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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ence Fer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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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항상 그리던 태양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세상의 순수한 빛이 유코의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길을 걸으며 투명하고 빛나느 기쁨을 느꼈다. 그는 자유롭고 행복했다.
--- p.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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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아를레아 출판사가 1999년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첫 기획으로 선택한 막상스 페르민의 소설[눈]은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독자와 평단의 높은 평가는 물론 각종 TV와 매스컴의 집중 플래시를 받았던 것이다. 결과는 베스트셀러 1위 입성과 조르쥬 르무안의 삽화를 실은 컬러양장본 출간, 그리고 화랑에서 따로 열린 삽화 전시회와 무대에까지 올려진 낭송회 등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전통 시가(詩歌)인 하이쿠와 눈[雪]의 이미지를 접합시킨 이 짧은 소설에 프랑스 독자들이 열광했다. 철저히 일본적인 색채로 가득한 이 소설이 어떻게 그들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렸을까? 그 인기의 저변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첫째,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젠[禪]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형식, 둘째로는 일본적인 것에 경도되어 있는 프랑스인들의 취향, 셋째로는 사랑과 인생까지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길 좋아하는 그들의 심미안을 충족시켜주는 소재가 그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매력은 문체에 있다. '젊은 시인의 초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작품은 19세기 말 일본의 젊은 하이쿠 시인이 경험하는 예술과 사랑을 하이쿠적인 방식으로 진술하고 있다. 주인공 유코가 완벽한 하이쿠를 짓기 위해 바치는 노력과 열정처럼 [눈]역시 문체적 수련을 통해 자신의 삶과 예술을 한 차원 높은 정신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젊은 작가의 순수한 열망의 소산이다. 막상스 페르민은 그 열망의 첫째 관문으로 하이쿠와 눈[雪]을 선택한 것이다. ■ 투명한 백색 문체와 침묵의 여운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소멸의 미학 하이쿠는 17음절로 이루어진 석 줄짜리 서정시다. 거기에 단 한 음절도 덧붙일 수 없는 고밀도의 시이며, 계절과 자연, 작은 사물들을 소재로 하여 순간의 깨달음을 파지하는 시다. 하찮은 관찰대상으로부터 투사된 인식의 전환은 긴 침묵의 여운으로 읽는 이를 휘감고, 그렇게 문득 바라본 세상을 순간과 영원이 함께 공존하는 화해의 공간으로 바꿔버린다. 하이쿠는 깨달음의 한 형식이고, 그 수련방식이다. 하이쿠에 대한 재능과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외곬수에 오만한 젊은이가 예술의 대가를 만나면서 참된 시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고전적인 플롯의 이 소설 속에서 하이쿠는 예술의 표상이자 득도의 대상이다. 참된 의미의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죽음의 의미를 체득하는 뼈저린 경험과 더불어 회화, 무용, 서예의 예술이 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색채와 빛의 관계, 그 외부와 내부의 관계, 팽팽한 줄 위를 걷는 발걸음으로 비유되는 글쓰기를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소세키의 말처럼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라는 팽팽한 줄 위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꿈의 고도에서 매순간을 살아가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상상의 줄에서 내려오지 않는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예술과 사랑 또한 덧없는 설선(雪線)에 걸려 있다. 표제이기도 한 눈[雪]은 그 모든 예술과 사랑, 삶과 죽음을 한번에 뒤덮어버리는 덧없음과 소멸의 상징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의 피어남과 시듦이 덧없기 때문이듯, 순백의 눈 역시 그 찬연한 빛이 영원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기다림과 설렘을 가져다준다. 눈은 미의 본질이 생성과 소멸 사이에서 피어나는 덧없음에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적이고도 투명하게 보여주는 모티프인 것이다. 애초에 유코에게 존재했던 두 가지 열정인 하이쿠와 눈은 이렇듯 소멸의 미학으로 함께 승화되어 삶과 예술의 의미를 아우르는 깨달음의 대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간결하면서도 투명한 언어로 빚어낸 긴 산문시와도 같은 소설[눈]은 서양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적 세계관의 정수를 섬세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또한 라이프 스타일과 더불어 정신세계까지도 서구화되어가는 우리에게 자칫 고루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정서가 서양인의 논리적이고도 구체적인 주제의식과 맞물려 오히려 정확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창작의 치열한 고통과 인생의 무게를 눈의 이미지로 아름답게 환기시킨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귀다툼 같은 일상에 묻혀 있었던 고요한 자신의 실존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