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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晟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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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다르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밖에 보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내 삶은 죽음을 억압하는 일 -- 내 뚝심으로 죽음을 삶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넣는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어느 날 죽음이 나비 날개보다 더 가벼운 내 등허리에 오래 녹슬지 않는 핀을 꽂으리라. 그래도 해변으로 나가는 어두운 날의 기쁨, 내 두 눈이 바닷게처럼 내 삶을 뜯어먹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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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거라, 지치거라, 마음이여...... 오늘 이곳에 머물러도 마음이 차지 않는 것은 본래 그대 마음이 낯선 여관이기 때문이다.
--- p.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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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은 상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끝없이 뻗어나간 얼음판 위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넓혀가기(작은 구멍은 탄생이다-태어남은 근원적인 상처다.).
--- p. 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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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와 같은 공단(工團)에서 일하는데, 언제나 야근을 도맡아 한다. 그에게는 애인도, 누이도, 고향도 없다.
--- p.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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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같은 고사리' '풍경 같은 그림' '시간 같은 쏜살'...... 한 번의 뒤집음은 혼란을 가져온다. 억압적 관계맺음 뒤의 무정부 상태. 시는 뒤집힌 곳에서 출발한다.
--- p.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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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죽음을 낳는다. 죽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우리는 셋이서 산다-너와나, 그리고 파산(破産) 혹은 끝장.
--- p. 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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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성복의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가 출간되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 책은 1990년 도서출판 살림에서 간행되었던 『그대에게 가는 먼 길』에 실린 단상들을 저자가 새롭게 간추려 엮은 것이다.
나는 언저리를 사랑한다 언저리에는 피멍이 맺혀 있다. 채 첫 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피멍 맺힌 언저리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시인은 이 책에서 시와 예술과 삶과 죽음과 고통과 상처와 병과 허무와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게 아물지 않는(아물까 두려운) 상처는 시의 힘이 되고, 치유할 길 없는(치유하고 싶지 않은) 병과 허무는 살아 있음의 증거가 된다. 그 상처의 자리에, 곪아터진 그곳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 자리한다. 그가 뱉어놓은 한마디 한마디는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고, 시에 대한, 예술에 대한, 삶에 대한 잠언이 된다. 그것은 시인 스스로에게 겨누어진 칼날이며, 그 칼날은 동시에 그 말을 엿듣는 우리에게로 향한 것이기도 하다. "낯선 여관"과도 같은, 그래서 "머물러도 마음이 차지 않"는 그곳, 마음의 자리에서 시인은 주문한다. "지치거라, 지치거라, 마음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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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편집팀
고통과 상처, 병과 허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유는 감수성 예민한 세대의 가슴에 선명한 인상을 남기기에 족했다. “불을 쬐듯이 불행을 쬘 것, 다만 너 자신의 살갗으로!” “너는 삶의 벼랑에 핀 꽃이다. 너를 꺾어라!” “창살은 네 눈 속에 있다”……
시인의 아포리즘은 언제 읽어도 녹슬거나 낡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진정성과 대면하면서 이마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잠언의 해독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오늘 다시 한번 시인의 잠언을 소리내어 읽어본다(코끝 찡하도록 추운 날, 혀끝에서 웅얼거려보는 것은 더욱 좋다). “사랑은 처음에 온다. 지혜가 끝에 오는 것과 같이. 처음이든 끝이든 모든 공식은 감옥이다.” “희망의 상실은 절망이 아니라 타락이다.” “한 절망에 대한 위안은 더 큰 절망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