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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첫째이야기: 저도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어요 둘째이야기: 열일곱 살에 스스로 세상을 버린 딸 셋째이야기: 엄마를 변화시킨 형제의 비행 넷째이야기: 아이에게도 고뇌할 자유가 있습니다 다섯째이야기: 내 아들은 폭주족 여섯째이야기: 내일은 즐거운 날이 되리라 일곱째이야기: 아들이 목숨과 바꿔 가르쳐 준 것 에필로그: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드러납니다 역자후기 |
鈴木秀子
스즈키 히데코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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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자녀가 이러이러하게 커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자신이 바라는 대로 키우려는 것은 어느 부모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의 나약한 면을 포함해서,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안정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등교 거부를 하는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 수만 있다면 학교에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가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싫은 일을 겪었거나 인간관계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등교 거부는 그런 공포감과 압박감이 복통이나 두통이라는 모양으로 신체에 나타나서 아이의 기력을 꺾어 놓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열일곱 살인 B양의 자살. 가족에게 이 이상 괴로울 수 없는 사건에도 분명히 ‘의미’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살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양의 죽음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미 일어난 일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미래를 더욱 나은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등교 거부나 비행이나 출발점은 똑같습니다. 자기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 주는 존재, 자기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없다고 느끼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등교를 거부하며 집에 처박혀 있는 아이나, 집에 있지 못하고 비행으로 줄달음치는 아이나 모두 마음속에 커다란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지요. 등교 거부를 하는 아이는 그 두려움을 없애려고 가족들에게 마구 화를 내는 것이며, 비행으로 줄달음치는 아이는 밖에서 그 울분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군가가 자기의 행동에 반응하며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등교 거부라든지 성적이 좋지 않다든지 하는 ‘행동의 그 부분(doing)’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본질 즉 ‘존재 그 자체(being)’에 눈을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넌 내게 소중한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해 주고, 그것을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린다는 것’에는 원래 초조함과 불안이 따르기 마련 아닐까요? 자신의 초조함과 불안을 꾹 참아 견디며, 따뜻함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기다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한 마리 양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초조해하지도 체념하지도 않으면서 기다릴 시간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기대하는 이상형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이들 자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100%가 못 되면 제로와 같다는 식의 사고 방식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어른들은 교활한 편이지요. 자기 자신의 경우는 50%가 되든 30%가 되든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면서 아이들에게는 100%를 요구하니까요. 그러한 자신의 교활함을 깨닫게 되면 아이들에게 잘난 척하거나 큰소리를 칠 수 없으며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이러니저러니 하고 비난할 수 없게 됩니다. 수영장에서 일어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4년 동안이나 그 애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맏아이도 몇 번인가 수영장 속에 떠밀었다가 건져 낸 일이 있는데, 맏아이에게는 그렇게 수영을 가르쳤거든요. 둘째 아이도 그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사소한 상황의 차이로, 혹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로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걸 몰랐어요. 어린아이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감성을 지닌 존재임을 잊고 있었던 거지요. 이전에는 누군가가 제 자식에 대해 칭찬하면 ‘천만에요. 그렇게 착한 애가 아니에요. 제게 얼마나 못되게 군다고요.’라며 겸사하였지요. 속으로는 기뻤지만 그렇게 겸손한 척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자식은 부모의 작품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만약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인격이 있다고 깨달았다면, 자기 아이가 칭찬받았을 때도 솔직하게 ‘덕분이지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요. 그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부모가 겸손해서 자기 자식에 대해 나쁘게 말할지라도 해도 아이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알아듣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기를 정말로 그렇게 나쁘게 보고 있다고 믿어 버리지요. 저는 지금까지 솔직하게 ‘감사합니다. 덕분이지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히 제 자식을 칭찬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자기 자식을 칭찬해 주는 엄마가 있으면 ‘아이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 멋진 엄마이시군요.’라고 말해 줄것입니다. 아무리 거친 파도가 일어난다 해도 바닷속 깊은 곳은 고요하듯이, 괴로운 일이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평범한 생활에서 만나는 작은 조화로움이나 가족과 나누는 일상적인 평화처럼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여겨 온 ‘은혜’로 눈길을 돌리는 것…. 이 책에 나온 일곱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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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자녀가 이러이러하게 커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자신이 바라는 대로 키우려는 것은 어느 부모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의 나약한 면을 포함해서,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안정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등교 거부를 하는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 수만 있다면 학교에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가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싫은 일을 겪었거나 인간관계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등교 거부는 그런 공포감과 압박감이 복통이나 두통이라는 모양으로 신체에 나타나서 아이의 기력을 꺾어 놓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열일곱 살인 B양의 자살. 가족에게 이 이상 괴로울 수 없는 사건에도 분명히 ‘의미’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살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양의 죽음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미 일어난 일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미래를 더욱 나은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등교 거부나 비행이나 출발점은 똑같습니다. 자기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 주는 존재, 자기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없다고 느끼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등교를 거부하며 집에 처박혀 있는 아이나, 집에 있지 못하고 비행으로 줄달음치는 아이나 모두 마음속에 커다란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지요. 