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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역사, 현대건축가 구술집 시리즈를 시작하며
김태수 구술집을 펴내며 1. 유년기에서 서울대 재학까지 하얼빈에서 출생 서울과 칠원에서의 유년기 경기중학교 시절과 한국전쟁 칠원의 기억 귀경(歸京)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입학 이봉상 스튜디오 활동 이광노 교수 문하 실습 유학 결심 현대건축 발간 서울대 대학원 시절 2. 1960년대: 예일대 유학과 필립 존슨 사무실 근무 예일대 지원 및 군생활 예일대 석사과정 입학 예일대 교육과정 루이스 칸 사무실 지원 및 필립 존슨 사무소 입사 결혼 3. 1970-80년대의 활동: 국립현대미술관 외 헌팅턴 다비 달라드 근무 및 한국 방문 하트퍼드 디자인 그룹 설립 미국의 초기 작품들 국립현대미술관 설계 천안 대한교육보험 연수원 설계 LG 화학 연수원 설계 4. 1980-90년대의 활동: 한국 사무실 작업 및 미국 교육시설 프로젝트 TAI SOO KIM ASSOCIATES로 사무소 개명 한국 사무소 개소 센트럴 시티 미국 대학 시설 프로젝트 뉴잉글랜드 건축계와 건축 성향 미국과 한국의 건축 실무 환경 사무실의 구성원과 지역적 위상 5. 1990년대 말 이후의 활동과 건축론 튀니지 미국대사관 건축설계론의 변천 설계 진행 및 사무실 운영 방식 공간, 볼륨으로서의 건축 ?서울 마스터플랜? 6. 한국 건축계와의 교류 / 사무실의 파트너들 한국 건축계와의 교류 사무실의 파트너들 건축과 미술 7. 한국 건축계 지원사업 / 가족 이야기 금호갤러리 한국 건축계 지원사업 약력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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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연구자 전봉희 교수의 ‘펴내는 글’ 가운데서
김태수 선생은,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나서 대학원 과정으로 미국 유학을 간 첫 번째 사람이다. 선생에 앞서 한해 선배인 김종성 교수가 있지만, 그는 대학을 마치지 않고 학부 재학 중에 유학을 떠났다. 또 5년 위인 김수근 선생 역시 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 직후의 혼란기와 곧 이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사회 각계에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때는 1950년대 후반이다. 특히 해방 이후 건축교육을 이끌었던 첫 세대라 할 수 있는 김정수, 김희춘, 윤장섭, 이광노 교수 등은 모두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김태수 선생은 짧지만 이들에게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첫 졸업생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동시에 유학 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활동한 첫 번째 한국인 건축가이기도 하다. 김태수 선생이 수학하던 시기는, 소위 근대건축의 거장들의 시기가 끝나고 건축계에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던 세대교체의 시기였다. 예일을 선택한 것은 루이스 칸에게 배울 요량이었는데, 입학 허가를 받고 군복무를 마치고나서 가보니 그사이 학장이 폴 루돌프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구술 과정에서 김태수 선생은 폴 루돌프에게서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감사를 표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때 교수로는 필립 존슨, 제임스 스털링, 에로 사리넨, 빈센트 스컬리 등이 있었고, 함께 수학한 동급생으로는 학부 과정에서는 찰스 과스메이, 대학원 과정에서는 노먼 포스터, 리처드 로저스 등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선생은 당시 영미 건축계의 가장 선진적인 분위기에서 최상의 교육 환경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작업을 하였지만, 김태수 선생의 50여년에 걸친 작업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교육 시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코네티컷 주의 여러 곳에 있는 선생의 작업들을 둘러보고 더욱 놀란 점은 그 작업들에서 보이는 일관되지만 진화하는 형태들이었다. “단순한 형태”를 선호하는 선생의 작업이 초기에는 상자의 조합 위주였다면, 후기로 가면 이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로운 곡선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도미하여 졸업하여 취직하고 결혼도 한 김태수 선생은 1969년 첫 귀국 시 서울마스터플랜을 책으로 만들어 가지고 와 대내외에 발표했다. 그 후 13년 만에 다시 찾은 두 번째 귀국 때는 작품 사진들을 두루마리로 가지고 와 당시로선 드문 개인 건축전시회를 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은 국내 건축계에 대한 부채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 또, 어느 정도 사무실의 운영이 정착된 1990년부터는 젊은 건축가를 대상으로 해외의 선진 건축을 견학할 수 있는 트래블그랜트를 지원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이에 더해 2001년부터는 서울대학에 외부인 설계 강사에 대한 지원금을 매년 1만 달러씩 보내고 있다. 한국 건축계에 대한 선생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