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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머리말 1부 독일의 '특수한 길'과 영국식 모델 (제프 일리) 1. 독일 근대사 서술의 기본 가정 2. 시민혁명의 문제 3. 역사가들과 독일 제국 4. 부르주아지ㆍ자유주의ㆍ민주주의 5. 개혁을 위한 노력: 영국과 독일 6. 결론: 독일 제국의 특수한 상황에 주목하자 2부 도대체 무엇이 없었다는 말인가 (데이비드 블랙번) 7. 독일 역사의 "방조죄" 8. 부르주아지의 특성 9. 시민층의 재봉건화 또는 시민사회화 10. 정치무대에 오른 부르주아지 11. 시민정치의 모순들 12. 결론: 독일의 '특수한 길'을 넘어서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
Geoff E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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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특수한 길' 논쟁에 불붙인 문제작
독일의 '특수한 길 논쟁'은 국내에서도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지만 알맹이 없이, 즉 논쟁의 실체 없이 '논쟁'의 주변만 이야기해 온 감이 없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논쟁의 핵심에 있는 블랙번(David Blackbourn)과 엘리(Geoff Eley)의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원제: 『독일 역사 서술의 신화들 - 좌절된 1848년 시민혁명 Mythen deutscher Geschichtsschreibung. Die gescheiterte burgerliche Revolution von 1848』, 이하『신화』)의 국내 출간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 책이 바로 그 실체이므로... '독일의 특수한 길 논쟁'은 독일 근현대사연구에서 오랜 논의의 핵심이었다. 나치즘의 등장에 대해 일부 보수적인 사가들이 독일사와는 무관하거나 전적으로 우연적인 사건으로 보았던 데 반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측은 독일 '민족성'의 약체성으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나치즘에 대한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된 지난 1960년대 이후 일부 사가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나치 집권의 원인을 단기적 요인들에서 찾았다. 이들은 제1차세계대전과 그 굴욕적 패배, 그리고 경제적 난관과 대공황 등의 요인들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독일의 많은 사가들은 장기적 요인을 강조하였다. 즉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구별되는 독일의 오랜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견해를 가리켜 '독일의 특수한 길'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는 1970년대 이후 '신 정통파'로 불리는 독일의 '비판적 사회사가'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좀더 공고하게 되었고, 주로 그들에 의해 대변되었다. 그 대표적 사가들이 벨러(H.-U. Wehler)와 코카(J. Kocka)를 비롯한 이른바 '빌레펠트 학파'다. '구조적 연속성'이라는 말로 함축되는 이 이론은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영국,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와의 비교를 통해 형성되었다. 여기서 강조되는 독일의 특수성 내지 연속성의 내용으로 다음 사항들이 거론되었다. 하나는 서구적 발전과정과 비교하여 특수한 현상으로 보이는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의 부재 혹은 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본주의적, 전산업적,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 그러한 제구조와 엘리트들의 강하고 오랜 존속이다. 그 대표적 현상이 대시민층(특히 상층 부르주아지)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봉건화, 군대의 확고한 지위와 영향력, 소시민층 내 신분제적인 제전통, 관료제의 현실적 영향력 등이 거론된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와 비롯하여 헌법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에서 독일 '시민층'의 약체성이 강조되었다. 이 특수한 길 테제에 대해 좌파 측에서 처음으로 전면 비판을 제기하면서 '특수한 길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신좌파 내지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는 영국의 블랙번과 엘리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각기 서독의 '비판적 사회사학'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라는 제목의 독어 판 공동 저서를 통해 전면 비판을 시도하였다. 이 연구서는 독일의 '비판적 사회사가'들의 거센 비판에서부터, 보수적 역사가들의 큰 호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반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두 저자는 장기간의 토론과 연구를 거듭해 좀더 분명한 공통의 지향성을 토대로 독어 판을 수정, 보완해 영문판을 내놓기에 이른다. 논쟁이 시공간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특수한 길 논쟁'이라고 부른다. 이후 대중적 교양지나 일간신문 및 방송 등을 통해 뜨겁게 진행되던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학술적 연구 작업이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독일 역사학 신화'에 종지부를 찍다 그렇다면 이 책의 구체적 논쟁 내용은 무엇인가? 블랙번과 엘리는 무엇보다 먼저 '비판적 사회사가'들의 역사학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엘리는 '서구적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 '독일적 일탈' 혹은 '독일의 특수한 길'을 주장하는 이들의 각국간 비교방법 자체를 의문시한다. 