국, 남북 문제를 주제로 날카로운 글을 써왔다. 2003년 시민·언론단체의
언론인이며, 전 KBS 사장이다. 194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동아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한겨레」 워싱턴특파원과 논설주간으로 일했으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KBS 사장으로 일했다.「동아일보」 기자 시절, 언론자유를 외치다 1975년 3월 동료 140여 명과 함께 해직되었으며, 1978년 10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9년부터 「한겨레」 워싱턴특파원, 논설주간으로 일하면서 한국 언론, 미국, 남북 문제를 주제로 날카로운 글을 써왔다.

2003년 시민·언론단체의 추천 공모를 거쳐 KBS 사장에 임명되었고 2006년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갔지만, 2008년 8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강제 해임되었다.2009년 9월부터 「오마이뉴스」에 KBS 사장 시절 겪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정연주의 증언’을 연재하고 있다.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시민주권, 시민언론이다. 1997년 ‘통일언론상’과 1999년 ‘신문칼럼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서울-워싱턴-평양》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말콤 엑스》(공역), 《자본주의의 전개와 이데올로기》, 《경제학사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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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이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시민운동을 함께했다. 〈한겨레〉 창간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경남 지부 대표, 부산YMCA 이사,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12년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이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시민운동을 함께했다. 〈한겨레〉 창간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경남 지부 대표, 부산YMCA 이사,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12년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강조하며 18대 대선에 범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탄핵 정국의 혼란과 촛불혁명을 거치며 19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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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육성아카데미 이사장이며,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다. 195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투옥됐으나 이듬해 형집행정지로 출옥했다. 이후 경남 거창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거창에서 17년 동안 농민교육사업, 거창 YMCA 창립 총무 등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거창 지역의 초기 시민운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광주 YMCA 사회교육부장, 1998년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창립 상임대표, 2001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영호남을 넘나들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인재육성아카데미 이사장이며,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다. 195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투옥됐으나 이듬해 형집행정지로 출옥했다. 이후 경남 거창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거창에서 17년 동안 농민교육사업, 거창 YMCA 창립 총무 등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거창 지역의 초기 시민운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광주 YMCA 사회교육부장, 1998년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창립 상임대표, 2001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영호남을 넘나들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03년에는 참여정부 인사보좌관을 맡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인사 행정을 펼치는데 힘썼다. 외교통상부 NGO담당 대사, 여수엑스포 유치위 상임부위원장, 서남해안포럼 상임대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사)물포럼 코리아 상임이사, 도랑살리기 광주전남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정찬용의 도전: 전 청와대 인사수석 정찬용의 삶과 꿈》,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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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5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598g | 148*210*30mm
ISBN13
9788996430506

책 속으로

_ 노무현의 꿈: 이해찬

“노 대통령이 추구하셨던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같이 살면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왜 일부러 강조했을까요? 그게 우리의 과제입니다. 사람들이 어울려 잘 살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할까…….”

“우리도 다양한 시민활동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있으니 열심히 활용해서 우리의 정치적 연대활동과 생활정치를 실현해나가야죠. 깨어 있는 조직의 힘을 본때 있게 한번 보여줘야죠. 우리는 노무현 가치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함께 해나갑시다. 저도 이제는 현실정치보다는 이런 시민정치활동에 전념하려고 해요. 국회의원 일도 20년이나 실컷 했으니까요.”

_ 노무현의 진보: 유시민

“대통령에서 장바닥 서민에 이르기까지 방법도 없으면서 이익만을 탐하는 사회가 우리 시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인류사의 기본이다, 그리고 인류는 늘 이렇게 살아왔고 가끔씩 평소와 다른 총명한 정신을 가지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가 진보가 집권하는 시기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인용한 겁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나라만 이럴까 하는 자기비하, 왜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났을까 하는 부당한 불행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도록 말이죠. 사실에 의거해서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눈 뜨고 이것이 나의 권리라는 생각을 갖고선 이 일을 위해 내가 작은 참여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지도록 전방위적으로 노력하는 것, 이것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봅니다.”

