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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展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밀레에서 보나르까지 1848-1914 “나는 손에 잡히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않는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오로지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 귀스타브 모로의 이 말은 당시의 시대정신과 크게 모순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예술가들은 과학의 정확성과 기술의 발달,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실용주의적인 취향,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유행하는 사실주의, 환경의 변화 등에 직면하여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들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 사회와 동떨어져 예술과 시에 대한 고매한 이상을 함께 나누는 그들만의 작은 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이전에는 화가나 조각가들이 시인이나 소설가, 음악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정신의 가치를 추구하고, 삶의 의미와 인간의 운명에 대해 고찰했으며, 관념과 눈에 보이지 않는것, 인간의 정신적인 삶, 꿈, 상상, 무의식을 표현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기이한 것, 비현실적인 것, 환상적인 것, 밤, 죽음 등이 그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되었다. ▶오르세미술관展 이야기 장 프랑수아 밀레<만종>-언론인 이규태 선생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만종>은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된 서양화중 하나이다. “서양은 자연과는 동떨어진 인공 · 인조의 세상이라는 한국인의 선입견에서 이전원 배경의 순진한 농민의 일상적 모습이 이질감을 배제시키고 친근감을 주었을 것” 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자연의 모습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살바도르 달리는 여러 차례 이 작품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작품들을 모아 <밀레의 만종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이라는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밀레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밀레의 작품 속에는 숭고한 삶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밀레의 <만종>은 종교화와 같은 힘을 갖기도 한다. 삶의 성스러움을 표현한 <만종>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외국 전시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만종>은 한국 전시 역사 최고의 보험가액 기록을 갱신하여,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에두아르 마네<피리부는 소년>-서양 근대미술의 선구자인 마네의 대표작인<피리부는 소년>은 살롱전에서 낙선한 후 6년이란 세월이 흐른 1872년이 되어서야 파리 최고의 화상이었던 뒤랑 뤼엘에게 1500프랑에 팔렸다. 20년이 지난 1894년 이작 드 카몽드는 20배의 웃돈을 주고 이 작품을 사들였고,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했다. 1986년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간 이 작품은 바로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이 되었고, 오르세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자의 표지에 사용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초의 근대회화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일본 전시에도 소개되지 않았다.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작품인 만큼 오르세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장거리 여행을 용인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의 한국 여행은 한국 관객만을 위한 특별한 감동의 기회가 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아를의 반 고흐의 방>-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흐는 1888년 2월 남프랑스로 이주한 후 자신을 뒷바자리 해준 동생 테오 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기거한 방을 그렸다.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테오는 고갱을 설득해 형과 함께 이 곳에서 머무르도록 했으나, 1년 후 고갱과의 사이에서 불화가 생기자 고흐는 발작을 일으켰고, 스스로 한쪽 귀를 잘라내 버렸다. 그 후 생레미의 요양소에 입원을 하게 된 고흐는 입원 중에 두 점을 더 그렸고, 그 중 하나는 오르세 미술관에, 또 하나는 시카고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구가 거의 없는 소박한 침실은 고흐의 성격과 가난한 아를 시대의 생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벽에 걸린 두 점의 초상화 중 왼쪽은 자신의 초상화이며, 오른쪽은 알려지지 않은 여인의 초상이다. 특히 이 작품은 고흐 스스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두 점과 달리 색채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다. 보랏빛 벽과 노란 침대와 의자, 진홍색 이불과 파란 세숫대야 등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날카로운 색채들이 생동감 있는 화가 자신만의 원근법 속에 자리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