설정된 규범과 역사적 실재의 부합 여부, 규범으로 삼고 있는 서구라는 개념 자체의 적합 여부를 문제 삼고 있다. 블랙번은 독일의 '비판적 사회사가'들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였는가' 대신에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지 않았는가'를 문제 삼으면서 독일사에 원래 없던 것을 찾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그들이 '일탈'이나 '계급의식을 지닌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부재'라는 식으로 독일 부르주아지의 '태만의 죄(sin of omission)'에 모든 문제를 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두 저자는 '독일의 특수성'의 핵심 중 하나로 여겨온 '부르주아 혁명의 부재 혹은 실패'라는 테제에 문제를 제기한다. 두 저자는 '특수한 길' 논의가 잘못된 '부르주아 혁명' 개념에서 출발했음을 지적한다. 독일 사회사가들은 모든 근대 산업사회는 영국, 프랑스형의 부르주아 혁명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때 부르주아 혁명이란 분명한 계급의식을 지닌 부르주아지가 그의 자유주의적 이념에 따라 사회적 제관계와 정치적 제도를 변혁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엘리는 부르주아 혁명이란 사회에서의 부르주아지의 우세의 제조건과 관련된 것으로, '산업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법적, 정치적 틀의 성공적 수립에 필요한 집중적 변화'로 재정의하고 있다. 블랙번은 독일의 '경제와 사회에서의 조용한 변화'와 부르주아지가 유럽에서 '통치계급'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되었음을 강조하는 '조용한 혁명'론을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독일 내에 '부르주아 혁명'이 실재했으며, 그것은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시민층의 약체성'을 강조하는 종래의 주장에 맞서 '시민층의 적극성'을 부각시킨다. 공식적인 법적 평등의 성취와 법적 안정성 확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법적 적극성'과 '법적 통치'의 실현, 활발한 자발적 협회활동, 공공적인 제기관과 관습의 등장 등은 시민적 적극성을 대변해 주며, 일면 시민적 정적주의로 보이는 부르주아지의 비정치화 현상도 독일 부르주아 사회 자체 내의 변화에 의해 형성된 '시민적 적극성'의 한 형태라고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블랙번과 엘리가 독일 사회사가들이 내세운 이른바 '연속성'이라는 발상까지도 그들의 비판 범위에 짧게나마 포함시킨 점이 퍽 인상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 발상은 제정 독일에서 시작해 바이마르 공화국을 거쳐 나치 독재에 이르는 시기를 관통하는 역사적 연속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두 저자는 정작 중요한 것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연속성이 있었는가'라고 다시 질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정 독일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적 경험이 한낱 히틀러의 탄생을 애타게 기다리는 '나치즘의 대기실'로 축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나치즘의 대두는 오히려 전쟁이 남긴 정신적 위기와 자본주의 경제적 위기가 중첩된 1920년대의 특유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발생한 총체적 위기, 곧 '자본주의 국가의 위기'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독일 역사학의 신화'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블랙번의 발언이 우리의 귓가에 가만히 들려온다. 우리가 독일제국 시기에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을 고찰하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은 그냥 놔둔다면, 1차 세계대전이라는 단층을 통과하여 흐르는 연속성의 진정한 물줄기를 아주 분명하게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독일 사학사 최고의 도발, 이젠 독일 역사학의 고전이 되다 전투와도 같은 논쟁이 벌어진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비교사적 연구방법에서, 비판적 사회사가들이 서구의 예를 규범화하거나 이상화하려던 이전의 태도를 반성하고 이를 경계하는 등의 조심스런 변화가 있었다. 두 번째로 독일 사학계에서 독일 시민층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그 결과 그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제국시기의 시대상에 대한 관심이 사학계 내에서 고조되었고, 논쟁 이후 이 시대상에 대한 평가가 다수 수정되었다. 마지막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나치 집권의 원인에 대한 해석에서도 논쟁을 통해 장기적 요인보다는 단기적 요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많은 변화와 성과 때문일까. 블랙번과 엘리의 이 저서는 이미 독일 사학사에서 빛나는 고전의 반열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여러 번 재판되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미국, 그리고 영국의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 세미나의 입문서 리스트에 당당히 올라 있다. 이 책이 고전으로 남았음은, 과거의 짧은 시공간에서 갖는 일회적 의미만으로 끝나지 않고 최근까지도 그 긴 호흡이 느껴지는 작품임을 뜻하는 것일 게다. 그들의 연구성과, 즉 기존의 양대 논의구조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새 지평을 열어놓았다는 점은 역사의 길이 남을 업적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 책 『신화』와 함께 독일의 '특수한 길'을 둘러싼 논의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학문적 성과도 얻게 되리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