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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노무현
열음사 200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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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헌사

서문 - 희망을 지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1. 希望
자장가를 부르는 아내의 얼굴에 떠오르는 햇살
오늘이 새로운 전환의 날이 되길
남편이 선택한 사람
진보를 위한 변명
친구에게
한 사람의 힘과 레인메이커, 그리고 노짱
나의 첫 번째 투표
역사교사가 학교에서 느낀 노무현 돌풍
소망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지하철에서…
스물한 살, 나는 지금 어디에…
아내를 잡고 울었습니다
이 새벽에 깨어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
소시민으로 산다는 것
여고생인 내 딸의 꿈! 아버지의 긴장으로 이어지고…
공사판에서 그가 우리에게 선사한 것
'민주'와 '희망'이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보며
양심과 신뢰 : 내가 노무현을 사랑하게 된 이유
혜은이와 4 · 3 그리고 당신에게
무주 전진대회 자원봉사 후기입니다
나는 밤마다 운다

2. '노무현'을 처음 검색하던 날
'노무현'을 처음 검색하던 날
제가 노무현 씨를 알게 된 사연
내가 만난 노무현
노무현! 당신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이제는 노무현에게 진 빚을 갚을 때다
1988년, 제도권 정치에 결코 물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노무현
노태우의 위대한 보통사람과, 아름다운 바보 노무현
고지식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를 위해
오늘 문득, 1987년이 다시 생각납니다
노무현 씨가 저의 같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네요
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노무현처럼 살고 싶다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보았던 노무현
휴게소에서 만난 '노무현 신드롬'
난 내일 노무현을 검찰에 고소할 것이다
우리들의 비밀암호 - '노무현을 부탁해'
'정직한' 에이브와 '바보' 노무현

3. 벽을 넘어서, 그리고…
충장로의 당신에게
단 1표의 감격, 그리고 눈물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당신의 어깨에
짐을 지운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어머니, 한참을 울었습니다
오늘 또 광주에 감동을 빚져 버리고 말았다
오늘만은 펑펑 울고 싶습니다
광주는 이래서 노무현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
노무현 학습효과 - 진시란 마음들을 엮어 내기
노무현은 왜 정계개편을 주장하는가?
노무현 후보는 외교분야가 약하다?
김대중 지지자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
노무현의 눈물 - 그 눈물에 담긴 진실을 믿습니다

'질풍노도' 노무현의 비밀 - 정치패러다임의 변화

저자 소개 1

Roh Moo-hyun,盧武鉉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자인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글짓기대회가 열리자 '백지동맹'을 선동하다가 정학(停學)을 당할 정도로 성격은 당차고 맹랑했다. 가난으로 인해 어렵게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고에 진학하였다. 졸업 이후 농협 입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발등을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하여 그만두었다. 그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법고시 공부에 매달리게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자인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글짓기대회가 열리자 '백지동맹'을 선동하다가 정학(停學)을 당할 정도로 성격은 당차고 맹랑했다. 가난으로 인해 어렵게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고에 진학하였다. 졸업 이후 농협 입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발등을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하여 그만두었다. 그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법고시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군 제대 후 1971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법고시에 매진하였다. '빨치산 부역 혐의로 옥사한 장인'과 '불투명한 고시생' 문제로 얽혀 양가가 티격태격한 결혼은 "판사안하면 어떠냐"라는 노무현의 엄포로 풀렸다. 1973년 결혼하였으며, 네 번째 도전만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1978년 5월,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고 주로 조세 및 회계 사건 등을 통해 1백억원대 소송도 연달아 수임하는 등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1981년 부림사건(대학생 독서서클 검거)의 변호를 맡으면서, 교도소에서 57일간 고문을 당한 한 학생의 시퍼런 몸과 겁에 질린 눈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변론에도 참여하며 투사로 탈바꿈했다. 1985년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고,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다.

항쟁 후 재야 활동을 하던 그는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부탁을 받고 제13대 총선에 출마하여 정치에 입문하였고, 1988년 부산 동구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회에 입성한 노무현은 노동위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이해찬, 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원회의 3총사’로 불렸으며, 그해 11월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와 최초로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5월 광주 자위권 발동' 연설 때 명패를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이른바 '5공 청문회 스타'가 된 것이다.

