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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아름다움의 현실적 조건
인문학을 깨우자 김수영의 ‘아픈 몸이’ 지옥현실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궁륭 ‘학문의 자유’라는 사치 ‘석궁 테러’에 즈음하여 아무것도 아닌 실존의 전부 김정희 150주기전 나는 나를 그린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사적 자아의 정원에서 벗어나기 차디 스미스의 에세이 다매체 시대의 교육 피카소의 ‘비유 마르 병, 유리잔, 기타 그리고 신문’ 슬픔에 대하여 호들러의 ‘삶에 지친 자들’ 음악 예찬 유디트 라이스트의 ‘플루트 부는 소년’ 우리 사는 도시와 거리 국립중앙박물관 무한성의 경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사’ 지구 대차대조표 코닝크의 ‘매 사냥꾼이 있는 먼 풍경’ ‘아름다움과 끔찍함’은 짝이다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아이’ 글쓰기: 인간성에 대한 참여 에두아르트 콜리어의 ‘바니타스’ 저 너머 ‘환상의 사실성’을 보다 터너의 ‘비, 증기, 속도’ 폭력과 나르시시즘 고야의 ‘거대한 숫염소’ ‘영원히 아이 같은’ 것 무리요의 ‘포도와 멜론 먹는 아이들’ 열망적 삶의 좌절 다비드의 ‘살해된 마라’ 시대 미학 담긴 삶의 노래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 ‘사계’ 늘 그러했고 그러할 뿐인 삶 이오네스코의 연극과 라 투르의 ‘점쟁이 여자’ 느슨하게, 삶을 정련하라 아룬다티 로이의 정치평론집 플라타너스 그늘의 기억 황인숙의 시, 야콥 반 루이스달의 ‘밀밭 풍경’ 예술과 세계시민적 공동체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얼음바다’ 사랑은 옳음을 기뻐하는 것! 렘브란트의 판화 ‘이 사람을 보라’ 빈자리를 돌아보다 조속의 ‘새 그림,’ 문태준의 시 교양의 의미 알 수 없는 무한한 것들 고전을 읽는 이유 모차르트를 듣는 행복 모차르트의 평범한 깊이 소리의 어울림, 어울림의 바다 바흐를 듣자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 백석의 시 한 편 집?물?몸?풀 도산서원에 다녀와서 |
文光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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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보잘것없는 삶을, 영원하고 무한한 무엇에 매어보고픈 소망을 품는다. 그건 영원하지는 않지만 예술은 그에 상응하는, 그래서 믿어도 될 만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예술에 기대어 나를 돌보고, 내 삶과 영원성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밝히고 싶다. 그리하여 시장과 이윤과 속도의 이 시대에 시와 예술이 왜 필요한지, 왜 심미적 세계의 반성적 성찰이 절실한지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무엇보다 나를, 내 글과 삶과 학문을 지탱하는 즐거운 에너지인 까닭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맘먹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기쁨을 사랑하는 것만큼 고귀하고 복된 일은 삶에 없을 것이다. 예술은 이런 행복의 기술을 알려주는 듯하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이 각각의 운율이고 리듬이며 삶에 대한 그 나름의 물음이자 찬가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시와 그림과 글로써 삶의 사랑을 내 안에 키우는 일. 이런 노력은 불발(不發)로 끝날지도 모른다. 나의 미학적 시도가 철저할지라도 현실의 무자비함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표현은 실상(實相)에 대한 완곡어법일 뿐. --- pp.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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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에 물린 아이〉에서 초점은 꽃과 도마뱀이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의 대비로 번역될 수 있다. (…) 우리는 미와 경악이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깊게 얽혀 있다.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은 늘 뒤섞여 찾아온다. 아름다움과 끔찍함은 빛과 어둠처럼 현실에서 짝한다. 이 교차적 운명에서 우리는 헛되이 미를 갈구하곤 한다. 그러나 삶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이 어울리는 몇 번의 순간 사이에서 시작하고 끝나고 만다.
