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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투사 노예에서 자유의 투사로 되살아난 ‘스파르타쿠스’ 이야기
|김덕수(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2. 에티엔 마르셀과 14세기 ‘파리의 혁명’ |성백용(인하대 서양사 강사) 3.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황대현(서울시립대 학술연구 교수) 4. 평등주의자 그라쿠스 바뵈프 |박윤덕(서울대 서양사 강사) 5.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주의와 유토피아 |송충기(공주대 사학과 교수) 6. ‘노동자 황제’ 아우구스트 베벨 |고재백(서울대 서양사 강사) 7. 로자 룩셈부르크, 한 혁명가의 ‘가지 않은 길’ |문수현(서울대 서양사 강사) 8.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고독한 수호자,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이채욱(서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9. 마르토프, 사회주의의 햄릿? |박상철(전남대 사학과 교수) 10. 혁명가 이네사 아르만드 |기계형(서울대 서양사 강사) 11. 혁명가 스탈린, 독재자 스탈린 |김남섭(서울대 역사연구소 연수연구원) 12. 안토니오 그람시와 감옥 속의 민주주의 |장문석(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13. 두루티의 아나키즘 혁명 125일 |황보영조(경북대 사학과 교수) 14. 말콤 엑스, 블랙 무슬림에서 국제주의 혁명가로 |안효상(서울대 서양사 강사) 15. 칠레의 고독한 ‘구원자’ 살바도르 아옌데 |박구병(서울대 서양사 강사) |
PARK Youn-Duk,朴允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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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내가 비축해놓은 의지력을 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단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되어왔단다. 그건 수동적이고 활력 없는 인내심이 아니라, 끈기 있는 노력과 결합된 참을성이야.
---안토니오 그람시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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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투사 노예에서 자유의 투사로 되살아난 ‘스파르타쿠스’ 이야기|로마시대에 질서의 파괴자로 그려지다가 근대 이후 억압과 차별을 떨쳐버리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위대한 인물로 재평가되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과정을 추적한다. 과연 그는 반란자인가, 혁명 영웅인가? 저자는 검투사스파르타쿠스에서는 영화나 소설 속 스파르타쿠스의 영웅 이미지가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들여다보고, 역사와 신화 사이에서 스파르타쿠스와 그가 투쟁했던 현실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2. 에티엔 마르셀과 14세기 ‘파리의 혁명’|프랑스혁명 전 처음이자 마지막 혁명을 주도한 에티엔 마르셀의 삶과 투쟁을 조망한다. 그는 어떤 이들에겐 로마 공화국의 그라쿠스와 같은 영웅적 ‘호민관’이자 자유의 사도였고, 어떤 이들에겐 중세의 계급투쟁을 이끈 선구자였으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1793년의 공포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유혈의 장본이었다. 책은 부르주아 상인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지니고 국왕에 맞선 그에게 혁명가란 이름을 세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반추한다. 3.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흔히 동시대 인물인 마르틴 루터와 비교되는 ‘천년왕국주의자’ 토마스 뮌처의 사상을 분석한다. 후대의 일부 역사가들은 그를 농민과 빈민들의 광범위한 무장봉기를 주도했던 탁월한 혁명가라고 찬사한다. 그렇지만 당대에는 모든 것이 공유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해 헛되이 애쓴 과대망상증 환자로 치부했다. 실제로 뮌처는 자신의 종말론적 이상을 농민과 도시민, 광부들의 관심사와 결합시켜 실제 정치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제창했던 루터와 달리, 뮌처의 신학 체계에서 내적 혁명은 필연적으로 사회 혁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뮌처야말로 진정 ‘혁명의 신학자(에른스트 블로흐)’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한다. 4. 평등주의자 그라쿠스 바뵈프|브루주아 혁명에 맞선 최초의 공산주의자 그라쿠스 바뵈프의 삶을 재조명한다. 일등과 꼴찌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는 세상을 꿈꾼 바뵈프주의는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정치적 실천이었다. 