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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걸리버를 따라서, 스위프트를 찾아서
EPUB
박홍규 저
들녘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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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의 말_어리석은 세상을 비웃는 통쾌한 여행
일러두기
프롤로그 슈바니츠의 충고 | 걸리버를 읽고 자살하지 않는 이유 | 『걸리버 여행기』는 고전인가, 아닌가?

1부 스위프트를 찾아서
1장 스위프트 문학 기행
아일랜드의 기적? | 아일랜드 기행 | 아일랜드와 조선, 그리고 한국 | 아일랜드에서는 프로테스탄트가 욕이다 | 스위프트의 묘비명 | 이상한 애국자 | 더블린의 스위프트 | 스위프트는 아나키스트다 | 스위프트의 흔적을 찾아서 | 런던 커피 집의 스 위프트 | 영문학과 스위프트
2장 스위프트의 시대
17~18세기 아일랜드 | 영국의 18세기 또는 계몽시대 | 휘그와 토리 | 월폴과 소비 사회 | 계몽시대와 스위프트 | 스위프트, 포프, 게이 | 문학이 등장하는 18세기 |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문화의 형성 | 스위프트의 성장
3장 스위프트의 초기 작품
『통 이야기』 | 페르소나 비평 | ‘작품을 위한 변론’ | 서문과 서론 | 『통 이야기』에 나오는 삼 형제와 옷 | ‘여담’ | 정치와 종교 비판 | 「책들의 전쟁」과 「영혼의 기계적 조작에 관한 담론」 | 런던 생활 | 「빗자루에 대한 명상」 | 「정신의 능력에 대한 진부한 에세이」 | 「기독교 폐지 반대론」 | 토리당원 스위프트
4장 아일랜드를 사랑한 스위프트
아일랜드에서의 활동 | 「아일랜드에 대한 간략한 견해」 | 「온건한 제안」 | 「하인에게 주는 지침」 | 오물시 | 성공회 사제 스위프트 | 「심판의 날」

2부 걸리버 여행기
5장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구조
동화와 소설, 어떻게 다를까? | 대단한 거짓말 | 풍자로서의 『걸리버 여행기』 | 풍자의 핵심 | 풍자의 형식 | 풍자의 주제_정치와 여성 | 풍자의 기법_환원법 | 영국 근대의 풍자문학 | 『걸리버 여행기』의 구조 | 걸리버는 정말 미쳤을까? | 스위프트의 인간관
6장 소인국
두 통의 편지 | 걸리버의 이력서 | 영국을 풍자하다 | 황제와 황실을 조롱하는 걸리버 | 줄 타기를 잘하면 출세한다고? | 군대와 정부를 비웃어주자 | 지긋지긋한 당파 싸움은 이제 그만 | 전쟁을 풍자하다 | 성공회와 가톨릭의 대립 |
영국과 프랑스 | 영국의 풍습에 대한 풍자 | 소인국을 떠나다
7장 대인국
대인국에 가다 | 구경거리가 된 걸리버 | 대인국의 이모저모 | 영국의 정치를 비판하다 | 이상국가
8장 공중국
걸리버, 공중국을 발견하다 | 아일랜드 | 레가도(아일랜드) 여행 | 정치 좀 풍자해볼까? | 스위프트의 역사관 | 죽지 않는 나라
9장 마인국
주의 사항 | 야후와 휴이넘 | 지배자와 민중 | 휴이넘의 언어로 전쟁을 비판하다 | 법률 비판 | 자본주의는 병이다 | 정치 비판 | 여성과 동성애에 대한 편견 | 휴이넘의 이상적인 결혼제도 | 휴이넘의 여러 모습 | 마인국을 떠나다
에필로그 여행을 마치며 | 걸리버의 여행이 시사하는 것 | 걸리버, 세상을 비웃다 | 풍자의 역설

