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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배신
오찬호 해제
지식프레임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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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01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교육은 자유를 수호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다
자유로운 탐구를 위한 교육
여전한 차별, 계속되는 악습
배움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다
진정한 교육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진다
단순한 책벌레가 아니라 능동적인 학자로
자신과 세계 사이에서 균형 잡기
지식과 비판적 지성이 공존하는 대학

02 교육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경제적 독립을 넘어 평등으로
연구 중심 대학과 자유 교양교육
자신을 극복하고 사회에 기여하기까지 : 제인 애덤스
세상과의 조화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데서부터 : 윌리엄 제임스

03 배움의 주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새로운 대학을 꿈꾸다 : 벤저민 프랭클린
보다 현실적인 교육을 위하여
대학, 변화의 중심에 서다
커지는 대학, 늘어나는 교수들
캠퍼스 라이프, 학생 문화의 태동
교양교육은 꼭 필요한가?
전문성이 전부는 아니다
강의평가제 : 학생, 대학의 또 다른 주체가 되다
상대주의의 함정 : 근본적 질문 앞에 무기력한 대학
상품으로 전락한 대학 교육
누구나 대학에 가면 왜 안 되는가?
다시 교양교육의 의미를 묻다

04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교육
실용주의에 관한 논란 : 과거는 현재를 위해, 교육은 현실을 위해
교양교육의 방향에 관한 다양한 논의
비판적 사고의 함정과 교양교육의 길

나가며
감사의 말

해제 / 한국의 대학에서 교양강의는 이미 다른 개념이 되었다 (오찬호)

저자 소개 1

해제오찬호

관심작가 알림신청
 
1978년에 태어났고 대구, 서울, 제주를 거쳐 세종시에서 산다.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랫동안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얽힌 사회 구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면서 밥벌이 중이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프레시안〉, 〈씨네21〉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썼거나 쓰는 중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2015),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2018),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2020), 《
1978년에 태어났고 대구, 서울, 제주를 거쳐 세종시에서 산다.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랫동안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얽힌 사회 구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면서 밥벌이 중이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프레시안〉, 〈씨네21〉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썼거나 쓰는 중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2015),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2018),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2020), 《민낯들》(2022),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민낯들》은 중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납작한 말들》은 열일곱 번째 단독 저서다. 공저, 해제, 추천사 쓴 책을 합치면 백여 권쯤 된다. 이쯤이면 작가라는 직업이 어색하지 않아야 하는데, 곧잘 회의감에 빠진다. 인공지능이 너무 똑똑해져, 도서관 돌아다니며 책을 찾는 모습이 낯설어질 땐 더 그렇다. 그럼에도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 너무 좋다. 사라질 때까진 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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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마이클 로스(Michael S. Roth)
교수이자 대학 행정가이며 웨슬리언대학교의 16대 총장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마이클 로스는 그의 집안에서 대학에 간 첫 세대이다. 웨슬리언대학에서 3년 만에 학업을 마치고 수석 졸업의 영예를 얻었으며, 이후 1984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의 총장이 된 그는 교양교육과 학제 간 연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학교의 커리큘럼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웨슬리언대학교의 총장이 된 이후엔 커리큘럼에 힘을 불어넣고, 인플레이션에 따르는 등록금 인상 중단과 3년 과정의 학위 프로그램 등 웨슬리언의 교육을 변화시켰다. 그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대출을 보조금으로 대체했고, 무거운 금전적 빚 없이 대학을 졸업하는 일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미국 대학 교육의 미래와 씨름하고 있는 학생과 그들의 가족, 교수진과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훌륭한 도구 역할을 했다.
역자 : 최다인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7년간 UI 디자이너로 일하다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지식의 탄생(공역)》 《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디자인 경영 핸드북》 《스티커 도시 풍경: 런던/파리》 《행복한 가족의 집》 《그림 그리기》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56g | 153*224*20mm
ISBN13
9788994655437

책 속으로

반면 프랭클린은 오만에 빠진 편협함을 매우 경계하기도 했다. ‘사회생활 첫날’부터 제 몫을 해내야 한다는 명목 아래 젊은이들을 점점 더 좁은 분야로 밀어 넣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본다면 그는 아마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사회와 경제가 젊은이들에게 점점 때 이른 전문화를 요구할수록, 사람들은 시민으로서 적절한 자질을 갖출 수 없으며 직업 환경의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프랭클린은 잘 알고 있었다.
정치적 속임수를 꿰뚫어볼 줄 아는 시민은 부와 권력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줄 아는 노동자가 된다. 그래서 교육은 어리석은 독재자와 거만한 특권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장치이다.
---「한국어판 서문」중에서

