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Ⅰ. 교섭의 기원
1. 셔먼호 문제 2. 무덤 도굴사건과 그 영향 Ⅱ. 신미양요와 그 뒤의 교섭 1. 미함내방美艦來訪 2. 강화만상江華灣上 충돌 3. 양요洋擾의 여문餘聞 4. 쇄국의 근본이유 5. 신미 후의 조선정세 6. 황씨 ≪조선책략≫ 7. 조야朝野여론 추향趨向 8. 이홍장李鴻章의 권도勸導 9. 조선식자朝鮮識者의 연미설聯美說 10. 영선사의 파견과 숨은 사명 11. 암밀리暗密裡에 기운점숙機運漸熟 Ⅲ. 수호 직전의 정세 1. 천진회담 2. 완만한 교섭 3. 예비의약豫備議約의 시말始末 4. 의약의 초점과 난관(上) 5. 의약의 초점과 난관(中) 6. 의약의 초점과 난관(下) 7. 예비의약의 여론 Ⅳ. 수호修好 전의 미국태도 1. 재교섭의 동기 2. 슈펠트의 사명 3. 교섭돈좌交涉頓挫와 신방침 4. 제독을 초청한 내막 5. 재再도항 후 제독 6. 천진체류의 제독 7. 훈령과 슈 제독 8. 슈 제독과 이李 총독 9. 중요한 차이점 10. 쌍방의 견지와 타협 Ⅴ. 정식담판과 조약성립 1. 미사美使 청사淸使의 동항동래同航東來 2. 이중당李中堂의 내서來書 3. 조약 조인 광경 4. 한미조약에 대한 논평 5. 수호성립과 열국 태도 Ⅵ. 미공사내美公使來駐와 초기외교 1. 푸트 공사의 내주 2. 비준교환과 폐현陛見 3. 고종과 미공사美公使 4. 외아문外衙門과 충돌 5. 갑신정변과 푸트 공사 Ⅶ. 보빙사절報聘使節과 양국친선 1. 민영익 특파 2. 대통령 알현식謁見式 3. 국서와 신임장 4. 대통령 답사의 내용 5. 미국문물 시찰 6. 민 대사의 세계일주 7. 사절과 문화적 영향 8. 복명復命과 군신의 대화 9. 사절의 의의 Ⅷ. 미국 초기의 대한정책 1. 반도와 열강의 경쟁 2. 당년當年외교와 중요인물 3. 청국책동淸國策動과 고문顧問 4. 포크와 한성외교 분야 5. 1884년의 한국정변 6. 대한책對韓策 일전기一轉機 7. 밀약과 사관士官초빙 8. 포크의 고심과 미국의 퇴영退? 9. 폐립음모와 상원의원 10. 한청관계와 미국 정부 11. 포크와 결론 Ⅸ. 주미 최초 한국 공사 1. 주미 전권대신 박정양朴定陽 2. 사명과 영약삼단?約三端 3. 공사일행 도항渡航 4. 요코하마에서 워싱턴 5. 박 공사와 미국 국무성 6. 청 공사의 힐문詰問 7. 무례한 청국간섭 8. 영약과 미국 여론 9. 국서봉정식國書奉呈式 광경 10. 정관시무定館始務 개시 11. 공사관 생활 1년간 12. 광물鑛物기사 초빙과 영사관 증설 13. 소위 영약 위반과 박 공사 소환 14. 복명復命과 미국관美國觀 Ⅹ. 주미 서리공사 시대 1. 200만불 차관 2. 외교관 생활의 일면 3. 철도모형과 미국문화의 유입 4. 미국박람회 출품 5. 교사파면과 봉급독촉 ?. 다사한 씰 공사 시대 1. 청일전쟁과 씰 공사 2. 방전防戰운동과 한미교섭 3. 정동 구락부와 미국인 4. 을미정변과 미국인 5. 국무성과 공사관의 간격 6. 아관파천과 미·러파의 책동 7. 파천播遷의 동기와 일화 8. 독립협회와 민권사상 ?. 알렌 공사에서 모간 공사로 1. 알렌 공사의 인물 2. 미국인 고문顧問 3. 샌즈의 책동 4. 미국인 선교사 5. 이권운동利權運動 6. 러일전쟁과 미국태도 7. 러일강화露日講和와 로우즈벨트 8. 보호조약과 밀사사건 9. 유미留美학생과 노동자 ?. 결론 ?. 여론餘論 |
|
한국과 미국의 관계되던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건대 일찍 18세기 중엽에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부터 중국 시장에서 우리 고려인삼에 대하여 미주美洲 인삼의 경쟁이 생겼으니 한미관계는 멀리 여기서 유래하였다. 미국이 독립 후 그 국운이 크게 진전하여 널리 시장을 세계에 구할 새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에 와서 미·일 통교를 틀 때도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이웃집 담 너머로 보이지 않는 처녀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셈으로 미국인의 짝사랑에 지나지 못하였다. --- p.22
