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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가톨릭과 과학은 하나였다
1장. 황금비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 피보나치수열 - 13세기에 피보나치가 출판한 산수책 - 증식하는 토끼에 관한 기묘한 문제 - 황금비란 무엇인가 - 자연은 황금비로 되어 있다 - 자신의 예술에 황금비를 활용한 다 빈치 2장. 삼각형의 불가사의 - ‘수의 신비’에서 신을 본 피타고라스 -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한 삼각형 - 비밀의식, 피타고라스의 정리 -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음계의 신비 - 행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 ‘무리수’는 왜 사악한가? - 최초로 지구를 ‘둥근 물체’라고 주창한 피타고라스 - ‘신의 진리를 인식하는 그노시스’로의 흐름 3장. 다 빈치와 예수 그리스도 - 예수란 어떤 인물인가? - 다 빈치가 그린 <암굴의 성모>에 얽힌 수수께끼 - 세례요한이 세례를 시작하다 - 《구약성경》을 충분히 공부한 예수 - 몸을 희생해 맺은 신과의 계약 -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티나 - 세례요한 처형의 진상 - 예수의 쌍둥이란 누구인가? 4장.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에 숨겨진 수수께끼 - 로마 가톨릭이 지배한 중세 - 사해문서로 밝혀진 에세네파의 전모 -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의 공통점 - 에세네파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요한복음 - 다 빈치가 <암굴의 성모>에 담은 의도 - 십자군에 문화적 충격을 준 그리스정교 - 희생양과 죄의식 - <최후의 만찬>의 참모습 5장. 수수께끼로 가득 찬 다 빈치의 생애 - 천재는 혼자 조용히 인식한다 - 가톨릭의 억압과 인식으로의 갈망 - 삼위일체를 부인한 유니테리언 - 부친을 혐오한 다 빈치 - <최후의 만찬>은 인물보다 원근법이 우수하다 - 시체를 해부한 다 빈치의 목적 - 다 빈치는 인식하고 있었다 - 영화 <다 빈치 코드>의 오류 - 막달라 마리아는 <암굴의 성모>에 그려져 있다 6장.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발견 - 가톨릭적 세계관에 대한 첫 도전 - 대성당의 샹들리에에서 발견한 ‘흔들이의 법칙’ - ‘중력의 법칙’을 확립한 갈릴레이 -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의 회전’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 천체 관측으로 지구의 회전을 확신한 갈릴레이 - 파리의 움직임에서 ‘해석기하학’을 발견한 데카르트 7장. 근대과학을 확립한 아이작 뉴턴 - 로마교황도 인정한 ‘만유인력의 법칙’ - 다 빈치, 갈릴레이, 뉴턴을 연결하는 시계 - 사과는 떨어지는데 왜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 - 신학과 근대과학의 지위를 역전시킨 뉴턴 - ‘미적분’을 발견한 것은 뉴턴인가, 라이프니츠인가? -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상에 알린 핼리 8장. ‘유일신의 영역’을 목표로 한 과학자들 - 다 빈치와 뉴턴을 연계하는 ‘인식’의 욕구 - 반사회적이고 위험한 유니테리언 - 가톨릭을 초월한 신과의 일체 - ‘신의 첫 일격’으로 종교와 과학은 대립하지 않는다 - 뉴턴의 문제를 해결한 라그랑주 - 물리학 역사상 최고의 천재, 피에르 라플라스 9장. 신의 영역의 종말 - 인류가 이뤄낸 인식의 도달점 - 원리의 한계를 가르치는 ‘불확정성 원리’ - 신도 인간도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 - 신의 존재는 자신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빅뱅’은 왜 일어났는가? - 천왕성을 발견한 허셜 - 그리스도교의 대들보를 흔든 대사건 10장. 신의 비밀에 대한 으뜸패 - 천재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전자 - 다 빈치와 뉴턴도 알아차리지 못한 ‘전자’의 존재 - ‘화학’, 그 끝없는 미지의 세계 - 천재들이 ‘전자기’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 - 어떻게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 전파와 빛이 같다는 놀라운 사실 - 뉴턴 역학을 수정한 아인슈타인의 공적 에필로그 -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 |
Masahiro Mita,みた まさひろ,三田 誠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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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 보자. 신은 우리 앞에 트럼프 카드를 엎어놓았는데, 지금 그 한 장을 열어보았다. 한 장만 봐서는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장, 세 장 카드를 열다보면 카드와 카드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모든 카드가 뒤집히면 그 전체는 완전히 정리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판명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엉터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 따라서 원리를 추구해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정연한 체계가 드러날 것이다. 과학의 선구자들은 이러한 신념으로 원리를 추구했다. 그들은 신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우주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함으로써 인간은 우주를 포용한다. 즉 인간은 우주보다 큰 존재인 것이다. (…) 신이 준비한 카드를 한 장 또 한 장 뒤집어 가는 인간의 모습은 과감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하다. 그 순간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은 우주를, 그리고 신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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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무거움은 사양한다.
