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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라캉: 주체와 무의식 도둑맞은 편지, 도둑맞은 무의식 무의식의 이중구조와 주체화 2. 푸코: 담론과 권력 푸코의 담론이론: 표상으로부터의 탈주 권력의 미시정치학과 계급투쟁 3. 들뢰즈/가타리: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 유목주의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자본주의와 포획장치 자본주의의 공리계와 그 외부 부록: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하여 리요타르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죽음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이론 탈근대적 사유의 정치학: 근대정치 전복의 꿈 찾아보기 |
이진경,본명 : 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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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준(timidbear@yes24.com)
1980년대를 뒤흔들었던 저 유명한 저작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 이진경에게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실천철학인 맑스주의 이론을 넘어, 거시적이고 대자적인 이론이 아닌 자본주의 외부의 영역에 대한 탐색이라는 숙제를 던져주었다. "맑스주의의 외부를 통해 맑스주의를 사고하고자 했던 여정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책머리의 진술이 이 같은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하나의 전환점처럼 등장한 이 책은 그동안 이진경이 지녀온 문제의식을 뛰어 넘는다기보다는 그 준비를 하기 위한 첫번째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맑시즘에서 다루지 않았던 무의식의 문제와 그 무의식과 결합해서 등장하는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 그리고 사회적인 담론 체계에서 비롯된 권력과 미시 정치의 영역이 검토되고 있다. 종국에 가서는 꾸준히 시도되어왔던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를 이론적으로 검토하여 자본주의 비판과 저항의 방식으로서의 유목주의를 설명한다. 이것만으로 부족했을까? 저자는 부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원거리 비판을 통해 새로운 사회상과 정치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철학책은 철학보다 어렵다. 철학을 이해하기보다는 철학책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도 이런 생각을 바꾸게 하지는 못했다. 사회상의 분석이나 문화 현상이 곳곳에 예시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어려운 철학적 논제를 더욱 어렵게 보이게 하는 듯한 인상까지 보이고 있다. 숨차게 마지막까지 읽다 보면 이 책은 사회화를 위한 전단계일 뿐 전면적인 사회와의 연관성을 찾는 것에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이론 체계를 성립시키는 것에 더 많은 힘을 쏟으며 인식의 변혁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인식의 변화는 라캉, 푸코, 들뢰즈와 가타리 네 명의 등장인물로 설명되고 있다. 욕망과 언어 구조를 통해 무의식을 설명하고 있는 라캉과 정신병, 임상의학, 계보학을 순서를 쌓여가는 푸코 이론의 궤적을 따라 담론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인 담론으로 권력이 설명되고 그 특색 있는 조합인 미시정치학의 화두가 읽는 이를 긴장시킨다. `권력의 미시정치학과 계급투쟁'이라는 주제는 이진경의 의지적인 목적을 드러내는 것처럼 1980년대 한국 사회 운동의 신화를 뒤엎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와서 등장하는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은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인과론에 의존한 역사적 사실보다는 우연에 기대는 `사건'으로 분석해나가는 역사적 유물론은 사건의 계열화와 의미 그리고 이중 인과성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사건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즉 사건의 배치와 지층화를 통해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해석한다. 이제 현대 자본주의로 비판의 화살은 돌려진다. 주류나 비주류 경제학이 공히 사용하고 있던 경제학적 개념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품과 가치, 노동과 교환, 스톡의 개념을 중립적인 언어가 아닌 그 자체가 지니는 특성인 `포획'이라는 개념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인간 지배를 설명하고 있다. 사회를 귀로 보고 눈으로 듣고 코로 말하며 입으로 냄새 맡을 수는 없을까? 저자는 우리 머릿속에 정형화되어 있는 사고의 틀을 형성한 수많은 `철학적 사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도 철학의 외부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부와 외부를 물리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사유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이 어려운 책의 저자에게 조용히 대들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일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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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진경이 말하는 '외부'
저자 이진경은 「책머리에」에서 이 책 『철학의 외부』가 "맑스주의의 외부를 통해 맑스주의를 사고하고자 했던 여정의 흔적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탈주'라는 말을 우리 귀에 익숙하게 만든 저자가 지금 우리에게 새롭게 들고 온 '외부'는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일까? 저자가 말하는 외부는 단지 외연적인 경계를 통해 정의되는 개념, 다시 말해 단순히 '내부'라는 말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외부가 아니다. 여기서 외부는 내부의 대척점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내부를 가능하게 하는 외부이며, 그 내부가 존재하기 이전의 모든 방향을 향해 열린 잠재성 전체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철학들은 자신들의 사유에 내부성을, 형식을 부여하여 그 자신의 사유를 어떤 특정한 조건과 결부된 사유로 다루기보다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절대적인 진리(헤겔의 절대정신처럼)로 서술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 내부로 싸안을 수 없는 다양한 외부들마저 그 내부성과 형식으로 이해하고자 했으며, 따라서 다양한 현실을 무리하게 그 사유에 꿰어맞추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나 외부란 그 사유 안에 들어와 있는 비-사유고, 사유가 그것의 소재로 삼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외부를 통해 사유하고 외부에 의해 사유하는 철학은 외부를 무리하게 제거하려는 그 어떤 시도와도 거리를 둔다. 