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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해'와 '깨달음'의 사이
'법문'은 '강연' 듣듯 학습하는 게 아니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우주 온갖 '문제'는 본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의증(擬症)을 내는 것은 '깨달음'의 첫걸음이다 '상식'이라는 이름의 때 '마음'밖에는 알아야 할 만한 단 하나의 법도 없다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이 '움직이는 마음'이 그대로 '고요한 마음'이다 2.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과연 맨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가?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에서 항상 반쪽이면서 동시에 늘 꽉 차 있다 '짓는 자'도 없고 '받는자'도 없다 불섶을 태우는 게 아니고 "이 뭇꼬?" 온갖 법은 스스로 성립되는 일이 없다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썪였느니라 3. 모든 것은 빛의 얼룩으로 화(化)하고... '올바른 수행'이란 '마음'과 '경계'는 허망하여 서로 알지 못한다 '허공'에는 '방향'도 '위치'도 없다 모든 것은 빛의 얼룩으로 화(化)하고... 우주 공간에는 <절대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그 '영리한 마음'이 공부에 가장 해롭다 눈 앞에는 티끌만한 한 법도 없다 '여실히 본다'란, '허깨비처럼 본다'는 뜻이다 4. 모든 법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마음;으로 깨달아지기를 기다리지 말라 모든 '말'은 뿌리 없는 나뭇가지에 바람 스치는 소리와 같다 '말'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일 뿐, '경험' 그 자체는 아니다 모든 '수'에 '0'를 곱하면 왜 '0'이 되는가? '분별 없는 분별'이 '동력'이 된다 가로 세로 높이는 없는데 '위치'만 있다니? 5. 큰 자비는 <움직임 없는 모습>이다 추측하고 따져 아는 것은 '마음'이 아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니 '존재하는 것'과 '일어나는 일'은 둘이 아니다 이 세상에 주욱 지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고 죽고'하긴 하는데 실은 나고 죽는 일이 없다 '사물'이 없으면 '공간'도 없다 300,000km/sec의 '절대속도'는 '정지상태'와 다르지 않다 6. 먼저는 미했다가 나중에야 깨닫는 게 아니다 행복을 쫓는 자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선지식(善知識)은 가르칠 게 없는 사람이다 '깨달음'의 앞 뒤가 한결같은 게 '바른 깨달음'이다 일승의 불과(佛果)는 '과보'(果報)를 의지하지 않는다 '닦는 자'도 '게으른 자'도 모두 깨치지 못한다 자기의 무명(無明)이 본래 부처이다 7. 이 '마음'을 떠나서는 '신'도 '부처'도 없다 이 '마음'이 그대로 '신'이요, '부처'요, '법'이다 우상숭배를 막은 건 불조(佛祖)의 본래 뜻이다 '성품'을 보존하고 '무명'을 다스리는 게 예배다 '회심'하여 늘 각관을 밝게 함이 염불이다 '바른 지혜'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바른 생각'이란 <생각 없는 앎>을 말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게 다 환(幻)과 같다 불 · 보살을 공경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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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론 된 본분납자라면 결코 어떤 경우에도 만법의 '성품 없는 도리'를 잊는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의지함이 없고 머무름 없는 성품'(無衣住性)을 허무는 일은 없지요. 즉 순일한 허공성으로서의 '본분'밖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그들은 분명히 목전에 띠끌 하나 없다는 걸 압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들은 어느 것 하나 허물 것이 없다는 것도 알지요.
이 '무의주성'(無衣住性)이란 곧, '있음'에도 속하지 않고 '없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이것 역시 '본분'에 대한 설명 내지는 '본분'을 드러내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함이 없고 머무름 없는 성품'을 허물지 않는다>는 말은 곧 <'자기의 본분'을 등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본분을 밝히고 보면, 저절로 의지할 것도 머무를 것도 없게 되는 것이지, 의지의 함으로 의지함이 없고 머무름이 없는 경지를 허물지 않으려고 안감힘 쓰는 게 아닙니다. --- pp.196~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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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華嚴), 현대 물리학, 그리고 엑스터시!
이 책은 실답게 수행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설해진 법문을 정리한 책이다. 대중들을 위해 경론과 공안에 담긴 참뜻을 다양한 각도에서 구체적인 언어로 설파함으로서 화엄 일승법의 요체인 '마음뿐인 도리'를 밝혀내고, 선종의 공안이 갖고 있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지취(旨趣)를 드러내고 있다. 화엄의 일승과 선종의 공안을 함께 아우름으로써, 교학을 쫓다가 개념과 사고의 장애에 빠지거나 참선만을 쫓다가 공허한 무기선(無記輝)및 이승의 온갖 경계에 떨어지지 않도록 세세히 법을 설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현대 양자역학이 도달한 물질관의 함의(含意)를 자세히 밝히면서, 이를 '아무런 공력(功力)도 들이지 않고 잠잠히 부처 땅을 밟는' 불교 유심(唯心)의 도리와 대비시킨 점은 과학적 사고로 단련된 현대인들이 유심의 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이 세상에는 수평면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비행기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한다면 그것은 수평비행이 아니다」,「30만km/sec의 절대속도는 정지상태와 다르지 않다」,「이 우주는 '지금'이라는 게 없으며, 따라서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다」는, 일견 황당하게 들리는 말들을 아주 명쾌히 논증해 보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상식'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음을, 한갓 깨뜨려야 할 고정관념이었음을 알게 한다. 그에서 그치지 않는다. 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 불확정성의 원리, 상보성(相補性)원리, 수학, 천체 물리학, 그리고 전광석화와도 같은 선사(輝師)들의 선문답 등을 통으로 아우르고 그 묘리를 쉽게 풀어 한 폭의 장중한 그림을 그려낸다. 그 그림 속에「이 세상엔 옳은 일도 없고 그른 일도 없느니라」,「산(山)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니라」,「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등의 어리둥절한 성인 말씀이 이론의 여지없는 참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아주 쉽고, 누구나 흔히 겪는 일상사 가운데서 화두를 잡아, 그것을 풀어나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독자로 하여금 '진리탐구'의 놀라운 기쁨에 흠뻑 빠져들도록 이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