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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1부 종이호랑이 발목 바람이 문을 열고 나에게 말하네 물의 처음 흙들에게 내 심장에 쓰다 몸에 새기다 지금 말하세요 후회 죄와 벌 검은 달 농막에서의 하룻밤 대관령옛길 난초무늬대자리항아리 낡은 집 유령거미 와랑치 아버지를 섬에 심고 박동 노을 너의 반은 꽃이다 2부 사회적 식사 청진동 골목에 자반고등어처럼 누워 있기 문어 독살 나의 도로시에게 시멘트 가라사대, 개구멍-오늘 방패에 찍히는 농부를 보았다 나는 약속이 있었다 노가리를 까다 나는 자웅동체다 눈과 희망, 잡으면 녹다 허물이 아니다 선수 침략 경고 2 이 골목은 중력이 크다 붉은 낙타 좁은 방에는 어둠이 넓네 귀뚜라미들 다시는 희망과 동참하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다 이상한 재지로 만든 한 장의 은유 왜 슬픔은 윤회하는가 3부 나비매듭 슬프지 않은 시 조문객 꽃잎 후박나무 명당 뜨겁게 산다는 것 원숭이 고양이 잡기 古代를 향해 가다 평범한 슬픔 길에 지다 배롱도 오랫동안 꽃놀이패에 걸리다 즐거운 제사 혓바닥과 열 개의 열쇠 순두부에 박수를 보내다 바람의 가족사 너는 늙어서 죽었다 해설|권혁웅 죽음과 청춘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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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 수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 박지웅의 첫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청춘을 위로하는 죽음과 죽음을 껴안은 청춘, 죽음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간절한 청춘, 그리고 삶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문명이 남긴 쓰레기, 그 불편한 진실 시인은 버림받은 것, 잡으면 녹는 것, 으깨어진 것들에 주목한다. 골목길에서 파는 자반고등어와 한몸이 되어 이야기하는 낯선 도시에서의 삶(「청진동 골목에 자반고등어처럼 누워 있기」), 짐꾼대기소에서 눈과 희망을 닮은꼴로 보는 시선(「눈과 희망, 잡으면 녹다」), 농산물 경매장의 깨진 수박과 만삭인 아내의 배를 접붙이는 순간(「경고2」)이 그것들이다. 시인은 이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상처받은 자의 상실감과 고통을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찍이 떨어진 채 그려내 보인다. 자기 성찰과 반성, 그 속에 숨어 있는 ‘산죽은’ 자의 시선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빚지지 않은 자는 없다. 시인은 어느새 자신 역시 “물질문명과 공범”이 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백하는 자의 위치가 범상치 않다. 평론가 권혁웅은 시인이 ‘산죽은’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한다. ‘산죽은’ 자가 바라보는 삶, 죽음 박지웅의 시에서 삶과 죽음은 단독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늘 “반은 묻혔고 반은 꿈틀거”리는 형태로, “반은 누워 있고 반은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이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 둘 중 어느 한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 사이에 서서 “그러면 편히 잠들라, 그리운 쪽이여”(「너의 반은 꽃이다」)라고 나직이 말할 뿐이다. 그와 같은 위치는 故신기섭 시인의 죽음에 관해 쓴 시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태 전, 신기섭 시인을 “품고 길 아래 구른 버스는” 신문지처럼 구겨져 그를 지웠다. 시인은 이 “기막히게 부드러운 죄”를 신문에서 읽었으며 그가 없는 지상에는 이제 “도통 읽을거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시인은 그가 없는 무료함을, 그가 잘 먹고 잘 살다가 “늙어서 죽었다”는 무료함으로 바꾼다. 죽음을 무료함으로 바꾸는 이 안간힘은, 죽은 자에게 제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하는 산 자의 안간힘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매달려 있는 이의 안간힘인 것이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시인은, 자주 추락하는 자신을 일으킨 것이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시인을 일으켜준 그 작고 초라한 것들, 병들고 지친 것들이 이제 시인의 시에서 위로받을 차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