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 역사가의 시각으로 푸코를 읽다
연보 | 미셸 푸코, 삐딱하면서도 모범적인 제1장 | 지향하는 한 방황한다 알 수 없음 | 지적 방황 | 일탈적 호기심 | 낯선 길, 낯선 사유 | 무목의 표류선에 올라 제2장 낯선 것을 사유하다 화려한 엘리트의 길 | 타자의 길 | 소여에서 소욕의 배움으로 | 침묵의 역사에 주목하다 | 구빈원의 타자들 | 부르주아,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다 | 비정상인들 | 타자의 관점으로 역사를 쓰다 | 공감의 역사 쓰기 | 지적 계보 제3장 정치적 사유와 실천 타원의 여정 | 실천적 지식인의 삶 | 나는 교사다 | 실천적 삶 이면의 빈틈 | 개인의 역사를 위하여 | 근대적 개인은 자유로운가 | 근대 감옥과 규율화된 개인 | 일상 속의 정부 | 권력 서식처로서의 개인 |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 | 푸코 저항의 좌표점 | 참을 수 없는 것에 저항하라 | 68혁명과 감옥 사태 | 정치적 사유로 무장하라 | 삶에 내재하는 정치 제4장 껴안고 넘어서는 역사 포월의 여정 | 개인의 심오한 감정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 역사가 관통하는 자서전 | 행복한 실증주의자 | 불연속적 역사 인식 | 실증주의적 역사 서술의 진수 | 사소한 것에 대한 탐구 | 역사가의 해석 | 개연성 있는 상상력 | 역사 서술의 격자화를 넘어 | 진리는 없다 | 자유에 대한 갈망 제5장 푸코를 따라 한국 근대화의 지층을 탐사하다 푸코와 한국 현대사의 만남 | 근대화, 구악의 재설계 프로젝트 | 자본주의적 효율 기획 | 세련된 광기 | 효율주의 사회가 은폐한 것 제6장 실존적 역사 쓰기를 위하여 외침의 역사에서 침묵의 역사로 | 어떻게 껴안고 넘어설 것인가 | 임상역사가가 넘어야 할 문턱 | 임상역사가의 연장통 | 인문주의자로서의 임상역사가 에필로그 |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참고 문헌 찾아보기 |
|
푸코와 한국 현대사의 만남
1) 한국 현대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코드, 효율 기획 저자는 푸코가 보여 준 틀을 빌려 1990년대 이후 펼쳐지는 일상적 삶의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지, 우리 삶의 저층을 흐르는 심오한 감정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를 위해 저자는 1960~1990년대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적 효율 기획의 맥락에서 개관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효율과 경쟁력 우선주의에 압도되어 있다. 언제부터 효율이 이토록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된 것일까? 저자는 5.16 군사 쿠데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사 집권기 지배적인 담론은 국가 재건론이었다. 국가 재건 세력은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능률적인’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가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이로써 생산성으로 연결되지 않는 모든 행태는 척결해야 할 구악으로 지목되었다. 문제는 이런 효율 기획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비효율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효율과 생산성만을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로 상정하고 거기에 일로매진해야 하는 상황은 또 다른 광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 효율성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끊임없이 양화된 평가 시스템에 가두고, 비정상적인 존재로 만들며, 자기 소외를 강요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저자는 역사의 표면 아래에 주름져 있는 삶의 고샅에 주목해 보자고 말한다. 2) 외침의 역사를 넘어 침묵의 역사로 저자는 그동안 우리의 역사 서술은 ‘외침의 역사’에 가까웠다고 진단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에 주목하는 것이 외침의 역사라면, 무위도식과 비효율을 긍정하는 것은 ‘침묵의 역사’다. 외침의 역사에서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주름져 있는 개인의 실존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디 역사는 삶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실존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저자는 모든 사람이 역사가임을 천명하고, 이제는 실존적 삶에서 출발하는 역사를 써 보자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좀더 자유로워지는 데 보탬이 될 것이기에. 임상역사가는 곧 외침의 역사에 가려진 개인들의 중층적인 삶을 역사화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임상역사가는 무엇에 기대어 개인의 삶을 역사화할 수 있을까? 저자는 미시사적 서술을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한다. 미시사는 국가나 민족보다 개인을 세계 구성의 주체로 상정한다. 미시사는 또한 맥락을 다룬다. 흔히 지엽적인 것에 매달린다거나 일상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가볍게 소묘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 광범위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찾는 데 초점을 둔다. 마지막으로 미시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다양한 맥락과 의미를 함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타자화된 개인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을 삶을 두텁게 역사화하는 데 미시사는 유용한 연장이 될 것이다. |
|
푸코, 살아 있는 역사의 문법
1) 푸코는 임상역사가다 저자는 지금의 우리 삶을 이렇게 꼴 지운 것은 무엇일까,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역사적 맥락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는 우리 삶의 저층을 흐르는 역사적 무의식을 들여다봄으로써 표피적인 근대화를 반성하는 것과도 맥이 통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푸코를 만났다. 지식의 고고학과 권력의 계보학으로 유럽 역사의 지층을 파헤침으로써 그간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밝힌 푸코의 사유 틀은 저자의 문제의식을 해명하는 데 유용한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저자는 푸코의 그러한 사유는 우연이나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낯설음으로 점철된 푸코 자신의 실존적 삶에서 배태된 것이다. 특히 동성애자로서의 애환을 빼고 그의 실존적 삶과 타자 사유를 말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삶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무의식은 언제나 낯설기만 한 것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적 경험이 반복되면 삐딱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푸코는 순하고 온화한 선비보다는 반골에 가깝다. 하지만 저자는 푸코는 자신의 소외 경험을 독기로 분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타자에 대한 사유로 녹여 냈다고 말한다. 