과학자들이 종교 재판에 회부되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종교와 과학은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는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란 더 이상 없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과학을 도구로 종교의 치부를 파헤치거나 신을 부정하는 작품이 등장하면 부정적인 반응이든 긍정적인 반응이든 어김없이 언론과 대중의 집중조명을 받는 인기작이 된다. 리처드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이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 그 인기를 타고 한꺼번에 쏟아진 각종 해설서 혹은 안티 다 빈치 코드 책들이 그러하다. 확인할 수 있듯이 둘의 만남은 대체로 매우 무겁고 예민하다. 이 책은 종교와 과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논란을 던지기 위해 나온 책은 결코 아니다. 종래의 책들이 종교와 과학의 전투적인 접견에서 논란을 끌어냈다면, 이 책은 종교와 과학의 비교적 가볍고 흥미로운 밀회密會로부터 이야기를 진행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논쟁에 빠지는 대신 묻혀있던 진실들을 발견하는 재미, 즉 그노시스(인식)적인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꿰뚫는 인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학의 선구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했던 것은 바로 신의 말씀, 원리이다. 그들은 원리를 인식함으로써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과학의 원리를 추구한 것은 신을 믿은 자들이다. 베일에 싸인 신의 카드가 한 장씩 뒤집어질 때마다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신의 원리와 마주하게 된 과학자들은 더욱 신을 경외하게 되었다.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였다. 그러나 신의 원리를 철저히 봉쇄하려 한 가톨릭은 이러한 인식을 허용하지 않았다. 신의 영역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죄악시하고 금기시했다. 연약하고 우둔한 인간의 죄를 씻어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톨릭이 장려하는 인생관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완고한 가톨릭 지배체제를 유지하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노시스(인식)적인 욕구는 필연적으로 가톨릭과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과학이 부정한 것은 신이 아니라, 가톨릭의 구습이다. 신의 원리를 인식하려고 한 과학자들은 신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만큼 가톨릭으로부터 멀어져간 것이다. 이것은 인식의 역사 속 비밀스러운 진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예수의 오른 편에 앉아 있는 이가 여자(막달라 마리아)였다고 한 영화 "다 빈치 코드"의 재미있는 해석에 대해 세례요한의 교단이 띠는 성격이라든가 배경이 되는 지역의 특성 등을 바탕으로 그것이 오류임을 지적해내는 부분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종교와 과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성서의 내용이라든가 물리학, 화학 및 수학과 관련된 각종 수식들이 간간이 등장하지만 누가 읽어도 이해하는 데 곤란을 겪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며,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서 가능한 한 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딱딱하거나 지루하게 느낄 틈이 없다. 이것은 신이 덮어둔 비밀카드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도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의 영역을 목표로 한 과학자들이 가톨릭에 대항해 은밀한 그노시스(인식)적 작업을 계속한 결과 이제 과학은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젖히고 신을 부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듯 보였다. 천체역학의 천재라고 불리는 피에르 라플라스는 그의 저서에 신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나폴레옹 앞에서 그런 가설은 필요 없다며 신의 부재不在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결국 인간은 엎어져있던 신의 카드를 모두 뒤집은 것일까? 그러나 라플라스의 오만한 선언은 무한한 신의 영역 가운데 역학 일부에 해당될 뿐이었다. 탁월한 그노시스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과학자들도 양극이 상쇄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의 존재는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운동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일격은 신이 아니라 빅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은 신의 원리라고 하는 퍼즐 판의 한 귀퉁이가 맞춰진 것뿐이다. 이것은 생각하는 갈대, 신을 포용하는 그노시스(인식)적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원리를 아직까지 완벽하게 발견하지 못한 상태이다. 비밀스러운 신의 카드는 여전히 온전한 체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엎어져있다. 그러나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하고 우매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세계와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해 자문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해왔다. 우주 만물 가운데 신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해온 존재는 인간뿐이다. 노력으로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것, 이것이 바로 그노시스의 핵심이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대신 신의 존재까지 포용하는 그노시스(인식)적 존재,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긍정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