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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꽃의 전성시대 바퀴의 근성 침대는 가구가 이니다 낙지 비.풍.초 1 비.풍.초 2 비.풍.초 3 우리 동네 키보이들 냄새나는 노래방 1 냄새나는 노래방 2 냄새나는 노래방 3 HITE 신월동 레즈비언들 2. 비.풍.초 4 비.풍.초 5 비.풍.초 6 아담과 이브에 관한 기분 나쁜 추억 스크림 1 스크림 2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던 내 어릴 적 친구는 1 화류춘몽 3.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1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2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3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4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5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6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7 4.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던 내 어릴 적 친구는 2 주의, 사고다발지역 자살을 도와 드립니다 1 영화'거짓말'의 주인공들 모든 인형이 봉제공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천년 묵은 고독 5.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던 내 어릴 적 친구는 3 오래된 골목의 내력 하느님에 관한 기분 나쁜 추억 잠시도 가만히 나를 방치할 수 없는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던 내 어릴 적 친구는 4 자살을 도와 드립니다 2 이하 생략 |
이기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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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바닥만큼이나 더러워진 정신의 바닥에
강력 세제를 붓고 청소를 시작한다 음습한 삶 테이블 가장자리에 낀 때를 얼룩진 과거의 장식품을 빡빡 훔쳐낸다 털고, 쓸고, 닦고 문지르고… 한순간 밑바닥이 순결해지고… 그리고 또 다시, 이내 별 수 없이 방부 처리된 통조림 같은 몸을 딴다 바닥 여기저기에 나를 엎지른다 썩지도 부패하지도 않는, 끝내 청산할 수 없는 이 가공된 생의 막판을 위해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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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왜 그리 상심했는지 하늘이 두 쪽 나는 것도, 땅이 꺼지는 일도 없는데 낙엽이 바람으 만나는 일처럼, 꽃이 벌레를 만나는 것처럼 모든게 사소한 일일 뿐인데 왜 그리 속이 아프다고, 자꾸 헛구역질이 난다고 엄살을 떨었는지 이제 태연하고 싶다. 생각없는 나뭇가지에 앉아 졸다 깨다, 깨다 졸다 하루를 공으로 보내는 미련한 새가 되고 싶다. 빌어먹을! 그짓 또한 얼마나 지적인 엄살인가? 나는 여전히 내가 아니다. 2001년 시월의 마지막 말 이기와 ---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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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 할 수 없는 삶의 일방도로 복판에서
전복된 채, 몇 날 며칠 정신의 시동을 끄고 쉬고 싶다. 쉴새없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철근의 희망 밖으로 견인될 때까지, 폐차장이나 고물상에 안전하게 쳐박혀 허방에 두 다리 뻗고 체류할 때까지 연거푸 돌발 사고를 유도하고 싶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초고속의 날들과 절교하고 싶은 몇 번이나 수리했어도 여전히 삐딱하게 굴러가는 개같은 이 천성 [바퀴의 근성]에서 일부 --- p.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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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거의 꿈
빛이 있으면 응달도 그만큼 깊고 넓은 것이 아닐까. 21세기 꿈이 화려한 만큼 절망도 그 만큼 넓고 깊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기와 시인의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은 우리 시대의 뒷골목을 비추는 조각거울에 가깝다. 삶의 상처를 배설하기 위해 뒷골목을 떠도는 사람과 그 사람들에 기생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과장 없이 묘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마저 사치이기 일쑤인 운명 앞에서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이 시집은 이처럼 대중가요에 담긴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상에서 목숨을 턱 놓지 못하고 날마다 구원을 꿈꾸는 것이 절망을 더욱 깊게 하지만, 그 절망마저 목숨 앞에서 사치일 뿐이다. 시인은 이런 절망을 꾀병이라 부른다. 구겨진 광고전단물들이 헤매 도는 밤 깊은 플랫폼에 서서야 알았지 암담하고 참혹하다고 믿어 왔던 과거도 제법 따뜻한 온실이었음을 내가 아는 상처는 심심할 때 뜯어먹는 말랑말랑한 식빵이었음을 내가 아는 절망은 귀나 목에 치렁치렁 매달고 다니는 장신구였음을 알았지 <절망, 그 꾀병을 앓다> 부분 이 시는 시인이 거주하는 삶의 공간을 짐작하게 한다. 깊은 밤 구겨진 광고전단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신문이나 TV 같은 곳에서 화려하게 주목받는 광고가 아니라 익명의 사람에게 자신을 광고하는 마이너리거들의 구겨진 육체를 발견한 것이다. 암담하고 참혹하다고 여겼던 시절을 건넜지만 또 다시 거리에서 자신을 광고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을 당장 헤쳐가야 하는데, 과거의 상처 따위는 차라리 따뜻한 위안일지 모른다. 과거의 상처는 지금은 <심심할 때 뜯어먹는 말랑말랑한 식빵>과 같은 사치일 뿐이다. 