정치적 유언장이나 다름없는 르 펠르티에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뵈프는 자신의 모든 글들의 초안을 모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다시 인류에게 행복을 마련해줄 수단을 떠올릴 때, 너는 이 종이쪽들에서 모든 평등의 사도들에게 오늘날의 부패한 자들이 그저 꿈이라고 불렀던 것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글들은 부오나로티에 의해 출간되었고, 그 덕분에 바뵈프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의 발전에서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 5.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주의와 유토피아|과학적 사회주의와 결별하고 유토피아를 택한 이단아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그가 그린 유토피아의 세계를 살펴본다. 그의 대저 《유토피아에서 온 편지》는 시골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와도 같았던 유토피아를 다가설 수 있는 실천의 세계로 구체화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붕괴에 전력하느라 미래 사회의 욕망을 교육하는 데 소홀했던 '과학적 사회주의‘를 뛰어넘어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자 했다. 6. ‘노동자 황제’ 아우구스트 베벨|19세기 후반 독일 ‘사민당의 아버지’이자 ‘노동자와 민중의 황제’로 격동의 시대를 건넜던 베벨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주목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를 향한 염원 속에 노동자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던 그 시절과 비슷했다. 노동자 운동과 사민당 건설 과정에서 부르주아 출신 지식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가운데, 노동자 출신 베벨의 면모는 특이했다. 저자는 베벨이 비록 일생을 ‘비적의 두목’, ‘호의적인 독재자’란 비난을 받았지만, 20세기 중반 ‘사민당’ 출신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의 말처럼 그의 사회주의적 낙관주의가 민중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반문한다. “그가 대변한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잠을 깨웠고, 그가 ‘자유 선거권’이라고 쓰인 깃발을 치켜세우고 앞장서자 수많은 민중이 승리를 다짐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7. 로자 룩셈부르크, 한 혁명가의 ‘가지 않은 길’|1968년 혁명기에 ‘서른이 넘은 자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슬로건에 기초했던 이십대 청년들의 도덕적 예검을 유일하게 피해간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의 궤적을, 그녀가 ‘가지 않은 길’을 통해 검토한다. 그녀는 ‘폴란드에 사는 유태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라는 외줄타기에 몰입했다. 저자는 “많은 계급 문제를 국제사회주의라는 하나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았던 그녀의 신념은 유효성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인정”하면서도 “인종, 성, 국가 등 여러 정체성들의 충돌로 인한 무수한 갈등이 노정되어 있는 이 시대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는 보편인을 상정했던 그녀의 방식은 곱씹어볼 만한 하나의 모델”이라고 평가한다. 8.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고독한 수호자, 게오르기 플레하노프|러시아 최초의 사민주의 조직인 노해단을 창설, 혁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플레하노프의 사상을 알아본다. 원형 그대로의 사민주의에 충실했던 그는 평생을 유토피아와 싸웠지만 그가 추구했던 ‘과학적 사회주의’ 역시 유토피아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략 그의 탄생 150주년, 서거 90주년이 되는 2007년에도 그가 치열하게 대척했던 자본주의를 길들이는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저자는 비록 유토피아로 드러나고 말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삶의 자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9. 마르토프, 사회주의의 햄릿?|레닌의 대척점에 서는 바람에 오랫동안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처박혀 있던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의 이론을 1917년 혁명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급변하는 혁명의 세기를 살았던 마르토프는 레닌의 볼셰비즘을 마르크스주의의 왜곡된 형태로 규정했으며, 레닌 식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지나친 중앙집권화와 관료화로 기울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사회주의란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된 상태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혁명과 계급투쟁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7년 오늘, 그가 경고했던 많은 위험들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0. 혁명가 이네사 아르만드|‘레닌의 연인’이란 그늘에 가린 이네사 아르만드의 혁명가이자 다섯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진짜 삶을 추적한다. 