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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 전투 7첫 승전 24동래성 분투 39효시 60활과 애첩 75그믐밤 90첨자진 105천지신명 120옥포 해전 1 134옥포 해전 2 147합포 해전 164적진포 해전 177파천 190귀진 205새 전술 219통인 232전공 시비 246전하, 자책하소서 260임진강 275거북선 출전 290당포 해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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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이 큰 소리로 말을 시작하자 그제야 부동자세로 돌아왔다.
“장졸들은 듣거라. 왜군들은 우리 조선의 성을 넘을지라도 절대로 우리 조선 사람의 혼과 기백은 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의 혼과 기백이 꺾이지 않는 한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이미 승리한 것이다. 다대포 바다를 보아라. 바람이 강할수록 바다의 파도는 더욱 살아난다. 우리 조선 사람의 혼과 기백이 그렇다. 우리는 저 들판의 야생초처럼 살아남아 임금님이 계시는 이 땅을 지킬 것이다. 알겠느냐?” --- p.33 “하야튼 간에 남해는 전라도 바다의 문턱인디 큰일이랑께요.” “남해루 보낸 송한련이가 오믄 결단을 내릴 생각이구먼유.” “한심해부요 잉. 왜놈덜이 몰려온다는 소문만 듣고 비겁하게 첨사, 만호, 현령이 도망간 것이 말이요.” “남해만의 문제가 아니지유. 부산과 동래 연안의 여러 장수덜이 전선을 정비혀서 바다에 진을 치고 위세를 보였드라믄 왜적이 육지루 단박에 상륙허지 못혔을 틴디 말이유. 바다에서 왜적을 격퇴혔드라믄 나라를 욕되게 허는 환란이 요지경까정 이르지는 않았을 것인디 아숩구먼유.” --- p.114쪽 4월 30일, 비가 쏟아지는 새벽에 결국 선조는 전포 차림으로 손에 채찍을 들고 파천 길에 올랐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캄캄한 밤이었다. 비가 내려 횃불을 들 수 없었다. 돈의문(서대문)을 급히 빠져나가는 바람에 선조가 탄 말이 뒤뚱거렸다. 선조 앞에는 종묘의 관원들이 신주를 모시고 앞장섰으며 뒤에는 세자와 신성군, 그리고 정원군의 행차가 뒤따랐다. 종루의 군사도 달아나버렸는지 밤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도 나지 않았다. --- p.127 송희립은 이순신의 전술에 탄복했다. “수사 나리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 지헌티는 복입니다요.” “은젠가 말혔지만 송 군관 같은 사람이 내 옆에 있으니께 든든혀.” 이순신과 송희립은 바늘과 실 같았다. 장졸들이 그렇게 말했고 부러워했다. 이순신 곁에는 항상 송희립이 있었는데 마치 빛과 그림자 같았다. 이순신은 자신의 최측근인 참좌군관 송희립을 단 한 번도 바꾸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송희립을 피가 섞인 가족보다도 더 신뢰했다. --- p.256~257 “원 공, 거북선이 워째서 돌격선인지 봐유. 일찍이 왜적덜이 쳐들어올 것을 염려혀서 특별히 건조헌 거북선이지유.” “지금 거북선의 위력을 볼 수 있겠소이다.” “아까두 말혔지만 거북선은 돌격용 전선이지유. 앞에는 용머리를 설치혀서 그 입으루다가 대포를 쏘구, 등에는 적덜이 달라붙지 못허게 쇠못을 꽂았으며, 갑판을 덮어버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서두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읎게 맹글었지유.” --- p.302 아침 식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특히 이순신의 식사 시간은 부하 장수들 사이에서 빠르기로 유명했다. 맹수가 음식을 해치우듯 우걱우걱 삼키는 정운이나 송희립도 이순신을 따르지 못했다. 대체로 무슨 음식이든 재빠르게 먹는 것이 무관들의 습관이었다. 반면에 미식가들이 많은 문관들은 좀 달랐다. 이순신의 부하 장수들 중에서 특히 순천 부사 권준이 별났다. 쌉싸름한 고들빼기나 순천과 벌교의 짭조름하고 달달한 벌떡게장을 전쟁터까지 가지고 다니며 먹었다. 벌떡게장은 강과 바다가 합수하는 곳에서 게를 잡아 만드는데, 2, 3일 이내로 싱싱할 때 벌떡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해서 붙인 게장 이름이었다. --- p.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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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조선 수군을 이기는 군사로 이끌다
조선군은 부산과 동래 연안 바다에서부터 왜군을 막지 못했고, 잇따른 관군의 패배 소식에 선조는 한양 도성을 버리고 쏟아지는 빗속에 파천 길을 떠난다. 조정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이순신 함대는 옥포 해전, 합포 해전, 적진포 해전에서 승리하고, 사천 해전에서는 드디어 비밀 병선 거북선으로 왜 수군 장졸들을 혼비백산시켜 승전한다. 그리고 잇달아 당포 해전,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에서 크게 이김으로써 남해 바다를 지킨다. “거북선 군사덜은 어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허구만요.” “그러니께 이기는 군사가 돼야 허는 겨. 우덜의 숙명은 적과 싸우다 이기고 죽는 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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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지는 지댈 디 ?는 백성덜의 신하가 되구 싶구먼유.” 지금까지 이순신은 신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에, 두려움 없는 용맹함과 뛰어난 전술로 왜군을 막아낸 무적의 영웅으로만 알려져왔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지위고하를 떠나 동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품을 지녔으며, 군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은 그 뒤에 가려져 있었다. 정찬주 작가가 그려낸 『이순신의 7년』에서는 그동안 ‘영웅 이순신’이라는 신화적인 타이틀에 가려져 있던 그의 인간적인 뒷모습을 재현해내고 있다. 용맹함 이면의 두려움,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고민과 망설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 속에 가려진 유약함 등 한 인간으로서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순신의 이러한 모습은 충청도 아산 사투리에 묻어나면서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되살아난다. 등장인물들이 맛깔난 사투리로 이야기한다는 점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만하다.