지난 몇 년간 시사평론가들(물론 이들은 대개 교양교육을 받았지만)은 사람들이 꼭 배움을 통해 뭔가를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를테면 경제학자들은 집배원이 학문을 배우는 데 시간과 돈을 쓸 필요가 있는지, 차라리 그 돈을 저축해 집을 사는 편이 낫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 사회학자들은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경력 개발에 직결되지도 않는 불필요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교양 수업이 더 의미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치가들은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선지 많은 이들이 교양과목이라 불리는 강의는 돈이 많이 들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엘리트주의에 빠지기 쉽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불만들은 제퍼슨이 처음 버지니아대학교 설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나, 우리 부모 세대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 부딪혔던 반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적 욕망과 불안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교양교육은 늘 이런 비판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어려운 오늘날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대학 교육이 직업을 얻기 위한 훈련에 불과하다면, 교양교육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직업 역량을 키우는 형식적인 기관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쌓는 곳이라면, ‘특정 직업’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자유로운 탐구를 소중히 여기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교양교육의 대상이나 범위를 제한하자는 요구에 맞서야만 한다.
---「들어가며」중에서

4년제 대학의 학사 교육과정(때로는 5~6년이 걸리기도 하지만)을 무사히 마친 학생들은 대개 대학 생활에 만족한다. 규모가 큰 공립대학이든 작은 지방대학이든 학생들은 대부분 캠퍼스에서 자신이 지적·사회적으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학에 쏟은 학비는 생각해볼 문제다. 충분히 심사숙고한 투자였는가? 장기적으로 대학 교육이 ‘제값’을 톡톡히 했는가?
통계를 보면 대학 졸업과 연봉 상승 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학생과 부모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대학에 들어가는 돈이 현명한 소비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대학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씨름해야만 한다.
갚을 길이 막막한 빚만 떠안고 정작 실망스러운 강의에 좌절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애초에 자신에게 대학 교육이 정말 필요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나아가 교육이, 더구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직업훈련도 아닌 대학 교육이 왜 중요한지도 갸우뚱하게 된다.
---「01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중에서

급격한 산업화 시대, 모든 사람들이 부를 찬양하는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세태를 비판할 사람이 필요하다. 듀보이스는 ‘재능 있는 1할’에 속하는 젊은이들이 오늘날로 치면 골드만삭스의 인턴이 되거나, 교외에 별장을 가진 부자들 틈에 끼어들려고 애쓰기를 원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에 성공적으로 편입되는 것은 재능을 제대로 사용하는 길이 아니었다. 듀보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말을 남겼다. “우리 사회는 선생을 가르칠 만큼 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재들을 길러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문제없이 돌아가리라 낙관하는 것은 성공이라는 환상에 취한 산업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재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가리켰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의 세계를 열어주고, 학자들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했다. 듀보이스는 진정한 교육은 사회를 잠식하는 물질만능주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 교육이 자유로 가는 길인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학자를 길러내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의 전도사를 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02 교육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중에서

하버드 총장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James Bryant Conant)는 학부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학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학생이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답이 있을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시대의 견해는 어떤지 알고자 하는 욕구는 그가 교육받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교육은 정신을 인습이라는 속박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양분을 공급해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십시오! 지식을 흡수하고 자신보다 경험 많은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남이 자기 대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는 마십시오.”
우리 자신의 자유와 독립은 남이 나 대신 생각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하려면 배움을 위한 배움, 즉 교양교육이 필요하다.
---「03 배움의 주체와 소비자 사이에서」중에서

1960년대만 해도 상업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형태의 교육은 그 나름대로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50년 전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졸업(The Graduate)]에서 맥과이어는 “플라스틱에 미래가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감독은 맥과이어를 통해 물질 만능주의에 젖은 기성세대를 풍자했다. 교양교육의 개념과 그 효과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당시 교육자들과 대중은 여전히 균형 잡힌 교육과 비판적 사고를 높이 평가했다.
20세기를 거치며 대학 학위를 받으려는 학생들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이 때문에 대학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이들은 저임금 업종에 종사할 사람들이 문학이나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표한다. 또한 왜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자신의 웹 기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보기에 우리는 모두 교육 시장에서 자신이 아는 것, 또는 알고 싶은 것을 골라 담은 ‘재생 목록(playlist)’을 사고파는 사람들이다. 대기업에서 더 좋은 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자격만 따면 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역사나 생물학, 정치학을 배우겠는가?
오늘날의 세상은 곧바로 핵심으로 들어가는 것을 권한다. 금융권에선 ‘중개 배제(dis-intermediate)’라는 말을 쓰는데, 거래에서 중개 역할을 하는 단계를 건너뛰어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교육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파괴적 혁신’을 통해 교양교육을 중개 배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이라면 영화 [졸업]의 맥과이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젊은이에게 ‘디지털 미디어’나 ‘어플리케이션’이라고 속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즈음 관객들이 과연 이것을 풍자라고 생각할까?
---「04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교육」중에서

