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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이 없다면 / 7생지옥 / 20금토패문 / 32정탐 1 / 44정탐 2 / 56새해 첫 눈물 / 71약탈 / 85체찰사 이원익 / 97관등觀燈 / 109휴가 청원 / 122어머니 / 133그리운 본영 / 145광양 참상 / 158말먹이꾼 피리 / 171둔전 농사의 기쁨 / 184명궁수 오언룡 / 196선연과 악연 / 209암군의 편견 / 222해남 길 / 234우수영 태평정 / 246여진과 귀지 / 259문병 / 272마지막 잔치 / 284감도는 전운 / 298요시라의 반간계 / 310망측한 싸움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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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염(無染), 벽록檗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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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총을 새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장계를 써 올린 뒤에야 삼도수군통제사를 임명하는 선조의 교서를 받았다. 교서를 전하는 선전관이 한산도까지 내려오는 데 십 일이 걸린 셈이었다. 이는 격이 올라간 전라 좌수영의 경사였다. 전라 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가 머무는 본영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휘하의 장졸들이 대장선으로 먼저 와 축하 인사를 했다. 전라 우수영의 수사나 우후도 바로 달려왔다. 그러나 경상 우수영의 원균은 오지 않았다. 원균의 부하들도 눈치를 보며 왔다가는 재빨리 떠났다. 이순신은 원균이 끝내 나타나지 않자 정사준이 만든 총을 꺼냈다. 장졸들에게 총의 위력과 사거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순신 휘하의 장졸들 모두 굴포 모래밭으로 나갔다.
“인자 왜놈 총을 무서와헐 거 읎을 겨.” --- p.16 이순신은 몇 년째 어머니께 세배하고 축수의 술잔을 올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후에도 해마다 그랬던 것이다. 촛불 밝히고 / 홀로 앉아 / 나랏일 생각하니 /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 // 병드신 / 팔순 어머니 생각에 / 초조한 마음 / 밤을 새웠네. 이순신은 세배드리지 못한 자신의 불효를 일기에 또박또박 남겼다. --- p.83 ‘내가 병들어 누운 지도 어느새 일 년이 된다. 듣건대 내 병을 고치는 데 명약이 있다고 한다. 조선의 호랑이 뼈를 삶아 물을 마시고 호랑이 고기를 구워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 보내도록 하라.’ 히데요시의 난치병이란 등골에 물이 차 허리를 쓰지 못하는 중병이었다. 가토와 나베시마는 물론이고 다른 왜장들도 충성 경쟁하듯 히데요시를 위해 사냥한 호랑이를 바쳤다. 나중에는 산 호랑이도 왜국으로 보내졌던바, 히데요시의 밥상에는 날마다 호랑이 고기 요리가 올랐던 것이다. --- p.89 유랑민들의 몰골은 비참했다. 이시경의 말처럼 징집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병신이 된 사람은 없었지만 황달에 걸려 얼굴이 퉁퉁 부었거나 몸에서 고름이 질질 흐르는 환자들이었다. 유랑민들의 몸에서는 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산발한 유랑민들이 이순신 앞에서 자루가 넘어지듯 넙죽 엎드렸다. --- p.163 도양 둔전은 녹도진 가는 길에 있었다. 이기남은 둔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체찰사 일행과 이순신을 맞이했다. 둔전을 바라보는 체찰사 이원익과 체찰부사 한효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두 사람은 신천지에 들어선 듯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 공, 정녕 이곳이 우리나라 땅이란 말이오?” “전라 좌수영 관내 도양 둔전이구먼유.” “어찌 여기만 이렇게 풍년이 들 수 있단 말이오.” 이원익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효순도 감탄했다. --- p.194 한효순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순신은 마음이 무거웠다. 선조가 자신을 신임하지 않고 불신하는 것까지는 참고 견딜 수 있으나 왜적과 싸움 한번 해보지 않은 신하가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에 심한 괴리감이 들었다. 수군이 거제만 점령하면 왜군의 보급로가 끊어질 것이라는 둥, 명과 왜가 강화 협상을 벌이느라고 큰 싸움이 없는데도 왜군이 대포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서 싸움이 소강상태라고 하는 둥 조정의 임금과 신하들의 판단과 인식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 p.230 이순신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소리치며 흐르는 울돌목의 바닷물을 유심히 보면서 걷기만 했다. 상념에 빠져서인지 이정충이 하는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이순신이 한마디 뱉어냈다. “작은 군사로 큰 군사를 이길 수 있는 바다구먼.” “워째서 그랍니까유.” “물살이 이렇게 쎈 디는 우리나라에 읎을 겨. 바다 폭이 좁은 것두 그렇구.” “왜놈덜을 뜰채루다가 낙지잽이 허듯 잡으믄 되겄구먼유.” --- p.255~256 닷새 후. 