등교 거부를 하는 아이는 그 두려움을 없애려고 가족들에게 마구 화를 내는 것이며, 비행으로 줄달음치는 아이는 밖에서 그 울분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군가가 자기의 행동에 반응하며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등교 거부라든지 성적이 좋지 않다든지 하는 ‘행동의 그 부분(doing)’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본질 즉 ‘존재 그 자체(being)’에 눈을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넌 내게 소중한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해 주고, 그것을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린다는 것’에는 원래 초조함과 불안이 따르기 마련 아닐까요? 자신의 초조함과 불안을 꾹 참아 견디며, 따뜻함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기다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한 마리 양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초조해하지도 체념하지도 않으면서 기다릴 시간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기대하는 이상형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이들 자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100%가 못 되면 제로와 같다는 식의 사고 방식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어른들은 교활한 편이지요. 자기 자신의 경우는 50%가 되든 30%가 되든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면서 아이들에게는 100%를 요구하니까요. 그러한 자신의 교활함을 깨닫게 되면 아이들에게 잘난 척하거나 큰소리를 칠 수 없으며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이러니저러니 하고 비난할 수 없게 됩니다. 수영장에서 일어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4년 동안이나 그 애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맏아이도 몇 번인가 수영장 속에 떠밀었다가 건져 낸 일이 있는데, 맏아이에게는 그렇게 수영을 가르쳤거든요. 둘째 아이도 그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사소한 상황의 차이로, 혹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로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걸 몰랐어요. 어린아이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감성을 지닌 존재임을 잊고 있었던 거지요. 이전에는 누군가가 제 자식에 대해 칭찬하면 ‘천만에요. 그렇게 착한 애가 아니에요. 제게 얼마나 못되게 군다고요.’라며 겸사하였지요. 속으로는 기뻤지만 그렇게 겸손한 척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자식은 부모의 작품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만약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인격이 있다고 깨달았다면, 자기 아이가 칭찬받았을 때도 솔직하게 ‘덕분이지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요. 그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부모가 겸손해서 자기 자식에 대해 나쁘게 말할지라도 해도 아이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알아듣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기를 정말로 그렇게 나쁘게 보고 있다고 믿어 버리지요. 저는 지금까지 솔직하게 ‘감사합니다. 덕분이지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히 제 자식을 칭찬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자기 자식을 칭찬해 주는 엄마가 있으면 ‘아이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 멋진 엄마이시군요.’라고 말해 줄것입니다. 아무리 거친 파도가 일어난다 해도 바닷속 깊은 곳은 고요하듯이, 괴로운 일이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평범한 생활에서 만나는 작은 조화로움이나 가족과 나누는 일상적인 평화처럼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여겨 온 ‘은혜’로 눈길을 돌리는 것…. 이 책에 나온 일곱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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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의의
자녀 문제로 고통과 절망 중에 있는 부모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등교 거부, 왕따, 학원 폭력, 약물 중독, 청소년 자살 …. 신문이나 뉴스 등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청소년의 비행과 일탈은 이제 더 이상 새롭거나 쇼킹한 일이 아니다. 이는 바로 내 가정에서, 내 아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거부하고 싶은 현실로 다가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아이가 학교 가기를 거부한다면?’,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이 마약범으로 체포된다면?’, ‘사랑스러운 내 딸이 꽃다운 나이에 자살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 자녀에게 일어났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는 그런 절망적인 일을 겪은 후 그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 부모들의 생생한 고백이 담겨 있다. 저자는 ‘목련회’(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와 ‘들꽃 모임’(자녀의 비행이나 등교 거부로 괴로워하는 어머니들의 모임) 회원들의 체험담을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독자는 이 책에 소개된 일곱 부모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고 미소 짓는 사이 참된 부모의 역할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을 발견한 현명한 부모들의 감동 스토리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한 어머니의 고백은 다소 충격적이다. “저는 그 아이에게 엄마가 아니라 무자비한 괴물이었습니다.” 어느 부모나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하고 있고, 또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최선과 진정 자녀가 원하고 있는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자녀가 보내는 도움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있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자녀는 부모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이 약물 중독이든, 등교 거부든, 가정 폭력이든 간에. 하지만 부모는 자신이 원하고 기대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계획한 대로 아이에게 강요하며, 아이의 ‘SOS’ 신호를 놓치고 만다. 이 책은 그러한 실수로 자녀의 가슴속에 상처를 준 부모들의 생생한 상담 사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상담 사례 발표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을 겪는 사이 부모의 삶이 변화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들어 있으며, 그 이야기들은 자녀를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끝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라 역설하고 있다. 자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인 ‘행동요법’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실천하면 좋을 방법들을 직·간접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행동요법’이 두드러진다. 이는 부모가 절대로 아이보다 먼저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자국을 가든, 두 발자국을 가든 자녀가 스스로 갈 수 있도록 해주며 부모는 자녀 뒤를 따르는 방법이다. 이는 한마디로 자녀를 기다리는 방법인데,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부모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주제가 바로 ‘기다림’이다. 이 책에 소개된 부모들은 비록 자녀가 처한 상황과 일탈의 모습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것은 바로 자녀를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자녀가 어떠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부모가 자녀를 믿고 기다려 줄 때 자녀는 변한다. 또한 그러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부모 자신도 변한다.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찾은 부모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 그 중 가정 안에서 자녀로 인해 주고받는 상처와 슬픔은 우리에게 크나큰 절망을 안겨 준다. 그러나 그 원인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부모가 쉽게 지나쳐 버리는 사소한 사건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일곱 가정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정들이었다. 그들 모두 처음에는 ‘어째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그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낙심과 절망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난 원인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일에는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녀 문제로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부모들에게 기다림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