밥을 구걸하는 육체가 있는 한 절망이란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기와 시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생존 본능과 닿아 있다. 그녀는 이러한 속성을 <바퀴의 근성>이라는 시로 표현하고 있다. 유턴 할 수도 없고, 시동을 끄고 쉴 수도 없는 바퀴, 몇 번이고 수리해도 삐딱하게 굴러가지만 계속 구를 수밖에 없는 바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거주하는 공간은 고상하고 우아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곳이다. 이기와 욕망이 거칠게 뒤섞여 흐르는 도시의 뒷골목이다. 대폿집에서 젓가락을 두들기던 어머니의 노래를, 낮술에 취해 욕을 퍼붓던 아버지의 노래를, 단추공장에서 돌아 온 언니가 이불 속에서 울며 부르던 노래를, 살아가는 일보다 꿈꾸는 일을 더 두려워했던 그들이 어느 외진 곳에서 부르다 고 잠들어 버린 노래를, 아픔이 뭔지 되새기고 싶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속이 텅 비워질 때까지 부르고 싶다 학업을 포기하고 가방공장에서 실밥을 뜯던 때의 모습이 그려지는, 주인집 연탄불에 몰래 라면을 끓여 불어터진 꿈을 퍼먹던 그 때의, 내 몸 깊은 곳에 상처를 내고 도망간 순정을 추모하는 노래를 <냄새나는 노래방 1> 부분 시인의 노래 부르기는 자신을 비워내는 일로 보여진다. 목숨의 판을 깨버릴 수 없는 삶의 길목에서 상처와 그리움마저 비워내고 새롭게 탄생하려는 제의라 할만하다. 소외 받고 대접받지 못한 영혼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함께 씻어내는 굿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만들고 지금의 운명을 선사한 사람들도 그녀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니 원망보다 연민을 느끼고 있다. 꿈을 꾸는 것이 너무 큰 고통인 생의 현실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처벌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순결을 찾아가는 꿈을 저버리지 않는다. 화장실 바닥만큼이나 더러워진 정신의 바닥에 강력 세제를 붓고 청소를 시작한다 음습한 삶 테이블 가장자리에 낀 때를 얼룩진 과거의 장식품을 빡빡 훔쳐낸다 털고, 쓸고, 닦고 문지르고… 한순간 밑바닥이 순결해지고… 그리고 또 다시, 이내 별 수 없이 방부 처리된 통조림 같은 몸을 딴다 바닥 여기저기에 나를 엎지른다 썩지도 부패하지도 않는, 끝내 청산할 수 없는 이 가공된 생의 막판을 위해 <'유토피아' 정마담의 하루 2> 부분 일상 속에서 더러워진 흔적들을 닦고 문지르는 행위는 자신의 순결을 회복하려는 노동이다. 비록 목숨이 붙어 있는 육체는 또 다시 <방부 처리된 통조림>처럼 더러워지고 그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순결을 회복하려는 고독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기와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도 시를 쓰는 것을 <손댈 수 없이 뜨거운/ 언어의 호르몬>(<바람난 詩-베네치아 궁전에서의 간접체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녀에게서 언어의 호르몬은 어디서 생성되는 것일까. 공중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여인의 알몸(<신월동 레즈비언>), 달동네에 너부러진 아이들(<우리 동네 키보이(keyboy)들>), 어머니의 화투점(<비·풍·초 2>) 골목의 싸움질(<오래된 골목의 내력>)이라 할 수 있다. 신물나는 가난 속에서 목숨을 경영하는 인간들의 출구 없는 일상과 그 일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이다. 그 갈망은 격식을 갖추어 포장된 사회·문화적 제도에 편입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제도의 혜택 밖에 배설된 자본의 폭력과 잔혹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야수성을 뚫고 들어가 순결한 인간으로 서려는 구도의 길이다. 그렇다고 그녀는 기성의 사회적 관념에 의존해 현실을 초월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그녀에게 초월을 꿈꿀만한 틈을 허여하지 않는다. 사회는 끼리끼리 모여 놀도록 짜여져 있고, 그녀는 다른 집단에 끼여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리수거>) 그러므로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주인이 된 삶을 찾고 있다. 또 3차에는 지옥의 벼랑 끝 의식이 바닥난 곳으로 비틀비틀 가고 싶었다 성령이 충만한 피조물들이 아우성치는 밤늦은 주유소(酒有所)에서의 추락 추락 추락 그 짜릿한 황천길로 모든 걸 용서받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죄 짓고 처음 그곳으로 귀가하고 싶었다. <유령들의 주유소(酒有所)> 부분 2차, 3차 술을 마시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그래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인데도 왜 모두들 비틀거리는가. 점잖게 걷던 자들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인가. 자신의 육체 속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았던 그 무엇이 술의 힘을 빌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 목소리들이 아무리 소리쳐 보아도 세상은 미동도 안 하는데, 다들 야단들이다. 현실에서 이 목소리들은 유령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이런 유령으로 살아가는 일이 죄를 씻는 길인지도 모른다. 자본의 자동화된 공정에서 빠져 나온 유령이 정말 보잘 것 없는 육체의 주인인지도 모른다. 이기와 시인의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는 이렇듯 자본의 자동화된 공정을 거부하는 순결한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자본의 뒷골목에서 비틀거리면서 목숨을 부치는 보통사람들은 오늘도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순결을 회복하려는 카니발이다. 과거의 흔적과 오늘의 고통을 소멸시키고 신천지에 새로운 생을 건설하려는 마이너리거의 꿈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