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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평전 1
중국, 일본에서 펼친 독립운동
김광열
역사비평사 20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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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을 내면서
서문

1장 | 구한말, 위기의 시대상
1. 집안 분위기와 어린 시절
2. 학생시절-서양문화와의 만남

2장 | 망국 그리고 계몽가의 길
1. 조선통감부 설치와 의병전쟁
2. 기독교 입신과 계몽운동
3. 교육자로서의 실천
4. 105인 사건과 조합교회 활동
5. 망명을 선택하다

3장 | 중국혁명에 대한 공명과 3·1운동의 태동
1. 남경에서 상해로
2. 상해 신아동제회의 활동
3. 손문과의 만남, 신한청년당의 결성
4.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다
5. 시베리아에서 알게 된 3·1운동

4장 | 상해 임시정부의 혼란 속에서
1. 블라디보스토크와 한성, 두 정부의 성립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3. 일제의 탄압
4. 세 임시정부의 상해 통합

5장 | 3·1운동과 5·4운동의 연대를 지향하며
1. 3·1운동에서 5·4운동으로
2. 상해에서 한·중 연대의 발전
3. 손문과 조선독립운동

6장 | ‘문화통치’와 여운형 유화공작
1. 하세가와 총독에서 사이토 총독으로
2. 조합교회의 여운형 유치공작
3. 공작의 창구, 척식국
4. 방일을 둘러싼 임시정부의 대립

7장 | 일제의 수도에서 외친 독립
1. 고가 척식국장관과의 회담
2. 다나카 육군대상 등 정부요인과의 회견
3. 미즈노 렌타로의 ‘문화정치론’을 논박하다
4. 제국호텔에서 행한 독립 연설
5. 요시노 사쿠조와 회견하다

8장 | 회유공작 실패로 인한 일본 정계의 혼란
1. 일본 정부 내의 대립과 서울방문 중지
2. 하라 내각의 의회대책
3. 제42회 제국의회에서 벌어진 논전

역자 후기·주(註)·연보

저자 소개 1

광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이다. 일본국립 도쿄(東京)외국어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대학원에서 동아시아사회사를 전공하여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현대 한일 관계사 분야에서 일본의 마이너리티 문제, 전시기 강제동원 피해 문제, 일본의 한반도 전후처리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패전 전후 일본21의 마이너리티와 냉전』, 『근현대 한일관계와 재일동포』(공저), 『일본 한인의 역사』(재외동포사총서, 공저),『일본 시민의 역사반성 운동』 『여운형 평전Ⅰ: 중국·일본에서 펼친 독립운동』(역서) 등이 있고, 기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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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덕상
1932년 한국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메이지(明治)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히토쓰바시(一橋)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시가현립(滋賀縣立)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中公新書), 『조선 독립운동의 군상(朝鮮獨立運動の群像)』(靑木書店), 『조선인 학도출진(朝鮮人學徒出陣)』(岩波書店), 『현대사자료』(조선 1~6, みすず書房), 『조선 독립운동의 혈사(朝鮮獨立運動の血史)』(譯, 平凡社 東洋文庫), 『여운형 평전 1, 2(呂運亨 評傳 1, 2)』(新幹社)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번에 출간되는 『여운형 평전 』1권을 비롯하여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이 번역, 소개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576쪽 | 1026g | 153*224*35mm
ISBN13
9788976968036

출판사 리뷰

몽양 여운형 (夢陽 呂運亨, 1886.5.25~1947.7.19)

경기도 양평에서 명망 있는 양반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교육자이자 종교인, 민족운동가로 활동하다가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신한청년당을 결성했다. 파리강화회의에 조선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2.6독립선언과 3.1운동의 불씨를 지폈으며, 상해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역을 맡는 등 항일독립운동가로서 왕성한 해외활동을 펼쳤다.

일제 말기에는 조선으로 건너와 비합법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을 만들어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해방 직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정부 수립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외세에서 벗어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민족 분단을 막고 한반도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좌우합작 남북연합의 기치를 내걸고 진보적 민주주의자로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47년 7월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의 피격을 받아 6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남북연석회의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2005년 3월 1일에 와서야 비로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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