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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ka Shibasaki,しばさき ともか,柴崎 友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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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학을 졸업하고 암실을 쓸 수 없게 된 이래로 거의 찍지 않았다. 암실에서 현상액에 담근 인화지에 과거의 풍경이 떠오르는 순간이 제일 좋았던 터라, 그것을 맛볼 수 없다면 사진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 p.48
조용한 길을 홀로 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거리의 풍경과 기억 속에 있는 나고 자란 거리의 풍경이, 건물의 규모나 틈새와의 관계도 사람들의 밀도도 너무나도 달라서 기억 속 거리가 더 멀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 p.62 “도쿄는 건물이 계속 들어서지, 새 가게가 생기지, 누굴 만날 때마다 저게 재밌다, 요새는 이게 유행이다, 하고 하여간 모든 게 참 빠르죠. 아닌가. 좋아지는 건 빠르고 나빠지는 건 느려요.” --- p.100 이 부근은 예전에 잡목림이나 논밭이었다고 하니, 매년 쌓인 낙엽이며 나무 열매, 그곳에 있던 동물들도 시간과 더불어 겹쳐져 지표로부터 조금씩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 p.105 문이 닫힌 집은 언뜻 보면 전날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어두운 창문은 사람이 사는 집이 어두운 것과 달랐다.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어둠이었다. --- p.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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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저마다의 풍경을 끌어안은 채
우리는 지금 이 거리에 살고 있다 다로가 사는 연립에서 대각선으로 뒤쪽에는 밝은 물빛의 벽널, 납작한 피라미드 같은 각뿔형의 적갈색 기와지붕, 창끝 모양의 꼭대기 장식이 돋보이는 물빛 집이 자리하고 있다. 집요하리만치 니시가 이 집에 매달리는 이유는 소설의 제목인 ‘봄의 정원’과 관련이 있다. 20년 전 이 물빛 집에 사는 젊은 광고 감독과 여배우 부부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사진집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이 사진집의 제목이 ‘봄의 정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이 사진집을 접하고 대학에서 사진부에 들어간 니시의 마음속에는 이 사진집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에 이르렀고, 니시는 인터넷에서 이사할 집을 찾던 중 우연히 물빛 집을 발견하고 물빛 집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어 이웃한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사진집 속 물빛 집과 지금의 물빛 집을 비교하며 관찰하고,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젊은 부부의 삶의 단면과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는 단란한 일가족의 삶을 상상해본다. 적어도 거실 소파에서 툇마루 너머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니시는 충족감을 느꼈다. 기울어가는 석양이 자신이 앉은 곳까지 비쳐 들고, 새소리를 제외하면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툇마루 널은 군데군데 허옇게 닳아서 그곳에 흐른 수십 년의 세월과 지금 지나가고 있는 오후 시간이 겹쳐져 보였다. _93~94쪽 물빛 집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하늘, 공장, 담장, 나무, 벌레 등 매일같이 스쳐 지나가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풍경들이 가득하다. 마치 카메라 렌즈의 움직임을 좇아 과거와 현재의 공간을 담아낸 연속 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는 단순히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타인을 느끼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군데군데 흠이 파인 거리를 걷는 것은, 계절을 품은 작은 정원을 거니는 것은 그 정경에 스며든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그의 존재를 생생하게 실감하는 매혹적인 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어쩐지 거리를 더욱 구석구석까지 걷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소소한 일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군가의 관심을 끌려 하거나 이야기로서 설득력을 높이려는 의도 따위 전혀 들어갈 여지가 없다. 저자는 이런 ‘무뚝뚝한’ 현실 앞에서 겸허함을 선택한다. 이것은 좀처럼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_시마다 마사히코(소설가, 아쿠타가와상 심사평에서)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한 채 흘러간다. 눈을 반짝일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완결성을 갖추고 드러나지 않는다. 물빛 집에 큰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결혼이라든지 사랑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품게 한 사진집의 주인공인 젊은 부부는 현재 이혼한 상태이며, 다로와 니시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도 않는다. 10년 전 돌아가신 다로의 아버지의 유골을 빻은 절구와 공이는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3년 만에 만나는 다로와 누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그저 충실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상을 일상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무렇지 않은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쉽사리 얻어낼 수 없는 소중한 순간임을 진정으로 자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때 비로소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뭉근한 감동이 피어오른다. 곧 《봄의 정원》은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풍경을 안고 담담한 흔적을 남기는, 완성되지 않은 우리들의 스냅사진이 실린 사진집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