아르만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여성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했고, 시동생과 결혼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청산한 두 남자의 아내였다. 저자는 “혁명과 가족이라는 두 전선 사이에서 오롯이 자기 방식대로 삶을 개척한 혁명가”로서의 그녀를 반추하는 일이 “20세기 혁명의 시대를 새롭게 조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1. 혁명가 스탈린, 독재자 스탈린|스탈린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란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혹적인 인물로 남아 있는 스탈린에 대한 최신 연구를 소개한다.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인간’ 아니면 ‘악의 화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하기엔 스탈린 역시 너무나 양면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인생의 고비마다 보였다. 특히 권력의 최 정점에 오른 후 1930년대 내내 스탈린이 독불장군처럼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상정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스탈린에 대한 끊이지 않는 관심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전기 하나 쓰이지 않은 것은 그가 일기를 비롯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또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 측근들의 신뢰할 만한 목격담도 없다는 점에 기인하는 바 크다. 12. 안토니오 그람시와 감옥 속의 민주주의|2,848쪽에 달하는 《옥중수고》를 통해 파시스트 감옥의 두꺼운 벽을 무너뜨린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분석한다. 헤게모니란 정치적·도덕적 리더십을 뜻하는 말로, 이때의 리더십은 ‘강제+동의’를 통해 관철된다. 따라서 진정한 혁명은 국가 기구를 엄호하고 있는 다양한 동의기제, 즉 학교, 군대, 교회 등 시민 사회의 여러 제도를 해체해 나가는 끈질긴 지구전을 통해서만 달성 가능하다. 또한 그람시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란 1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150만원을 받는 십장으로 승진하는 게 아니라, 모든 시민이 능히 지배자가 될 수 있고, 또 그럴 수 있는 적절한 환경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일종의 지도자 양성소다. 저자는 헤게모니론을 관통하는 모티브가 바로 민주주의라고 결론 내리고, 사회주의의 정당성이 훼손된 탈근대 시대에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민주주의 담론을 활성화하는 데 그의 이론이 적잖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평한다. 13. 두루티의 아나키즘 혁명 125일|에스파냐 아나키즘 혁명가를 대변하는 두루티가 바르셀로나 전투에 참가한 1936년 7월 19일부터 죽기까지의 ‘125일 천하’를 되짚는다. 1936년 이른바 자발적 혁명에 의해 바르셀로나를 ‘해방시킨’ 혁명가들은 그 물결을 에스파냐 전국, 나아가 전세계로 확대하려 했지만, 불과 수개월 만에 극히 일부 도시에서 채 꽃피우기도 전에 실패로 끝났다. 혁명의 핵심 개념은 ‘집단화’ 실험이었다. 당시 한 신문은 집단농장과 공장에선 ‘사람을 늑대로 만들어 버리는’ 화폐가 폐지되고, 커피와 알코올, 매춘이 통제되었으며, 경박한 장소로 알려진 마을 카페도 폐쇄되었다고 전한다. 저자는 두루티의 혁명을 “대안사회를 위한 하나의 실험”으로 평가한다. 14. 말콤 엑스, 블랙 무슬림에서 국제주의 혁명가로|짧은 생애 동안 다양한 사상적 변주를 보인 ‘말콤 엑스 온전히 이해하기’를 시도하며, 그의 때이른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밑바닥 삶에서 백인에 대한 증오를 익힌 그는 처음에 블랙무슬림으로 대변되는 분리주의와 한 배를 탔다가, 이슬람 성지순례 이후 국제 사회주의에 눈을 뜬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이행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그는 무덤 속에 갇히고 말았다. 15. 칠레의 고독한 ‘구원자’ 살바도르 아옌데|선거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좌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아옌데 ‘대통령 동지’의 짧은 혁명기를 살펴본다. 아옌데는 1970년에 집권해 주요산업의 국유화와 공공사업 확대 등 강력한 개혁정책을 폈지만, 1973년 9월 미국의 원조를 등에 업은 칠레 군부의 쿠데타에 무너지고 말았다. 저자는 아옌데 정권의 실책으로 조직적 방해공작이라는 외적 요인 외에 일관되고 응집력 있는 노선의 부재를 꼽는다. ‘구원자’의 비극적 죽음은 한 세대가 지난 뒤 라틴아메리카에 불어 닥친 좌파 열풍의 씨앗이 되었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17살 사관생도 우고 차베스는 25년 뒤 그의 방식을 좇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 볼리비아에선 원주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가 민주적 방식으로 권좌에 올랐다. 또한 칠레에서는 미셀 바첼렛이 사회당을 주축으로 한 연합세력의 연속 집권을 이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