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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oise Sagan,본명 :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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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죄로 당신을 고소합니다. 사랑을 그대로 지나치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등한시한 죄, 핑계와 편법 그리고 체념으로 삶을 영위한 죄로 망자(亡者)의 이름을 빌려 당신을 고소합니다. 극형을 받아 마땅하나 피고를 평생 고독형에 처하는 바입니다."
소설 같은 생을 살다 떠난 ‘사강’의 길이 남을 역작 프랑스의 남서부에 위치한 카자르크에서 부유한 실업가인 아버지 폴 쿠와레의 세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와레다. 또한 그녀의 필명, 사강이란 이름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프렝세스 드 사강이라는 인물에서 따온 것이다. 사강이란 발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키키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프랑수아즈 쿠와레는 15세에 그녀의 가족이 파리로 이사 가기 전까지 리옹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소르본느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녀의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소일했으며, 공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기말 시험에서 떨어진 쿠와레는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며 200쪽에 다다르는 그녀의 처녀작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고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19세. 그야말로 1954년은 이후 반세기 동안 그녀의 이름 앞에 당당히 작가라는 명칭을 선물한 최고의 해였던 것이다. 연이어 발표한 ≪어떤 미소(1956)≫와 ≪한 달 후 일 년 후(1957)≫는 그녀에게 명예와 부를 동시에 가져다준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늘 궂은일이 따르는 법. 스피드광이었던 그녀는 그해 교통사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되지만, 이 사고로 인해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8년에는 20세 연상의 출판인인 기 쇼엘러와 결혼하지만, 이 또한 2년 만에 파경을 맞는다. 그후 이혼의 시련을 한 번 더 겪고, 말년에는 도박과 탈세로 얼룩진 삶을 살다 2004년 9월 24일 69세를 일기로 노르망디의 옹플뢰르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르트르와 같은 날에 태어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음의 고향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던 삶을 마친 것이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판사 앞에서 당당히 소리쳤던 그녀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여주인공보다 더 고독한 삶을 온몸으로 떠안으며 살았다. 그녀 자신과 너무도 닮아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더한 감동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