경진(1880) 9월 초8일 경복궁 중희당에서 이최응: 몇 해 전 마야모도宮本小一가 연향燕饗에서 아라사에 대한 말을 하는데 이것이 참 진정입디다. 우리나라 사람은 공연히 의심하더니 이번 신사행중信使行中에 청인이 보낸 책자를 보매 그 실정에 맞습니다. 임금: 아라사는 염려가 되나 일본인이 아주 극진하게 굴던 모양이지요? 이최응: ……실정實情입니다. 임금: 신사행중에서 가져온 책자는 청나라 사신이 준 것으로 후의가 일본보다 더하며 그 책자를 대신께서 보았는지요? 이최응: 일본이 이렇게 정답고 친절하게 구는데 청나라 사람이야 말씀할 것 있겠습니까……. 그는 우리나라로 방비케 하려고 하는 것이건만 우리나라 사람은 본디 의심이 많아 책을 덮고 연구하지 아니합니다. 임금: 그 책자를 보니 과연 어떻던가요? 이최응: 신이 본즉 그의 제조논변諸條論辯이 우리 심산에 맞으니 그대로 두기는 아까운가 합니다. --- p.47 “슈펠트 제독은 홍장이 앞서 의정擬定한 원고를 보고 '제1관 조선은 중국의 속방'이라는 조목을 강력히 윤종允從치 않습니다.” 라 하였다. 이때 이중당은 이 1관에 대하여 자기 막료인 주복과 마건충을 시켜 미국 사신과 힘겨루기한 지 17일에 이르러도 결국 미국 사신을 설복할 수 없었으므로 홍장이 미국 사신에게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하였으니 “귀관이 만일 제1관을 승인하지 아니하면 중국은 이 조약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일종 위협을 하였으나 미국 사신은 어디까지든지 아니하였다. --- p.67 “사절이 파리에서는 스위스 영사를 만나 스위스 시계의 이익이 막대하다는 설명을 들었고, 런던에서는 일본 공사로부터 조선은 사실상 청국의 속방으로 행동한다는 무례한 비난을 들었다. 처음에 우리는 조선 사절이 구주를 방문한 결과로 혹은 미국에서 받은 좋은 인상이 감쇄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터이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고 포크는 첨부해서 말했다. “그리고 사절은 런던 박물관에서 인도의 모든 왕후로부터 영국에 보낸 공물과 1860년 북경이궁北京離宮에서 집어 온 전리품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으며, 또한 포크가 백과사전의 일절에서 과장함이 없이 ‘애굽의 부채負債’를 읽어 줄 때 그들은 미국에 대한 애착심이 한층 더 생기게 되었다.” --- p.176 당시 겨우 30대를 넘을까 말까 한 서리공사 이하영은 워싱턴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지 수년에 영어도 더욱 유창해지고 무도도 아주 능숙해져서 요즘 말로 'Modern Boy'가 되고 말았다. 어느 연회나 그가 참석하지 않는 데가 없고 또 누구나 그와 무도하기를 즐겨하였다. 상투 틀고 한국버선에 구두신은 서리공사가 무도장에 나타날 때는 언제나 금발여희金髮麗姬의 가장 환영하는 표적이 되었다. 홍등녹주紅燈綠酒 사이에 밤새는 줄도 모르고 한바탕 껴안고 춤을 추고나면 모든 울분이 다 사라진다. 이리하는 동안에 염복艶福(아름다운 여자가 잘 따르는 복)이 있는 서리공사는 미국 어느 유명한 부호 따님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그 아가씨로부터 약혼의 간청이 있었으며, 서리공사도 그때까지 미혼의 신세이니만치 마음이 없는바 아니나...... --- p.245 고종은 청·일이 개전開戰하면 반도가 그 소용돌이 속에 쓸려들 것을 우려하사 주한 제국諸國 사신에게 평화의 주선을 의뢰하였다. 그리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씰 공사가 열국 사신과 더불어 청·일 대표자에게 공동 권고를 하였으나 일본측은 마침내 한국에서 내정의 개혁을 보지 못하는 한에는 철병하기 어렵다고 재차 거절하였다. 어시호於是乎 고종은 전쟁을 피하지 못할 것을 알고 친히 씰 공사를 불러 보고 “금후 필요한 경우에는 짐이 미국 공사관에 파천할는지 모르니 귀의貴意가 어떠냐?” 하고 하문하자 씰 공사는 아주 흔연히 찬성을 하였다 하거니와 고종은 주한 외국 사신의 공동주선이 실패한 뒤에도 오히려 한 가닥 희망을 방전운동에 붙여 한미조약에 의거하여 미국의 호의적 조정을 청하기로 결정하였다. 고종은 이에 워싱턴에 있는 조선 공사 이승수에게 명하여 급히 국무장관 그레샴Gresham을 방문하고 오늘날 난국을 바로잡으며 일첩一睫에 닥친 전화를 피하기 위하여 열국의 대회의를 개최할 필요가 있는 것을 역설하라고 하였다. 이때 청국의 이홍장도 역시 미국 정부에 대하여 이 난국을 중재해서 호의적 주선을 행사하여 달라고 청탁하였다. --- p.259 |
