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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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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서론 경합적 다원주의를 위하여
제1장 급진 민주주의 : 근대적인가 탈근대적인가?
제2장 미국 자유주의와 그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비판
제3장 롤즈 : 정치 없는 정치철학
제4장 민주주의적 시민권과 정치 공동체
제5장 여성주의와 시민권, 급진 민주주의 정치
제6장 자유사회주의를 향하여
제7장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접합에 대하여
제8장 다원주의와 현대 민주주의: 칼 슈미트를 중심으로
제9장 자유주의 정치[학]와 그 한계
옮긴이 후기

저자 소개 2

샹탈 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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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tal Mouffe

1943년 6월 17일 벨기에의 샤를루아에서 태어났다. 루뱅가톨릭대학교(벨기에)와 소르본대학교(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한 뒤, 에섹스대학교(영국)에서 만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을 출간하면서 주목받았다. 기존 맑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계급정치학을 비판해 포스트맑스주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무페는 점차 연구 범위를 확장해 이성과 보편성 중심의 서구 근대 정치철학을 급진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경합적 접근법(경합적 다원주의)에 의거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1943년 6월 17일 벨기에의 샤를루아에서 태어났다. 루뱅가톨릭대학교(벨기에)와 소르본대학교(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한 뒤, 에섹스대학교(영국)에서 만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을 출간하면서 주목받았다. 기존 맑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계급정치학을 비판해 포스트맑스주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무페는 점차 연구 범위를 확장해 이성과 보편성 중심의 서구 근대 정치철학을 급진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경합적 접근법(경합적 다원주의)에 의거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와 근현대문화연구소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2018), 『포데모스: 인민의 이름으로』(2016),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2005), 『민주주의의 역설』(2000), 『정치적인 것의 귀환』(199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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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대학원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동안 공부를 쉬었다가 최근 다시 프랑스 철학 중심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 있다.

이보경의 다른 상품

저자 : 샹탈 무페
벨기에 출신 정치철학자로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의 정치이론 교수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더불어 마르크스의 경제 결정론과 계급 정치학을 비판하고 신사회운동을 지지하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이론적 정식화는 이들의 공저인『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에 잘 담겨 있다. 또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기획을 제시한 이 책『정치적인 것의 귀환』(1993),『급진 민주주의의 차원』(1992),『민주주의의 역설』(2000),『정치적인 것에 대하여』(2005) 등의 저서가 있다. 이 외에도 편집서인『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 이론』(1979),『칼 슈미트의 도전』(1999)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78g | 148*210*20mm
ISBN13
9788990106513

책 속으로

1) 민주주의의 추동력으로서 갈등과 적대
민주주의 혁명은 자연이나 신에 근거한 단일한 실체적 공동선의 관점을 둘러싸고 조직된 위계적인 사회의 종언으로 이해된다. 클로드 르포르가 보여 주었듯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권력, 법, 지식이 근본적인 불확실성에 노출된 사회, 통제 불가능한 모험의 극장이 된 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군주의 인격 내에 구현되어 있고 초월적인 것과 결합한 권력의 부재는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나 질서의 실존 혹은 정당성의 선험적 원천을 무효화하고 있다. 사회는 더는 어떤 유기체적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실체로 정의될 수 없으며, ‘확실성 표지의 해소’라는 사회 구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확실성 표지의 해소를 통해서만 바로 ‘정치적인 것’이 작동하며 ‘민주주의’가 탄생하게 된다(3장, “롤즈: 정치 없는 정치 철학”, 4장, “민주주의적 시민권과 정치 공동체”).

이 점에서, 민주주의는 갈등의 제도화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갈등의 제도화란 사회 경제적 갈등의 제도적 해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갈등에 기반을 둔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갈등을 전제로만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갈등과 적대는 불행하게도 제거할 수 없는 방해물이나, 조화의 완전한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험적인 장애물로 간주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합의와 만장일치가 가능하다는 환상이 ‘반정치’에 호소하는 것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임을 인정해야 하며, 따라서 이런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정치 전선의 부재는 정치적 성숙의 기호이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공허함의 징후일 뿐이다(서론, “경합적 다원주의를 위하여”).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는 갈등과 적대가 항구적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며, 갈등과 적대는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동시에 그것의 최종적인 완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항상 ‘도래해야 할’ 하나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역설적 상황이 민주주의의 결점이 아니라, 바로 그 장점이며,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동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 자유주의 정치(학)와 그 불만들
롤즈의 "정의론"이 출간된 이래, ‘정치’, ‘정치적인 것’의 본성에 대한 성찰, 시장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치철학적 노력,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룬 사회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철학적 성찰 역시 많이 등장했다. 이런 철학적 논쟁의 흐름은 롤즈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진영과 샌들, 왈쩌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자들의 논쟁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롤즈의 성찰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인격체들이 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그들이 속한 결사체의 기본 조건들을 정의하기 위해 어떤 정의 원칙을 선택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소위 ‘정의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으로 구성된 롤즈의 정의론은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격체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이론적 논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당시 미국의 케인즈주의적 합의의 이론적 토대로 각광을 받았다. 요컨대 사유 재산을 자유주의 교리의 본질적 부분이 아니라 우연적 사실로 설정함으로써, 경제적 자유주의의 핵심 특징과 절연하면서, 평등주의적 함축을 가진 분배의 논리를 정식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롤즈의 정의론은 이후, 공동체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공동체주의자들은 개인이 사회보다 먼저 자연권을 부여받았다는 관념에 함축된 비역사적이고 비사회적이며 실체 없는 주체관을 비판하며, 자유주의 그 자체가 미국 사회의 파편화와 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부재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대체로 롤즈의 자유주의에 맞서 시민 공화주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2장, “미국 자유주의와 그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비판”; 3장, “롤즈: 정치 없는 정치철학”).