더 읽어보기
『걸리버 여행기』 이후의 아일랜드
아일랜드, 스위프트 이후 | 아나키스트 와일드와 사회주의자 쇼 |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예이츠 | 세계주의자 조이스와 베케트 | 영어와 교포 문제 | 나를 울린 IRA 영화들
아일랜드와 한국, 동병상련일까 동상이몽일까?
슬픈 아일랜드 | 아일랜드와 한국 | 아일랜드는 잡종인가?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로빈슨 크루소』가 문제라고? | 제국주의자 크루소 | 문명화라는 이름의 환상 | 아동문학용 『로빈슨 크루소』의 잔혹성 | 『싱글턴 선장』과 『걸리버 여행기』, 쿡과 다윈 | 『로빈슨 크루소』의 아류들 | 『로빈슨 크루소』에 반대한다
출처 및 주석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 로스쿨, 노팅엄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 로스쿨, 노팅엄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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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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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21.94MB ?
ISBN13
9791159251238

책 속으로

7백 년 식민지를 경험한 아일랜드에는 애국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스위프트가 가장 먼저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애국 자’란 호칭은 더블린 의회에서 영국의 지배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자들에게 붙여진 특별한 명칭이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화와 같은 이야기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가 ‘위대하고 뛰어난 애국자’라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위대한 소설가’라든지 ‘훌륭한 아동문학가 아저씨’라 한다면 모를까, 애국자라니요.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소설가나 아동문학가들 대부분이 애국자인 적이 없어서 그처럼 낯설게 들리는 것일까요?
당시 아일랜드는 소위 대영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실은 벌써 그 몇 백 년 전부터 식민지였어요(대영제국 최초의 식민지였습니다). 7백여 년이 지난 1921년에 자치를 확보했지만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 땅으로 남아 있고, 독립을 둘러싼 분쟁 역시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스위프트는 그 7백 년이라는 길고 긴 식민지 역사의 꼭 중간 시기를 살았는데, 지금 IRA처럼 무장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걸리버 여행기』를 비롯한 여러 글을 통해 영국의 침략에 항의했기에 아일랜드에서 ‘애국자’라는 찬양을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식민 지배국인 영국 입장에서는 ‘매국노’이자 ‘반역자’였어요. 아일랜드인이 아니라 영국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서 그는 대영제국의 종교인 성공회 교회의 수석 사제였습니다. 말하자면 아일랜드 애국자가 되려고 해도 도저히 될 수 없는 처지였어요. 그런데도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의 애국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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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프트가 36세였던 1703년 뉴턴은 런던왕립학회 회장으로 취임합니다. 이미 16년 전인 1687년에 『프린키피아Principia』를 출판한 수학과 과학의 총아 뉴턴은 계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위프트는 뉴턴에게 크게 호감을 갖지 못했어요. 수학과 과학은 실용성을 갖지 못하는 한 무의미하고, 실용성을 갖는다 해도 윤리와 정치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사고방식은 『걸리버 여행기』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스위프트가 수학과 함께 멸시한 것은 음악이었어요. 음악사에 영국인 출신의 음악가는 거의 없지만, 독일 출신의 헨델이 1710년 하노버 선제후(選帝候), 즉 뒤의 영국 왕 조지 1세의 악장이 되어 영국에서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 활약하게 된 점은 스위프트가 음악을 경멸하게 된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스위프트가 계몽시대의 총아인 뉴턴이나 헨델과 대립했다고 해서 시대의 이단아라거나 반(反)계몽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계몽시대의 계몽이란 뉴턴이나 헨델 이상으로 다양한 입장을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저는 스위프트 역시 명백히 계몽의 일익을 담당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적어도 풍자문학가로서 스위프트는 같은 시대의 시인 포프나 화가 호가스와 함께 계몽적 풍자예술의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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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이야기』의 원제 ‘A tale of a tub’은 영어에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의 숙어로 쓰일 정도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는 스위프트의 작품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라 16, 17세기 영어 문헌에 빈번하게 나온 숙어였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여하튼 그런 헛소리는 제2장에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 세 아들에게 하나의 천으로 만든 옷을 한 벌씩 남겨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버지는 그 옷이 몸의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커지므로 고칠 필요 없이 영원히 입을 수 있다고 말하며 유서를 남기고, 삼 형제가 한 지붕 아래 우애 있게 살기를 당부하고 죽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삼 형제는 도시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본래의 옷으로는 세련된 상류생활에 접근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데요. 