--- p.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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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마라〉에는 영웅적 파토스―민중의 삶을 위해 헌신하다가 죽어간 한 도덕적 인간의 비참한 최후가 잘 묘사되어 있다. 간결한 구성이나 차분한 색채, 그 색채에 담긴 정적 분위기가 한몫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내가 보는 것은 열망적 인간의 좌절이다. 또는 넓게 말하여 표현하는 인간의 그리 장엄할 수는 없는, 차라리 초라해 보이는 죽음이다.
--- p.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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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향신문》과 《사이언스 올제》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미학에세이집이자 시민을 위한 예술교양서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미술, 문학, 음악, 건축 등의 작품을 현실적 상황 속에서 대입하여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진실을 모색하는 한편, 문화와 예술작품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당대적 진실을 절달할 수 있는지를 설득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예술교양서로 기획되었으나, 단순한 예술상식이나 감상을 넘어선다.
삶과 예술, 철학의 경계를 횡단하며 길어올린 독자적인 미학에세이의 한 경지 문광훈의 시선은 단순히 예술작품의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박제화된 대상을 넘어서서 우리의 현실과 삶으로 끊임없이 투영된다. 그냥 흘릴 수 있는 작은 것도 놓지지 않고 하나의 작은 부분에서도 전체를 이야기하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그가 바라보는 예술작품과 현실 사이에는 사물에 대해 느껴진 감성적 인식을 재차 곱씹은 깊은 사유라는 매개가 놓여 있다. 깊은 사유를 매개로 예술작품과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횡단’하고 ‘가로지르기’를 하는 것이 이 책에서 드러나는 문광훈 글쓰기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문광훈의 글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호들러의 그림 〈삶에 지친 자들〉에서 그의 시선은 지친 우리의 삶과 이주노동자들의 힘겨움을 향한다. 이런 힘겨운 일상을 향하는 그의 시선은 따스하면서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힘겹지만 굳세게 살아가는 ‘생의 에너지’마저 발견한다. 노찾사의 여러 노래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그러나 한 시대에만 머무를 수 없는 ‘시대미학’을 논한다. 〈사계〉와 〈그날이 오면〉과 같은 주옥 같은 노래들을 통해 자신의 청년시절을 그려낸다. 때로는 전투적이기고, 때로는 서정적이기도 한 다양한 노래에 담긴 저항의 미학을, 아울러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삶을 담아낸 수많은 노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예술은 행복의 기술을 알려준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말이 있듯이,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광훈은 예술의 힘으로 아름다움을 방해하고 억누르며 훼손시키는 것들의 부당함을 질의하고자 한다. 예술은 순응주의에 대한 비강제적 예방 조치이고 면역체계이다. 예술은 그 어떤 것에도 자기결정의 권리를 양도하지 않는다. 예술은 삶의 한계 속에서 어떤 자유를 느끼게 하고, 그 자유 이상의 책임을 떠올려주며, 이런 책임 속에서 다시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절감케 한다. 우리는 예술 속에서 다시 꿈꾸고 선택하며 새롭게 깨어나 행동하게 된다. 예술과의 만남은 가능한 것들의 경험 속에서 불가능을 다시 상상하며, 이 경험에서 우리는 오늘의 삶을 기뻐하면서 기쁨의 책임 또한 공감하게 한다. 문광훈은 예술은 감각의 교차를 통해 해묵은 사고를 뒤흔들고, 이는 영혼의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감각의 진동이고 사고의 해방이라고 한다. 아울러 예술경험에서 얻은 심미적 느낌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숙성과 조야함, 부작용과 혼동을 줄여갈 수 있다고 한다. 심미적 주체의 형성과정을 사회의 시민공동체로 가는 길이라면서 예술경험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확장해간다. 단순한 예술작품 감상을 넘어서서 문광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처럼 예술을 통해 우리들이 나가고자 하는 방향을 어떻게 잘 설정할 것인가에 있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