하지만, 롤즈의 자유주의와 이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은 ‘정치적인 것’을 사고하지 못하며, 그것의 갈등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한계를 가진다. 예컨대, 롤즈는 공동의 합리적 자기 이익의 실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에 근거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도덕적 인격체로 행동하는 시민들이 정의의 원칙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질서 정연한 사회’나 ‘원초적 상황’이라는 가정을 통해, 갈등과 적대의 영역을 정치의 영역에서 추방하거나, 이를 은폐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갈등과 적대, 헤게모니적 접합 등 ‘정치적인 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의 공동 이익, 목표 등을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자유주의적 정치관은 공적 영역에서 참여자들이 진지한 심의와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제하며, 정치의 장을 진지한 숙고와 합의의 장으로만 묘사하는데, 이는 종교적인 것, 도덕적인 것, 경제적인 것 등 갈등적 상황에 있는 쟁점들은 모두 사적인 영역으로 추방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이 점에서 소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갈등을 회피하는 정치관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은 롤즈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가진 선험적 논리와 비역사적 성격을 논박하는 점에서는 타당하지만, ‘시민적인 것’을 위해 ‘개인적 것’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며, 전통과 권위로 표상되는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 논리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무페는 현대 정치철학의 과제는 새로운 주체 위치들을 해석하고 시민들의 서로 다른 정체성들을 창출할 수 있기 위해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접합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이를 위해 무페는 현대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 적합한 공동체의 개념으로 소키에타스를 예로 들고 있다. 공동의 실체적 목적을 추구하거나 공동의 이익을 증대하려는 기획체인 우니베르시타스와 달리, 소키에타스 혹은 시민 결사체는 공동의 행위에 의한 어떤 실체적 관계가 아니라 규칙들에 의한 형식적 관계를 통해 형성된 결사체를 의미한다. 무페가 보기에, 이런 형식의 정치적 결사체는 단일한 실체적 공동선 관념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며 개인적 자유에 대한 여지를 인정하는 인간 결사체의 한 양식이다(4장, “민주주의적 시민권과 정치 공동체”).

---본문 내용 요약 중에서

출판사 리뷰

민주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결사체 사회주의
오늘날의 다원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 다시 말해 실체적 공동선의 관념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은 어떻게 되는가? 사회정의라는 관념은 반집단주의 물결에 희생되고 경제 민주주의 기획은 계급투쟁의 수사가 지배하던 지난 시대의 잔재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은 부활할 수 있을까? 무페는 과거의 사회주의의 기획을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재정식화해, 민주주의를 폭넓은 범위의 사회관계로 확장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요컨대, 사회주의를 경제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면, 사회주의는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기획의 필수 구성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6장, “자유사회주의를 향하여”).

무페는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제도틀 내에서 자유주의적 방법을 통해 달성되어야 한다는, 다시 말해 “명백한 개인주의적 사회관에서 동일하게 출발하고 제도상의 구조들을 동일하게 사용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이 작동시키려는 사회계약 이론에 반대하는 대안, 즉 분배적 정의 원칙을 조건 속에 포함하고 그에 따라 사회주의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전통과 양립 가능한 그런 대안을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는 보비오의 자유사회주의 논의를 통해 자신의 논점을 전개한다.

