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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성령을 좇아 행하라
Chapter 1.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 성령이 네 평생을 인도하시게 하라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치겠느냐 │ 성령을 속이다가 죽음을 맞이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며 Chapter 2. 성령을 좇아 순종하는 목회를 하라 성령의 감동된 설교로 생명을 공급하는 목회자 │ 끝까지 성령 충만해야 하는 목회자 │ 안타까운 한국 기독교의 현실 │ 죽을 권세와 살 권세 Part 2. 성령이 사용하시게 하라 Chapter 1.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육신의 요구는 신앙생활과 목회의 최고 방해꾼 │ 예수의 남은 고난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채워야 하는 육체 육신의 때는 성령이 사용하시는 시간 │ 성령으로 육체를 결박하는 길, 기도 Chapter 2. 성령이 쓰시도록 나를 드리라 대접받으려는 육신의 생각 │ 아낌없이 주려고 할 때 나타나는 능력 │ 책임지지 않으려는 막내 근성 교만한 육신의 권한 │ 내 영혼의 때를 위한 분명한 손익계산 │ 제한 없이 쓰임받아야 할 육체 Chapter 3. 성령께 쓰임받는 목회를 하라 목회의 전환점 │ 성령의 권능으로 파괴하는 마귀역사 │ 적재 능력이 커야 하는 목회 Part 3. 성령께 나의 지분을 드리라 Chapter 1. 육신의 지분은 내 것이 아니다 자기 지분을 챙기려는 육신 │ 나는 백 퍼센트 성령의 지분 │ 육신의 지분을 포기하는 만큼 부흥하는 교회 사명 앞에 포기해야 할 육신의 지분 Chapter 2. 육신의 지분을 버리라 억울함이라는 지분 │ 명예와 교만이라는 지분 │ 재물이라는 지분 │ 자존심이라는 지분 Chapter 3. 성령의 지분으로 목회하라 성령께 온전히 맡기는 목회 │ 성령의 감동을 제한하지 않는 목회자 │ 성령의 소리를 절대화 하는 목회자 영혼의 때를 위해 지분을 쌓는 목회자 │ 주님께 쓰임받는 것이 진정한 복 |
尹 錫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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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성령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는가?
성령이 나를 사용하셔야만 목회와 신앙생활의 성공자가 될 수 있다. 바울과 베드로와 같이 능력 있는 목회 사역을 시작하고자 하는 목회자들, 그리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을 위한 사역 지침서 ! 목회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회를 해도 안 되는 이유는 사망을 초래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목회하는 육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잘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육의 사람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목회가 안 되는 이유를 다른데서 찾으면 안 됩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함정에 빠질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목회하라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종이라면 주인이신 예수의 명령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으로 사용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목회는 곧 성령으로 영혼 살리는 구령의 열정이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사용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나를 쓰고자 하는 주님의 생각과 뜻이 나와 전혀 다르다면 나에게 무슨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육신은 힘든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육신이 고난받지 않고는 신령한 것을 얻어낼 수 없기에 육신을 신령한 일에 위해 사용하려면 오직 성령께 완전히 결박당해야 합니다. 성령이 나를 쓰시도록 내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까 목회가 힘든 것입니다. 교회는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교회는 그냥 성장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 육신을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 성령의 정신으로 쓰신 만큼 성장합니다. 그런데 나태하고 게으르고 누워 자면서 써 달라고 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쓰겠습니까? 성령이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하시는 감동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감동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육신이 쉴 틈이 없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를 전 삼고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나를 쓰시는 일에 왜 못 한다고 불순종하고 무시합니까? 왜 육신이 편하기만을 바랍니까? 성령의 뜻대로 사용받으라! 성령의 뜻대로 사용된 사람의 교회는 부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인들처럼 주님이 나를 쓰실 때 내 육신의 고통의 분량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제한 없이 사용당할수록 교회가 성장합니다. 성령의 뜻대로 산 사람 중에는 육체가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매 맞고 징계받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기까지 고통당하셨는데 하물며 예수의 사역에 동역하는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성령께서는 오직 육신의 때를 성령이 사용하시는 시간으로 온전히 내어드리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육신은 세월 속에서 시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으니 나에게 육신이라는 시간이 있을 때 성령께 사용당해야 합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 편히 먹고 마시고 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나를 온전히 내드려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