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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1부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위암 4기의 극한 고통 거절당한 기도 피뭎은 사랑의 고백 존재조차도 정지된 제로점에서 세상 욕심을 묻어버린 곳 2부 “저 구름 위에 엄마가 있어? 우리를 보고 있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 정하의 일기장 새엄마와의 첫 만남 3부 삶과 죽음 부록 (Queen잡지 1998년 8월호) “나보다 더 사랑해서, 더 필요해서 더 좋은 곳으로 그애를 데려가신 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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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신희는 만 29세를 일기로 세살과 다섯 살 난 두 딸과 남편을 남겨놓고 주님의 부름을 받아 982년 4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어쩌다 늦게사 발견되어 1981년 12월 10일 S병원에서 개복수술을 받은 때는 이미 말기 위암이어서 집도의의 말에 따르면, 그냥 덮어버릴까 하다가 수술을 했는데, 위와 비장 전부를 몽땅 잘라내고 간장 일부와 췌장 일부까지 절제해버리고 소장 일부를 잘라서 대용 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난 뒤 집도의는,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지만 5,6개월 이상 생존하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생존 가능성이 있느냐고 했더니 10만분의 일, 100만분의 일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병리검사 결과 전이는 없다고 들었을 때에 우리 가족은 집도의의 말을 전적으로 의심했다. 그렇게 죽을 것을 확신하면서, 산 사람도 그만큼 자르면 죽기 쉽다는데 구태여 그런 범위로 꼭 잘라야 했던가 하는 것이 못내 한이 되었다.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진 신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며, 코에는 호스를 끼고, 세 개의 주사바늘을 꽂고 있었으며, 요도에도 호스를 끼고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대학병원은 환자들이 생체실험의 희생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마치 신희의 모습은 실험실 속의 인간 같아 보였다. (...) 수술한 날로부터 167일 동안 다른 암환자들은 단속적으로 통증이 온다는데 신희는 끊임없이 육체의 극한 고통을 받다가 갔다. (...) 끊임없이 토하고 국물만 먹어도 장이 유착되는데다 장 전면에 펴진 암 때문에 장기능 마비가 되어 아무리 관장을 해도 보름씩 변이 차고, 가스가 차고, 나중에는 복수가 차서 배가 터질 것 같은 팽만감에다 간 장애로 호흡 곤란까지 겹쳤으며, 다리뻐가 쑤시고 아팠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 깊은 밤이 되면 식구들에게 방해가 안되도록 텅 빈 응접실에 혼자 몰래 나와서 그 무서운 복통을 참느라고 몸을 비틀며 울면서 신음하던 것을 밤마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오랜 투병기간 동안 밤이면 혼자 울어 눈이 부었는데도 누구보다 먼저 세수했으며 식구들이 보는 데서는 결코 울지 않았고 너무나 태연했다. 문병온 사람들이 울어도 신희는 일부러 태연했다. 우선 변을 빼내기 위해 전주 예수병원에서 장 수술을 받았는데, 최후의 한 달 동안은 인공으로 만든 위 밑에 생긴 유착 때문에 쓸개즙과 위액을 위로만 토해내어 물마시는 일조차 영원히 문을 닫아야 했으며, 장을 꺼내서 만든 항문조차 별 의미가 없게 되어 항문도 영원히 문을 닫은 셈이다. 목밑의 어깨 쪽에다 주사를 꽂고 심장에 직접 주입하는 영양주사만으로 연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보충 주사를 맞기 위해 간호원이 주사바늘을 꽂고 혈관을 찾느라 열번, 스무 번 바늘을 찔렀다 뺐다 했다. --- pp 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