선조는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내시 중에서 왕명을 전하는 승전색承傳色을 시켜 승정원에 비망기를 전했다. 대신들을 별전에 불러놓고 전명傳命하지 않고 굳이 비망기를 내려보낸 까닭은 뻔했다. 자신의 입장이 떳떳하지 못했고, 대신들 간에 이견이 분분할 수도 있어서였다. 비망기의 요지는 임시로 한양을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왜군이 재침해 올 경우를 대비한 파천 계책이었다. 임진년처럼 허둥지둥 파천하지 않겠다는 선조 나름대로의 군색하기 짝이 없는 대책이었다. --- p.306 “쯧쯧쯧.” “지도 요로코롬 지저분헌 싸움은 첨이그만요.” “그려.” “적장과 내통하고 있는 김응서 모가지를 댕강 잘라불고 잡그만이라우.” “에러운 일이여. 임금님은 물론이구 윤두수, 이산해 같은 대신덜이 김응서의 장계를 지달리고 있다니께 말여.” “요시라 이중 첩자질에 모다 놀아나는 꼴이그만요.” “그러니께 우덜이라두 정신 바짝 차려야 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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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둘포로 진을 옮긴 이순신, 조총의 개발에 성공하다거제 남쪽 삼십 리 떨어진 한산도 둘포는 배를 감출 수 있는 포구로, 둘포 앞바다는 왜선들이 전라도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길목이다. 이순신은 진을 옮기고 앓아눕는다. 진주성이 사투 끝에 함락되었고 광양, 순천 등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였다. 이순신은 왜의 조총을 연구시켜 드디어 총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명실상부한 수장이 되지만 조정 대신들의 편견과 무지함으로 파직당하는 용맹한 장수들과 굶어 죽어가는 피난민들까지 근심해야 하는 고단함에 처한다. 영남은 초토화되다시피 하였으므로 초근목피로도 연명이 되지 않아 시체를 먹고 사람을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났으나 아전들이 구휼미를 착복하니 생지옥이 따로 없다. 금토패문과 이순신의 진해, 당항포 해전의 승리선조의 유서는 왜군을 섬멸하라는 것. 명나라 총병 유정은 왜적 토벌을 금한다는 것. 이순신은 두 번에 걸친 명의 금토패문에도 불구하고 진해와 당항포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이순신은 명의 선유도사 담종인이 보내온 금토패문이 실은 왜장의 농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진해와 당항포에서 전선 서른한 척을 잃은 왜장 고니시는 조선 수군의 공격은 강화 협상 위반이라는 억지 항의를 명의 총병 유정에게 보낸다. 명나라가 왜국과의 강화 협상에 매달리는 것은 대륙에 혹심한 흉년이 들어 군량미도 댈 수 없고 더 이상 군사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의승장 유정은 왜장 가토에게 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왕자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왜국이 군사를 돌려 돌아가는 것만이 협상의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왜장 고니시는 조선의 도공, 세공 인쇄쟁이들을 붙잡아 왜국으로 실어보낸다. 총사령관인 우키다는 궁궐과 사대부 저택의 서적들을 약탈하고 가토는 산중 고찰의 신라와 고려 범종에서부터 불상, 석탑까지 뜯어간다. 구로다 나가마사는 아예 절 한 채를 통째로 해체해 반출하였고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태백산맥에 자생하는 어린 소나무들을 대량으로 뽑아갔다. 심지어 히데요시의 밥상에 조선의 호랑이가 놓였으니 그 약탈의 심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체찰사 이원익과 이순신의 휴가 청원체찰사 이원익은 이순신의 건의에 따라 피폐해진 여러 섬의 진들을 통폐합하고 삼도 수군 통제영이 있는 한산도를 시찰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풍모에 탄복한다. 이순신이야말로 조선 수군에 없어서는 안 될 장수임을 깨닫는다. 이순신은 진주에 머무르고 있는 이원익에게 휴가를 청원한다. 이번에는 어쩐지 어머니를 꼭 봬야 될 것 같아서였다. 이원익은 대놓고 허락할 수 없어 전라도로 시찰을 떠난다고 답한다. 이심전심. 이순신은 이원익의 전라도 점고길에 동행하면서 경상도의 바다와 물목의 형세를 파악하고 양민들의 처참한 참사에 가슴 아파한다. 이원익 체찰사 일행은 이순신이 농사를 짓도록 한 도양 둔전에 풍년이 든 것을 보고는 감격한다. 도강현(현 강진)에 도착한 체찰사 일행과 이순신은 전라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원균의 허장성세와 천박함에 실망하고 체찰부사 한효순은 선조의 원균에 대한 편애와 조정의 이순신에 대한 오해를 근심한다. 요시라의 반간계反間計와 암군 선조의 교지 ‘이순신을 잡아들이라’이순신은 전라 우수영에서 울돌목이 전략적으로 탁월한 바다 물목임을 확인하고는 ‘작은 군사로 큰 군사를 이길 수 있는 바다’라고 확신한다. 이순신은 좌수영 본영에서 어머니 초계 변씨의 뒤늦은 생일상을 차려드리고는 마지막 생일잔치가 될 것 같은 직감에 눈시울을 적신다. 한편 조정에서는 선조가 히데요시의 재침을 두려워하여 해주 행궁의 장태?胎를 살피러 가겠다고 핑계를 대자 모처럼 반대 의견들을 낸다. 재침하면 해주보다는 강화가 낫다고 선조를 달랜다. 그사이 경상 우병사 김응서는 이중 첩자 요시라(시치다유)에게서 첩보를 얻어내지만 도리어 왜적의 반간계(이간책)에 넘어가 아군의 전략을 노출시키고 만다. 이순신은 요시라의 이간책이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술책임을 뻔히 알지만 김응서의 직속상관인 권율조차도 선조가 신임하는 김응서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므로 부산포로 출진하는 경상 우수영 배에 김응서가 타고 있는 것을 용인한다. 