푸코는 자신의 불편하고 낯선 경험을 통해 과거 지층에 묻힌 사람들의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푸코가 선택한 것은 ‘침묵의 고고학’이었다. 오랜 세월 땅속에 고요히 묻혀 있는 유물과도 같은 존재들, 어떤 이유로 광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침묵에 푸코는 넉넉한 관심을 베풀었다. 현재의 광인인 푸코는 과거의 광인과 동질감을 느꼈으며, 이를 토대로 공감의 역사 쓰기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푸코를 정신분석의나 상담심리치료사에 가까운 ‘임상역사가’라고 말한다. 요컨대 푸코의 사상은 낯선 것으로 점철된 자신의 운명을 힘겹게 껴안는 과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처 받은 삶에서 나온 심오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물었다. 동성애가 왜 비정상이고 부도덕하냐고.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고, 그것은 과연 정당한 것이냐고. 한 개인의 실존과 사유는 그렇게 서로 갈마들었다. 2) 개인의 역사를 위하여 새로운 사유는 새로운 실천 방식을 낳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푸코가 추구한 역사를 ‘실천적 역사’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푸코는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혁명에 복무하기 위해 역사를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푸코가 주목한 것은 개인의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으면서 자유를 억압하고 권력에 순응하게 만드는 많은 ‘정부政府’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유를 말하려거든 표면 아래에 잠겨 있는 거대한 얼음을 봐야 한다고 했다. 일상 속에 선험적이고 층위적으로 편재한 정치적 권력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자유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권력 관계가 정치적 억압의 뿌리라고 인식했기에 푸코의 저항 방식은 전 세대 지식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첫째, 푸코는 특수 지식인으로 저항했다. 사회가 점점 전문성과 합리성의 영역으로 재편되면서 그에 투쟁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지식인이 아니라 특수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지식인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푸코는 실증적 기반이 없는 이론적, 이데올로기적 공격 대신 구체적인 물증 조사를 통한 실증적 투쟁 방식을 견지했다. 셋째, 푸코는 억압이 있는 곳이라면 무한한 저항을 선포했다. 푸코가 보기에 우리는 모두 권력 관계에 속한 개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저항도 그만큼 무한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저자는 푸코가 타자화의 경험을 통해 내면화된 정치적 사유로 근대 문명의 안쪽에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철골을 향해 각을 세웠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푸코의 사유와 실천과 삶은 하나의 끈에 엮여 팽팽한 긴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좁은 의미의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여기의 나를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을 해명하기 위해 과학적 탐구, 문학적 서술, 사회적 실천을 아우르는 지식인이었다. 이를 위해 푸코는 두 개의 문턱을 껴안고 넘어섰다. 3) 푸코가 포월한 두 개의 문턱 저자가 보기에 푸코가 포월한 두 가지 문턱이란 감정의 문턱과 실증의 문턱이다. 감정의 문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랑케(1795∼1886) 이래로 20세기 중반까지 주류 역사학은 엄격한 방법론에 근거한 하나의 과학으로 인식되었다. 랑케는 자아를 소거하여 사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령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푸코의 저작에는 학술적 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심오한 감정이 농농하게 흐른다. 이를테면 《감시와 처벌》에서는 비통함이, 《광기의 역사》에서는 슬픔과 분노가 느껴진다. 학술서에 등장하는 이런 감정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인터뷰에서 푸코는 “저의 모든 저작은 제 자서전의 일부”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연대기적 서술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개인의 이야기로 보편적으로 승화시켰다. 한 개인의 실존적 경험에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 관통한다. 푸코는 그의 안에 고여 있던 실존적 아픔, 패배감, 비정상성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 공통의 문제로 확장했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편 실증의 문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푸코의 글을 읽다 보면 문헌 고증과는 다른 차원의 실증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실 푸코만큼 철저하게 사료 중심적인 역사가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일군의 전문 역사가들은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왜일까? 저자는 가장 크게는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대개의 역사서는 역사를 연속적 흐름으로 파악한다.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개별적 흐름은 다시 하나의 큰 흐름 속에 배치된다. 반면 푸코는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는 것은 문제라고 보았으며, 자신은 그 대척점에 있는 불연속적 역사 인식론을 견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증에 충실하되 불연속적 역사 인식론에 바탕을 둔 푸코 역사 서술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고고학적 접근을 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고학적 탐사란 어떤 유물 하나를 발견하는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를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푸코는 전통적 역사학에서 강조하듯이 1차 사료 연구에 충실하면서도 사료 범위를 크게 확대하고 인접 학문에까지 관심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둘째, 사소한 것에 대한 탐구를 들 수 있다고 했다. 푸코가 세부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 속에 숨겨진 의미 때문이 아니라 세부적인 것을 장악하려는 권력이 그 자리에서 갖게 되는 어떤 실천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사유를 들 수 있다고 했다. 넷째, 개연성 있는 상상력을 들 수 있다고 했다. 푸코는 랑케 식의 문제의식을 껴안으면서도 역사를 좀더 온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상상력과 가치 판단까지 껴안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