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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을 열며
제1장 나는 하느님과 내가 펼치는 드라마의 무대다 - 나의 신학 신에 관한 이야기ㆍ인간에 관한 이야기 나를 인생의 무대 위로 끌어올리신 예수님 자신을 발가벗기는 용기 제2장 사제는 신자들을 보며 진리를 깨닫는다 - 나의 자서전 매듭과도 같은 인생 '이제민'이란 나의 이름 말더듬이의 고민 아주 평범했던 '성당 다니는 아이' 줏대가 없어 들어간 신학교 무신론자 신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역사 원효와 클라우스를 만나다 나를 깨우쳐 준 평범한 신자들 제3장 신앙은 신앙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 나의 고백 언어의 고향에서 고향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언어의 고향인 '하느님 나라' 니고데모의 언어 ㆍ진리에 대한 오해 우상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잘못 새롭고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기 사건을 일으키는 언어 살리는 언어, 죽이는 언어 끊임없이 해석해야 할 교회의 언어 말문을 닫으며 : 세상에 빨간 것이 어디 원숭이 똥구멍뿐이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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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클링어를 통해 원효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무신론의 먹구름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위격(person)과 일심(一心)의 개념을 비교하면서부터다. 클링어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사목의 관점에서 원효와 한국 그리고 다른 종교를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클링어는 물론 원효와 한국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기에 그와의 대화는 번번이 내게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문외한으로서 던지는 그의 질문은 비껴 갈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생각이 옳다면, 나는 문외한에게 내 생각의 옳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의 비판에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는 자기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문외한이 던지는 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 답변을 해야 하고, 그리스도교는 문외한인 원효나 불자의 답변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불때, 그리스도교는 자기 교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남에게 신앙을 강요하면서도 그 근거를 대지 못할 때가 많았다. 클링어는 불교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으로 내게 동과 서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 나는 그의 질문을 지나쳐서는 동과 서의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이 분명한 그였기에, 그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하나가 '다른 것'과의 만남을 기초 신학적인 관점에서 반성하게 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자기가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다원사회에 처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종교(문화)와의 대하를 통해 자기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종교 다원주의'의 사고도 이런 반성에 근거한 것이다. 타종교와 타교파 그리고 다른 문화 및 자연에로 자신을 여는 것은 필연적이다. 타자와의 대화는 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타자와의 대화가 종교의 내용이다. 서로 다른 종교의 공존(coexistentia)만이 아니라, 종교간의 내면적인 상호 이해가 종교의 과제로 남아 있다. 종교간 대화는 남이 자신과 같게 생각하도록 설득시키는 작업이 아니다. 나는 그런 작업을 위해 근본 개념을 원효의 화쟁(和爭)사상에서 찾았다. 나는 화쟁이 한때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모든 종교가 만날수 있는 장소였듯이, 이제는 동과 서가 서로 자신을 발견하며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사목과 화쟁을 비교하는 것은 나의 신학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이 개념들을 통해 나는 '나'를 나와 남, 나와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로, 나아가 점차 사목과 화쟁의 장소로 깨닫게 되었다. '나'와 만나면서, 또 남을 만나면서 사목과 화쟁은 내 삶과 신학의 주제가 된 것이다. 이에 나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원효과 그리스도교'였다. (...) 내게 원효의 화쟁사상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라는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느님 나라가 땅에 도래했다는 말씀은 땅에서 하늘과 땅의 만남이, 아래에서 위와 아래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이 복음에는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眞)와 지상의 나라(俗), 나아가 인간 본성(俗) 안에 신성과(眞)과 인성(俗)이 비일비이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 위나 밖에 있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은 하느님의 계시와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원리이며, 세상은 하늘과 땅(신과 인간)이 비일비이의 방식으로 만나는 구체적인 현장이다. ---pp 91~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