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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력과 외교력, 그 엇갈린 선택 - 연개소문과 김춘추
2. 당대 최고의 엘리트, 영원한 이방인 - 최치원 3. 힘인가? 지략인가? 민심인가? - 궁예, 견훤, 그리고 왕건 4. 제도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 묘청과 정지상, 그리고 김부식 5. 관리의 길을 외면하고 어찌 다른 길을 선택하랴 - 이규보 6. 시대의 과제를 인식한 자와 시대의 변화를 읽은 자 - 이승휴와 이제현 7. 선택하지 않은 삶, 5백 년 역적 - 정도전 8. 개혁론자가 절의론자가 된 까닭 - 이색 9. 동상이몽에서 깨어났을 때 - 조광조와 중종 10. 탁월한 외교력, 실리인가 정치력인가? - 광해군 11. 일관된 주장과 투명한 행적이 올바른 선택을 낳는다 - 최명길과 김상헌 12. 유교 본질정치의 두 가지 길 - 정조와 김종수 13. 농민의 발견, 이상적 개혁론자에서 현실적 개혁론자로 - 정약용 14. 근대국민국가 수립의 두 가지 길, 자주냐 타협이냐 - 전봉준과 김옥균 15. 국권이냐, 왕권이냐 --고종과 민비 16. 꺾이지 않은 무정부주의자, 좌절한 공산주의자 - 이회영과 오성륜 17. 남과 북, 내가 쉴 땅은 어디인가? - 최창익 18.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근대국가 건설의 꿈 - 송진우 19. 북행길에 뿌린 민족주의자의 염원 - 여운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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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민비의 시대는 근대 사회로 이행하지 못하면 바로 식민지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근대사회는 왕권과 국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중세 사회와는 다르다.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국가를 지켜내야 할 시점에 왕권 유지를 위해 외교적으로 위태로운 줄타기나 하고,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권력투쟁이나 국민탄압에 앞장섰던 고종과 민비가 국권을 지켜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 p.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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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 초겨울, 신라의 김춘추가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을 뚫고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방문하였다. 그를 맞이한 것은 평양성 거리의 살벌한 피비린내와 막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이었다. 연개소문이 베푼 화려한 연회가 끝나자, 김춘추는 '양국의 오랜 상쟁을 중단하자'고 제안하면서 백제 공격을 위한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연개소문은 자신이 옹립한 보장왕의 입을 빌어, '고구려의 옛땅인 한간 유역을 돌려주면 구원병을 파견하겠다'고 엉뚱하게 답변했다. 아직 신라 조정에서 정치적 위상이 확고하지 못했던 김춘추로서는 감히 답변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였다. 설사 그만한 위치에 있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차지한 한강 유역인데 그렇게 쉽게 내줄 수는 없었다. 김춘추가 '신하의 몸이기 때문에 영토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자, 연개소문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 p.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