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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
곽의진
그림같은세상 20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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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1948년 전남 진도 출생으로, 1983년 《월간문학》에 「굴렁쇠 굴리기」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90년 전남매일에 장편소설 『부활의 춤』을 연재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1996년부터 만 2년 동안 문화일보에 『꿈이로다 화연일세』를 연재했다. 이 작품은 남종문인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조선조 말 대화가 소치의 생애와 예술을 그린 소설로, 전남의 전통 문화와 선비 정신을 중앙에 널리 알렸다는 평을 받았다. 동포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전남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는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위원회 이사장으로서 진도 역사 알리기에 힘쓰고 있는 동시에 작품 활동을
1948년 전남 진도 출생으로, 1983년 《월간문학》에 「굴렁쇠 굴리기」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90년 전남매일에 장편소설 『부활의 춤』을 연재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1996년부터 만 2년 동안 문화일보에 『꿈이로다 화연일세』를 연재했다. 이 작품은 남종문인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조선조 말 대화가 소치의 생애와 예술을 그린 소설로, 전남의 전통 문화와 선비 정신을 중앙에 널리 알렸다는 평을 받았다. 동포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전남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는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위원회 이사장으로서 진도 역사 알리기에 힘쓰고 있는 동시에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곽의진의 다른 상품

사진 : 허용무
1964년 단양 출생. 중앙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고
서울경제신문 조선일보 , 월간 [샘이깊은물] 등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탄광촌 사람들(1987)'과 '상여를 타고 가는 예수(2000)' '원형의 섬 진도 (2001)' 등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사진집으로 <상여를 타고 가는 예수>(가각본)와 <허용무 사진집 원형의 섬 진도>(이레)와 <원형의 섬 진도>(공저, 이레)가 있다. 현재는 동신대학교 사진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5쪽 | 52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5273100

출판사 리뷰

예향藝香이 묻어 있는 남도 따라가는 길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차를 인연으로 하여 혜장스님과 다산 정약용, 그리고 다산과 초의선사의 아름다운 교유,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그리고 소치 허유를 아우르는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게다가 혼탁한 세상살이를 벗어나 무릉도원을 꿈꾸던 고산 윤선도가 유배지이자 남도의 예藝를 간직한 강진과 진도, 해남과 보길도를 잇는 기나긴 여정에서 오롯이 되살아납니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고산 윤선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여느 책처럼 인물에 대한 평이나 작품평, 또는 그들의 사상과 업적을 되짚어내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담아내, 시대를 초월하여 마치 이웃어른을 만나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잔의 차를 앞에 두고 밤이 깊은 줄 모르고 담론하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이란…….

저자는 그 선인들을 우리 곁으로 초대합니다. 차와 인연이 되어 다산과 초의 그리고 추사를 만나고, 보길도 물길따라 윤선도의 풍류를 만나고, 남도 유배지에서 한限 많은 인생을 살아가는 조선의 여인들의 슬픈 이별을 만나고, 길을 따라 정신과 육신이 떠나듯이 그림에 심취해 마침내 남종문인화의 대가大家를 이룬 소치 허유를 만나고, 그가 일군 남종 산수의 종갓집 운림산방에 잠시 머물면서 허씨 화풍의 맥脈을 짚어보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예藝와 민속民俗의 보고인 진도에 잠시 머물러 한판 벌어지는 씻김굿을 구경하고, 몽골의 지배에 저항하며 물길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던 삼별초의 눈물겨운 항거를 재현한 한편의 민요창극 '진도에 또 하나 고려 있었네'의 무대 뒤편을 보기도 합니다.

