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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세상사에 관한 한 단절되어 있는 사람이다.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어느 정도 의존을 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그들은 신의 은총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서양의 기독교인들은 정애라는 것이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장애는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한 결과가 아니라 사고나 질병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어떤 영적 경로를 통하여 일정한 단계에 도달한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인을 어떤 불가사의한 이유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배제되어 온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p.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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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되고 나면 언제쯤 꿈속에서 색깔이 사라지기 시작할까? 우리들은 언제까지 그림 같은 꿈을 꾸게 될까?
3년 전에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등록을 하였다. 그리고 몇 달 안 되어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던 마지막 빛의 흔적이 사라졌다. 지금은 완전한 시각장애인이다. 낮과 밤을 알지 못한다.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도 강렬한 태양을 바라볼 수 있다. 요즘 꿈은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다. 꿈속에서는 눈부시게 현란한 색깔을 볼 수있기 때문에 꿈꾸는 게 즐겁다. 눈은 멀었어도 꿈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6개월 전에 시력이 점점 좋아지는 꿈을 꾸었다. 그때 아들 토마스를 볼 수 있었다. 내 무릎에 앉아 있는 두 돌 반 된 명랑하고 귀여운 아이를. 8월 1일에 마지막으로 눈 수술을 받았다. 토마스는 8월 22일에 태어났다. 토마스의 나이를 헤아리면 내가 언제부터 시각장애인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18개월 정도까지 토마스의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 가까이에선 아이가 어디서 자고 있는지 무슨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하게 잘 떠올릴 수 는 없지만, 아기 때 눈으로 말하는 작은 표현이나 감정의 그림자를 짐작할 수 있었다. 1981년 여름 웨일스 해변에서 토마스의 발목에다 끈을 묶곤 했다. 토마스가 10미터 이상 멀리 기어가게 되면 내가 다시 그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자 아는 도서관 계단에서 아이를 데리고 놀곤 했다. 토요일 오후의 겨울 캠퍼스는 매우 조용했다. 아이가 곁에 없어도 자갈길을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 가끔은 깜짝 놀라 아이 뒤를 쫓기도 했다. 붙잡기도 전에 아이가 모서리 따위에 부딪히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아이는 점점 더 활발해지는데, 내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놀아 주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 pp.2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