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네 얘기를 듣는 사람이 너에게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는 네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너는, 그들의 주의력을 마치 너를 향해 세워놓은 벽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그 시선의 벽에 부딪힌 모든 것들은 다시 튕겨나와, 너에게 돌아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이 여자를 통해 내가 본 것은,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혹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내 자신의 모습. 그렇게 바라본 내 모습은, 몰이해와 고통의 덩어리였다. 있는 힘을 모두 모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는 나. 내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그렇게 새삼스레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벽이라기보다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빛을 반사하지 못하는 거울, 사물을 잘 비추지 못하는 거울, 그래서 비쳐진 사물들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거울 말이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pp.272~273 |
|
꽁스땅스가 떠난 후에도 내 집에서 이렇게 많은 먼지를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로라 생각이 떠올랐지만, 사실 그래선 안 되었다. 로라 생각을 해선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생각했다. 아니, 거리를 두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최소한, 거리를 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고, 내가 느끼는 고통이 거기서부터 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내 노력의 결과는 고작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처음부터 로라는 파출부로든 여자로든, 내 삶에 질서를 부여하겠다고 합의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었다. 로라가 나를 홀로 내버려두고 간 모래, 내가 먼지만큼이나 싫어하는 그 모래 위에 누워서,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pp.249~250 |
|
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작가 크리스티앙 오스테르의 최신작 『로라, 내 아름다운 파출부』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사랑했던 여자가 버리고 간 아파트에는 먼지와 쟈크가 건조하게 적체되어 있고, 그 외로운 공간 속으로 아름다운 파출부 로라가 걸어 들어오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 설정, 그리고 둘 사이에 미묘하게 싹트기 시작하는 감정.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 내면세계에 고립되어 스스로에게조차 냉담한 자크의 의존적인 사랑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언뜻 보면 현대인들이 조금씩은 가담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사랑에 관한 날카로운 스케치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정도에서 마무리 짓기를 거부한다. 소설 전체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이미지는 먼지이다. 아무리 털어내고 닦아내도 어디선가 내려와 쌓이는 먼지, '나를 이루고 있던 것은 한줌의 먼지였다'는 어느 시인의 유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먼지는 쉽게 죽음을 유추시킨다. 먼지(소멸)와 로라(삶) 사이를 위태하게 오가는 쟈크는 근원적인 절망과 대치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딱 한 번만, 함께 자고 싶어요'라는 로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동거에 들어간 어느 날, 옛 애인 꽁스땅스가 돌아와 재결합을 애원하지만, 쟈크는 '사랑 없는 사랑'에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입은 후였다. 그는 옛 애인으로부터 무작정 도망친다. 로라는 무조건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다. 여행지는 수첩을 펼쳐 제일 먼저 눈에 띈 랄프의 집. 여행중 쟈크는 로라의 머리를 짧게 자르게 한다. 한결 달라진, 본래의 나이를 되찾은 듯한 로라와 동행하며 쟈크는 서로의 삶의 먼지까지 씻어내줄 관계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의 생각이었을 뿐, 끝내 딸처럼 젊은 로라는 그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먼지 더미 같은 해변가에서 절망적인 실존과 대면하게 된다. 마치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뫼르소와는 달리 쟈크는 그 절망적인 상황을 지극히도 냉담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결국 로라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삶의 먼지를 털어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는 그처럼 철저하게 제3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사라지고 말 먼지 같은 인간의 숙명과 맞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비평가 마리 고뱅이 '뱀의 글쓰기'라고 표현했듯이 파편처럼 흩어진 단문의 연속이다. 그러한 서술들은 소설 속의 길고 복잡한 묘사들과 병치되어 독특한 문체를 획득하는 동시에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는 장치로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마치 탈진한 자폐적인 주인공이 거대한 세상의 질서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듯한 형상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