보비오는 “우리가 현실주의적이어야 하며 또 하나의 참된 민주주의, 하나의 완벽하게 화해된 사회, 하나의 완벽한 합의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실체적 정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접합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적 정의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상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인민 주권이라는 정치적 정식화로 받아들인다면,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자연적 발전으로 간주되며, 이를 통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접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확장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보비오는 ‘실체적 민주주의에 대한’, ‘참된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릴 것과 대의제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릴 것을 주장한다. 오히려 보비오는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를 대의 민주주의처럼 매우 전통적인 형식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공간들, 즉 지금까지는 위계적이거나 관료적인 조직들이 점령했던 그런 공간들에 침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보비오에 따르면, “오늘날 민주적 진보에 어떤 지표가 필요하다면, 그 지표는 유권자들의 수가 아니라 투표권이 행사되는 정치의 바깥에 있는 맥락들의 수다. ……주어진 한 나라에서 성취된 민주화의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은 ‘누가’ 투표하는가가 더는 아니며 그 사람들이 ‘어디에’ 투표할 수 있는가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 무페는 보비오가 지적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와 직접민주주의의 환상에 대한 비판”, “완전히 투명한 사회에서나 존재할 만한 완전한 합의에 대한 비판”, “민주주의에 대한 실체적 정의에 대한 비판” 등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무페는 보비오의 이론이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개인주의적 사회관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롤즈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 점에서 무페는 보비오의 이론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이론에서 지배적인 개인주의적 관점, 다시 말해 사회에 선행하며 그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모나드, 다시 말해 ‘무연고적’ 자아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다양성 속에서 새겨진 ‘주체 위치들’의 집합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자리로서의 개인, 수많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면서 다원적인 집단적 정체성 형성의 형식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이라는 이론의 정립(6장, “자유사회주의를 향하여”)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오늘날 오로지 개체적 단위로서의 개인들에 의해 권력이 통제되는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정의 집합적 정체성 형성의 효과로서 만들어진 ‘집단적 권리’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6장, “자유사회주의를 향하여”; 7장,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접합에 대하여”).

이와 관련해 무페는 사회적 분열과 의지들 사이의 갈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정당과 의회가 수행하는 역할을 부정하지 않으며, 나아가 만일 정당이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실패한다면 갈등들은 다른 모습을 띨 것이며 갈등들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치자와 피치자의 동질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대의제와 정당의 역할에 비판적인 슈미트의 논의를 기각하며,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당이 수행하는 집합적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승인한다. 하지만, 무페는 집합적 정체성의 형성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정당 이외에도 다른 다양한 결사체들이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가의 개입과 관료화에 저항하는 우파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가의 강화가 아닌, 다차원적인 권력의 중심들을 형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오늘날과 같이 법인 기업들이 점차 사회적 권력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수준과 형태로 이런 보이지 않는 권력을 가시화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전략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무페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과제는 원자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결사체들과 공동체들이 자율성을 확립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페는 결사체, 공동체 다원주의를 옹호하며, 이들이 작은 단위의 사회적 삶을 조직하도록 장려하며 위계와 행정 집중화에 도전할 수 있는 결사체 사회주의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급진적 다원적 민주주의 기획을 위해
신자유주의는 1960년대 말 ‘민주주의의 과잉’을 비판하면서 조직되었다. 이들은 ‘평등의 낭떠러지’라는 유령을 불러내어 당시 십 년 동안 각종 사회운동이 표현한 민주적 물결에 대항하는 공세에 착수했다. 그들은 이 다양한 새로운 권리들이 국가에 과잉 요구들을 부과했으며, 이 평등주의적 주장들의 폭발이 권위 체계를 위태롭게 하고, 국가를 통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이에 ‘신자유주의자’ 집단은 복지국가의 재분배 정책을 공격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늘어나는 간섭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이들은 국가 관료제의 확장과 부패, 무능력, 정치적인 것의 확장에 따른 사적 영역의 침식 등을 통해, 이들은 국가의 후퇴, 정치적인 것의 축소, 시장과 자율성의 확대라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관철시켰으며, 다양한 사회운동을 신자유주의적 담론에 성공적으로 접합시켰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좌파의 핵심 과제는 바로 우파의 신자유주의 전선에 맞서는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접합을 만들어 내는 일이며, 현존 자유민주주의에 실질적인 충격을 줄 만한 새로운 정치 전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이상을 위해 자유주의를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언제나 전체주의로 전도될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볼셰비즘과 파시즘은 모든 독재처럼 확실히 반자유주의적이지만 반드시 반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급진적 민주주의 기획을 건설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본질주의적인 단일한 하나의 정체성 건설, 동질적인 사회의 건설이 아니다. 그것은 종속에 저항하는 수많은 다양한 투쟁이 기입될 수 있는 ‘공통의’ 전선을 창출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는 젠더/인종/계급/성적 정체성 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민주주의 투쟁들이 접합될 수 있는 틀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와 평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모순적이며, 서로를 제약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어느 한 쪽만을 특권화하려 한다. 이런 주장들에 맞서 무페는 자유와 평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적 접합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특징이며, 바로 그 장점이라 주장한다. 서로 봉합될 수 없는 이상들,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 이 원칙들이 적용되어야 할 사회적 관계들의 유형, 그리고 이 원칙들을 제도화하는 방식을 둘러싼 경쟁적인 해석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적대와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급진적 다원적 민주주의는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다시 붕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민주주의 기획인 것이이다(7장,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접합에 대하여”, 9장, “자유주의 정치[학]와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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