장남 피터는 가령 ‘어깨장식’을 달고 싶은데 유서에 그런 말이 없으니 유서의 여러 철자를 조합하여 ‘어깨장식’이 유서에 담겨 있다고 강변하며 갖가지 장식 을 답니다. 그런 과정에서 형제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생겨 마침내 피터는 두 동생을 집에서 쫓아내지요. 장남 피터가 옷에 갖가지 장식을 다는 것은 의례가 복잡한 가톨릭을 뜻합니다. 차남 마틴은 정신을 차려 옷의 형태를 원래대로 복원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미 갖가지 장식이 붙어 있는 터라 복원이 어렵습니다. 결국 마틴은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것만 떼어냅니다. 이는 성공회처럼 가톨릭과 퓨리턴의 중간에서 중도를 택함을 뜻하지요. 막내 잭이 피터에 대한 반발심에서 모든 장식을 떼어내어 옷이 넝마처럼 변하는 것은 퓨리턴을 비유합니다. 즉 삼 형제란 당시 기독교의 세 가지 주요 형태인 가톨릭, 성공회, 퓨리턴을 아버지 유산인 옷을 두고 다투는 형제에 비유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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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스위프트가 결국 국가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플라톤이나 모어와 달리 아나키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적으로 위에서 본 식민지 침략에 대한 부정에서 드러나지요. 또한 영국 아나키스트 고드윈이 모든 정치제도는 전적으로 타락한다는 스위프트의 주장을 지지하여 『걸리버 여행기』의 제4부를 들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분류는 풍자문학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에서 비롯되는 풍자문학은 스위프트를 거쳐 20세기 독일의 브레히트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프랑스 근대의 라블레와 몰리에르를 비롯한 각 시대, 각 나라의 다양한 표현들이 있고, 우리 민중문학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 하나의 문학 전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스위프트는 문학 선배인 라블레를 특히 좋아했어요. 이 같은 풍자문학으로 창조된 풍자가 중에서 걸리버만큼 알려진 작중 인물은 없습니다. 모든 풍자문학의 주인공이 다 그렇듯 작가나 독자는 그 주인공들에게 기대어 세상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감정을 해소합니다. 한편 작가는 풍자 행위에 내재하는 근원성이 문명사회에 맞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작중 인물로부터 일보 후퇴하여 그들을 결국은 아이러니하게, 즉 자신의 풍자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패배하는 인물로 풍자하게 되지요. 즉 ‘풍자되는 풍자가의 모습으로 풍자하는’ 것인데요. 이는 걸리버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스위프트는 이러한 풍자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현실에 대한 자신의 절망을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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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는?화자인 걸리버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16년 7개월간 의 여행기입니다. 그가 여행한 곳은 일본 등 잠깐 들린 곳들을 빼면 네 나라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각각 여행기의 제1~4부에 걸쳐 소인국, 대인국, 공중국, 마인국으로 등장합니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하면 나쁜 나라와 좋은 나라가 반복되는 꼴입니다. 즉 소인국과 공중국은 나쁜 나라, 대인국과 마인국은 좋은 나라로요. 그중에서 가장 좋은 나라는 마인국이고, 다음이 대인국입니다. (……) 그동안 이 네 나라는 스위프트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은 스위프트 당대의 민중오락에서 힌트를 얻어 쓰인 것임이 최근의 연구에 따라 밝혀지고 있는데요. 그런 짐작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소설 여기저기에 등장합니다. 가령 제1부 마지막에서 걸리버는 소인국에서 가져 온 실제보다 12분의 1 크기의 작은 “가축을 상류계급 및 기타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켜서 상당한 수입을 얻었다”고 합니다. 구경을 시킨다는 이 아이디어는 제2부에 바로 나옵니다. 즉 “주인이 나를 이용해서 굉장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나를 그 나라의 대도시로 데리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이어 온갖 동네를 거쳐 수도까지 구경거리로 간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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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은 대인국의 이모저모와 걸리버의 재미있는 모험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해주지요. 