|
구한국 시대 한미 교섭 50여 년간에 얽힌 역사!
『한미관계50년사』는 호암 저술중의 백미로 만년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미교섭의 기원에서 붓을 일으켜 한미조약의 소멸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외교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국내외의 정세 변천을 종횡무애하게 서술한 바로 조선 최근세사의 거의 대부분을 망라한 감이 있는 저술이었다. - 이병도 현재 국제 정세와 오버랩 되는 100여 년 전의 조선과 그 주변국들 문일평 선생의 『한미관계50년사』는 100여 년 전에 나온 글로서 국사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고전 같은 글을 읽다보면 신기하게도 현재와 겹쳐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에서조차도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현재 시점에서 읽어보면 그 당시 조선의 관료 및 식자층이 매우 순진하게 보이지만, 그 당시 입장에서는 약소국으로서 중국, 일본 및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강들의 친한파 인사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현재 단지 방법과 수단만 달라졌을 뿐 우리 정부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조약을 맺을 당시 조선을 두고 벌이는 중국과 미국의 팽팽한 기싸움과 그에 따른 조선 내의 관료와 식자들의 분파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100여 년 전 정치상황인지 현재 정치상황인지 분간이 모호할 것이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일화들 국제정치와 같은 거대 담론과 함께 조선 외교관들이 조약을 맺기 위해 배를 타고 미국까지 가는 여정과 미국에서 처음 맞는 근대 도시 경관들에 대한 느낌들, 돌아오는 길에 방문한 서구 열강들의 풍경, 미국주재 조선 공사들의 미국에서의 생활상, 미국 외교관의 서울 생활상, 고종황제가 신하에게 미국의 민주정치 및 서구문물을 물어보는 광경 등은 읽는 이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약소국의 외교관으로서 미국에서 중국 및 일본 공사들에게 받은 서러움, 타국에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등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류를 바로 잡고 내용의 깊이를 더하는 교주(校註) 두계 이병도 박사는 「사가로서의 故 호암」이라는 글에서 『한미오십년사』에 대해 “학술적 논문으로 하기에는 많은 수정을 요하지만...”이라고 하여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음을 암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광린 교수가 오류 및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교주를 넣어 오류를 바로 잡고 이해의 깊이를 더하였다. 또한 이광린 교수는 ‘해설’을 실어 저자를 조명하고 이 책의 가치와 이 책을 위해 인용된 참고문헌들을 소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