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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기독교 선언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에 부르더호프의 설립자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던지는 기독교 선언. 이 책은 회개와 부흥을 불러일으킬 책이다. -토마스 머튼 브루더호프는 때로 어둡게 보이는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 위르겐 몰트만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에버하르트 아놀드도 그랬다. 아놀드는 20세기 초 전쟁과 고통이 가득한 사회에서 타협하고 무력하게 패배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붙잡고 처절하게 투쟁했다. 아놀드는 젊은 시절에 개인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일에 헌신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깊은 관점에서 사람들의 영적, 육적, 사회적 필요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맘몬과 불화와 증오와 폭력의 엄청난 세력을 피부로 실감하면서, 진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인간의 영혼을 위한 개인적인 헌신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옛 문헌들과 산상수훈을 자세히 연구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중에 친구들과 모여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중에 예수님의 길은 실제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산상수훈의 길이었다. 그러면서 아놀드는 산상수훈의 길을 가려면 걸인처럼 가난해져야 하며, 세상의 고난을 져야 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보다 정의에 더 목말라야 하며, 인류의 고통을 같이 아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관련 속에서 예루살렘 초대교회 공동체가 단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산상수훈이 실제로 이 땅에서 실현되었던 곳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졌다. 아놀드는 특권이나 권리는 남김없이 포기하고 완전한 사랑의 길에 온전히 투신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아놀드는 이제껏 살아온 형태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산상수훈의 요구를 실천하려는 불타는 열망으로 가족과 함께 독일의 한 시골로 들어가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그것이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시작이다. 아놀드에게 산상수훈은 제자도의 길을 가는 첫걸음이다. 산상수훈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아놀드는 기독교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 그리고 산위의 동네처럼 세상에 빛을 비추는 구별된 공동체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아놀드는 이 땅을 천국을 가기 위해 어서 벗어나야 할 부정적인 곳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장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땅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가운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상수훈이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이 산상수훈을 새로운 율법이나 윤리적 가르침으로 해석했지만 아놀드는 산상수훈의 핵심을 성령의 빛과 따뜻함으로 본다. 산상수훈은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도덕적 요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면 누구나 산상수훈에서 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산상수훈의 요구는 오직 새로운 삶의 방식, 유기적 삶의 방식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결단이 남아있다. 한 쪽에는 세상의 방식, 사탄의 방식, 맘몬과 사망의 길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철저한 포기와 사랑의 길, 친교의 길, 평화와 정의와 용서의 길이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설길 수 없다. 예수님은 어정쩡하게 타협하는 제자들을 원하시지 않는다. 철저하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자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늘나라가 주어진다고 약속하신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행하는 자들이다. 이 책은 산상수훈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 책은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들에게 그 해답이 산상수훈에 있다는 진리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밝힌다. 이 책은 이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했던 것처럼 산상수훈을 이상적이거나 나중에 천국에서 이루어질 미래사건으로 타협하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실현되어야 하고 실현될 수 있는 실재로 접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놀드와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그저 학자들의 이론이나 해석이 아니라, 실재요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금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정체성 위기에 놓여있다. 이름은 있지만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예수님을 고백하지만 행함이 없고, 교회에 8따로 모이지만 세상과 전혀 차별없는 집단으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세상적 행복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되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이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