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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뗏목에 오르니 북명의 망망대해 정처없이 떠가는데 제7장 누가 얼음배 띄워 신선의 고향으로 보내주랴? 제8장 불모의 땅 십 년 세월 뗏목을 타고 돌아오네 제9장 무당칠협 상봉의 기쁨 절반에도 차지 않았는데 제10장 백세잔칫날에 억장이 무너지네 |
Louis Cha, Jin Yong,金庸,사량용(査良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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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지존 도룡보도, 천하를 호령하니 따르지 않을 자 없도다!"
강호에는 도룡도를 얻는 이가 곧 무림지존이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영웅들이 이 도룡도를 얻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워왔다. 결국 도룡도를 손에 넣은 쪽은 천응교였다. 그러나 금모사왕 사손이 강제로 도룡도를 빼앗고, 천응교의 은소소와 무당파의 장취산을 사로잡아 북극 빙화도로 도망가는데…… 과연 도룡도의 진짜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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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의 홍학, 김용 무협의 김학, 중국의 지식인들과 대중을 한꺼번에 사로잡다!
김용의 소설 속엔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담겨 있다! 대만에서는 1980년대에 이미 김용의 문학세계를 연구하는 '김학(金學)'이 등장했다. 김용 소설이 중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0년. 이후 중국에서 출간된 그의 모든 작품이 1,000쇄를 훨씬 넘었다! 성서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모택동 어록의 기록을 가뿐히 갈아치운 것이다! 불과 2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김용의 소설은 중국 지식인과 대중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등소평은 김용을 직접 초대해 대접하고 김용의 최대 애독자임을 밝혔다. 베이징대 부총장 지혜생, 대만 총통 천수이벤, 홍콩 작가 예광도 김용의 애독자다. 전 세계 화교들은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때 필수 교과서처럼 김용의 소설을 읽는다. 뒤늦게 중국 대륙에서도 '김용 소설 국제연구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김용의 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 중국에서 이뤄진 국제토론회는 단연 눈길을 끈다. 중국의 최고명문 베이징대가 주최한 토론회는 김용이 직접 참가한다는 소식들 듣고 몰려든 수천 명의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베이징 대학교수 및 중국 작가들은 "고아(高雅)와 통속(通俗)을 통틀어 문학작품이 이처럼 대단한 호응을 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고, "김용의 무협소설은 원곡(元曲) 및 홍루몽의 뒤를 잇는 중국문학 최고의 금자탑"이라고 평했다. 1997년 남창항공대학 진묵(陳墨, 천모) 교수는 《김용 소설 감상》에서 "김용의 무협소설은 일반적인 무협소설과는 다르며, 중국의 통속문학사, 백화문학사(白話文學史), 중국문화사의 일대 기적"이라고 극찬한다. 1994년 왕일천은 《20세기 중국 문학대사 문고》를 편집하면서, 김용을 금세기를 대표하는 중국 소설가 서열 4위에 올려놓으며 중국 대륙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오굉일 대만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 문학을 전공하면서 김용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중국인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관찰할 수 있다." 또 중국작가 예광倪匡은 "동서고금을 막론해 비교할 만한 소설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문단, 아니 세계문단의 대협 김용은 누구인가! 김용의 일생은 중국 근현대사의 압축판(보도자료 말미에 김용의 삶의 개관이 실려 있음). 전란戰亂과 피란을 거쳐 마침내 홍콩에 정착하기까지 그는 숨가쁘게 시대와 함께 호흡했다. 1949년 중국대륙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과 장개석의 몰락,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홍콩 반환, 중국의 대도약 등,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낮에는 무협소설을 쓰고 밤에는 정치사설을 썼다. 김용과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현상'이자 '문화 키워드'가 되었다. 위로는 '김학金學'으로서 본격적으로 학문화되고, 아래로는 인터넷, 전자게임, 영화, TV연속극으로 이어지는 현대 문화의 큰 흐름을 주도한다. '김학'은 이제 문화현상의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다. 20세기를 온전히 살아온 언론인이자 대중소설가가 이룩한 이 방대한 업적을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의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는 통속문학과 엄숙문학 사이의 경계와 영역을 허물어버림으로써 무협소설을 순수예술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1956년 신문 연재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독자층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단순한 재미 추구,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렇듯 김용의 작품은 중국의 전통문화와 근현대인의 인성과 심리가 내재된 문화 텍스트이다. 이는 중국 문학의 전통 형식을 보유하면서도 근현대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중국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김용의 작품은 그야말로 중국문화 전반을 충분히 활용한 중국학의 입문서라 할 만하다. 실제의 역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작이 교묘하게 융합된 그의 작품 속에는,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부분 역시 중국의 전설이나 신앙, 시, 역사 등에서 연유한다. 교묘히 배합된 이러한 코드들을 해체하면 중국문화 입문서로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의천도룡기》에는 '포대화상'이 나오는데 포대화상은 중국민간의 전설에 나오는 중으로 우리로 치면 미륵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포대화상에 대한 전설은 《의천도룡기》에 나오듯이 큰 자루를 짊어지고 다녔다고 해서 포대라 불렸다는 것이다. 포대는 중국어로 '부따이'라는 발음이 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붓다를 가리킨다. 전설 속의 포대화상은 큰 자루를 메고 다니며 날씨를 점쳐줬다는데 소설 속에도 '건곤일기대'라는 자루를 메고 다니는 것으로 나온다. 곧 명교에 포대화상이 등장하는 것은 반원 세력 곧 명나라 건국세력에 민중불교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원나라 말기에 땅 속에서 미륵불이 나와서 민심이 이반하고 반란이 터진 일이 있었다. 김용은 곳곳에 이렇게 중국의 문화를 작품 속에 감쪽같이 녹여냈다. 뜻을 알고 보면 2배로 재미있는 것이 김용의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