1990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민주정의당 총재인 대통령 노태우,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이 합당하여 민자당을 창당하기로 하자 노무현은 이를 부도덕한 야합이라는 이유로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았고 자신의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였다. 이후 부산에서 3차례 총선과 시장선거에 나섰으나 그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000년 4월,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결국 낙선하였다. 하지만 이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지모임 '노사모'도 결성되었다.

국회의원 낙선 후 그는 2000년 8월부터 2001년 3월까지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김근태, 이인제, 정동영, 한화갑 등이 후보로 출마한 국민경선제 끝에 새천년 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당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던 이인제와 호남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한화갑을 모두 밀어낸 대이변의 승리였다. 하지만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거치며 노무현의 지지율은 바닥까지 곤두박질 친다. 이에 '후보교체론'까지 나오는 등 입지가 위태로워지지만,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로 부활했다. 그리고 결국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당선 이후,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집권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이라크 파병' 결정은 그를 지지했던 진보·개혁세력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이라크 파병 결정이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였음을 밝힌바 있으며, 자신의 소신 보다는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내린 결정임에 대해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지지율 하락 속에서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헌정사상 국회에서 탄핵당하는 첫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과반 획득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사실상 국민들에 의해 '재신임'을 받음으로써 이후 참여정부의 개혁정책들을 점화하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정치 실험'과 '개혁 정책'들은 '남-남 갈등', '진보-보수' 갈등 등으로 불리는 사회적인 논란 속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구시대의 막내'를 자임함으로써 다음 대통령에게 새 시대를 물려주고자 한 그의 신념과 정책은 아쉽게도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임기 말에는 '참여정부 실패론'이 제기되기도 하였고, 진보 세력들로부터는 신자유주의로 서민들의 삶을 더욱 고통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고, 또한 성과도 있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굳은 의지를 가지고 개혁을 해 나가고자 하였다. '평검사와의 대화' 등을 통해 검찰조직 등 권력기관, 사정기관들을 개혁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최고 권력자'인 스스로가 권력기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줄여나갔다. 이는 국가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으로 상징되듯이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줄이고, 균형적인 국토 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였다. 이전과는 다른 큰 변화들이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일어났다. 또한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복지 지출을 크게 늘려 서민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으며, 2007년 10월에는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10·4 남북정상회담을 업적으로 남겨, 동북아 긴장 완화-평화 정착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퇴임 후에는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가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으나, 그 꿈은 정치인생 후원자였던 소위 '박연차게이트'와 함께 허물어졌다.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비판과 의심의 여론이 일었던 검찰의 수사를 통해 오랜 지인들과 가족들이 비리의 혐의를 받았으며, 그 자신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세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9년 5월 23일 새벽, 유서를 남기고 사저 뒤 봉화산을 경호원 1명과 함께 등산하던 중 아래로 투신해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갑작스런 서거 후 시민들의 추모물결은 거대하게 일었다.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은 몇날 며칠 끊어지지 않았으며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마련되어 추모가 이루어졌다. 또한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적극적인 재평가 작업이 제기되면서 '노무현'과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새롭게 부각되었고, 노무현의 신념과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시도한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수면 위로 올라 왔으며, 참여정부가 '민주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에 있어서 어떤 역사적 지위를 가지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를 내리기 위한 논의도 시작되어, 그는 사후에 더욱 의미있는 조명을 받고 있다.

노무현의 다른 상품

편자 : 노무현과 함께하는 사람들
지난 1992년 설립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소장 노무현)에서 근무하던 연구원과 몇 번의 선거 때마다 노무현을 돕던 자원봉사자들을 말한다. 정확한 조직을 구성한 모임도 아니며, 단체도 아닌,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서 노무현의 원칙, 그리고 그의 소신과 함께 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흐름이며, 스스로 노무현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임이다.