드디어 사헌부까지 나서서 이순신을 잡아들이자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린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지는 지댈 디 ?는 백성덜의 신하가 되구 싶구먼유.” 『이순신의 7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변방의 장수로서 회한에 찬 이순신, 뛰어난 전략과 용맹함 이면의 불안과 두려움에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순신, 군사의 목숨을 책임진 장군으로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이순신, 전쟁에 쫓기고 굶주린 양민의 생계까지도 근심하는 이순신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순신의 모습은 충청도 아산 사투리에 묻어나면서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되살아난다.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 여덟 살부터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충청도 아산에서 살았던 이순신이 서울말을 쓰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호남의 의병군들이 당연히 호남 사투리를 쓰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나는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말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다. 임금과 대신들은 부끄럽게도 의주로 도망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당시 백성들의 분투를 복원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헌정하는 소설이 되게 하고 싶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위기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혼과 기백“바람이 강할수록 파도는 더욱 살아난다.”『이순신의 7년』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전운을 감지하고 병사들과 함께 전쟁에 대비하는 이순신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이야기의 절정만을 향해 치닫는 다른 소설과의 차이점이다. 이순신은 지인에게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소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 말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호남이 없었다면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며, 이 점에 주목하여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있게 한 선비, 장수, 승려, 천민 들의 의기와 충절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시대를 떠받들어온 조선 백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를 잠식한 패배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남도 백성들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의병장들은 물론이고, 관군과 의병장들에게 목숨을 맡겼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히어진 느낌이다.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화엄사, 흥국사 승려들로 구성된 의승 수군義僧水軍의 호국 의식이나, 대부분이 남도 출신인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피 끓는 충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색할 뿐이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눈부신 광휘光輝로 말미암아 그들의 진면이 퇴색해버린 것은 아닐까.” _작가의 말 중에서 10여 년의 취재와 철저한 고증!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더욱 풍부해진 이야기『이순신의 7년』은 작가가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고, 역사서는 물론 문중의 족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기나긴 준비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설이다.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현장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군 체계 및 병사들이 사용하는 화살의 종류와 쓰임새, 무기나 장비들, 적의 조총과 활 공격을 막으면서 동시에 화포를 쏠 수 있는 돌격용 전선인 거북선 건조 과정, 물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전술 변화, 조정 대신들의 당파 싸움 및 명나라와의 역학관계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들이 생생한 지역 사투리로 말하고 닭장떡국, 퉁퉁장, 서대회 무침, 갓김치, 고들빼기, 벌떡게장 등 특히 호남의 음식 문화 및 풍속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의 빼어난 특장이다. 전 7권으로 2018년 2월 완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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