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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청년패스 오늘의책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생각의나무 200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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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로 개정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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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그래, 말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초콜릿과 SOFA
한 소방관의 죽음
떠나가는 배
책임질 수 없는 책임
시장과 전장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
러브호텔과 러브
대학 졸업식 풍경
'국민정서'의 허깨비
서울에 비 내릴 때 평양에도 비 온다
금강산의 봄
말하기의 어려움
그래, '말'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개발자국으로 남은 마을
사실과 의견
'개수작'을 그만두라
언론의 부자유가 언론의 자유다
두 죽음을 곡함
돈.오카네.머니
'해먹다'와 카케무샤
협잡이 '디지털'화될 때
식사나 함께
신창원 사태
고요한 동강
배고픈 시대의 인권
대문 밖의 황천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의 공간정서
서울 엘레지
드리나강은 누가 건널까

인간의 몸과 손
올림픽에 대한 단상
공차기
축구를 좋아하는 까닭
자전거 타기
광어냐 도다리냐
'후루룩 목이 멘다'라면
외로운 맹수, 소설가의 생존 방식
내 사랑 이중섭
다시, 임화를 추억함

개발바닥의 굳은 살을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끈, 어선의 밧줄
강가의 사랑, 산속의 슬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며
꽃몸살 나는 봄
수박과 자두
자연의 강, 마음의 강
여름 꽃밭에서 가을 꽃밭으로
양희은, 김추자, 심수봉
여자 여자 여자
또 여자 여자 여자
웃는 미녀 향해 발구르는 여자들
이 땅의 아줌마들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저자 소개 1

金薰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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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49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1133

책 속으로

원고료로 받은 1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마누라 몰래 쓰려고 책갈피 속에 감추어놓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맹자』속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옛 성인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다른 책으로 바꾸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맹자』속에도 없고, 『공자』속에도 없고, 『장자』속에도 없고, 제자백가서와 동서고금을 모조리 뒤져도 없다. 수표를 찾으려고 『장자』를 펼쳐보니 '슬프다. 사람의 삶이란 이다지도 아둔한 것인가! 외물에 얽혀져 마음과 다투는구나'라고 적혀 있어 수표 찾기를 단념할까 했으나 또 그 다음 페이지에 '무릇 감추어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내 언젠가는 기어이 이 수표 두 장을 찾아내고야 말터이다.

--- p.79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에서

신의 일기에 따르면, 흉악범인 자신에게도 '1퍼센트쯤'의 인간성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말도 빈말은 아닌 듯싶다. 검거 직후 결박된 그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웃옷을 치켜올려서 등의 문신을 보여주는 형사들에게 분노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분노의 표정은 그가 말한 '1퍼센트의 인간성'에 대한 증거다. 인간이란 그래야 하는 것이다. 어찌 수사관들이 노획품의 성능을 자랑하듯 만인이 보는 앞에서 피의자의 옷을 들추고 껍데기를 벗겨서 그 알몸을 현장에서 보여줄 수가 있는가. 그의 문신을 현장발 생중계 화면으로 보아야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고 텔레비전의 알릴 의무가 아니다. 국민의 알권리는 그의 등판에 문신이 있다는 수사책임자의 신뢰성 있는 확인으로 족하다. O양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저마다 그 신원을 확인하려는 것이 알 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창원 사태」에서

세상을 향하여 말할 때, 나는 늘 나 자신의 어지러운 생명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내 말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덕지덕하였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잊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날아가는 솔개나 헤엄치는 물고기는 늘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미물들의 삶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아무래도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말은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 나는 허술함의 운명을 연민한다.

여기에 묶는 글들은 내 한미한 초야에서 때때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썼던 토막글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글조각들을 박광성 사장이 챙겨왔을 때 나는 민망하고 무참하였다. 이 책은 그의 강권에 의하여 세상에 나간다.

다시 만경강 하구의 저녁 갯벌을 생각하고 있다.