이런 의미에서 외부를 사유하는 것은 보편성의 형이상학을 벗어나려는 일이며, 또한 이런 점에서 외부를 사유한다는 건 그 자체로 '탈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단단한 내부성과 보편성의 형이상학을 벗어나는 철학의 탈주. 저자가 라캉과 푸코, 들뢰즈를 다룬 이 책의 제목을 '철학의 외부'라고 이름붙인 건 그들이 바로 외부를 그들의 사유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외부를 통해 사고하려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사유를 '탈주의 철학'이라 부른 바 있다. 고정된 어떤 불변의 보편적 진리에 반기를 든 철학의 외부, 그 외부에 대한 사유가 이 책 『철학의 외부』에는 담겨 있다. 라캉, 푸코, 그리고 들뢰즈 - 그들을 통해 만나는 외부 1) 라캉 ― 너무 일찍 외부와 단절하고 만 사유 라캉이 그의 사유에서 크게 빚지고 있는 두 축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과 소쉬르로부터 비롯된 '구조주의 언어학'이다. 데카르트가 기초를 세우고 칸트가 재구축한 근대철학은 잘 알고 있듯 불변의 확실한 진리를 찾고자 했으며, 그 사유의 과정에서 '나'라는 주체를 중심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근대철학에 사유의 외부였던 '무의식' 개념을 들이밀어 '확실한 주체'를 해체시켰다. 그리고 '구조주의 언어학'은 말하는 것은 주체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 이전에 성립해 있는 언어적 질서에 의해 말해지게 되는 것일 뿐임을 주장했다. 근대철학을 해체하는 이 두 축은 라캉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단적으로 그가 말한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구호 속에 그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이 라캉이나 프로이트와 일찍 결별한 이유로 들었듯이, 라캉은 모든 것을 무의식 개념에서 시작한 동일성과 동일시로 해석하고 있어, '외부의 사유'로 시작하였으나 결국 내부화하는 사유로 귀착하고 마는 라캉적 사유의 한계를 보여준다. 2) 푸코 ― 외부를 통해 사유했던 담론과 권력 푸코는 권력의 철학자, 혹은 단순히 근대적 합리주의에 반하는 반합리주의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푸코야말로 그 자신이 '외부의 사유'를 말한 바 있듯, 외부를 통해 사유하고 외부에 의해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본문에 푸코에 대한 글로 '담론'개념을 다룬 것과 '권력'개념을 다룬 것, 두 개의 글을 싣고 있다. 존재하는 것은 담론형성체뿐이라는 라클라우, 그리고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데리다 등 담론이론의 문제설정 자체에 충실한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푸코는 담론을 다룰 때조차 담론 외적인 것을 강조하며 담론개념 자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긴장을 유지한다. 저자는 푸코의 담론개념이 계속 변화한다는 데 초점을 두며, 그것이 비담론적 형성체(담론의 외부!)와 연결되는 부분, 그리고 실천과 연결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우리는 푸코와 함께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 광기와 정상인의 경계를 나누는 담론의 형성을 추적해 가면서, 푸코의 담론이론이 담론의 영역을 넘어 비담론적 형성체와 만나는 지점을 보게 되며, 담론이 갖는 사건적 특성을 만나게 된다. 한편 푸코의 권력이론에서 우리는 담론적인 것뿐 아니라 비담론적인 것을 포괄하는 배치(dispositif)라는 개념을 만나게 된다. 푸코는 감옥이나 성적 배치를 통해 작용하는 권력관계를 드러낸다. 배치가 달라지면 권력관계도, 그 표현양식도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절대적인 보편성을 갖는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3) 들뢰즈/가타리 ― 접속과 횡단을 통해 외부와 만나는 사유 들뢰즈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차이' 그 자체를, 그리고 그것이 갖는 생성적인 능력을 포착하려는 철학적 기획 속에서 자신의 저작을 생성했던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사건'이라는 개념을 통해 철학이 자신의 외부를 다루는 방식과 함께 그 연장선상에서 자본주의의 공리계와 그 외부, 착취와 포획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들뢰즈/가타리가 '접속'과 '횡단'을 말하는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듯, 그들은 보편성에 머물거나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 끌어들여 붙박아 두려는 그 어떤 시도와도 거리를 둔다. 끊임없이 사유의 안팎을 횡단하고 외부와 접속하며 그들의 사유를 만들어 간다. 들뢰즈/가타리는 사고가 사건으로 되는 것은 계열화를 통해서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각각의 항들은 어떻게 계열화(주로 시간적인 선을 따라 그려진다)되고, 배치(주로 공시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다)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의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면 식당의 배치 안에서 입과 손이 식기와 접속하여 영양의 흐름을 채취하고 절단하는 경우 그것은 '먹는 기계'가 되지만, 침실의 배치 안에서 입과 손이 성기나 성감대와 접속하여 리비도의 흐름을 채취하고 절단하면 '섹스 기계'가 되는 식이다. 입과 손이 '먹는 기계'에서 다른 배치인 '섹스 기계'로 변하기 위해선 탈영토화한 다음 재영토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어떤 배치도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과정을 통해 다른 배치로 이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말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어떤 관계, 배치를 통해서만 그 항의 의미나 기능을 규정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광인 역시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정신병자'가 됨을 말했던 푸코를 떠올릴 수 있다. 푸코 역시 마르크스나 들뢰즈/가타리와 같은 배치에 대한 연구, 역사유물론적인 연구를 했던 셈이다. 이 책 『철학의 외부』에 실린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글 4개는 『천의 고원』에 대한 해설서로 봐도 손색이 없다. 들뢰즈/가타리의 사유가 응축된 『천의 고원』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배치, 유목, 포획, 소수자 등―을 , 저자 이진경이 4개의 글에 『천의 고원』 본문을 인용해 가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철학'이 말하는 것 지금 저자가 왜 '철학의 외부'를 말하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80년대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마르크스주의를 내면화했던 저자는 '사회주의 붕괴'라는 사건을 맞아 자신이 갖고 있던 사유의 외부, 마르크스주의의 외부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 그가 만나고 천착하는 사유는 역설적이게도 다시 '역사유물론'이다. 그는 마르크스에서 출발하여 라캉과 푸코, 들뢰즈를 거쳐 결국 '역사유물론'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진경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