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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중)
프린스턴시절
공석하
뿌리(공석하) 200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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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프린스턴 시절
2. 페르미 랩에서

내 제자 이휘소 - 이석

저자 소개 1

1941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과 연세대 대학원을 나온 이후 덕성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1960년 '자유문학' 신인상 시부문에 당선했다. 시집으로 「상(像)의 주문」,「사물의 빛」,「겨울서정」, 소설로 「이휘소」,「프로메테우스의 간」,「삼풍백화점」,「공자를 찾아서」,「참성단을 찾아서」,「화인(畵人) 최북」,「우리 동네 구두박스 속의 엄대철 사장은 말한다」, 감상집으로 「21세기의 공자」,「고도를 위하여」,「영미시 즐겨보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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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공석하
1941년 안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와 연세대 대학원을 나온 이후 덕성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1960년 제1회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집『상의주문』『사물의 빛』『겨울서정』과 소설『거지화가 최북』『공자를 찾아서』『프로메테우스의 간』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59g | 153*224*20mm
ISBN13
9788985558594

책 속으로

「먼저 이 박사의 공적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박사의 공적을 생각하면서 마리 퀴리(M. Gurie: 1903년 노벨물리상,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부인을 연상했습니다. 젊은 시절 폴란드라는 다른 나라에게 외침만 늘 당하며, 가난하고 불행한 국민들의 비애를 몸소 체험하면서 소녀 시절부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서는 과학자가 되어 과학 선진국이 되는 길뿐이라고 결심하고, 여학교를 나온 후, 학비를 조달하려 가정교사, 음식점 종업원 등까지 하여 5년 간 모든 돈으로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유학,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물리와 수학 학사를 취득한 것이 29살 때였죠. 피에르(Pierre: 1903년 노벨상 수상)와 결혼 후 원자물리학을 개척하고 남편이 죽은 후(1906년), 계속 연구하여 라듐을 발견하여 노벨화학상까지 받았으며(1911년), 세계 1차 대전 때는 전장을 쏘다니며 라듐 요법으로 부상병 치료에 종사한 분이죠. 아인슈타인에게 베르린대학 교수 생활을 하게 하신 것도 퀴리 부인이었죠. 제가 이 박사의 능력에 경탄하고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 곳인가? 한국은 어떤 국가인가? 관심을 가졌고, 동양사를 보았습니다. 지도를 보면 극동의 대룍에서 콩알만하게 떨어져 나온 나라더군요. 그리고 한반도 외침을 해본 적이 없고, 일본, 중국, 소련, 미국, 프랑스 등에게 외침을 당한 것이 무려 900여 차례나 되는 나라였습니다.

---pp.161~162

「먼저 이 박사의 공적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박사의 공적을 생각하면서 마리 퀴리(M. Gurie: 1903년 노벨물리상,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부인을 연상했습니다. 젊은 시절 폴란드라는 다른 나라에게 외침만 늘 당하며, 가난하고 불행한 국민들의 비애를 몸소 체험하면서 소녀 시절부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서는 과학자가 되어 과학 선진국이 되는 길뿐이라고 결심하고, 여학교를 나온 후, 학비를 조달하려 가정교사, 음식점 종업원 등까지 하여 5년 간 모든 돈으로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유학,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물리와 수학 학사를 취득한 것이 29살 때였죠. 피에르(Pierre: 1903년 노벨상 수상)와 결혼 후 원자물리학을 개척하고 남편이 죽은 후(1906년), 계속 연구하여 라듐을 발견하여 노벨화학상까지 받았으며(1911년), 세계 1차 대전 때는 전장을 쏘다니며 라듐 요법으로 부상병 치료에 종사한 분이죠. 아인슈타인에게 베르린대학 교수 생활을 하게 하신 것도 퀴리 부인이었죠. 제가 이 박사의 능력에 경탄하고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 곳인가? 한국은 어떤 국가인가? 관심을 가졌고, 동양사를 보았습니다. 지도를 보면 극동의 대룍에서 콩알만하게 떨어져 나온 나라더군요. 그리고 한반도 외침을 해본 적이 없고, 일본, 중국, 소련, 미국, 프랑스 등에게 외침을 당한 것이 무려 900여 차례나 되는 나라였습니다.

---pp.161~162

추천평

1935년 1월 서울 출생. 경기중, 경기고에 수석과 함께 1952년 3월 경기고 2학년 때 서울대 화공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미국 마이애미대학 물리과에 편입하여 1957년 마이애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23세 때 피츠버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니아대학원 박사과정 시험에서 미국 역사 이래 최고 점수로 수석 입학하였다. 25세의 나이로 펜실베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고급연구소 정회워 연구원 겸 펜실베니아대학 조교수가 되었다. 1962년 미국의 대표적인 물리학자 10명과 함께 이탈리아 국제회의에 참석하였고. 1963년에는 펜실베니아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시카고대학 정교수 겸 페르미 랩 이론연구부장을 역임하였으며, 1974년에는 한 달간 귀국하여 서울대 과학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1977년 시카고에서 아즈팬으로 가는 도중 일리노이주와 가까운 케와네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의문사를 당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 보국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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