_ 노무현의 분노: 문성근

“이분은 법률가죠. 그러면서 대단히 학자적인 풍모가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해되고 동의되고 옳은 것을 실천하려는 자세를 가졌던 사람, 또 그 과정에서 불의와 거짓과 위선에 대한 분노를 온몸으로 느꼈고, 절대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용맹성을 갖고 있었던 분이 아닌가 합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독특한 분이에요. 분노를 계산하지 않고 느꼈다는 것이죠. 노무현이란 인간에 접근하려면 ‘분노’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제 노 대통령을 등장인물로 하는 작품을 만들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그 배역을 할 재간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죠. …… 악역에 어떻게 접근하면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족벌신문 쪽 사람은 제가 가장 실감나게 연기하지 않을까……”

“‘촛불’ 이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시위를 했는데도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고 다수당을 차지했으니 밀고 가겠다는데 대책이 없었던 거잖아요. 그러면 결국 대의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민주진영 쪽 정당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촛불집회에서 거리토론회를 하면 결론은 늘 대의민주제 강화였죠.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를 어떻게 강화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

_ 노무현의 소통: 정연주

“지금의 언론지형이 90 대 10이라 했는데 조중동 방송이 생기면 수구 기득권 세력 99 대 나머지 1이 됩니다. ……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석 달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신 유언이 ‘깨어 있어라’,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라’ 이 두 가지 아닙니까. 그 이상 절절한 유언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하면 됩니다. …… 우리가 하다못해 담벼락 보고 고함지르고 욕하는 것을 비롯해서 작게는 인터넷에 열심히 댓글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표를 열심히 하면 세상을 금방 바꿀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_ 노무현의 얼굴: 도종환

“가장 바람직한 민주주의 사회의 형태는 뭘까요? 노 대통령은 ‘시장과 국가권력이 인간의 가치를 놓고 균형을 이루는 민주주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죠.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고, 사람이 각성해서 움직이고 주체가 되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이 바보의 원조는 아니에요. 원조 바보는 바보 온달, 바보 이반처럼 국내외에 많이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 추기경님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보의 공통점을 잘 보세요. 이 사람들은 옳다고 믿는 가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에요. 이익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보는 가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노 대통령한테 바보를 붙여주는 건 참 영광스러운 일이죠.”

“노무현 대통령도 길이 보이지 않고 사방이 벽으로만 막혀 있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집에 이 시(도종환 「담쟁이」)를 걸어놓고 보셨겠죠. 그런데 점점 절박해지면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검찰에 조사받으러 가면서 이 시를 내리신 거예요. 노 대통령이 내린 이 시를 우리가 다시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저 벽을 넘어가는 것처럼 우리 앞에 놓인 이 벽을, 이 시대의 벽을, 이 역사의 벽을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 노무현의 민주주의: 박원순

“희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여러분이 만들어주신 거잖아요. 물론 충분한 자질과 능력이 있었던 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를 돌이켜보십시오. …… 노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구시대의 막내,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역사의 진보라는 게 하루아침에 일어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노 대통령에게 모든 걸 다 하라고 요구할 순 없잖아요. 민주주의는 비록 일부 제도가 도입됐지만 아직도 우리 삶 전체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죠. …… 우리의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는 세밀하고 정교한 콘텐츠들을 좀 더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_ 노무현의 경제정책: 이정우

“참여정부 때 개혁이냐 성장이냐 하는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마치 개혁하면 성장이 되지 않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처럼 보수언론들이 몰고 갔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질문을 잘못한 겁니다. 개혁과 성장은 같이 가는 겁니다. 성장과 분배도 같이 가는 겁니다. 그걸 떼어내서 억지로 둘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요구하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겁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판을 쳤어요. 성장과 분배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나 보다, 그러면 성장이 중요해 보이는데 참여정부는 성장은 안 하고 분배만 하나 보다, 그렇게 국민들이 오해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했던 겁니다.”

“노 대통령은 그런 행보 싫어하셨어요. 참모들이 많이 권했는데, 나가서 쇼하는 거 아주 싫어하셨죠. 살기 어렵고 경기도 나빠 국민들의 고통이 심하고 불만도 많은데 가서 좀 어루만져주실 필요가 있으니 행사도 참석하시고 시장에 가서 악수도 하시라고 해도 노 대통령은 안 하시려 해요. ‘내가 그렇게 한들 그 사람들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겠느냐, 괜히 가서 쇼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셨죠. 그러고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정책을 생각해서 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도록 밤낮으로 노력하셨어요. 정직하게 정책을 고민하신 분입니다.”