과거와 현재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대학의 변화’다. 과거의 대학이 정의롭고 옳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취업사관학교’는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그 단어에서 풍기는 고상함 때문에라도 직접적인 폄하의 대상이 되긴 힘들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노출되어 있는 ‘과거와는 다른 공기’는 어떤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경쟁완전체’란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일생이 경쟁이었는데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은 원래보다 (조지 오웰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블 플러스’로 고통스럽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사교육을 받으면서 대학에 왔는데 취업을 위해 ‘9종 세트(학벌, 학점, 영어점수, 어학연수, 공모전,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 그리고 마지막은 충격적이게도 성형수술)’를 준비해야 하는 황당한 사회를 살고 있다. 대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고 또 스스로에게 한다. 이 사회를 탈출하지 못하는 이상, 정신적 무장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경쟁해야 하는가?’라는 대안 없는 비판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어차피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식의 수긍이 차라리 속 편하기 때문이다.
이 ‘주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자본주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다른 한쪽인 ‘민주주의’는 그 의미가 퇴색된다.

---「해제| 한국의 대학에서 교양강의는 이미 다른 의미가 되었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 이 책은

2015년 5월 15일 스승의날. 전 대기업 회장이자 모 대학의 이사장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섰다. 그는 대학 특혜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은 입장이었다. 취재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의 곁에 두 명의 학생이 나타났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었다. 한 학생의 손에는 ‘???이사장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또 다른 학생의 손에는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학생들은 그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학생들은 그가 “새 건물을 짓고 생활공간을 넓히는 등 학교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2008년 기업에 인수된 해당 대학은 지난 7년 간 한국 ‘대학 개혁’의 최전선에 있었다. 경제를 떠받치는 요소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학문 분야는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축소되었지만 캠퍼스의 시설은 한층 세련되어졌고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과목들이 늘어났다. 대학은 필수 교양과목으로 회계학을 신설하는 등 학생들을 눈앞의 미시 경제에 적응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떤 학생은 이를 ‘대학의 발전’이라 표현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대학의 배신’이라 말했다.

왜 교양교육인가?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이라는 하버드는 교육의 목표가 ‘자유교양교육’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하버드만의 교육 방침이 아닌, 전 세계 명문 대학들의 공통된 선언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대학 입학에 그토록 헌신하는 우리의 교육 문화는 한 번도 왜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지금 이 시점에 교양교육을 전면에 내세우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이 책은 교양교육의 번영과 몰락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알아야 할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를 바탕으로 교양교육에 대한 지금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드러낸다. 왜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전공 강의나 연구 수행만큼이나 교양교육에 힘쓰고 있는지, 왜 우리 대학은 세계에 나가면 그 경쟁력을 잃는지, 왜 기업은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말하고, 왜 사회는 생존에만 급급한 청년들을 비난하는지……. 경쟁과 비판의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던 대학 교육을 둘러싼 복잡한 담론의 중심에 ‘교양교육’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양교육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
대학 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 내에서도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있어왔다. 인본주의적 입장에 선 이들은 개인에게 자유를 주고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대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도구주의에 입각한 이들은 대학 교육이 실용적인 직업교육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벤저민 프랭클린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무익함을 비꼬았으며 당시 고등교육에 속하는 학문 대부분을 쓸모없다고 여겼다.
학생들이 명문 대학에 가서 정말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게 아니라 자만과 허영심만 채워서 나온다는 비판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대학을 중퇴했음에도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학에 가는 대신 세상에 나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라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그러나 재능 있는 소수는 혁신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다수는 소비자로 남게 될 것이다. 게다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대학 교육의 목표란 말인가? 대학 교수이자 행정가인 저자는 미국 역사 속 교육 논쟁의 맥을 짚어가며 지금 우리의 대학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대학인가?
오늘 우리 대학의 유일한 논리는 ‘경쟁’이다. 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강의나 학과는 철퇴를 맞고, 반대로 경쟁에 쓸모가 있는 학과는 날로 몸집을 키운다. 전공은 이공계와 경영학과가, 교양은 각종 회계학과 ‘비즈니스 예절’, ‘이미지 메이킹’ 따위의 강의가 잠식한 지 오래이며, 문화와 예술의 가치조차 취업률로 평가된다. 교양교육이 부가적인, 혹은 쓸모없는 뭔가가 된 후 대학 역시 학문의 금자탑이 되기보단 취업사관학교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 사회는 대학 문을 나서는 이들에게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을, 그러는 동시에 이 혹독한 현실을 바꿀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두 가지 주문을 수행하기 위해 대학에 필요한 것이 바로 ‘교양교육’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오늘날 청년에게 기대하는 혁신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 사회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공감 능력과 시민 정신, 또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유와 비판적 사고력……. 이런 것들은 오로지 교양교육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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