그러다가 제5장에서 별안간 외설적인 장면이 다시 나와 놀라게 됩니다. (……) 글림덜클릿치는 앞에서 소개한, 걸리버가 대인국에서 처음 만난 농부의 딸로서 그가 왕궁에 팔릴 때 걸리버를 돌보기 위해 따라온 소녀입니다. 위에서 ‘그들의 품’이란 ‘in their Bosmos’의 번역으로서 사실은 유방 사이를 말합니다. 시녀들은 걸리버를 나체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걸리버 앞에서 자신들도 똑같이 나체가 되어 다시 한 번 독자를 놀래게 해요. 그러나 이처럼 다분히 외설적이며 묘한 분위기는 다음 문장에서 급변합니다. 별안간 사형집행 장면이 나오거든요. “사형집행용으로 세워진 처형대 위에 놓인 의자에 죄인이 묶여 있다가, 약 40피트 길이의 칼로 그의 목이 단번에 잘려나갔다”는 묘사를 시작으로 더욱 상세한 묘사가 이어집니다. 스위프트가 살았던 18세기에는 사형이 공개적으로 집행되어 민중의 오락처럼 여겨졌는데요. 런던에서는 이러한 공개 처형이 186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호가스의 판화 「타이번 광장에서 처형되는 남자」는 이를 생생하게 보여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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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는 전쟁의 원인으로서 “야망이 큰 군주들은 항상 통치할 땅과 국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때로는 부패한 대신들이, 그들의 사악한 행정을 규탄하는 국민의 소란을 억압하거나 달래기 위해서, 국왕을 충동하여 전쟁을 일으키게” 한다고 설명하는데요. 즉 내부의 문제를 봉쇄하기 위해 외부의 전쟁을 야기한다는, 모든 전쟁 발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으로 ‘의견의 차이’, 즉 신구교의 차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다고도 설명합니다. “예컨대 살코기가 빵인지, 빵이 살코기인지, 또는 어떤 열매의 즙이 피인지 포도주인지”, “특히 이런 의견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전쟁처럼 치열하고 피비린내 나거나, 또 오래가는 전쟁도 없고, 아무래도 좋은 일에 관한 의견의 차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와 같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는 제1부 제4장에서 전쟁의 원인으로, 계란을 깨는 방법은 큰 쪽의 끝을 먼저 깨는 것인데, 황제가 그렇게 깨려다가 손가락을 다쳐 계란의 작은 쪽 끝을 깨야 한다고 법으로 명령해 결국 전쟁이 터졌다는 것으로 설명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정치에 신물이 나면 《걸리버 여행기》를 보라!
인간과 문명 비판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걸리버 여행기》를 벗하라!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이 책을 읽어라!!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용 문학도 아니고 재미있고 유쾌한 동화도 아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18세기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사회·문화를 전 방위적으로 신랄하게 비웃고 조롱하는 풍자문학이다. 스위프트는 주인공 걸리버가 여러 상상의 나라(소인국, 대인국, 공중국, 마인국)를 여행하면서 각국의 천태만상을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세태를 풍자하는 동시에 걸리버 역시 풍자하는 이중적인 기법을 구사한다. 풍자의 대상과 주체를 동시에 풍자함으로써 인간의 본성 자체를 비웃어버린 것이다. 스위프트의 풍자는 특히 정치와 인간에 대한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계란을 깰 때 큰 쪽 끝을 먼저 깨느냐 작은 쪽 끝을 먼저 깨느냐를 두고 다투다 전쟁하게 된다는 이야기, 줄을 잘 타는 순서대로 사람들을 정부의 주요 관리직에 등용하는 이야기, 정치인의 주장이란 그들이 신은 구두의 굽 높이 정도밖에 차이가 없다는 지적, 인간을 일컬어 대자연이 지구상에 기어 다니도록 허용해준 작고 역겨운 벌레 중에서 가장 고약한 족속이라 이른 것, 말[馬]을 이성적인 종족 휴이넘으로 상징한 반면 쾌락과 탐욕에 빠진 인간을 야후로 내세워 열등하게 묘사한 장면 등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3백 년 전, 아일랜드에서 쓰인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야말로 《걸리버 여행기》를 고전답게 해주는 덕목이라 하겠다. 하지만 3백 년 전의 작품인 만큼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집필 당시의 상황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독자들이 스위프트의 재치 있고도 교묘한 장치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따라서 저자는 주인공 걸리버를 창조한 스위프트와 18세기 영국 및 아일랜드의 상황과 정치·역사적 배경을 먼저 소개한다. 더불어 《걸리버 여행기》 이전의 작품까지 친절하게 소개함으로써 당시 유럽 대륙에 불거진 이슈에 수월하게 접근하도록 돕는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이 책은, 대다수 독자들에게 어린이용 동화로 소개되거나 받아들여진 《걸리버 여행기》가 실은 현존하는 문학 작품 중 최고의 풍자문학이라는 점, 그 풍자의 칼끝이 정치를 비롯한 인간세상의 위선과 모순을 겨눈다는 점, 그럼에도 작가 스위프트가 인간 종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기에 이 같은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 편의 또 다른 멋진 여행기이자 《걸리버 여행기》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친절하고 정교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또한 《걸리버 여행기》 이외에 스위프트가 발표한 여러 작품에 대한 소개, ‘여행기’라는 같은 형식을 띤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스 크루소》가 왜,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분석, 판화가 윌리엄 호가스와 장 그랑빌 등 18세기를 풍미한 화가들의 일러스트를 최대한 활용하여 보는 재미를 강화한 것 등은 이 책만의 특장이라 하겠다.