“서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게 민심이반을 가져왔고, 선거에서 대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을 겁니다. 그런데 서민의 삶을 챙기지 않은 것이 아니고, 복지 예산과 경제 예산을 역전시키면서까지 노력했는데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했죠. 또 노무현 스타일이 대놓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력은 많이 했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했고요. 경기가 계속 좋지 않아서 살기 어렵고 팍팍하니까 민심이 좋을 리 없죠. 교훈이라면,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책을 개발하고 그런 정책 내용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겁니다. ”

_ 노무현의 법치주의: 문재인

“새삼스럽게 왜 민주주의인가? 아주 상식적이고 이미 연구될 만큼 연구되어 더 연구할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대통령이 퇴임 후에 여생 동안 민주주의를 연구하겠다는 건가? 여기서 말씀하신 민주주의는 실질적, 사회적 법치주의까지 다 포괄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진보주의까지 내포한다고 보는 것이죠. 진보적 민주주의를 연구하겠다는 뜻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뜻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진보의 미래를 연구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셨죠.”

“실제로 참여정부에서 법치주의 개혁이 상당히 이루어지긴 했죠. 그렇지만 예를 들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위해 특별한 법?제도를 별도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법?제도를 그대로 준수하면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린 거예요. 이건 순전히 정권의 의지에 달린 겁니다. 그래서 정권의 의지가 바뀌면 금방 후퇴하거나 퇴행할 수 있죠. 또 권력기관이 스스로 노력하고 투쟁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문화로 정착하고 공고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데 국민들이 가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면 퇴행하고 후퇴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그걸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참여정부를 마치면서 제가 절실하게 생각한 게 역시 민심과 함께 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혁이 더디더라도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민심의 동의를 얻어서 해나가고,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내서 다음 정부에서 미흡한 부분을 이어나가는 게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했죠. 언론 환경도 워낙 좋지 않았고 참여정부가 개혁에 너무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릅니다. 개혁 면에서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밀고 나간다는 생각에 빠졌을지도 모르죠. 우리로서는 뼈아픈 일이라 생각합니다.”

_ 노무현의 지역?인사정책: 정찬용

“참여정부의 인사철학을 저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모든 나라의 인사철학이 반드시 국리민복이 아닌가 해요. 그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어요? 국가가 이익을 얻고 국민이 복을 받는 국리민복만 한 게 없어요. 인사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더 많은 국민들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인사죠. 어떤 사람을 총리, 장관에 앉혀야 국리민복을 이룰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변할 수 없는 철학입니다. 그런데 ‘고소영’만 유리하게 만들자, ‘강부자’만 좋게 만들자는 게 문제 아니겠어요?”

“인사개혁의 원칙을 정했는데, ‘적소적재(適所適材)’, ‘공정·투명’, ‘자율·통합’, ‘균형’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적소적재라는 말을 우리는 적재적소(適材適所)라고 알고 있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기어이 이 말을 적소적재로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적재적소는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자리를 준다는 말인데 틀렸다는 거예요.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사람을 찾는 게 맞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문화관광부 장관은 무슨 일을 해야 하고 법률에 어떤 규정이 있으며 그러기 위해선 어떤 자격과 덕목이 있어야 하는지 정해놓고 여기에 맞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를 엄청나게 만들었습니다.”