하얀 찻잔에 연둣빛 고운 색의 차를 우리에게 권하면서 저자는 그 향기에 취해, 그 맛에 취해 밤 깊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어느새 남도의 그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 곁에 되살아납니다. 저자는 국문학자도 아니요, 전문적인 문화답사가도 아닙니다. 다만 글이 좋아 도시를 버리고 태묻은 진도에 내려와 독한 진도 홍주에 취해 절대 고독을 삭이며 살아가는 작가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지독한 남도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하여, 사진작가 허용무 씨의 도움을 빌어 남도의 그 찰진 유배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남도가 무척이도 그리워졌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길을 잡아 남도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문득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라 차와 관련된 그들의 인연을 몇 구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은은한 향香, 깊은 연緣

다산이 강진에 유배중 일 때 만덕산 만덕사(백련사)에 기거하는 혜장이 다산을 만나고 싶다고 청합니다. 당시 죄인을 멀리하는 것이 일반적 민심인지라 그를 만나고 싶다고 청을 넣어준 혜장에게 다산은 깊은 관심을 갖지요. 불자인 혜장이 뜻밖에도 주자와 공자의 역학, 계몽 수십 장을 술술 암송하므로 다산은 과숙유(果宿儒:학식과 덕망이 높은 학승)라는 찬사를 던졌지만, 그보다 혜장은 다산의 '곤초육설坤初六說에 감복하여 엎드려 절을 한 후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이때 혜장의 나이 34세, 다산은 44세로 10년 차이가 납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 다산에 대한 혜장의 정성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극진합니다. 혜장은 다음해부터는 곡우 전후해서 참새 혀끝만큼 자란 차나무 잎을 다산과 함께 따서 잎을 찌고 볶아 엽차葉茶를 만들고 병차餠茶를 만드는데, 그것은 세시의 즐거움으로 유배지 다산에게는 휴식이며 동시 행락이기도 합니다. 그 차를 잊지 못해 다산은 혜장에게 차를 요청하는 [걸명소]를 지어 보냅니다.

전해 듣건대 바위틈에 좋은 차나무 있다 들었소.
차나무는 나라 소유이니 육우(陸羽)의 차 맛 좀 누릴 수 없겠소
병을 낫게 해주기만 바랄 뿐 쌓아놓고 두고두고 먹을 욕심 없다오.
(중략) 나그네는 근래 차 버러지가 되어버렸으니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차 가운데 묘한 법은 보내주신 육우 다경 3편을 통달케 하였으니
병든 큰 누에는 마침내 노동(盧同)도 남긴 일곱째 잔을 마르게 하였소
정력이 쇠퇴했다 하나 기모경의 말은 잊지 않았고
막힘을 풀고 흉터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차황의 차 마시는 버릇을 얻었소
아아, 윤택할진저,
아침에 달이는 차는 흰 구름이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듯하고
낮잠에서 깨어나 달이는 차는 밝은 달이 푸른 물에 잔잔히 부서지는 듯하오.
다연(茶 )에 차 갈 때면 잔구슬처럼 휘날리는 옥가루들
산골의 등잔불로서는 좋은 것 가리기 아득해도
자줏빛 어린 차순 향내 그윽하고
불 일어 새 샘물 길어다 들에서 달이는 차의 맛은
신령께 바치는 백포의 맛과 같소
꽃청자 홍옥다관을 쓰던 노공의 호사스러움 따를 길 없고
돌솥 푸른 연기의 검소함은 한비자에 미치지 못하나
물 끓이는 흥취를 게눈 고기눈에 비기던
옛 선비들의 취미만 부질없이 즐기는 사이,
용단봉병 등 왕실에서 보내주신 진귀한 차는 바닥이 났소
이에 나물캐기와 땔감을 채취할 수 없게 마음이 병드니
부끄러움 무릅쓰고 차 보내주시는 정다움 비는 바이오.
듣건대 죽은 뒤 고해의 다리 건너는 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 줌 몰래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말고 베품 주소서.

한편, 조선조 성리학에 치우쳐 다문화까지도 불교문화라 해서 칠천계급에 몰아때려 다문화를 말살시키고 있을 때 추사는 차에 정통한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초의에게 달려갑니다. 추사는 역관의 자격으로 중국 연경에서 이미 승설다를 맛본 후 차에 깊이 빠져들었던 터라 차를 하는 스님에 대한 호기심은 더했을 법합니다.

