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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김준곤
순출판사 200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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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위암 4기의 극한 고통
거절당한 기도
피뭎은 사랑의 고백
존재조차도 정지된 제로점에서
세상 욕심을 묻어버린 곳

2부
“저 구름 위에 엄마가 있어? 우리를 보고 있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
정하의 일기장
새엄마와의 첫 만남

3부
삶과 죽음

부록 (Queen잡지 1998년 8월호)
“나보다 더 사랑해서, 더 필요해서 더 좋은 곳으로 그애를 데려가신 주님”

저자 소개 1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먼 친척뻘 되는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게 첫 복음을 들었다. 만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봉천신학교에 입학을 했으나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다가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극적인 탈출을 시도해 만주에 있는 김인석 목사(성결교 총회장 역임) 집에 피신해 있으면서 김 목사가 소장한 2,000여 권의 신학, 철학, 문학서 등을 읽고 영성과 지성의 깊이를 경험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자유주의신학사건으로 51인 학생들과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1950년 10월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먼 친척뻘 되는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게 첫 복음을 들었다. 만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봉천신학교에 입학을 했으나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다가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극적인 탈출을 시도해 만주에 있는 김인석 목사(성결교 총회장 역임) 집에 피신해 있으면서 김 목사가 소장한 2,000여 권의 신학, 철학, 문학서 등을 읽고 영성과 지성의 깊이를 경험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자유주의신학사건으로 51인 학생들과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1950년 10월 공산좌익에 의해 부친히 학살을 당하고, 아내(인정진 사모)가 순교를 했다. 김준곤 목사도 거반 죽음의 상태에서 국군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김 목사는 부친과 아내를 죽인 공산좌익들을 예수 사랑으로 용서하는 탄원서를 올렸다.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 교장을 거쳐 미국 풀러신학교 유학 중 국제CCC 설립자 빌 브라잇 박사를 만나 한국CCC 사역을 제안받고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설했다. 그때부터 소천 때까지 매일 아침을 금식하면서 민족복음화와 통일 한국을 위해 기독했다. 김준곤 목사는 1962년 대학생 선교를 기반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65년 2월 국회조찬기도회 창설, 1996년 3월 8일 대통령조찬기도회를 만들어 정, 관, 재계, 주한 외교사절 복음화에 나섰고, 민족복음화운동의 제3의 집단으로서의 나사렛형제들 창설(1968년 8월), 전군신자화 운동(1969년), 민족복음화운동 선언(1970년 12월 31일 밤 0시), 민족복음화요원 1만명 강습회(1971년 8월 대전충무 체육관), 엑스플로 '74대회(1974년 8월13일~18일, 32만 3419명 전도훈련), 59,000 자연부락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랑방 운동 등 만족복음화 운동을 주도했다. 1980년 8월에는 세계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여 10만 선교사 파송을 선언했다. 또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1979년 10월 부터 1981년 9월까지 2년간 『예수칼럼』을 매일 연재하면서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글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문서선교의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이후 '84 세계기도대성회, 엑스플로 '85를 개최했으며, 1990년 7월과 8월 필리핀에 3,000명의 대학생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하여 한국교회 단기선교사 시대를 열었다. 김준곤 목사는 또한 1995년 5월 세계선교대회(GCOWE Ⅱ)를 개최하여 10/40 윈도우 지역의 미전도종족 선교 전략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그 기간 중 10만 대학생통일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기독교민족화합운동본부 상임대표, 2002 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 대표회장, 사랑의 다리운동,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북한 43,000마을과 영친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북한사랑의옷보내기운동, 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 등을 전개하며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돕기와 북한 동포돕기를 전개했다. 김준곤 목사는 그가 제창한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선교를 몸소 실천했다. 김준곤 목사는 마지막까지 한국대학생선교회 이사장 및 총재, 성시화운동총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로 섬기다가 2009년 2월 29일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그의 한맺인 기도와 꿈을 우리에게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김준곤 목사는 조선대 문학과, 장로회신학교, 미국풀러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국립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세종대학교에서 명예교육학박사, 명지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민족화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리바이벌』,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예수칼럼』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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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준곤
조선대 문학과 , 장로회신학교, 미국 풀러신학교를 거쳐 국립 전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미국 서남침례 신학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세종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숭일중고등학교 교목 및 교장을 역임했으며,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립하여 대학생선교운동을 전개해 오면서 민족 복음화운동에 전력해 왔다. 현재 한국대학생선교회 이사장 및 총재, 국제대학생선교회 원로 디렉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기독교민족화합운동본부 상임대표, 2002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 대표회장을 맡아 민족의 화해와 성시화운동,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기독교 고전으로 평가받는『예수컬럼』과『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요한복음 개론』『리바이벌』『성서조감』등 다수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86쪽 | 208g | 128*188*15mm
ISBN13
9788938901392