--- 2002년 봄 김훈 씀

삶은 나날이 심층구조를 잃어가고 있다. 그것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제는 영영 불가능해 보인다. 이 부박한 삶의 영양소로서 라면은 몸속으로 들어온다. 시간의 작용이나 기다림, 환상, 스밈, 우러남처럼 깊이를 가져오는 모든 기능이 라면 속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전통음식의 맛을 표방하는 라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깊이에 대한 인간의 그리움은 아직도 살아 있는 모양이다. 그런 요란한 광고의 라면을 뜯어보니,스프라고 불리는 조미료가 그 `깊이'를 연출하고 있었다. 국물 위에 스프를 뿌리면, 마른 파 가루가 먼지처럼 떨어져 내린다. 이 먼지가 '심층'인가. 라면을 먹으며 늙어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다. 다시 라면을 먹으면서, 낯선 시간들이 삶 속으로 스며들고 절여져서 새로운 늙음으로 늙어지기를 기원한다. 늙음이 이 부박함 속에서의 낡음이 아니기를, 저 부박함이 마침내 새로움이 아니기를.

---「'후루룩 목이 멘다'라면」에서

사실은, 심수봉 얘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다. 나는 젊었을 때 양희은을 좋아했다. 좀 더 나이 먹어서는 김추자를 좋아했고 지금은 심수봉을 좋아한다. 나는 목소리를 통해서 심수봉을 체험한다. 심수봉의 여성성 속에서, 여자로 태어난 운명은 견딜 수 없는 결핍이다. 이 결핍은 의식화된 것도 아니고 인문화된 것도 아니다. 이 결핍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심수봉은 그 결핍을 막무가내로 드러내 보인다. 심수봉의 목소리는 그 결핍의 자리로부터 남자의 안쪽을 향해 직접 쳐들어오면서 노래한다. 남자로 태어난 운명도 견딜 수 없는 결핍이고 빈곤이다. 그 결핍을 향해 바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심수봉은 남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여가수다.

---「양희은, 김추자, 심수봉」에서

남자에게도 여성성이 있고 여자에게도 남성성이 있게 마련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그것을 긍정해 주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잘 빠졌다'는 말은 공업적인 말이고,더러운 말이다. 그 더러움은 사물성에서 온다. '잘 빠졌다'는 말 속에서 잘 빠진 여자는 소외된 여자다. 인간과 언어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인간이,인간이 아닌 것으로 바뀔 때 더러움이 발생한다. 아름다움의 내용을 억압과 사물성이 아니라,자유로 가득 채우는 여자가 아름답다. 그런 여자가 살아 있는 여자고,살아가는 여자고,삶을 영위하는 여자다. 아들들아,연애를 하려거든 그런 여자하고 해라.

---「여자 여자 여자」에서

나는 아직도 죽음을 내 실존의 불가피한 귀결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도 덜 살아서 그런지,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일회성을 감당해 낼 만한 마음의 힘이 없다. 인연이나 업장의 소멸이 무섭고, 불구덩이나 흙구덩이도 무섭지만 그 무서움을 인식하는 나 자신이 이미 증발해 버려서, 무서움조차도 존재할 수 없는 그 대책 없는 적막은 더욱 무섭다. 내가 고백할 수 있는 삶의 인식이란, 삶은 살아 있는 동안의 느낌의 총화일 뿐이라는 정도다. 비천한 생사관일 테지만, 그 너머를 말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몸의 실존을 배반하는 거짓말일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의 슬픔이나 기쁨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죽음의 적막에 비하면 그래도 내용이 있지 싶다.

--- p.103

그리고 너는 징병 신체검사에서 현역 복무 판정을 받았고, 이제 입영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아들인 너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너는 결국 너의 그 별것도 아닌 평발 증세를 너의 어머니께 강조하면서 재심받을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와 너의 어머니는 다만 무력하게 한숨을 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아들아, 나는 겨우 이렇게 말하려 한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못난 나라의 못남 속에서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라의 쪽박을 깨지 않는 일이라고. 너의 의무는 몇몇 비굴한 이탈자들에 의하여 신성이 모독되었지만,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에서

