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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5강 영화로 보는 중국 _임대근 중국으로 들어가는 문|영화의 시작|상하이에서 시작된 중국 영화|초창기 영화는 오락거리|연극영화|전쟁터가 된 중국과 영화의 고민|오락성에 충실했던 홍콩 영화|혁명성에 집착한 대륙 영화|5세대, 6세대 감독|산업으로서 현대 중국 영화의 고민 제6강 인문기행 중국: 배낭대학 _윤태옥 나에게 중국 여행이란?|‘인문여행’을 추구하는 이유|여행 패턴의 변화: 배낭|주제를 갖고 떠나는 중국 여행|중국 여행에 요긴한 기술|문자 언어로 스마트폰 활용하기|나름대로 중국을 즐기는 사람들|여행이란 제7강 중국인이 열광한 중국의 명품 _리무진 사람을 읽는다는 것|조선시대의 중국 명품 수집|푸얼차|자사호의 세계|방고와 짝퉁|파완의 문화|무쇠 탕관으로 찻물을 끓이다|침향과 향로|중국인이 사랑한 그 밖의 명품 제8강 중국이라는 만리장성 _김월회 만리장성에 대한 오해|만리장성 다시 보기|중화를 표상하는 만리장성|만리장성, 그 자체인 중국|고전이 빚어낸 ‘텍스트의 만리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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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탈린과 레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레닌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던 인물입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영화가 소련 영화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오쩌둥은 영화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만, 공산당 조직은 영화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는 걸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기뻐하든지 슬퍼하든지 분노하든지, 어떤 형태로든 심리와 정서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행동을 바꾸기 위해 자기들이 옳다고 여기는 사상을 영화에 투사했습니다.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하고, 그 분노와 슬픔으로 일어서게 하고, 행동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5강 영화로 보는 중국」중에서 실제로 유용한 중국어는 ‘말’이 아닌 ‘글’입니다. 우리도 한자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 때문에 조금만 익히면 실제 중국 여행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문자를 알면 무엇보다 정확하게 소통할 수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보존할 수도 있고, 또 중국 어딜 가나 통용됩니다. 말을 못해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띄우거나 단어를 써서 보여 주면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굉장히 유용한 무기가 됩니다. 문자의 유용성은 스마트폰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에 중국 유심 칩을 갈아 끼우면 그 순간 바로 중국 스마트폰이 됩니다. 지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국내 여행할 때 네이버 지도 하나면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됩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百度) 지도만 있으면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여행기술이라 할 수 있지요. 이런 걸 약간만 익히면 혼자서든 두세 사람이 힘을 합친 소그룹이든 배낭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여행에서 최고의 무기는 ‘미소’입니다. 남녀 사이에도 가장 강하게 어필하는 수단이 미소입니다. 미소를 머금고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어도 표정이 마네킹 같으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지요. 하지만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보내면 그 순간 인연이 시작됩니다. 교류하고 소통하고 도와주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사람은 전 세계 어딜 가나 다 똑같습니다. ---「제6강 인문기행 중국: 배낭대학」중에서 중국의 명품을 거론하면 중국에 무슨 명품이 있냐고, 중국은 ‘짝퉁’이나 만들어 내는 나라라고 코웃음 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중국은 폭넓은 수준의 상품을 만들어 내는 나라입니다. 예컨대 가장 질 좋은 차(茶)를 생산하는 곳도, 가장 저급한 차를 생산하는 곳도 중국입니다. 가장 수준 높은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도, 가장 쓰레기 같은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도 중국입니다. 우리가 늘 접하는 저가의 중국산 제품만을 보고 그들이 짝퉁만 생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면만 보고 중국을 평가하는 것이죠.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이전 시기에 중국의 물건은 세상 사람들에게 명품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제7강 중국인이 열광한 중국의 명품」중에서 길이가 만 리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중원을 통치했던 왕조 대부분은 장성 수축에 공을 들였습니다. 한족(漢族) 왕조만 장성을 쌓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북방 유목민 가운데 중원을 점령 통치했던 이들도 장성을 수축했습니다. 예컨대 지금 남아 있는 만리장성 자리에 장성을 수축하기 시작한 왕조는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북제(北齊, 550~577)로, 이들은 선비(鮮卑) 일파인 탁발부(拓跋部)에 속하는 유목민의 후예였습니다. 송(宋, 960~1279)을 장강 이남으로 내쫓고 중원의 새로운 패자가 된 여진의 금(金, 1152~1234) 또한 북방에 장성을 수축하여 신흥세력인 몽골의 남하에 대비했습니다. 유목민 출신 왕조가 쌓은 장성 수가 한족 왕조에서 쌓은 장성의 2배나 됩니다. 장성을 수축한 역대 왕조 가운데 한, 수(隋, 589~618), 명, 세 왕조만이 한족 정권이었고, 나머지 여섯 왕조는 모두 유목민 정권이었습니다. 중원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북방 정치세력의 내침을 방어할 필요가 절대적이었던 셈입니다. 이는 만리장성이 융적만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든 간에 중원을 침탈하는 외부 세력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임을 일러줍니다. 다만 북방 유목민의 내침이 중원 역사를 뒤흔들어 새로운 흐름을 초래하게 된 요인이다 보니, 만리장성 하면 자연스럽게 융적, 곧 ‘오랑캐’가 연상됐을 따름입니다. ---「제8강 중국이라는 만리장성」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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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교 2》에서는 오늘날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주제를 제시한다. 근대 상하이에서 시작된 중국 영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중국이 자랑하는 명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우리가 만리장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 알려 준다. 특히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면서 상호 간 이해도를 서서히 높여가는 인문기행은 우리가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전문가가 말하는 주제를 갖고 떠나는 중국 여행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다.
제5강은 ‘영화로 보는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국 영화 전문가의 입을 통해 중국 최초의 영화가 무엇인지, 굴곡진 중국의 현대사에서 영화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영화라는 매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발명품임에도 현대인에게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중국에서도 1896년 상하이에서 처음 상영된 이후, 오락물이나 정치적 선전도구로 중국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오늘날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국가이며, 집중적인 투자로 중국 영화산업이 성장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제6강 ‘인문기행 중국: 배낭대학’에서는 중국에서의 배낭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교통이나 숙박 등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언어까지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배낭 하나 둘러메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조금은 무모한 시도 같다. 그러나 이 강의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고 상식이 통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마음만 있다면 세계가 다 내 안방과 같다는 것이다. 제7강은 ‘중국인이 열광한 중국의 명품’이다. 중국은 가짜의 천국으로 악명 높지만 이곳에서 생산된 명품도 많이 있다. 푸얼차, 자사호, 침향과 향로 등 중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집가를 설레게 하는 중국의 명품을 만난다. 이를 통해 옛것을 사랑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중국인의 특성을 재차 발견할 수 있다. 제8강 ‘중국이라는 만리장성’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오해가 난무하는 만리장성의 역사, 의미, 잘못 알려진 사실 등을 밝힌다. 과연 장성은 북쪽 유목민족의 침입에 맞서 중국의 역대 왕조가 쌓아올린 방어적인 성격만 갖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강의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 또한 현대 중국에서 만리장성의 위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