책 속으로

딸 신희는 만 29세를 일기로 세살과 다섯 살 난 두 딸과 남편을 남겨놓고 주님의 부름을 받아 982년 4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어쩌다 늦게사 발견되어 1981년 12월 10일 S병원에서 개복수술을 받은 때는 이미 말기 위암이어서 집도의의 말에 따르면, 그냥 덮어버릴까 하다가 수술을 했는데, 위와 비장 전부를 몽땅 잘라내고 간장 일부와 췌장 일부까지 절제해버리고 소장 일부를 잘라서 대용 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난 뒤 집도의는,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지만 5,6개월 이상 생존하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생존 가능성이 있느냐고 했더니 10만분의 일, 100만분의 일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병리검사 결과 전이는 없다고 들었을 때에 우리 가족은 집도의의 말을 전적으로 의심했다. 그렇게 죽을 것을 확신하면서, 산 사람도 그만큼 자르면 죽기 쉽다는데 구태여 그런 범위로 꼭 잘라야 했던가 하는 것이 못내 한이 되었다.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진 신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며, 코에는 호스를 끼고, 세 개의 주사바늘을 꽂고 있었으며, 요도에도 호스를 끼고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대학병원은 환자들이 생체실험의 희생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마치 신희의 모습은 실험실 속의 인간 같아 보였다. (...) 수술한 날로부터 167일 동안 다른 암환자들은 단속적으로 통증이 온다는데 신희는 끊임없이 육체의 극한 고통을 받다가 갔다. (...) 끊임없이 토하고 국물만 먹어도 장이 유착되는데다 장 전면에 펴진 암 때문에 장기능 마비가 되어 아무리 관장을 해도 보름씩 변이 차고, 가스가 차고, 나중에는 복수가 차서 배가 터질 것 같은 팽만감에다 간 장애로 호흡 곤란까지 겹쳤으며, 다리뻐가 쑤시고 아팠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 깊은 밤이 되면 식구들에게 방해가 안되도록 텅 빈 응접실에 혼자 몰래 나와서 그 무서운 복통을 참느라고 몸을 비틀며 울면서 신음하던 것을 밤마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오랜 투병기간 동안 밤이면 혼자 울어 눈이 부었는데도 누구보다 먼저 세수했으며 식구들이 보는 데서는 결코 울지 않았고 너무나 태연했다. 문병온 사람들이 울어도 신희는 일부러 태연했다.

우선 변을 빼내기 위해 전주 예수병원에서 장 수술을 받았는데, 최후의 한 달 동안은 인공으로 만든 위 밑에 생긴 유착 때문에 쓸개즙과 위액을 위로만 토해내어 물마시는 일조차 영원히 문을 닫아야 했으며, 장을 꺼내서 만든 항문조차 별 의미가 없게 되어 항문도 영원히 문을 닫은 셈이다. 목밑의 어깨 쪽에다 주사를 꽂고 심장에 직접 주입하는 영양주사만으로 연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보충 주사를 맞기 위해 간호원이 주사바늘을 꽂고 혈관을 찾느라 열번, 스무 번 바늘을 찔렀다 뺐다 했다.

--- pp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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