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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서양의 시간과 비서양의 시간
제1부 시간의 주름을 측정하다 1. 시간의 기본 리듬 * 시간에 대한 지각의 추적 * 수많은 내부 리듬들 * 은유로 표시된 메커니즘 2. 초기의 시간 측정 * 구전 방식 * 문자 방식 제2부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다 3. 서양의 달력 * 하루 그리고 시간 * 시간의 최소 단위들 * 일주일 그리고 요일 * 태음월과 달 * 달과 정치적 목적 4. 1년의 의미, 그리고 역사 * 서양의 역년 * 장기적인 시간 측정과 플라톤 년 * 서양의 창조설화 * 오늘날의 시계의 제국 제3부 하늘의 질서를 따르다 5. 부족 사회와 달의 시간 * 생태적 주기 * 구조적 시간 6. 마야의 달력 * 마야, 아스텍, 잉카 * 마야의 신체셈법 * 금성의 주기 * 마야의 쇠퇴 * 마야 시간 기록의 특징 7. 아스텍과 태양 * 제례 주기 * 세계의 중심과 의미, 세계도 * 창조설화 * 지배 이데올로기와 시간의 구조조정 8. 잉카의 역법 * 태양 관측 * 날짜 계산 9. 중국의 시간 측정 * 중국의 세계관과 역사 인식 * 중국의 역법 제4부 시간의 제국을 건설하다 10. 기본 리듬 위의 건축물 * 반복되는 주기 * 시간의 선형화 * 리듬의 제어 후기 : 시간 항해일지를 마치며 출처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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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뉴잉글랜드 연체동물의 현명함에 감명을 받았다면, 더 하등생물인 감자를 생각해보라. 실험을 수행하는 생물학자들은 감자가 어느 정도 산소를 사용하는가를 측정하여 그 신진대사율을 도표로 만들었다. 그들은 감자의 싹눈을 떼어낸 뒤 감자를 외부의 기온, 기압, 습도, 일조량의 변화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컨테이너에 넣어두었다. 그러자 싹눈이 제거된 이 감자들은 본래의 자연 환경에 있을 때와 똑같은 리듬주기를 유지했다.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한 시각은 날마다 오전 7시, 정오, 오후 6시였다. 그리고 감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태양이 하늘에서 사라졌을 때의 산소 소비량은 밤에 가장 적을 때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간 변화도 있었다. 컨테이너 밖이 여름이면 정오 때의 최대치가 줄어들었으며 겨울이면 증가했다.
거대한 존재의 사슬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고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감자는 싹눈 없이도 하루 중 언제인가뿐 아니라 1년 중 어느 계절인가도 아는 것이다! 게다가 감자의 신진대사율은 아주 기특하게도 컨테이너 밖의 기압계와 정확히 일치했다. 감자는 기압계에 나타난 수치를, 어제의 수치뿐 아니라 이틀 뒤의 수치까지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어제의 기압 변화가 습도와 기온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오늘의 산소 소비량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가 컨테이너에 갇힌 감자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또 그것이 어 떻게 감자로 하여금 정오의 최대 산소 소비량을 이틀 뒤의 기압에 맞도록 정확하게 조절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상학자가 평상시처럼 텔레비전의 기상도氣象圖 앞에 있지 않고 컨테이너 안에 갇혔어도 기상 예보를 할 수 있을까? 기대는 금물이다. --- p.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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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는 시간을 더 잘게, 다시 말해 일日을 시時 단위로 쪼갠다. 그 12개의 단위 시는 두 번 반복된다. 시침時針인 작은 바늘은 시간과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위치를 직접 연관시켰던 마지막 자취이자, 태양이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침 태양이 동쪽에 있을 때 작은 바늘은 12라는 숫자의 왼쪽을 가리키며, 저녁 태양이 서쪽에 있을 때 작은 바늘은 그 오른쪽을 가리킨다. 정오에는 작은 바늘이 곧추선다. 우리는 또 1시간을(우리가 대부분의 사물을 나눌 때 하듯이 10분의 1 또는 100분의 1 단위가 아니라) ‘분’이라는 60분의 1 단위로 나누며, 1분은 다시 ‘초’라는 60분의 1 단위로 나눈다. 최근 올림픽에서 기록을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노력 덕분에 60분의 1이나 3600분의 1이 아니라 1초를 100분의 1 또는 1000분의 1 단위로 나눈 시계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과학 실험실에서 1초는 100만 분의 1 단위인 ‘마이크로micro’와 10억 분의 1 단위인 ‘피코pico’ 또는 1000조 분의 1 단위인 ‘펨토femto’ 단위로 세분되기도 한다. 우리는 규정짓기 어려운 어떤 실체를 측정하려고 상당히 공을 들이는 듯이 보인다(그림 3-1을 보라). 최근에 뉴욕의 고급 보석 회사 티파니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파텍필립 스위스 시계를 전시한 적이 있다. 무게 2.4파운드에 332개의 톱니에 의해 움직이며 24개의 바늘을 갖고 있는 이 시계는 40가지 안팎의 잡다한 일을 수행한다. 그 가운데에는 부활절 주간, 해돋이와 해넘이 시각을 측정하고 밤하늘에 떠오르는 은하수의 방위를 측정하는 일들이 포함된다. 이 시계의 가격은 30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 사이다.
