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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Emmanuel Schm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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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더 특별히 눈을 열어야 했겠는가! 로마의 관리로서 나는 오직 내 임무만을 생각했다. 무슨 이유로 평범하고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그 순간에 내가 다른 주의를 기울여야 했겠는가! 예수는 그의 역할을 연기했다. 나 역시도.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을, 그들을 있는 그대로만큼 보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우리는 순간의 관심을 통해 부분적이고 편협한 시각들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인간극이라는 연극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행하려고 애쓰고 잇다. 단지 그의 역할 그것만을.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어렵지만.
우리는 자신의 대본에, 상황에 매달려 있다. 우리는 그 날 밤 두 명의 연기자였다. 예수는 사법상의 착오에 의한 희생자를 연기했다. 그리고 나, 빌라도는 정의로복 공정한 로마의 총독을 맡아 연기했다. "너는 유대인들의 왕인가?" "나는 한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소."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누가?" "너를 기소한 사람들, 너를 내게 인도한 사람들, 모든 산헤드린의 구성원들." "그것은 부당하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들이지 내가 아니오. 그들은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비난하고 있소." "그렇지만 네가 바로 왕국을 세운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그렇소." "그래서?"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오." 마치 실패를 확인함으로써 좌절에 빠져버린 것처럼 그는 슬프고 비통해 보였다. 이윽고 그는 자신을 추슬렀고 내게 열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세상의 왕이 되려 했다면, 사람들이 나를 체포하는 것을 막으려 했을 것이오. 신도들로 하여금 나를 보호하게 했을 것이요. 나는 여기 당신을 마주하고 서 있지도 않을 것이오. 그렇다오,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오." (...) "진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피고인에게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향해 말했다. 나는 평온해졌다. 그런데 깜짝 놀랍게도 그 유대인은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내게는 뜻밖이었다. 그 사람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광신자들은 그들의 신앙을 더욱 주장하면서 그들의 의심들을 짓눌러 버린다. 그런 대신 예수는 정말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믿는다는 것이 안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듯했다. 그는 완전히 잘못된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계시받은 미치광이로 여기는 것을 파악했으며, 아주 솔직하게 내가 옳은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떨림을 억누르고 그의 힘을 모은 채 내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이렇게 말하였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이오?" 그는 내게 그 질문을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마치 되돌아온 공에 맞은 것처럼 질문의 반향으로 몸을 떨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아니, 나는 진실을 쥐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단지 권력을 가졌을 뿐이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를 결정하는 당치 않은 권력,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엄청난 권력, 추잡한 권력을 가졌을 뿐이었다. 침묵이 자리잡았다. 공은 우리 두 사람 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우리 사이에서 분주히 말하고 있었다. 침묵은 그 자리에 급하고, 막연하고, 사연 많고, 모호한 수천 가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은 이상하게도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누가 너에게 존재들을 마음대로 처분하라는 권리를 주었는가? 누가 너를 결정들을 내리도록 깨우치는가?" 침묵이 내게 물었다. 모든 것을 소모한 듯한 느낌이, 깊은 피로가 나를 침범해왔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었다. 그런 피곤함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을 사라지게 하는 데는 휴식만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 p.32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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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맡겨두는 것, 그것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의거 입니다. 그가 부활하는 것,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것이 옳았음을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비록 우리가 반박당하더라도 우리는 사랑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 p.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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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베리대학에서 5년간 철학교수로 재직하다 전격사임하고 전업작가로 변신한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42)는 파리고등 사범학교 철학박사 출신으로 그가 8년간 집필해 내놓은 소설-'빌라도 복음서' (원제)는 파리 번화가 샹젤리제 비르진 서점의 베스트셀러행진을 시작으로 각 프랑스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슈미트는 아쉽게도 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작가다. 이 작가의 소설이 드디어 '예수를 사랑한 빌라도' 란 제목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다. 2001년 제 32회 엘르(ELLE) 독자가 선정하는 문학대상을 받은 슈미트는 디드로, 볼테르, 루소, 그리고 사르트르의 정신세계를 승계 받은, '문인 전통'을 이은 작가로 인정 받고 있다. 특히 현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책은 무신론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엄청난 이슈와 찬사를 받은 대작으로 알려져 있다. 93년 초연돼 몰리에르상을 한꺼번에 3개(최우수작품, 최우수작가, 최우수신인상)나 받은 그의 희곡 '방문객'은 지금까지 파리 극장에서 상연되는 중이며 유명한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 자청해 출연한 연극 '수수께끼의 변주' 원작자인 그의 작품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 시대 최고의 극작가로 칭해도 과함이 없는 작가이다. 1994년에 출간된 '이기주의자들의 종파' 에 이어 슈미트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기독교가 탄생한 후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피가로지는 서평에서 슈미트와 함께 중동의 흙내음을 맡을 수도, 예측할 수 없는 한 장 한 장의 책장을 넘기며 고통받는 육체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도, 신음하는 수많은 영혼과 마주할 수도 있다고 격찬을 보냈고 르몽드지는 자신의 넘치는 재능과 세심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가장 과감한 가설을 제시한다고 박수를 보냈다. 저자는 의혹과 불확실한 상태에서 차츰 진실을 발굴해나가는 추리소설 형태의 긴 행로를 택한다. 일인칭의 내적 고백인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빌라도 총독이다. 2부로 나누어진 이 소설에서 1부는 예수가 감람산에서 체포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나자렛 마을의 목수아들로 태어나 한 여인의 사랑을 포기하고 만인을 구원하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게되는 삶의 역정을 회고한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이 구세자임을 점차 깨달아가며 스스로 죽음을 원한다. 예수를 배반한 제자로 알려진 유다는 가장 신임하는 제자의 모습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예수의 명령에 따라 그를 고발한다. 그리고 2부는 예수를 심판한 빌라도 총독이 로마에 있는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빌라도 총독의 심적 고뇌를 잘 그리고 있다. 편지의 내용은 예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시체를 훔쳐갈 만한 자들,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죽지 않은 그를 무덤에서 빼내 숨기고 있을 자들, 부활에 대한 믿음을 선동하기 위해 예수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날 만한 제자들에 대한 수사 등, 모든용의선상에 대한 수사와 추리가 실패로 끝나는 과정을 통해 현실적 사고에 길들여진 총독 빌라도가 겪는 내적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마태 복음서에서 남편에게 예수의 처형에 관여하지 말도록 충고했던 총독 부인 클라우디아는 이 작품에선 예수를 몰래 따르는 최초의 신자가 되어 예수의 죽음 앞에서 십자가를 지키는 4명의 여인 중 한 명으로 예수가 부활한 후 은혜 입은 여인으로 등장한다. 로마총독 빌라도가 나자렛 으로 예수를 따르기 위해 떠나버린 클라우디아를 찾아 나서는 장면과 클라우디아와 빌라도 총독이 나누는 십자가에 관한 대화(p329)는 이 소설 라스트의 압권이다. 슈미트가 장장 8년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이 소설은 그가 희곡작품을 통해 추구해온 철학적 정신세계를 문학으로 집약해 보여주고 있으며 성직자와 신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로 새롭게 다가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