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이순신, 전라도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이순신 휘하 남도의 장수들, 그 지방의 토박이말을 쓰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많은 역사소설에서 이순신은 표준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 팔 세부터 삼십이 세로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충청도 아산에서 살았던 이순신이 표준말을 쓰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사람은 언어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고,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게다가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그 당시의 문화 및 생활상을 반영한다. 사투리로 말하는 이순신을 그려냈다는 것은 인물의 진짜 모습, 진짜 생각을 꾸밈없이 표현해내겠다는 정찬주 작가의 의지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영웅 이순신’이라는 눈부신 광휘에 가려져온 ‘진짜 이순신’을 재현해내는 데 그 의미가 있다.시대를 지탱해온 조선 백성의 삶“바람이 강할수록 파도는 더욱 살아난다.”『이순신의 7년』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전운을 감지하고 병사들과 함께 전쟁에 차곡차곡 대비하는 이순신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이야기의 절정만을 향해 치닫는 다른 소설과의 차이점이다. 이순신은 지인에게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소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 말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들이 없었다면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며, 『이순신의 7년』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여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있게 한 선비, 장수, 승려, 천민 들의 의기와 충절을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있지만 의로운 마음만으로 일어나 싸운 의병, 백성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책임을 다했던 관군,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의승 수군, 전쟁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나간 민초 등 이름 없이 제몫을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찬주 작가는 법정 스님, 성철 스님, 다산 정약용과 같이 고승이나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소설로 다뤄 호평을 받아온 작가로, 16년 전 서울에서 남도 땅으로 낙향한 뒤 곳곳에서 임진왜란 때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들의 충절과 애환을 마주하면서, 안타까움과 사명감으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인간 이순신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시대를 떠받들어온 조선 백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 머릿속에 자리한 패배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위기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혼과 기백을 소설 속에서 되살리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남도 백성들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의병장들은 물론이고, 관군과 의병장들에게 목숨을 맡겼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히어진 느낌이다.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화엄사, 흥국사 승려들로 구성된 의승 수군義僧水軍의 호국 의식이나, 대부분이 남도 출신인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피 끓는 충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색할 뿐이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눈부신 광휘光輝로 말미암아 그들의 진면이 퇴색해버린 것은 아닐까.” _작가의 말 중에서 10여 년의 취재와 철저한 고증!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더욱 풍부해진 이야기『이순신의 7년』은 작가가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고, 역사서는 물론 문중의 족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기나긴 준비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설이다.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현장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군 체계 및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장비들, 적의 조총과 활 공격을 막으면서 동시에 화포를 쏠 수 있는 돌격용 전선인 거북선 건조 과정, 물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전술 변화, 조정 대신들의 당파 싸움 및 다른 나라와의 역학관계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닭장떡국, 퉁퉁장, 서대회 무침, 갓김치, 고들빼기, 벌떡게장 등 각 지역의 음식 문화 및 풍속마저 아우르고 있다. 특히 음식은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인물들이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땅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방대한 역사적 지식이 뒷받침되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으며, 읽는 이들에게 마치 그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더욱 풍부해진 이야기들은 소설로서의 재미를 증폭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작가로서의 주제 의식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풍부한 상상력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히 엮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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