---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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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풀 부》에 실린 마야의 창세기에 따르면, 《구약성서》의 여호와보다 훨씬 엉망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건너온 신들은 창조 행위를 하는 데 세 번 실패한다. 신들이 말하고 걷고 자신들을 경배할 성공적인 인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것은 옥수수로부터 사람을 형상화했을 때뿐이었다. 신들의 행위는 “당신이 먹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보편적인 격언을 확인시켜준다. 금성이 출몰할 때의 ‘촐킨’ 속 날짜 명칭과 역법에서 그 이름이 상응하는 좀 더 나이 지긋한 짝은 인간을 만들고 주조한 신들보다 더 늙었다. 번역가 데니스 테드락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긴장과 절정의 위대한 순간과 금성주기의 중요한 날을 이어주는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단서가 잡힌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성과 새벽과 생명이 동쪽에서 거듭해서 떠오르는 일, 바로 그것이 신화라는 옷감을 짜는 실이었으며 금성의 탄생은 전 우주의 주기적 창조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출발점을 소우주적으로 유추한 것이었다.
--- p.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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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시계 : 미시사적 주제에서 거시사적 지평으로
저자는 1장 <시간의 기본 리듬>에서 감자, 굴, 벌, 초파리 등과 관련한 실험들을 예로 들며 생명주기와 천체 리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두 가지 주장, 즉 ‘생래가설’과 ‘외인가설’을 설명한다. 그리고 2장 <초기의 시간 측정>부터는 로마 제국의 산물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에게서 그 목가적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현대의 서양 달력을 해부한다. 저자는 이처럼 이 책의 전반부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복잡다기한 속성들, 달력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와 유래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서양의 사회사, 경제사, 정치사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기록하고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은 우연한 사건들과 우리가 과거에 했던 올바르거나 그릇된 선택들의 결과이다. 이를테면 예수는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달력과 관련이 깊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뤼시앵 페브르의 말처럼 “달력은 그리스도교를 말한다”. 카이사르, 다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아리스토텔레스 등도 달력의 구성에 일조했다. 개인뿐 아니라 대규모의 사회운동도 달력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퍼졌던 자유주의 정신, 중세 상인계층의 성장, 마르크스주의 이론, 진화론, 실존주의, 실험적 학문의 발달 등을 통해서 주조돼왔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그리스의 《신통기》,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같은 저 위대한 창조설화들로 거슬러 올라가 시간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다. 학문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는 오늘날의 달력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우리의 시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서양의 유대교-기독교 계통의 사회를 살펴보는 것이며, 과거의 여러 요인이 전혀 다르게 조합되었더라면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아프리카의 누에르족이나 태평양의 트로브리안드족 같은 부족사회나, 고대 잉카문명과 아스텍문명, 마야문명의 ‘시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마야인, 아스텍인, 갈리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중국인, 히브리인, 콥트인, 무슬림은 모두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은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 중앙아메리카에서 신들이 지녔던 권력을 보여주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는 공동체 생활의 리듬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 리듬의 규칙성을 유지시켰던 달력의 기능을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 《신통기》 그리고 성서의 <창세기>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빙하시대의 뼛조각들과 스톤헨지, 수메르의 진흙 서판 등을 언급하며 구전방식과 문자방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문자와 셈법을 발명하고 발전시켜온 옛 문명의 지혜와 노력, 달력 개혁의 지난한 역사, 개별 달력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양과 서양의 역법은 어떻게 다른가 고대 중국에서는 시간을 측정하는 서양의 과학적 방법을 낳은 모든 요소들이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정밀하고 꼼꼼한 관측자로서 복잡한 수학을 사용했으며 그들 역사의 초창기에 이미 꽤 진보된 기술을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화약과 나침반과 인쇄술은 서양인들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가장 중요한 3가지 발명품인데, 그것은 사실 중국의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고등수학과 자연 관측을 독특하게 종합하는 데에 실패했을까? 왜 중국의 케플러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것이 신중하게 심사숙고한 일련의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역사의 극적인 사건이 세계를 이해하는 현대 서양의 과학적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었다는 것이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발견들이 예전에 이미 이룩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중국 철학자들의 시야와 그리스 철학자들의 시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기초한 도시국가에서 살고 생각하며 가르쳤다. 한편 중국의 철학자들은 단단히 조직화되고 엄격하게 통제되는 봉건 관료주의의 일원이었다. 봉건 관료주의는 역사를 경외하고 그로부터 깊은 도덕적 의미를 찾아내는 조직이었다. 이에 비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존경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늘날의 우리와 아주 흡사하게 현재에 모아져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의 대화 방식은 공개적인 논쟁, 가장 엄밀한 형태의 논리로 논점을 증명하는 방식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논리가 아니라 역사로 논점을 증명했다. 학자이자 철학자인 사람이 그 지배자에게 역사적 사례를 인용하면 그것은 의미심장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아카데메이아에서 가르치고 난 다음 광장의 시장에서 휴식을 취했던 플라톤과 달리, 중국의 철학자들이 접근했던 유일한 귀는 지배자였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서양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자연관과 세계관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면에서 발견되는 서양과 동양의 시간 인식에 관한 유사성은 저자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 모두에게 ‘인간은 결국 하나’라는 가슴 뭉클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간의 문화사》는 저자 앤서니 애브니의 방대한 지식과 필력 못지않게 230여 개에 달하는 꼼꼼한 역주와 수십 장의 관련 자료 사진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의 목표는 세계의 달력과 시계들이 갖는 문화적 의미와 신과의 관계, 자연의 리듬, 그리고 종교적-정치적 음모 등에 관한 ‘전체적 조망’,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조망’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방대한 인문서는 구성이 꽉 짜여진 소설이 아니기에 관심이 가는 주제라면 어느 장부터 시작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시간을 지배함으로써 오히려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 과정을 ‘과학사+문화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 보내는 시간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