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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을 위한 건축
2.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 3. 말하는 건물 4.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 5. 건물의 미덕 6. 들의 미래 옮긴이의 글 ㅣ '알랭 드 보통'다운 건축 이야기 부록 찾아보기 |
Alain de Bo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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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또는 건축에서 얻는 행복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신작 《행복의 건축》을 내놓았다. 그동안 사랑, 문학, 여행, 철학, 불안 등의 영역에서 그 특유의 명민하면서도 유쾌한 시선이 담긴 글쓰기를 해왔던 드 보통은 이번에는 건축의 영역에 발을 내디딘다. 드 보통의 시선에서 이야기되는 건축은 건축 전문가들만의 관심사에 머무는 전문적인 건축사 책이나 어려운 이론서일 리는 없다.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공간, 그 공간을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구축해내는 건축에 대해 지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주는, 드 보통의 강점이 건축이 테마인 《행복의 건축》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 오후, 알랭 드 보통은 비가 퍼붓던 친구와의 약속이 어긋나 두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다. 그는 런던 빅토리아 스트리트에 위치한 맥도널드 웨스트민스터 지점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혼자 무뚝뚝한 표정으로 식사하는 사람들, 강렬한 조명, 냉동 프라이가 기름통에 가라앉는 소리, 카운터 직원들의 주문 받는 소리로 어수선한 그곳에서 느껴지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잊으려면 계속 먹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때 키가 큰 금발의 핀란드 십대들 서른 명 가량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서는 왁자지껄 떠들고 노래를 부르는 통에 더 앉아 있기 힘들어진 그는 그곳을 나와 햄버거 가게 바로 옆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안개 낀 런던 하늘 속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드 보통은 호기심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내부에는 봉헌촛불들이 너울거리고, 향냄새가 나고, 웅얼거리는 기도소리가 들렸다. 본당 회중석 한가운데 천장에는 10미터 높이의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바깥 세계의 소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외와 정적이 들어앉았다. 방문객들은 어떤 집단적 꿈에 빠져든 듯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죽였다, 그곳에서는 독특한 종류의 친밀감이 거리의 익명성을 삼켜버렸다. 인간 본성의 모든 면을 표면으로 불러낸 것 같았다. 성당 안에 있으니, 바깥에서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여러 가지 것들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천사가 당장이라도 구름을 뚫고 내려와 창으로 들어오면서 황금나팔을 불며 라틴어로 말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불과 40미터 떨어진 햄버거 가게에서라면 미친 소리로 들렸을 개념들이 지고의 의미와 장엄을 얻게 된 것이다. 건축 작품 하나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은 왜 ‘공간’이란 주제에 매달렸을까? 알랭 드 보통은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을 토대로 《행복의 건축》을 시작한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두스는 자신이 평생토록 머물던 성당의 내부구조나 외관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만큼 정신세계와 내면에 치중했다고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기왕에 그 공간이 모든 면에서 조화를 이루고 아늑하다면 심리적 성소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을 받아들인다면, 드 보통이 건축이라는 낯설고 까다로운 주제를 들고 나타난 이유를 쉽게 수긍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이다. 아름다운 건축에 밥 한 끼나 백신과 같이 내세울 만한 실리적 장점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제프리 바와나 루이스 칸이 지은 건물 안에서도 아내와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 이혼하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태피스트리라고 할 만한 베네치아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덕분에 마음이 고양되었다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하고 있으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건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으며,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이라는 건축의 독특한 위치로 말미암아 행복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외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고, 또한 거기에서 행복과 기쁨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건축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드 보통의 논지는 허황된 꿈만은 아니다. 이야기하는 건물 “건물은 말을 한다. 그것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주제들에 관해 말을 한다. 건물은 민주주의나 귀족주의, 개방성이나 오만, 환영이나 위협, 미래에 대한 공감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한다.” (77쪽) 건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추상적인 사물의 의미를 짚어내는 일과 관련되기에 의미가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그 자신의 해박한 미술사적 지식과 직관력을 바탕으로 추상 조각과 사물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해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의 시선이 열리기만 한다면, 주변의 가구와 집에서 구체적 의미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영감을 얻고 나면 샐러드 사발은 샐러드 사발에 불과하다는 이전의 산문적 믿음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샐러드 사발에도 희미하게나마 완전성, 여성성, 무한성 등 의미 있는 연상들이 머문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둥, 아파트 건물 같은 실용적인 물체를 볼 때도 우리 삶의 중요한 주제에 관한 추상적인 표현을 찾게 될 것이다. 이야기하는 건물이라는 개념 덕분에 우리는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겉모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키며 살고 싶은 가치의 문제를 건축적 난제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다. 무표정의 차가운 건물에서 감정과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드 보통은 어떤 건물이 어떻게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감탄하는 건물은 결국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가 귀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상찬한다. 즉 이런 건물은 재료를 통해서든, 형태를 통해서든, 색채를 통해서든, 우정, 친절, 섬세, 힘, 지성 등과 같은 누구나 인정하는 긍정적 특질들과 관련을 맺는다. 결국 건축이나 디자인 작품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번영에 핵심적 가치를 표현한다는 사실, 우리 개인의 이상이 물질적 매체로 변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시각이 도시를 바꿀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건물에서 ‘이야기’와 ‘미덕’을 끌어내어 설명함으로써, 딱딱하고 생동감 없게 느껴지던 건축에 인간적 활기와 친화력을 불어 넣었다. 건물을 다른 시선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은 사람들에게 드 보통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외부 환경에 취약한 존재이며, 좋은 건축으로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이 마을 전체를, 더 나아가 도시 전체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존 우드 1세가 계획한 바스 언덕이나 제임스 크레이그가 구상한 뉴타운은 그전에는 허허로운 벌판에 불과했던 곳을 상상력과 추진력만으로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이다. 이 아름다운 변화의 현장에서 자금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드 보통은, 택지개발 회사에 사라질 운명인 들 위에 어떤 집이 세워질 것인지 물어보라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우리의 취향이 발전한다면 우리는 원래 바라던 것 너머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의 훌륭한 건물은 그 자신의 규모나 건축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된다. 그러기에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은, 오히려 도시 전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역시 알랭 드 보통, 핵심을 꿰뚫는 아웃사이더 † 드 보통은 건축에 있어서는 아웃사이더의 위치에 있다. 아웃사이더는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분명하게 핵심을 보는 일이 종종 있다. | The Boston Globe 건축을 공부하거나 실제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행복의 건축》이 익히 알고 있는 얘기를 정리한 책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분명 건축의 영역에서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드 보통은 아웃사이더로서 건축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건축 이야기를 능숙하고 유려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일상의 철학자’ 드 보통은 건축을 소외된 전문가들의 영역에서 보통 사람들이 즐겁게 향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위치로 끌어당겼다. 드 보통 산문의 자력으로. 《행복의 건축》을 통해 독자들은 건축에서 중요한 건물들에 얽힌 이야기들(워드성의 앞과 뒤는 왜 다를까?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빌라 사부아에 가구가 없는 이유는?)부터 건축의 주요 미덕들(질서, 균형, 우아, 일치, 자기인식)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이론과 실제를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을 통과하면 건축조차도 친숙하게 일상으로 내려와 앉는 것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알랭 드 보통의 힘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