건축용 공구상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학원선생 겸 대표, 일반 벤처 직장인 등등, 노무현이 빛을 발할 때는 각자의 생업 공간에서 조용히 노무현을 바라보고, 노무현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소리소문없이 일선에 나와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자치경영연구원이라는 지방자치 관련 연구단체의 상근, 비상근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며 노무현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65g | 153*224*20mm
ISBN13
9788974272005

책 속으로

노사모에 가입하게 된 것은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 후보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였다.

이래저래 인터넷에서 찾아서 내 생애 처음으로 정치인 팬클럽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구경꾼으로 들렀지만, 그곳에 있는 글을 읽으면서 흔쾌히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이것이 노무현 의원에거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그리고 그 뒤로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노사모, 그리고 이곳 노무현 의원 홈페이지에 오곤 한다.

참고로 내가 있는 곳은 시애틀이다. 밤낮없이 일하는 이곳의 동료들을 보면서 하는 일없이 인터넷을 보고 있노라면 미안한 마음도 들곤 하지만, 어쩌랴? 그만큼 감동적인 작금의 상태가 아니던가?

여기 교포 1.5세대들에게 노무현 의원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떠나 버린 조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이곳에 있는 많은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 이만큼 정치가 발전했고, 우리 조국이 그만큼이나 자랑스럽다고 막 말해 주고 싶었다.

---p.92

출판사 리뷰

보통 사람들의 세상,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 노무현공식홈페이지 베스트 뷰 모음집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선전을 보고 사람들은 ‘노풍’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는 일류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고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며, 국회의원 경력 외에는 이렇다 할 정치 경력도 별로 없는데다가 얼마 전엔 그 국회의원 선거에서마저 낙선하기도 했다. 우리 정치에서 파벌과 학연과 지연 등을 무시하고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요즘의 노무현은 화제, 그 자체이다.

민주당에서 경선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경선 참가 후보들을 보았을 때, 한 사람을 위한 보여 주기식 경선일 거라고, 그래서 아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저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되던 한 후보가,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하고 있으며 언론은 이런 현상을 인터넷 정치의 승리 혹은 이변이라고 목청 높이고 있다.

한 정치인에 대해 팬클럽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정치 현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모임을 갖고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고….

이제 대중은 더 이상 수구언론이 호도하는 대로 그저 믿고 따르는, 몇몇의 수구 세력들이 갈라놓는 대로 지역감정에 휘둘려 헤매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기존 정치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했고, 맹목적인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한 정치인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건 인터넷상의 이런 움직임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노하우와 노사모 등의 인터넷 사이트들을 기웃거리며, 단발성의 한 후보에 국한된 모임이 아닌 대안 언론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www.knowhow.or.kr

이 사이트는 처음 정치인 노무현의 개인 홈페이지로 시작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사이버상에서 노무현은 이미 한국 정치의 황야를 타의 추종을 불허한 채 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민주당 경선이 시작된 후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신드롬이 된 이후,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가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의 상징이 되어 버린 이후 knowhow는 더 이상 한 정치인의 개인 홈페이지일 수만은 없게 되어 버렸다.

800만을 능가해 버린 조회 수와 열렬하게 개진되는 의견들, 실시간으로 상호 교환되는 정보들의 양과 질, knowhow는 이제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언론이 되었으며 정보 혁명 그리고 시민혁명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실린 원고들은 그 동안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원고들 중에서 주제별로 선정된 내용들이며 열음사는 이 열렬한 참여와 헌신의 기록들을 계속 책으로 묶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의 순간을 나누어 가졌으면 하고 희망한다.

추천평

이곳을 클릭하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세상이 열립니다. 그 세상을 다시 클릭하면 한여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감동이 열린 이야기의 꼭지들이 있습니다. 이건 어떤 맛일까? 저건 또 어떤 내음일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깨알같은 사연들을 읽어 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깊은 밤이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때로는 이른 새벽이 창문 너머로 수줍게 얼굴을 드리울 때까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깜짝 놀란 마음에 잠깐이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만,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조차 쫓아냅니다.

이른 새벽, 그렇게 잠들마저 달아나버린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문득, 한동안 낯설었던 존재와 맞닥뜨리곤 합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벅찬 기쁨을...
---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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