스위프트는 왜 ‘풍자’를 선택했을까?

스위프트는 영국인으로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일랜드인이 아닌 영국인으로서 후반생을 아일랜드에 있는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 사제로서 살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사의 권력자가 조선에 와서 조선 신사 책임자로 50년을 살면서 우리나라의 신채호처럼 일본 정부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로서 즉 반(反)권력주의자로 활동한 셈이다. 따라서 그는 당연히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서 갈등했고, 공적인 종교인의 입장과 사적인 작가의 입장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는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진보의 편에 서 있었다. 대부분이 가톨릭인 아일랜드 민중을 불신했으면서도 의회주의를 신봉하는 자로서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섰다. 또한 그리스 로마로 대표되는 고전의 시대와 그 문화를 찬양하면서도 현대를 무시하지 않았다. 스위프트가 작품을 집필하는 내내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의 모든 글이 ‘웃음과 조롱’이라는 풍자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걸리버는 세상을 비웃고, 스위프트는 걸리버를 조롱하니…

소인국, 대인국, 공중국, 마인국을 여행하면서 걸리버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몸소 겪게 되는 어이없고 황당한 이야기들…. 어린 시절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이 같은 재미와 호기심만으로 읽어도 충분했다. 그러나 좀 더 자란 독자들에게는 작가인 스위프트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려 했는지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걸리버와 스위프트의 관계라든지, 스위프트와 당시 영국과의 관계, 국내 정치와 국제 정세, 종교와 학문 등 작품의 배경이 되는 모든 것을 일일이 알아둘 필요는 없겠지만, 스위프트가 걸리버를 자신이라 전제하면서도 그 역시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만큼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즉 대체로 나쁜 나라로 그려지는 제1부와 제3부에서는 풍자 대상이 그 나라들이지만, 반대로 그려지는 제2와 제4부에서는 걸리버 자신이 풍자 대상이 되는 탓이다. 이처럼 스위프트는 걸리버를 통해 당대 유럽으로 대표되는 모순된 세상을 비웃는 동시에 자신(인간)을 상징하는 걸리버마저 마음껏 조롱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이 점이야말로 《걸리버 여행기》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무엇을 풍자한 것일까?

풍자문학의 영원한 주제는 ‘모순된 인간’의 ‘덧없는 인생살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이 주제를 가장 보편적인 동시에 가장 천재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먼저 걸리버는 제1부 소인국 편에서 자신을 ‘거인’이라는 상징 하에 표현함으로써 무한대로 커진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결말은 유쾌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제2부에서는 극도로 왜소해진 자신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보잘 것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3부에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나라를 방문한 걸리버가 그곳에서 허무함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보여준다. 특히 스위프트는 제4부에 등장하는 야후를 “자연이 만들어낸 동물 중에서 가장 더럽고 역겹고 못생긴 동물이어서, 가장 반항적이고 불순하며, 해코지만 하고 심술궂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을 완전한 이성의 동물인 휴이넘보다 못한 비이성적 야수로 취급한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단박에 무너뜨린 대단한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즉,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풍자문학의 주제인 ‘모순된 인간의 덧없는 인생살이’와 그들이 만들어낸 제국주의로 대표되는 ‘미친 현실’이 거리낌 없이 비판된 것이다. 몇 개의 단어와 상징을 바꾸면 18세기에 쓰인 《걸리버 여행기》가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근거이자 커다란 울림을 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리뷰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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