_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한명숙

“지금도 민주주의가 말도 안 되게 후퇴하고 있죠. 그런데 결국 벽에 부딪힐 겁니다. 지금도 부딪히고 있죠. 보수언론이 지탱해주니까 겨우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국민들이 모릅니까? 우리 국민들이 어떤 사람들인데요. 일제를 물리치고 해방을 맞은 저항의식이 있는 민족이고, 광주민중항쟁을 일으킨 민족이며,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낸 민중입니다.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좌절하고, 힘들고 억울하고 슬프고 아프지만 ‘길게 봅시다’, ‘길게 보고 우리 국민을 믿읍시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우리 국민의 입과 귀를 다 틀어막을 순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은 유식한 말로 이론화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런 것 싫어하시잖아요. 그냥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때야 하죠? 행복을 느끼며 남을 도와주고 서로 나누는 사회, 특권계급만 특혜를 받고 반칙하는 사람만 출세하는 세상이 아닌 가난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고, 출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1인자도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아닌가요? 반칙이 없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래서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노 대통령은 퇴임하고 나서 봉하로 가셨는데,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매일 몇 번이고 방문객들한테 인사말씀을 하셨죠. 그 때문에 얽매여서 힘들다고 저희한테 하소연도 하셨는데요. 제가 보기엔 그러면서도 방문객들한테 인사 말씀하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 자신도 모르게 말씀에 빠져서 방문객들 붙잡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기도 하셨고요. 때론 관광버스 타고 오신 연세 많은 분들 상대로 대학 강의하듯이 어려운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하시고……. (청중 웃음) 밀짚모자 쓰고 방문객들 앞에서 말씀하길 즐기시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_문재인 (본문 중에서)

2008년 2월,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보통 사람이 된 노무현은 봉하마을로 귀향해 ‘농부’ 노무현이 되어 씨를 뿌리고 오리를 풀었다. 계절이 바뀌어 농한기가 되자 ‘농부’ 노무현은 ‘시민’ 노무현이 되어 다양한 책을 읽고, 학자들과 토론하면서 ‘국가의 역할’, ‘진보의 미래’를 고민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해 다섯 차례나 고쳐 쓴 초안의 끝은 언제나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모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깊은 사색과 고민의 결론은 결국 ‘시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많은 시민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그가 못다 이룬 꿈을 가슴에 품었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그가 봉하에서 밀짚모자 쓰고 격의 없이 나눴던 ‘대중과의 소통’, ‘노무현의 꿈’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무현 시민학교’를 시작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노무현 시민학교’는 2009년 8월부터 시작해 2010년 봄 3기 강좌를 열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강연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은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찾고 올바르게 행사하는 시민’,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시민’, 그리고 ‘학습하고 생각하는 시민’이다. 이 책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는 서울 부산 광주에서 열린 1기 ‘노무현 시민학교: 시민주권강좌’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문성근 문재인 이정우 정찬용 정연주 도종환 박원순 등 10명의 사람들이 노무현을 추억하면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담긴 시대 정신을 되새긴 기록이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깨어 있는 수많은 시민들이 ‘노무현 정신’의 의미와 가치를 호흡한 현장이다. 우리 사회의 실천적 지식인, 정치인, 언론인, 시민운동가, 배우, 시인 등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민주개혁 인사들과 참여정부 사람들이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진보의 미래’를 분야별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노무현의 꿈(이해찬), 노무현의 진보(유시민), 노무현의 분노(문성근), 노무현의 소통(정연주), 노무현의 얼굴(도종환), 노무현의 민주주의(박원순), 노무현의 경제정책(이정우), 노무현의 법치주의(문재인), 노무현의 인사ㆍ지역정책(정찬용)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한명숙)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그가 못다 이룬 꿈, 사람 사는 세상, 깨어 있는 시민의 역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 오마이북은 지난해 출간한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이어 2010년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와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차례로 출간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인상 깊게 읽었던 책 10권을 전문가와 시민들이 함께 토론한 강독회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는 오는 6월 출간될 예정입니다.
● 10명이 말하는 ‘노무현 정신’은……


이해찬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전 국무총리
―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열망하는 것

유시민 국민참여당 주권당원,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의로움과 이로움이 충돌할 때 의로움을 위해 이로움을 버릴 수 있는 삶의 자세

문성근 배우
― 반칙, 위선, 모순에 분노하고 도그마까지 다시 살펴 우리 공동체를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굴복하지 않고 싸운다

정연주 언론인, 전 KBS 사장
―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탈권위, 자율의 가치와 정신을 실천하는 것

도종환 시인,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 원칙을 지키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자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또 다른 세상을 향한 포기하지 않는 원칙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물려줍시다”(2002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 中)

문재인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특권·반칙 없슴 사회를 위한 투쟁

정찬용 인재육성아카데미 이사장, 전 청와대 인사수석
― 정직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서럽고 억울하지 않은 세상 만들기

한명숙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전 이사장, 전 국무총리
― 국민에 대한 무한 신뢰, 소통과 화합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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