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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지략
조선 후기 서울의 인문지리 역사서
탐구당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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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수선전도首善全圖·4
한경지략 서序·7

한경지략 제1권

천문天文·14
연혁沿革·15
형승形勝·18
성곽城廓·20
궁궐宮闕·24
단유壇?·47
묘전궁廟殿宮·51
사묘祠廟·57
원유苑?·67
궁실宮室·69
궐내각사闕內各司·81

한경지략 제2권

궐외각사闕外各司·110
역원驛院·169
교량橋梁·171
고적古蹟·176
산천山川·183
샘물과 약수諸井藥水·197
명승名勝·201
각동各洞·208
시전市廛·233

해제·245
부록·249

저자 소개

저자 : 유본예
1777년(정조 1)∼1842년(헌종 8).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수헌거사(樹軒居士)?수원(樹園).
부친은 유득공(柳得恭)이다. 1827년(순조 27) 검서관(檢書官)이 되었으며 관직은 현감(縣監)에 그쳤다. 1830년(순조 30)에 서울의 주요 사적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을 편찬하였다.
역자 : 권태성
한학자. 『대학·중용』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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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52*225*20mm
ISBN13
9788964990308

책 속으로

자수원慈壽院
옛날 북부에 있었다. 즉 여승들의 집이다. 인수원仁壽院도 있었으나 지금은 함께 없어졌다.
국조보감을 상고해보면 ?현종 2년에 부제학 유계兪棨가 도성 안에 있는 이원尼院을 모두 함께 철훼撤毁하기를 청하여, 왕이 성내에 있는 자수원과 인수원의 두 승방僧房을 폐지하라 분부하였다.
영의정 정태화鄭太和가 말하기를 “그전부터 궁녀들이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들이 이 원에 많이 거처하고 선왕의 후궁도 역시 나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난처합니다.” 하니 왕의 말씀이 “지금은 있지 않다.” 하고 곧 예관禮官에게 분부하여 자수원에 나가서 역대 왕실 위판을 봉안해 내서 봉은사奉恩寺의 전례에 의하여 즉시 깨끗한 곳에 매안埋安하게 하였다? 했다.
이 두 승방의 사적은 대개 이렇다. 지금 장동壯? 장흥고長興庫 근처에 돌다리가 있는데 자수궁 다리라 하니 즉 옛날 이 자수궁 다리인가 한다. 인수원 옛터는 알 수 없다. --- p.78

내각內閣
보통 부르기를 규장각奎章閣이라 하고, 또 이문원?文院이라고도 한다. 금호문 안 홍문관 바른편에 있다. 옛날 도총부都摠府 집이다. 역대 왕의 어제御製·어필·선보璿譜·세보·고명顧命과 당대의 어제·어필을 맡아서 보관하는 곳이다. 정종 3년에 설치하고 각신 6인과 검서檢書 4인을 두고 여기에 번갈아 입직하는 곳이다. 정종의 어필로 [이문지원?文之院]이라 현판을 썼다. 또 앞에 헌함이 있는데 [규장각학사지서奎章閣學士之署]라 현판을 달았다. 앞 간에 하사한 종과 경쇠가 있다. 그런데 종은 명나라 영락永樂 때 황제가 보내 준 것이므로 [영락종永樂鐘]이라 한다. 또 왕이 하사한 투호投壺·거문고·비파·은잔·큰 벼루 하나와 옥등잔 6개를 청 들보에 걸어두고 뜰에는 구리로 만든 측우기測雨器를 두었다. 내각집의 넓고 큰 것이 여러 관청 중 제일이었다. 대유재大酉齋는 북쪽에 있고, 현판은 각신 정지검鄭志儉이 썼다. 다락이 있다. 이름이 동이루東二樓인데, 현판은 각신 정민시鄭民始가 썼고, 소유재小酉齋 현판은 각신 이만수李晩秀가 썼는데, 이문원 왼편에 있다. 검서관의 수직하는 곳이다. --- p.84

약천藥泉
돈의문 밖 모화관 서쪽인 산곡 사이에 있다.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름을 악바위[惡岩]라 하고 바위 틈 사이 흙이 끼인 곳에서 가냘픈 샘물이 새어 나온다. 배앓이와 설사에 실컷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해서 매년 여름철이 되면 쪽박이를 가지고 받아 마시는 사람이 수 없이 많다. 또 창의문 밖 한북문漢北門 곁에 옥천암玉泉菴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샘이 언덕 위 바위 사이에서 흘러 바람병·체증 있는 사람이 마시면 신효하게 낫고 눈병에도 씻으면 낫는다고 한다. 옥천암의 불상은 언덕 바위를 깎아서 만들고 해수관음보살海水觀音菩薩이라 한다. 그런데 약수가 그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성 안 사람들이 약수 마시러 이 암자에 많이 와서 먼저 인음引飮한 짠 음식을 많이 먹은 뒤에 물을 자꾸 마시어서 배가 불러야 효험이 있다 했다. --- p.200

추모동追慕洞
소의문昭義門 밖에 있다. 즉 차동車洞인데 숙종계비 인현왕후 민씨가 탄생한 집터가 있다. 영종 37년에 어필로 [인현왕후 탄강구기仁顯王后誕降舊基]라는 여덟 자를 새겨서 비를 세웠다.
차동에는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이 세거하던 집이 있다. 봉사손이 살고 있는 종가는 13대째인데 안채 40간이 심히 굉장하다. 옛날 집 제도는 모두 방이 적고 청이 많아서 대개 옛날에는 노인이 되어야 온돌에 거처하게 되고 젊은이는 모두 청에서 자게 되므로 이렇게 되었다.

--- p.230

출판사 리뷰

조선후기에 서울의 연혁과 형성을 수록하며 574개 명소의 위치, 유래, 주관관사, 전설, 미담 등을 고증한 역사서!

우리나라가 도읍을 정한 지 수백 년이 되어서 금성金城 탕지湯地의 땅에 자리를 잡아 옛날 역사와 아름다운 제도가 한없이 많되, 다만 문헌이 구비되어 있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여지승람에도 먼저 동월의 조선부를 싣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읊은 시들을 많이 실었으되, 그 사실은 역시 자세히 알지도 못하며, 더군다나 여지승람은 중종 때 만들어서 여태껏 속집續集을 하지 못한 것이 실로 잘못된 것이다. 혹시나 뒤에 여지승람을 속집하는 자로 하여금 내 지략을 뽑아다가 보충한다면 이것이 나의 원하는 바이다. - 수헌거사樹軒居士

조선 후기 서울의 풍경
한경지략에 나오는 설명으로 19세기 서울의 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다. 궁궐들이 어떠했으며, 동네에 우물과 시내들, 강가에 위치한 포구들, 시장들, 각종 명소들 574개를 들어 위치와 시설, 풍경들을 설명하고 있다.

건물, 동네, 명소의 유래와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
한경지략에는 건물이나 명소들의 위치뿐만 아니라 각 명소의 유래와 그 명소들에 관한 과거 기록들, 그리고 전승해서 내려오는 뒷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서 행한 풍속에 대한 기록
도성을 한바퀴 도는 순성놀이나 투석전, 다리밟기 등 서울에서 행한 풍속들을 소개하며 그 유래와 모습들을 보여준다. 또한 궁궐과 사대부들의 잔치와 정자에서의 시 짓기 등 여러 유희들에 대해서도 여기저기에 언급하고 있다.

부록에 수록한 현재 서울에서의 위치
본문에 나오는 건물이나 명소가 현재 서울의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를 찾아놓아 그때와 비교하여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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