출판사 리뷰

타락하고 혼탁한 세상을 향해 퍼붓는 한 고독한 방외인의 일갈 -김훈의 世說
이 책은,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이 지난 수년 간 여러 매체(《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저널》 《일요신문》 《부산일보》 《작은이야기》 등)에 기고해 온 시론을 묶어놓은 것이다. 오랜 동안의 기자 생활을 통해 김훈이 써낸 글은 무수할 터이나, 최근의 것을 우선으로 하여, 김훈의 '의견'이 생략되고 '사실'만이 나열된 글을 제하고 한 권 분량으로 추려냈다.
날카로우면서도 특유의 적실하고 화려한 수사가 번득이는 김훈의 문체는 김훈류라는 초유의 문장체를 만들어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기도 했는데, 이 책에 수록된 55편의 칼럼들은 그 김훈 특유의 문장과 첨예한 정신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는 명문들이다. 오랜 언론인 생활에서 얻은 직관과 명석한 판단력, 그리고 흔들림 없는 지성의 사유는 김훈 시론의 본령을 차지한다. 그의 산문은 단호하면서도 은유적이고, 시적이면서도 논리적이며, 비약적이면서도 검박하다. 산문의 휘황한 세계를 모두 아우른다. 그리고 그의 산문에 있어 매력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이 책에 수록된 것과 같은 짧은 시론 가운데 스며 있다.
이 김훈의 시론집을 펴내면서 "김훈 世說"이라 별칭한 까닭은 이 책이 세상이 처한 위기를 극적인 언어로 예시하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의 세상 읽기라는 의미도 가지면서, 김훈을 읽는 세상의 평(世評)에 대한 김훈 자신의 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질문이 말이 안 된다"는 간투사로 시작해 시속을 깨고 거슬러, 증명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말을 찾는 김훈의 직필은 자신의 말이 아무 것도 아닌 글이라 벼르면서 '대중정서'와 '정치언어'의 허위를 도발한다.
세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뒤섞은 풍자,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정치와 문화와 삶과 예술과 자연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 시론집에서 김훈은 우리 사회의 완강한 엄숙주의의 뒷전을 까발리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동형동색에 딴지 걸고, 공공적 수치심의 부재를 질타하고, 사회 문화적 언설의 신기루를 지시하고, '여론'이라는 해석 코드의 오류를 직시하고, 드러난 사건의 다른 이면을 들추고, 거대 개념에 대한 상투적 이해를 의심하고, 시속의 부박함을 해석하면서, 윤리의 가장 생득적인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 수 있는 한 실존적 윤리의 가능태를 보여준다.
이 책에 나타난 김훈은 그간 보여주었던 정제된 언어의 전범과는 다르다. 시론을 기술하는 김훈의 어조는 때로는 격하고, 역설적이고, 짓궂으며, 유머러스하다. 가령 2001년의 언론 개혁 파동을 초야에서 지켜본 김훈에게 그것들은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개수작'이며, 정치란 협잡이며, '국민정서'라는 허깨비는 파시즘의 도구이며, 세계관은 이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개발바닥을 보며 내 발바닥의 굳은살을 연민하는 하심(下心)이며, 젊은 날 여자는 꽃으로 보였으며, 솔직히 말해 사내의 생은 돈을 버는 것이 된다. 김훈에게 이러한 단호한 판단의 준거는 생명과 몸의 정직성, 실존적 삶의 단순성, 말하기의 허망함, 언어의 양면성, 여자와 자연의 찬란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지는 동서양 고전에 대한 섭렵을 바탕으로 한 인문적 사유에서 비롯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부와 2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사건에 대해 검침하는 글들이며, 3,4부는 예의 김훈 문체의 매력을 겸비한 문화적 단상들이다. 1부에서는 병역 문제, 주한미군, 러브호텔, 구조개혁, 남북 문제, 국회 파행, 이영자 파동 등을 통해 언어의 작동방식과 그 한계 등을, 2부에서는 언론 개혁 파동, 정치 부패, 신창원 사태, 동강댐 건설 문제, 인권, 죽음의 일상화 등을 통해 확증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감의 조건을, 3부에서는 도시의 일상 공간, 교통 문제, 몸, 추억의 역사성, 글쓰기의 자의식 등을 통해 세계관과 삶의 거처와 실존적 삶의 부조화를, 4부에서는 여성과 자연, 늙음, 삶의 현장, 돈의 의미 등을 통해 희미해져 가는 몸을 가진 존재의 참 면모에 관한 성찰을 풀어놓는다.
김훈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불안과 위기를 통해, 시대가 처한 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침묵과 침사마저도 하나의 발언의 레테르가 되었다. 그의 잦은 존재 이전은 한국 현대의 불안한 밑그림자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위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병증을 첨예하게 예시했던 것이다. 이 책은 초로에 접어든 한 명민한 시론가이자 이 시대의 지성으로서 김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한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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