승가사에서 추사와 초의, 두 사람은 첫 대면을 하게 되는데 은은한 빛깔로 우러난 차를 앞에 두고 그 향을 마시면서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지요. 어느덧 새벽 독경 소리가 들릴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란…….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끌리게 했을까요?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연경의 석학들과도 맞대화할 수 있는 유학자 추사와 불경의 깊고 높은 경지를 깨우친 초의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긴밀한 것은 바로 차茶로 인하여 맺은 연緣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지고, 다산이 혜장에게 청했던 것처럼 추사도 차가 떨어지면 초의에게 서찰을 보내 차 보내기를 간청합니다. 처음의 간청은 나중 협박이 되어 서찰을 받아쥔 초의에게 너털웃음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초의 안녕하신가? 호남팔고 초의선사 보고 싶으이.
보고 싶어 간밤엔 눈곱이 다 끼었나니.
그 청량하고 고고한 모습 한 번 보기 원하나니…….
그러나 불사에 바쁘신 몸 어찌 욕심 내겠는가.
원컨대 초의가 만든 차라도 보내주시면
초의 대하듯 '초의 차' 만지고 어르고 혀끝으로 음미하리니…….

이보시게, 일지암 토굴 민대머리.
부처님을 모시는 몸이 그토록 신통력이 없는가.
꼭 말을 해야 아시겠는가.
'초의 차' 떨어져 '초의 차' 못 마시니
혓바늘이 돋고 정신이 멍해지느니,
그러니 '초의 차' 보내지 않으시면
내 당장 말을 몰아 일지암으로 향하여
차밭을 모두 밟아버릴 터.
그러나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의 차'에 중독시킨 죄값 응당 그대의 몫이려니…….

추사의 그런 글을 받으면서 초의는 잿빛 장삼자락이 펄럭이도록 온몸을 흔들어 웃어젖히며 답서를 보냅니다.

어허허, '초의 차'에 환장헌 사람이구먼.
마치 양귀비에 중독된 사람맨키로
분별 읎이 글을 쓰셨구먼.
천하에 추사도 '초의 차' 읎으면
맥 못 쓰고 꼬랑지 팩 꺾이고 마는구먼.

그렇습니다, 이렇듯 인연은 보이지 않는 힘이며 희망이지요. 연령과 신분을 초월한 이들의 만남에는 반드시 차茶가 있었습니다. 그 차의 향기에 실려 남도는 예향藝香과 예기藝

추천평

곽의진은 진도 사람이다. 서울에서 팔자에도 없는 출판사를 차렸다가 한 이태 만에 문을 닫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곽의진은 진도 바닷가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살고 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세방마을에서 살았다. 세방마을은 진도의 서쪽 바닷가이다. 그 마을에서, 곽의진이 살던 집은 다 쓰러진 초가삼간이었다. 외양간은 이미 무너져내렸고, 마당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두 평쯤 되어 보이는 안방 한 칸, 캄캄한 부엌 한 평, 그리고 툇마루 한쪽이 사람이 몸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의 전부였다. 늘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그 안에서 살고 있기는 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어느 해인가 진도에 갔다가 진도의 경찰관을 만났더니, 이 집에서는 인기척이 없고 가까이 가서 들어보면 컴퓨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서 간첩의 은신처가 아닌가 싶어서 오랫동안 눈여겨보며 그 이웃들을 탐문했다고 한다. 거기는 집이라기보다는 헛간이라고 해야 옳지 싶다.

이 헛간이 곽의진의 장편소설 {꿈이로다 화연畵緣일세}의 산실이다. 이 유배지와도 같은 헛간에서 곽의진은 3년여 동안 혼자서 컴퓨터 자판을 달그락거리며 글을 썼다. 그 소설책이 간행되었을 때 나는 그 책의 맨 뒤에 몇 자의 해설을 적은 일이 인연이 되어서 진도 곽의진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곽의진은 나를 그 헛간과도 같은 방안으로 들이지 않고, 마당의 바위 위로 홍주병을 내왔다. 안주는 말린 김이었다.

그때, 세방의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세방의 일몰은 멸망과 신생 사이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먼 섬들이 사위는 빛 속으로 불려갔다. 그것은 거대한 소멸이었다. 나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선이 모두 지워져버리는 그 일몰의 스산함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거기서 혼자 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담력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일상의 정서 속에서 감당해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또 감당해낼 수 없는 풍경이 있을 터인데, 세방의 일몰은 버거웠고, 정처없었고, 쓸쓸해서 버리고 싶었다. 그때 내 눈에 곽의진은 글 쓰는 귀신처럼 보였고, 그의 필경업은 무슨 저주처럼 느껴졌다. 곽의진은 그 막막한 일몰에 아주 몸이 절어진 사람처럼 처연히 온몸을 노을에 맡기고 홍주를 마셨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말조차도 그는 하지 않았다. 곽의진은 박모薄暮 속으로 소멸해가는 먼 섬처럼 느껴졌다. 세방은 일몰의 바다였다.

{꿈이로다 화연畵緣일세}를 다 쓰고 나서 곽의진은 진도 안에서 거처를 옮겼다. 곽의진의 새 집은 진도의 남쪽 바닷가인 여귀산 아래 탑리마을이다. 여귀산의 가파른 한 자락이 급히 바다로 내리달리다가 문득 숨이 낮아진 펑퍼짐한 구릉이다. 이 집을 가려면 소형 승용차로는 어렵고 지프를 타고 굽이굽이 비포장 산길을 돌아가야 한다. 곽의진의 새 집은 전의 세방마을 집과는 크게 다르다. 반듯한 한옥이다. 방안에서 일출, 일몰, 월출, 월몰, 밀물, 썰물을 다 볼 수 있고 바다의 안개와 바람부는 날의 물보라가 방 안에까지 스며든다. 안방 툇마루가 바다 쪽으로 나 있어서, 굳이 물가로 걸어내려가지 않아도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거기가 바로 물가다. 바다에서 뜨는 해가 창을 비치고, 바다로 지는 해가 그 창을 비친다. 그렇게 해가 뜨고 지는 사이에 곽의진은 거기서 또 컴퓨터 자판을 달그락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내가 '왜 서쪽 바다를 떠나서 남쪽으로 갔느냐?'고 물으니까 곽의진은 '일몰이 너무 힘들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세방의 저녁 바다에서 힘들어했던 사태를 그 역시 힘들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그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탑리의 새 집은 일출과 일몰이 함께 찾아오는 집이다. 거기서 곽의진은 '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라는 공연 대본을 완성했다. 그의 고향에 대한 한없는 헌신이었다.

곽의진이 고향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고향으로 유배당한 자의 삶과 같다. 곽의진은 고향을 유배지로 만들고, 그 유배지에 다시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글 속에 나오는 추사나 소치의 모습이 또한 그와 같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 나오는 추사와 소치는 곽의진 자신의 진도가 투사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외로움의 힘으로 '너'를 생각하고 너와 더불어 다시 외로워지는 것이 곽의진의 삶과 글의 비밀이다. 고향도 그와 마찬가지이고, 탑리 바다의 일출과 일몰도 다 마찬가지이다. 진도의 남쪽 바닷가에는 혼자서 컴퓨터 자판을 달그락거리는 곽의진이 있다. 멀어서 가지 못하고, 다만 그 바닷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 바닷가에 곽의진이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일출과 일몰의 그 감당못할 슬픔에 맞서는 인간의 컴퓨터 소리가 그 바닷가에서 끝없이 달그락거리기를 바란다.

―김 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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